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클럽맨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크고 넉넉하며 어른스럽기까지 한, 미니의 기함이었다.
미니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신형 클럽맨 국제시승회를 열었다. 미니의 글로벌 홍보를 총괄하는 안드레아스 람프카는 강조했다. “클럽맨은 미니의 스타일을 유지하되 기능성과 활용성, 장거리 편의성을 극대화시켰어요. ‘고카트 필링(1인용 경주차의 날쌘 운전 감각)’과 편안한 승차감을 미니 역사상 최대로 조화시켰죠. 미니의 기함이에요.” 어색했다. 미니가 기함을 말하다니. 통통 튀는 개성과 경쾌한 주행 감각으로 간추릴 수 있는 이미지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변화를 꿈꾼다. 지나치게 젊은 이미지를 벗고 보다 폭넓은 소비자를 끌어안아 영토를 넓힐 참이다.
미니 클럽맨을 타고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을 출발해 고속도로와 국도를 누볐다. 차에 탄 채 페리도 두 번이나 탔다. 스톡홀름이 14개의 섬과 76개의 교량으로 이어진 탓이다. “정말 미니 맞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연스레 이 말이 나왔다. 외모와 성향의 간극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이번 클럽맨의 디자인은 미니의 전형적인 유전자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동그란 눈망울은 반짝이는 크롬 장식으로 감쌌다. 라디에디터 그릴은 육각형으로 다듬었다. 보닛에는 볼록하게 솟은 부분이 있다. 파워돔이라고 부른다. 실질적 기능은 없다. 흡기구도 막혀 있다. 보닛을 열어보면 엔진도 충분히 납작하다. 곧이어
나올 고성능 미니 클럽맨 JCW를 위한 배려인 셈이다. 헤드램프는 위쪽의 LED 라이트 링과 그 아래의 방향지시등으로 기능을 나눴다. 앞쪽 휠 아치엔 BMW에선 ‘브리더Breeder’라고 부르는 흡기구를 팠다. 이 홈을 지난 공기는 휠 앞에서 커튼처럼 펼쳐지며 소용돌이를 줄인다.
테일램프는 시원하게 키웠다. 좌우 바깥쪽에 원을 그려 넣고, 그 옆에 반원 3개를 더했다. 그런데 브레이크 램프가 아니다. 방향지시등과 후진등만 들어온다. 정작 브레이크 램프는 범퍼에 따로 들어온다. 트렁크 문은 이전처럼 양쪽으로 연다. 일명 스플릿Split 도어다. 이전 세대는 동반석 뒤 쪽문까지 도어가 총 5개였다. 그러나 이젠 6개다. 스플릿 도어는 오른쪽과 왼쪽 문을 차례로 연다. 닫을 땐 반대다. 실수할 걱정은 없다. 오른쪽 문을 먼저 닫으면 걸쇠에 맞물리지 않는다. BMW 일부 모델의 트렁크 도어처럼 뒤 범퍼 아래쪽을 향해 발차기 시늉을 하면 오른쪽과 왼쪽 문이 차례로 열린다. 덩치는 과연 미니의 기함답다. 미니의 모든 형제를 통틀어 가장 크다. 이번 클럽맨의 차체 길이는 4,253밀리미터다. 이전 세대보다 29.3센티미터 길어졌다. 너비와 높이 또한 각각 1.15, 1.16센티미터 늘어났다. 미니 5도어와 비교하면 길이 2,7센티미터, 너비 0.9센티미터, 휠베이스는 1센티미터 더 넉넉하다. 높이만 빼면 미니 컨트리맨보다 크다. 미니 최대의 크기다. 실내공간이 가장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간감은 운전석에 앉는 순간 피부에 와 닿는다. 뒷좌석에서 느끼는 공간감도 마찬가지. 중형 세단에 앉은 듯 여유롭다. 그러나 뒷좌석 등받이가 다소 곧추서 있다. 허벅지 받침도 꽤 단단한 편이다. 신형 클럽맨에는 5개의 좌석이 있다. 앞좌석엔 전동식 조절장치를 준비했다. 미니 브랜드로서는 최초다. 시트 높이와 앞뒤 거리, 등받이 각도, 허리 받침을 조절할 수 있다. 트렁크는 모든 좌석에 사람이 앉았을 때 기준으로 350리터. 그러나 뒷좌석을 60:40(40:20:40은 옵션)으로 접어 필요에 맞게 넓힐 수 있다. 각종 정보는 대시보드 한 복판에 띄운다. 동그란 중앙 계기판 가운데엔 옵션에 따라 2.7인치 투톤 또는 6.5나 8.8인치 풀 컬러 모니터를 선택할 수 있다. 모양과 조작법 모두 BMW의 최신 i드라이브와 판박이인 미니 컨트롤러도 달았다. 시동은 심장이 뛰는 것처럼 두근두근 불을 밝히는 토글 버튼을 눌러서 건다. 속도계와 타코미터는 운전대 위 계기판에 있다. 실내 곳곳엔 은은하게 빛나는 간접조명을 심었다. 운전석 문을 여닫을 땐 사이드미러에서 바닥으로 20초 동안 미니 로고를 비춘다. 천장엔 전동식 파노라마 선루프가 있다. 