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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이제 에르노

2016.01.01윤웅희

에르노의 대표 클라우디오 마렌지를 만났다.

달라진 계기가 있나? 그때까지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많이 만들었다. 그걸 보니 ‘에르노라는 브랜드만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품질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있었으니까. 2007년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브랜드를 개발했고, 8년 사이에 매출이 30배 이상 증가했다.

‘에르노’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고리에 옷을 거는 독특한 디스플레이 방식이다. 광고도 그렇고.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대부분의 브랜드가 이미지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영화처럼 멋진 장면이나 배우를 보여주면서 ‘우리 브랜드를 입으면 당신도 이렇게 근사해질 수 있다’고 설득하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제품에 집중하고 싶었다. 에르노의 진가를 알 만큼 현명한 소비자라면 우리의 방식이 통할 거라고 믿었다. 옷을 고리에 거는 건 미술관에 전시된 현대 예술 작품처럼 감각적이기도 했다. 고리 하나에 의지해 공중에 툭 걸려 있으니 가볍다는 특징도 강조할 수 있고. 그래서 2007년부터 쇼룸이나 매장의 디스플레이를 그렇게 바꿨다. 반응도 좋았다.

매장 전시까지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일반적인 옷걸이에 걸 때보다 제품을 조금밖에 보여줄 수 없어 비효율적일 것 같은데. 효율성은 집중도의 문제다. 백 벌의 옷을 꾸역꾸역 보여주는 것보다 한 벌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어차피 한 명이 사는 옷의 개수는 정해져 있으니까. 게다가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여백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미술관에서 충분한 여유 공간을 두고 작품을 배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고객들은 그 여백을 통해 제품 하나하나에 눈길을 준다.

에르노는 최고급 다운을 쓰는 걸로도 유명하다. 좋은 다운이라는 건 정확히 뭔가? 필 파워가 높은 것을 의미하나? 그렇다. 필 파워는 다운의 품질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필 파워가 가장 뛰어난 것은 거위 솜털이다. 오리털은 더 하얗다는 장점이 있지만, 압축 후 복원력이 거위털보다 떨어진다. 에르노의 모든 다운 제품에는 95퍼센트 이상의 거위 솜털이 들어 있다. 100퍼센트가 아닌 이유는 솜털과 깃털을 완벽하게 분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다운의 색깔인데 얼룩 없이 깨끗한 하얀색일수록 좋다. 겉감이 얇고 색이 밝은 점퍼를 만들었을 때는 안의 충전재가 비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우리는 카메라로 검은 부분이 있는 솜털을 골라내는 특수 기계를 제작해 사용한다. 필 파워를 오래 유지시키기 위해 방수 처리와 정전기 방지 처리도 한다.

이탈리아 로멜리나와 시베리아 지역의 다운만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가장 우수한 품질의 구스 다운을 생산하는 곳은 이탈리아 로멜리나와 프랑스 페리고르, 러시아 시베리아다. 사람들은이 얘기를 들으면 기후 때문일 거라고 추측하지만, 재미있는 건 식습관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거위 사육에서 털이 차지하는 비중은 5퍼센트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거위를 많이 먹지 않는 곳이라면 고기를 팔 수 없어 사육 단가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게다가 로멜리나와 페리고르, 시베리아 지역 사람들이 거위를 더 크게 키워 먹는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비해 털이 더 좋다.

재미있는 계획은 없나? 협업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2010년에 닐 바렛과 함께 트렌치코트를 만든 적이 있다. 또 지금은 프랑스 아티스트 피에르 루이 마샤와 함께 캡슐 컬렉션을 계획 중이다. 그의 화려한 색감과 프린트를 우리 제품에 접목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까지는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 하지만 제약을 두고 싶지는 않다. 10년 후에 브랜드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진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아직 미래가 많은 브랜드니까.

    에디터
    윤웅희
    포토그래퍼
    이현석,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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