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관련된 알 듯 말 듯한 궁금증, 서양 식문화의 장벽을 허물 만한 가장 기초적인 정보들을 모았다.
와인병 아랫부분은 왜 움푹 들어가 있을까? 깊게 들어갈수록 비싼 와인이라는 말은 사실일까? 와인병 모양과 와인의 맛은 큰 상관이 없다. 프랑스 보르도나 부르고뉴처럼 지역에 따라 특유의 병 모양이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는 곳도 있지만, 보통은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든다. 와인병 아래 움푹 들어간 부분을 펀트Punt라고 부르는데, 유리 성형 과정에서 병을 안정적으로 세우기 위해 끝을 안으로 말아 넣으면서 만들어진 모양이다. 이 펀트가 깊을수록 좋은 와인이라는 속설은 와인 문화에 익숙지 않았던 시절의 에피소드다. 펀트가 와인 찌꺼기를 걸러내기 위한 장치라는 설명도 있는데, 이 것 역시 맞는 말은 아니다. 가만히 세워두면 와인 찌꺼기가 병 밑바닥의 가장자리로 모이게 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한번 따르고 나면 찌꺼기는 병 안에서 제멋대로 휘몰아칠 테다. 유난히 움푹 들어간 펀트는 병의 용량에 비해 병이 더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한 작은 아이디어로 이해하는 게 맞다.
달걀의 유통기한은 도대체 언제까지일까? 달걀은 전천후 식재료다. 영양적으로는 둘째치더라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든든하게 챙겨 먹을 수 있는 달걀 요리 아이디어가 지천에 널려 있다. 심지어 달걀흰자는 칵테일의 거품을 만드는 핵심 식재료이기도 하다. 특히 빵을 구울 때는 식감이나 맛이 아닌, 구조적인 특징이 더 중요해진다. 다른 재료를 결합하는 데 힘을 보태기 때문이다. 빵이 더 부풀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달걀의 유통기한은 늘 의문이다. 표기된 유통기한보다 훨씬 지난 달걀도 아무 이상 없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달걀의 유통기한은 의무적으로 표기해야 하는 사항이 아니었다. 2011년 1월부터 농림수산식품부는 달걀의 유통기한을 10도 이하에선 35일, 10~20도에선 21일, 20~25도에선 14일, 25~30도에선 7일로 정했다. 표기도 의무화됐다.
‘새우 칵테일’은 왜 ‘칵테일’인가? 주로 마티니 칵테일이 나오는 V자 모양의 칵테일 잔에 새우를 둥그렇게 매단 것을 두고 ‘새우 칵테일’이라고 부른다. 식당에서 주로 차가운 애피타이저로 먹는 그 요리 말이다. 이 뜬금없는 요리의 이름은 1920년 미국의 금주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술의 제조와 판매가 전면 금지돼, 사람들은 이름과 모양이라도 ‘칵테일’을 연상시키는 것을 만들며 아쉬움을 달랬다. 마티니 잔에 소스를 담고 둘레에 익힌 새우를 주렁주렁 걸어두는 것으로 위안을 받았다. 작은 크기의 냉동 새우를 ‘칵테일 새우’라고 부르는 것도 이 요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혹자들은 껍질을 벗기고 꼬리만 남긴 냉동 새우의 모양이 수탉cock의 꼬리tail를 닮아서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는 술의 일종인 ‘칵테일’의 어원이지 새우와는 큰 상관이 없다. ‘새우 칵테일’에 쓰이는 새우처럼 파는 것을 두고 ‘칵테일 새우’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는 설명에 더 무게가 실린다. 미국의 금주법은 순간적으로 많은 문화를 토해냈는데, 시저 샐러드도 그중 하나다. < 음식의 별난 역사 >에는 금주법 때문에 멕시코 국경 근처로 레스토랑을 옮긴 ‘시저 카르디니’가 식재료가 떨어져 남은 양상추와 크루통, 달걀 등으로 대충 만든 샐러드라는 설명이 나온다. 요즘 바에서 종종 보이는 ‘라모스 진피즈’라는 이름의 칵테일도 금주법 시대의 에피소드가 녹아 있다. 바에서 몰래 술을 제조해 팔 당시, 밀크셰이크처럼 보이게 이 술을 만들어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프렌치토스트를 진짜 먹을까? 먹는다. 다만 이름이 다르다. 프랑스에서는 프렌치 토스트처럼 달걀물을 입힌 토스트를 ‘못 쓰는 빵’이라는 뜻의 ‘팡 페흐뒤Pain Perdu’라고 부른다. 프렌치토스트라는 말은 프랑스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더 많이 쓰는 듯하다. 이 단어의 기원에 얽힌 설은 유난히 다채롭다. 여러 가지 설 중 하나는 독일에서 시작됐다는 내용이다. 