쿠퍼 S 클럽맨엔 미니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준비했다. 정말이지 다양한 편의장비와 옵션이 적용돼 있다. 클럽맨이야말로 미니의 기함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클럽맨의 꼭대기에는 쿠퍼 S가 있다. 직렬 4기통 2.0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고 192마력을 낸다. 변속기는 3기통엔 자동 6단, 4기통엔 미니 최초로 자동 8단을 물렸다. 굴림 방식은 앞바퀴 한 가지다. 사륜구동(미니 ‘올4’) 추가 계획을 물으니 미니 개발 엔지니어 파리스 게룸은 “지금 말할 순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다”고 했다. 결국 조만간에 나온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폭스바겐의 ‘디젤 스캔들’을 의식한 탓일까? 시승차는 쿠퍼 S 한 가지였다. 변속기만 수동 6단과 자동 8단 가운데 고를 수 있었다. 자동 8단 쿠퍼 S를 먼저 몰았다. “미니답지 않다”는 평가의 시작은 정숙성이었다. 신형 클럽맨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음은 아이들링 때 차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엔진 소리 정도였다. 클럽맨은 기본과 그린, 스포츠 등 세 가지 운전 모드를 마련했다. 모드에 따라 차의 성격이 바뀐다. 가속페달을 같은 깊이로 밟은 채 모드만 바꿔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린, 기본, 스포츠의 순서로 엔진 회전수가 치솟는다. 그린 모드에서는 냉난방 장치까지 개입해 연료를 최대한 아낀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운전대가 좀 더 묵직해진다. 그렇게 큰 차이까지는 아니지만.
클럽맨 쿠퍼 S의 가속은 예상대로 시원했다. 하지만 한껏 부풀린 덩치 때문에 같은 심장을 얹은 미니 해치백의 경쾌한 발걸음과는 차이가 있었다. 클럽맨 쿠퍼 S의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은 자동 기준 7.1초다. 수동이 오히려 0.1초 더 느리다. 변속기는 은밀하게 오르내렸다.
기함의 품위 때문이었을까? 스티어링 휠에 패들 시프트가 없는 건 아쉬웠다. 승차감은 낯설었다. 미니란 사실을 믿기 어려울 만큼 부드러웠다. 스티어링 감각도 마찬가지. 한때 미니의 상징이었던 뻣뻣함은 세대를 거듭나며 조금씩 누그러졌다. 급기야 클럽맨에선 아예 자취를 감췄다. 굽잇길에서는 덩치와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코너를 얼싸안는 움직임이 좀 더 크다. 앞뒤 서스펜션이 차례로 수축되며 무게중심을 옮기는 과정도 한층 점진적이다. 부드럽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미니가 클럽맨에서조차 ‘고카트 필링’을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독특한 서스펜션 구조 덕분에 바짝 낮춘 무게중심과 정교한 섀시 제어 기술이다. 예를 드렴ㄴ, 회전할 땐 코너 안쪽 바퀴에 제동을 걸고(코너링 브레이크 컨트롤, CBC), 주행안정장치DSC를 끌 경우에는 앞 차축의 전자제어식 차동제한장치가 구동력을 좌우로 옮겨주는 것이다.
과거 미니의 ‘고카트 필링’은 적응이 필요할 만큼 민첩하고, 부담스러울 만큼 거친 느낌을 뜻했다. 주행에 꼭 필요한 것만 갖춘 탈것의 원초적 감각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킨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형 클럽맨과 더불어 미니의 ‘고카트 필링’은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섰다. 불편함을 낱낱이 발라내고, 내가 의도한 대로 차가 움직이는 즐거움만 남겼다.
하루 종일 클럽맨과 함께했다. 이전의 클럽맨이나 다른 미니였다면 녹초가 될 법도 했다. 하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넉넉한 스케일만큼 운전감각과 승차감 모두 여유로웠다. 미니의 개성과 디자인을 선망하되 불편해서 망설였다면 마침내 기회가 왔다. 클럽맨이 답이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 김기범
미니 클럽맨의 뿌리
- 에디터
- 김기범(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