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우주에 관한 책이며 그림을 두루 찾아서 보긴 했으나 그 이상 더 알게 되진 않았다. 우주가 얼마나 깊은지에 대한 얕은 떨림만 잦 아졌을 뿐. 식어가는 별에 대한 천재적인 관측은 늘 이미지를 만들었다. 사실 안드로메다 운하는 머리 위로 쭉 올라가기만 하면 있다. 그 사이엔 2백만 광년이 존재하지만, 어떤 때 광년은 벼룩이 뛰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주란 시간처럼 접착제로 붙여진 곳이란 걸 깨닫기 위해 여기서 얼마나 더 나이 들어야 하나.
무엇이든 예외 없이 조금만 머물다 순식간에 사라질 거라는 물리적 현실은 잊은 적이 없다. 결함도 제한도 많은 거주지지만 나름대로 온화한 행성에서 누린 수백만 개의 달과 주, 그 속에 낀 채 드물기만 했던 휴일은 양자와 전자, 중성자의 모자이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가 불명확하게 다 시 합쳐지고 말 터였다. 수프는 식을 때까지 또 뜨거워질 때까지 계속 휘 저어질 게 뻔했다. 수십억 년 뒤 안드로메다 은하가 우리 은하를 집어삼 키면 다크 스카이가 옹호하는 섬광 폭탄으로 화해버리고 그걸로 끝이겠 으나, 솔직히 우리 중에 그걸 직접 겪을 사람은 없다. 설혹 그때까지 간댕 간댕 버티며 산다 한들 그전에 지구는 금성처럼 뜨겁게 변해 모든 생물이 깡그리 타버렸을 테니까.
아이일 땐 액션피겨를 갖고 놀기만 하면 되지만, 어른이 되면 스스로 액션피겨가 되어야 한다. 지구도, 때가 되어 우주를 찾아 나섰다. 태양과 다른 행성들이 쇠약해지기 전에, 단단한 원자 틈을 파헤치듯이. 케플러 452b, 글리제 581g처럼 지금 당장 가서 살아도 될 만큼 지구와 비슷한 행 성을 우수수 찾았다는 소식을 요새 부쩍 듣다 보니 뭔가 무르익었다 싶 긴 했다. 화성에서 다량의 물이 발견되었다는 나사의 적극적인 발표는 인 간에게 영감을 주었던 어떤 발견보다 강력해 보였다. 사실 지구인의 우주 탐사가 사악한 ET를 초대할 수 있다고 경고한 스티븐 호킹이나, 방역되 지 않은 지구인이 화성에 가면 거기 서식할지도 모르는 미생물과 화성인 까지 궤멸시킬 거라는 우주 휴머니스트들의 얘길 들으면, 다들 지구 밖에 빼어난 지적 생명체가 있다는 걸 가설이 아닌 실제로 느끼는 것 같다. 우 주에 얼마나 가족이 많은지, 어디 흩어져 있는지 아직은 모르지만 언젠가 꼭 한 번은 누구라도 만나고 싶은 거지.
근데 아무리 봐도 인간은 화성인들에게 진공청소기가 될 게 뻔하다. 화성인이 지구인에게 환영의 손을 뻗는다면 그 손을 낚아채 바로 씹어버 릴 테니까. 인간의 몸이 핥기에 안전한지 화성인이 판단하기도 전에 총을 숨긴 지구인은 그의 새끼까지 찢어버릴 것이다. 사람들이 화성에 가려는 게 혹시 우주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라기보다 황금과 노예들을 찾기 위 해서였나? 언젠가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행성이 있다는 보도에 다들 실 성한 듯 흥분하다 말고 얼마나 좌절했는지 다른 은하 가족들은 상상도 못하겠지. 지구인들이 화성인들과 연합해 마냥 순진한 생명들을 때려 잡 은 다음 수순대로 동료를 공격하리란 것도. 중력이 워낙 가벼워 할아버지 도 홍길동에 일지매가 돼 펄펄 나는 마당에 야구방망이로 화성인의 머리 를 날려버리고, 붉은 둔덕의 박테리아 찌꺼기를 끌고 내려와 그들 아가미 에 처넣는 것쯤 일도 아닌 것을. 인간이 가정마다 화염방사기를 만들게 되 는 날, 우주의 판도가 바뀔 것이다. 지구인에겐 바주카포도 꽃의 한 종류 니까. 서로 비교는 할 것 같다. 어느 문명이 더 앞섰는지. 지구인을 쳐다보 는 화성인? 아니면 바지를 내리고 그쪽을 향해 오줌을 쏘는 지구인? 화성 인이 지구의 종교를 비판하면서 그런 삶의 방식에 논리도 타당성도 없다 고 생각하는 건 충분히 일리 있지만, 지구인은 화성인 신의 마른 목을 잡 고 녹색 머리가 터질 때까지 졸라버릴 것이다. 전쟁을 다룬 지구의 모든 드라마, <우주 전쟁>부터 70년대 극동의 변방에서 찍은 <전우>까지 다 본 화성인이 지구와 평화롭게 살아온 오랜 전통을 강조할 때, 지구인은 그 들의 큰 머리를 바이스에 넣고 앵무새와 비슷한 신음소리를 듣고야 말겠 지. 뭐가 됐든 더러운 새끼들이 크륵크륵 모아선 U자로 뾰족하게 접은 혓 바닥 위에 올려놓은 가래침 한 방이나, 내장 깊숙히 들어갔다가 누렇게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 한 타래로도 화성쯤 한 방에 날려버릴 것이다.
완전한 형태의 전기와 지리학, 민족학, 군대의 역사로 이어지던 조지 루카스의 가상 왕국이 이렇게 왕성하고 추잡하게 퍼져나가다니 좀 미안 한걸. 그런데 우주는 그 사이에도 팽창해 형용사가 모자랄 지경이 되었군. 필시 며칠 안에 성간 여행용 스페이스십 제조업체들이 자동차 브랜드처 럼 흔해지고, 그 배의 최고 속력, 로켓 추진 타이밍, 초고속 엔진으로 바뀌 는 메커니즘, 그 배 주방장의 신원까지 알 날이 방긋하고 오겠지. 고고학 자들은 발굴된 도자기 조각을 탐구하며 추론을 실제로 만들지만, 성공한 고고학자라면 그 지역을 스스로 정할 것이다. 용감한 사람들이 절망적으 로 먼 은하계로 묘사되는 타투인으로 떠나는 건 그 때문이다.
“이번 생은 틀렸어”라고 한탄하는 한국 사람들의 속마음은, 죽어서 인도 마힌드라 부자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영웅담 이 될 수 없는 찌질한 삶을 다 잊고 스타워즈 여행객이 되어 새출발 하고 싶은 거겠지. 지금, 불이 활활 타오르는 별들 사이, 핵이 강력한 열기를 뿜 어내는 행성에서 손부채질하는 이들을 상상한다. 지구를 떠나도 나아지 지 않은 인생이 어이없는. … 아, 이런 얘기 다 부질없다. 미국은 지금 명왕 성을 저미듯 샅샅이 뒤지고, 태양계 끝자락 카이퍼 벨트까지 탐험하며 미 래의 영토를 확장해나가는데, 이놈의 나라는 교과서를 바꾸고 역사를 수정하며 한없이 덧칠된 과거로 퇴행하고 있는 판에.
- 에디터
- 이충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