서울에 사는 우리가 직접 고른 서울의 멋진 기념품 50가지. 까다롭게 고른 조건은 이랬다. 그런데, 나도 정말 갖고 싶은가?
과실 시리즈 우표 ‘포도’, ‘복숭아’
1974년에 나온 우표다. 1집 살구와 딸기를 시작으로, 2집 포도와 복숭아, 3집 배와 사과, 4집 감과 양앵두, 5집 감귤과 밤까지 총 10종이 차례로 나왔다. 이근문 디자이너의 간결한 시각이 그라비어 4도 인쇄를 통하면서 이토록 멋진 결과가 되었다.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요즘 나오는 우표는 40년 전 이 우표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는 미모를 뻔뻔하게도 들이댄다.
가격 2집의 경우 50매 전지 기준 도감가는 21만원이나, 실제 구매할 때는 세트에 7만원 정도.
가게 우정사, 02-752-8833 등 회현지하상가 내 우표 가게.
대안 1976년 발행된 ‘나비 시리즈’.
박영숙 백자그릇
“팽하면서도 산뜻한 감각이다. (…) 나는 접시나 찻잔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기 보다, 꼭 그렇게 되어 있어야 제격이기에 처음부터 붓으로 공동작업에 참여했다.” 1996년 이 백자그릇이 나왔을 때, 이우환 선생이 쓴 글이다. 과연 그걸 보고 어루만지고 알차게 쓰는 감각이 모두 청신하고 어여쁘다.
가격 작은 볼과 종지는 각각 7만원선.
가게 관훈동 7번지 아틀리에 서울, pahkny.com
대안 경기도 이천 유산요에 가면 도예가 이영호 선생이 푸른 구름을 그려 넣은 백자를 만날 수 있다.
BYC와 TRY 흰색 속옷
흰색 속옷이 (다행히) 여전히 나온다. 흰색 BYC나 트라이만 입는 야릇한 멋쟁이도 있다. ‘클래식’이라는 명분과 ‘진짜 편하다’는 경험이 함께 담긴 선택이다. 근데 두 제품 모델이 어쩐지 같은 사람으로 보여서, “BYC 모델이 ‘쌍수’를 하고 트라이까지 찍었나?” 믿거나 말거나, 어쩐지 서울다운 추측을 해봤다.
가격 각 4천원.
가게 각 대리점 및 시장통 속옷 가게들.
대안 저 옛날 ‘목련’이나 ‘브레이브 맨’ 같은 군용 속옷 브랜드가 있었다.
진은숙: 3개의 협주곡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 작곡의 협주곡을 연주했다. 피아노는 김선욱이, 첼로는 알반 게르하르트, 생황은 우 웨이가 연주했다. 한국 최초로 국제 클래식 음악상ICMA 현대음악 부문을 수상했다. 지금 이 시디를 서울 말고 다른 데서 사야 할까?
가격 2만3천원.
가게 교보문고, kyobobook.co.kr, 1544-1900
대안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9번, 2013년 9월 예술의 전당 실황 앨범.
송월 때타월
송월은 1949년부터 타월만을 만들어온 회사다. ‘때수건’, ‘이태리 타월’ 같은 말로 부르는 이 때타월은 송월이 1970년부터 만들어왔다. 익숙한 것은 녹색. 흰색은 디 앤 디파트먼트 서울이 송월과 같이 만든 것이다. 까끌까끌 확실하게 밀리는 품질만은 그대로다. 디 앤 디파트먼트 서울에서만 판다.
가격 1천5백원.
가게 디 앤 디파트먼트, d-seoul.mmmg.net, 02-795-1520
대안 디 앤 디파트먼트 서울에는 광주요의 질박한 그릇, 우일요의 새 모양 장식품, 삼화금속의 듬직한 1인용 가마솥도 있다.
티티경인 하이샤파 연필깎이
역사를 더듬어보니 1979년부터 나왔다. 1980년대 초등학생들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눠주던 마성의 은빛 주인공. 지금 봐도 손색없이 멋진 기차 모양 하이샤파 KI-200. 가격은 1만원대.
아라가야공업사 점핑 말
풍선을 누르면 앞으로 뛰어가는 ‘점핑 말’이 옛날보다 더 견고하고 세밀해졌다. 말발굽 소리처럼 “다그닥” 거리며 달려 나간다. 중국산 장난감들 사이에서 보기 드문 국산이다.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는 공장에서 만든다. 5천원.
롯데칠성음료 칠성사이다
사이다는 원래 사과주를 뜻하지만, 칠성사이다엔 알콜이 없다. 사이다는 국내에서 투명한 탄산음료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스프라이트나 세븐업에 비해 쏘는 맛은 진하고, 신맛은 덜하다. 생각할수록 특이한 음료다. 1천3백원.
