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냉장고 속이 애매할 땐 토마토에게 부탁해.
토마토는 신통방통하다. 서툰 손으로 요리해도 밥상 전체를 빛내고, 무려 ‘사진발’도 제대로 살린다. 중식에도, 양식에도 한자리씩 차지하는 개근형 식재료이자 메인 요리를 빛내는 조연으로도 다부지다. 여름과 초가을까지가 제철이지만, 원한다면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생토마토를 먹으면 출근길 내내 뱃속이 든든하다. 방울토마토라도 한 줌 가방 속에 있는 날이면 고된 외근도 두려울 것이 없다.
시판 토마토소스 한 병만 있으면 누구나 근사한 스파게티를 만들 수 있다. 토마토를 떠올렸을 때 스파게티라는 단어가 바로 연상됐다면, 라면보다 단출한 그 요리의 쾌감을 맛본 적 있기 때문일 테다. 여기에 방울토마토만 더해도 스파게티는 카메라 앞에서 매끈한 자태를 뽐낸다.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일 역시 크게 어렵지 않다. 냉장고에 있는 초록색 채소를 큼직하게 썰어 더하고, 리코타 치즈를 뚝 떼서 올리면 끝. 만약 가스레인지 불마저 켜기 귀찮다면? 프라이팬 위에서 소스를 버무리는 일을 대체할 방법이 하나 더 있다. 토마토 1개, 마늘 2~3톨, 구운 아몬드 한 줌, 바질 몇 잎, 올리브 오일 약간을 믹서에 넣고 돌린 뒤 그 차가운 소스에 바로 익힌 스파게티 면을 버무린다.
오후 4시는 늘 출출하다. 허기를 참을 인내심이 바닥나는 시간이다. 이때 토마토로 만든 간식을 먹는다면, 스타벅스 자바칩 프라푸치노 벤티 사이즈를 비우는 것보다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울 테다. 캄파리 토마토에 칼로 십자 모양을 낸 뒤 슈크림빵에 크림을 채우듯 마요네즈를 채운다. 가지고 있는 초록색 채소 무엇이든(영양부추, 딜, 이탤리언 파슬리 등) 살짝 흩뿌리면 사진 찍기 더 좋다. 혹은 햄버거 속 토마토보다 조금 두껍게 썬 뒤 올리브 오일에 담가두었다가 곰보빵 부스러기에 푹 찍어 먹는다. 올리브 오일 대신 꿀을 쓰면 단맛에 혀가 춤춘다.
저녁 식사는 블러드메리와 판자넬라로 시작한다. 토마토주스, 보드카, 우스터소스, 핫소스, 후추 등을 넣는 블러드메리는 한 접시 요리 같은 든든한 ‘토마토 술’이다. 판자넬라는 빵을 넣어 버무리는 이탈리아식 샐러드다. 혀가 꼬이는 이름이지만, 막상 만들어보면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탈탈 넣어 비비는 방식이 어쩐지 친숙하다. 상하기 일보 직전의 빵을 프라이팬에 구운 뒤 뜯어 넣고 방울 토마토, 양파, 구운 파 등을 취향대로 더한다. 바질, 루콜라, 파프리카, 블랙 올리브…. 냉장고에 남아 있는 건 다 썰어 넣는다. 올리브 오일은 휘휘 둘러 재료에 충분히 젖어들게 한다.
구운 방울토마토에 실패란 없다. 일단 반으로 썰어 프라이팬에 그대로 넣고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를 흩뿌린 뒤 타임을 넣고 들들 볶는다. 타임은 줄기 그대로 넣어도 좋고 줄기를 잡고 손으로 한번 쓸어 잎만 떨어지게 해도 된다. 요리라고 부르기엔 머쓱한 이 접시를 더 맛있게 만들려면 막 스테이크를 요리한 프라이팬에 바로 구워본다. 고기 향이 배는 것은 물론, 스테이크만 덜렁 있는 접시 위에 한 떨기 꽃처럼 분위기를 살린다.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썰지 않고 줄기채로 강하게 달군 프라이팬에 태우 듯이 굽는 방법도 있다. 즙을 흥건히 머금은 이 토마토는 어떤 접시에 갖다 던져도 요리가 된다.
토마토는 술안주로도 맹렬히 활약한다. 큼직한 오븐용 그릇에 토마토를 넣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잠길 듯 말 듯 넉넉히 붓는다. 사이사이로 통마늘과 로즈메리, 타임을 빡빡하게 밀어 넣는다. 200도 온도의 오븐에 통으로 넣고 토마토의 껍질이 훌러덩 벗겨질 때까지 둔다. 이때 오븐을 뚫고 피어오르는 향기가 뱃속을 마구 두드릴 테다. 오븐에서 제대로 쭈그러진 토마토는 브루스케타 만들 때처럼 얇게 썬 바게트 위에 올려 먹는다. 마늘은 빵 표면에 문지르듯 발라 먹고, 토마토는 빵과 빵 사이에 끼워 샌드위치처럼 먹을 수도 있다. 취향에 따라 올리브 오일에 가지나 버섯을 빠뜨려도 좋다. 카수엘라를 응용해 새우까지 넣으면 빈 와인병 소리가 밤새도록 날지도 모르겠다.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