독일에서 달걀물을 입힌 토스트를 ‘가난한 기사들Poor knights’이라는 뜻의 ‘알메 리터’로 부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동맹국인 프랑스를 기리는 의미로 프렌치 토스트라고 바꿔 불렀다고 한다. 미국에서 굳어진 단어라는 설도 있다. 원래 이 음식은 저먼 토스트, 스패니시 토스트, 프렌치토스트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토스트였는데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이 적국인 독일의 이름을 토스트에 붙일 수 없어 프렌치토스트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우유와 버터를 많이 사용해 만드는 토스트라 크림을 많이 사용하는 프렌치 요리가 연상돼 그렇게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정확히 프랑스식이 아닌데 ‘프렌치’라는 이름이 붙은 요리가 몇 가지 있다. 프렌치 프라이가 또 다른 예다.
Whisky와 Whiskey는 어떻게 다를까? 영국식 표기는 Whisky, 미국식 표기는 whiskey다. 한번 굳어진 철자법이 계속 이어진 것도 있지만, 스카치 위스키와 미국 위스키의 차이가 확실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철자법으로 그 차이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 2008년 12월, < 뉴욕 타임스 >의 에릭 아시모브 기자는 스카치 위스키에 e를 포함시켰다가 독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결국 그 기자가 직접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에디터에게 해당 사안을 문의했고, 스카치 위스키에는 e를 제외한 whisky를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는 답변을 얻었다. <뉴욕 타임스> 스타일북에도 같은 내용으로 사례가 올라갔다. 스카치 위스키의 자존심이 빚어낸 해프닝 같지만, 요즘은 미국 위스키 바람도 거세다. 칵테일에 없어서는 안 될 베이스 술로 활약하고 있으며 거친 느낌의 라이 위스키까지 가세하며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Whiskey라는 철자를 꽤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식사빵’이라는 말은 뭘까? 발효빵이 유행하면서 기존에 우리가 먹던 간식 빵과 차별화시키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만든 단어다. 소보로나 크림빵처럼 크기가 작으면서 단맛이 강렬한 빵은 다른 요리와 곁들이기가 힘드니 그것대로 먹는다고 해서 간식이고, 발효빵은 메인 요리에 곁들일 수 있어 ‘식사빵’이다. 혹은 밥 대신 먹을 수 있을 만큼 빵이 담백하고 덩어리가 넉넉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주로 바게트나 캄파뉴, 치아바타 등이다. 국내 베이커리의 동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단어지만 해외에서 통용되는 개념은 아니라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좋은 잔은 정말 음료의 맛을 바꿀까? 프리미엄 와인 잔과 맥주잔 산업은 계속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와인 잔은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모양이 세분화되고 있고, 크래프트 맥주의 열풍에 맞춰 맥주잔도 맥주 스타일에 따라 섬세하게 변신했다. 과연 비싸고 좋은 잔은 음료의 맛을 살려낼까? 정확히 말하면 좋은 잔은 음료의 장점을 드러낸다. 기본적인 품질이 좋으면 그 안에 들어가는 음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당연하다. 잔의 표면을 구성하는 입자가 균일하고 조밀하면 음료와 그 속의 기포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플라스틱 잔에 탄산음료를 따르면 표면에 탄산 입자가 덕지덕지 붙는 걸 떠올리면 쉽다. 그동안 리델을 비롯한 와인 잔 브랜드에서 수없이 강조한 것처럼 잔의 형태 역시 맛과 향을 바꾸는 데 일조한다. 그렇다고 모든 종류의 와인 잔과 맥주잔을 구비할 필요는 없다. 잔의 형태에 따라 강조되는 음료의 특징과 원리를 이해한다면 형태가 다른 잔을 몇 가지만 갖춰도 다양한 음료를 맞춰서 즐길 수 있다.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