일품진로
서울에선 소주를 마셔보라 추천하지만, 그게 희석식 소주라는 건 안타깝다. 기념품 소주를 산다면 꼭 증류식 소주를 고른다. 탄산수를 더해 칵테일처럼 마시기도 좋은 대나무 향 술이라면 더 좋다. 1만2천원. ilpoomjinro.com
서울대학교 노트
도시를 대표하는 대학 캠퍼스를 걷는 오후.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문구점에선 자체 제작한 여러 기념품을 판다.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노트 몇 권을 사서 뭐라도 쓴다. ‘생각보다’ 근사한 디자인이다. 1천5백원.
플레인 아카이브 블루레이 디스크
플레인은 영화를 새롭게 디자인해 간직할 만한 ‘타이틀’로 만든다. 매번 출시될 때마다 품절되지만, 새로운 영화도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다음 달 출시될 타이틀은 <마미>다. 2만~3만5천원대. plainarchive.co.kr
두산 베어스 모자
OB시절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베어스의 유니폼은 모든 야구팬들에게 ‘예쁘다’는 동의를 얻는다. 특히 흰색, 빨간색, 남색으로 배열된 ‘올드’ 모자는, 야구를 잘 몰라도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디자인이라 꼭 갖고 싶다. 2만5천원.
납청놋전 꽹과리
소리가 나는 순간 “이게 한국이지” 싶어서 웃는다. 두드리고 펴기를 수없이 반복해 만든 꽹과리는 그 요란한 소리와는 달리 은은한 빛으로 벽을 장식하기도 한다. 이봉주 장인이 만든 것은 9만5천원.
아스텔앤컨 AK-240SS
애플과 삼성의 그 유명한 재판을 계기로 한국은 ‘쿨’과 먼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쿨하고 성능 좋은 무손실 음원 플레이어 AK-240SS가 있다. 3백44만원.
빈 콜렉션 메밀 베개
머리를 대면, 차르르 메밀이 ‘흐르는’ 것 같다.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다시 흐른다. 그게 참 시원하고 아늑하다. 고운 바느질과 정갈한 매무새, 훌훌 물세탁을 하면 (이른바 물실크다) 그만이라는 일상적 편의까지. 꼭 이 베개여야만 할 것 같은 밤이 있을 것이다. 속을 누에고치로 채운 것도 있다.
가격 9만원.
가게 정동 세종대로 19길 16, viin.co.kr
대안 신라호텔 아케이드에 있는 김영석 한복에 가면 베개며 이불이며 방석까지 두루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신세계 울릉도 돌김
“이거 먹으면 딴 거 못 먹는다”는 식으로 말할 때가 있다. 이 김이 딱 그 쪽이다. “원래 김이 이랬나?”와 “김이 원래 이랬지!”가 뒤섞인 채 손이 절로 간다. 맛이면 맛, 향이면 향, 식감이면 식감, 거친 파도가 키워낸 울릉도의 보물을 서울에서도 살 수 있다. SSG 푸드 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 중 하나다.
가격 2만원. (5매, 크기가 웬만한 김보다 훨씬 크다.)
가게 SSG 푸드마켓.
대안 을지로에 있는 건어물 전문 중부시장에서 그때그때 상인들이 추천하는 걸 먹어보며 고른다. 김이든 멸치든 미역이든.
알파 서울색 아크릴 물감
알파색채와 서울시가 같이 만든 서울색 아크릴 물감이다. 서울의 상징 해태 로고가 박혀 있고, 검정색과 흰색을 제외한 모든 색의 이름도 예쁘다. 단청빨간색, 남산초록색, 한강은백색 같은 이름…. 물감의 채도와 풍경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도, 과연 묘하게 떠오르는 건 고궁의 단청과 남산의 봄, 한강의 새벽.
가격 9천7백원.
가게 고속버스 터미널에 있는 한가람문구에서 샀는데, 지금은 좀 귀한 물건이 되었다. 알파색채 본사 홈페이지, alphacolor.com의 판매처 목록 참고.
대안 서울색 포스터 컬러도, 서울색 색종이도 있다.
갤러리 현대 < Korean Erotic Painting >
2013년에 열린 <옛사람의 삶과 풍류 – 조선시대 풍속화와 춘화> 전시 때 나온 춘화첩이다. 각각 단원과 혜원이 그렸다고 전하는 <운우도첩>과 <건곤일회첩>을 함께 묶은 것으로, 이렇게 공들인 책이 있었나 싶도록 종이와 인쇄가 탁월하다. 장정과 표지가 화려했다면 과연 만점을 줬을 텐데.
가격 15만원.
가게 사간동 갤러리 현대 및 대형 온라인 서점.
대안 해마다 봄과 가을에 전시를 열어온 간송미술관의 전시 도록 <간송문화>.
양혜규 <코끼리를 쏘다, 코끼리를 생각하다>전 아트 상품
리움 아트숍은 상품 구색이며 품질이며 두루 추천할 만한데, 특히 지금 전시 중인(5월 10일까지) 양혜규 개인전 아트 상품은 발상과 디자인, 쓰임과 완성도가 모두 돋보인다. 작가가 금속으로 만든 조각을 흉내 낸 오너먼트 를 보면 즐거운 웃음이 먼저 번진다.
가격 9천원.
가게 한남동 리움 아트숍.
대안 이촌동 국립 중앙 박물관 내 가게에 있는 온갖 것들 사이에서 신중히 ‘잘’ 골라본다.
한복 미미
미미는 한국의 바비 인형이다. 바비보다 키도 작도 드라마틱한 몸매도 아니지만, 단아한 얼굴만큼은 이영애의 뺨을 후려치고도 남는다. 검고 풍성한 머리숱, 동글납작한 얼굴, 뽀얀 피부가 고전미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한복을 입은 미미 인형은 ‘패션 미미’ 시리즈 중 하나. 버선부터 속바지까지 제대로 갖췄다.
가격 1만7천5백원.
가게 동대문 완구시장 내 유일완구교재사, 02-742-9158
대안 패션 미미의 월드 시리즈 중 ‘퓨전 한복’ 미미. 미니스커트처럼 생긴 뎅강한 한복을 입고 반팔 저고리를 입었는데, 그 모습조차도 좀 귀엽다.
갓 러브 디자인 북램프
책처럼 머릿속을 환하게 밝히는 경험을 지향한다. “책 자체가 이미 많은 의미와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별다른 개념이나 장식을 더하지 않았다. 책의 내용과 저자를 고심해서 선택했고 그 위에 간결한 램프를 튼튼하게 달았다. 5월 초까지 통의동 북소사이어티의 코너 ‘온 더 테이블’에서도 만날 수 있다.
가격 8만9천원.
가게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265-963 1층, godlovedesign.com, 070-7524-0611
대안 평소 빛보다는 어둠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동대문 원단시장에서 파는 암막지와 암막 커튼이 있다.
김대석 민합죽선
무형문화재 48-1호 접선장 김대석의 민합죽선이다. 흰색 상자에는 ‘대숲 맑은 바람 민합죽선’이라고 붓글씨로 쓰여 있다. 과연 옹골찬 생김, ‘촤라락’ 펼치는 소리부터 귀가 다 시원하다. 오른손에 가볍게 쥐고 얼굴 앞에서 살살 흔들면 저기 산 위에서 계곡을 훑고 내려오는 것 같은 은은한 바람이 분다.
가격 5만5천원, 부챗살이 검정색인 것은 2만2천원.
가게 종로구 누하동 100번지 바버샵, barbershop.co.kr, 070-4155-9774
대안 튼튼하게 짠 모스그린 양말. 클래스티지 스카프 바버샵 에디션.
케이크샵 라이터
야구를 잘하는 선수는 뭘 해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동시대의 가장 멋진 음악을, 세계의 속도로 소개하는 케이크샵이 라이터를 만들었다.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흔한 빅 라이터지만, 케이크샵 로고가 들어가자 달라 보인다. 파는 제품은 아니다. 쿨한 사람에게만 증정한다고.
가격 무료.
가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34-16 B1, cakeshopseoul.com
대안 홍대에 위치한 카페 공중 캠프는 라이브 공연과 행사 때마다 기념품을 만든다. 올해로 12주년이니 족히 100종은 될 것이다.
우주만물 모자
이 모자들은 사진가 이윤호와 강민구의 프레임이면서, 서울 시민의 시야 바깥에 위치한 소재의 전시장이다. 아이템풀 로고, 고기, 모텔, 계좌번호를 모자에 새길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 처참할 정도의 모자 재질에서 ‘마진’이 아니라 ‘유머’가 떠오르는 것은 우주만물이기 때문이다.
가격 1만5천~2만5천원.
가게 서울시 마포구 신공덕동 2-501 1층, cosmoswholesale. tumblr.com
대안 우주만물에서는 사진가 이윤호와 강민구의 프린트도 판매 중이다.
램 아틀리에 타피스트리 북 커버
책은 좋은데 커버가 거지 같을 때의 낭패감 내지 상실감은 차라리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이 아름다운 타피스트리를 오직 뭔가를 ‘가리는’ 용도로만 취급하자면, 그건 그것대로 억울한 얘기. 다만 이 북 커버는 좋은 책과 아름다운 커버 사이에 가교를 놓는다. 사이즈며 컬러며 원하는대로 맞춤형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
가격 4권 세트 6천원.
가게 계동 48-13 번지 램 아틀리에, 02-739-8217
대안 램 아틀리에에는 러그나 테이블 매트, 가리개나 장식품 등 다양한 타피스트리가 있으며, 직접 제작하는 클래스도 운영한다.
- 에디터
- 피처팀
- 포토그래퍼
- 이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