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연주는 들떠 있지 않았다.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에서 보여준 동성 간의 키스로 화제의 중심에 섰지만, 그녀는 도발을 말하지도 않았다. 세간의 평가에 무심하다기보다 자신을 건너뛰고 세상을 말하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예쁘게 찍히려고 애쓰지 않는 여배우는 처음 봐요. 어떻게 나와야한다는 생각이 없어요. 나오면 나오는 대로 괜찮고요.
실제보다 예쁘게 보이고 싶지 않아요? 저 다 예뻐요. 제 이름이 두루 곱다는 뜻이에요.
연기도 비슷하게 봤어요. 이전엔 그저 예쁘다고만 생각했죠. 뭔가 보여주려고 하지만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대세는 백합>에서는 달랐어요. 애쓰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웠어요. 적극적인 타입은 아닐 것 같았어요. 동의합니다. 그렇게 볼 수 있죠. 근데 저 적극적일 때는 되게 적극적이에요.
지금까지 본인의 의지로 배역을 골랐나요? 그럼요, 다 제 의지. 하지만 선택지 자체를 갖고 온 적은 없어요. 그런 점에서는 적극성이 떨어지겠죠. 주어진 상황에서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최선은 다해요.
<오늘영화>에서 윤성호 감독과 작업한 적이 있죠? 왜 <대세는 백합>의 세랑을 맡겼다고 하던가요? 저랑 캐릭터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아닐까요? 한번 물어볼까요?
네, 배우로서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배우는 자기 장점을 잘 알아야 하고, 감독은 배우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사람이니까. 제 눈엔 적극적으로 나서는 역할보단 세랑처럼 관계의 우위 속에서, 가만히 자기를 보여주는 역할이 좋아보였어요. 인간관계에서 극단적으로 우위에 서는 건 소위 4차원인데 세랑이 그렇잖아요? AB형이 제일 예측불가능하고 사람들을 혼돈에 빠지게 하는 것처럼요. 혈액형이 뭐예요? A형이요. 전 4차원 아니에요.
이전엔 그저 배우였지만, 이제는 연예인이기도 해요. 연예인 생활은 어때요? 연예인을 캐릭터로 표현해보라면 뭔지 알겠어요. 하지만 생활에서 그 캐릭터를 연기하지는 않아요.
좋은 대답이네요. <대세는 백합>으로 관심을 받고 달라진 건 없고요? 관심은 <드림 하이 2> 때 더 컸어요. <대세는 백합>은 제가 재밌었고요.
스스로 재밌어서 자연스러웠던 것 아닐까요? 크루로 출연하는 <SNL Korea>만 해도 안 하고 싶은 역할이 있을 것 아니에요. <SNL Korea>는 내가 이거 해도 되나? 저거 해도 되나? 고민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신이 없어서. <대세는 백합>에서는 그 고민이 없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것보단 한 가지를 잘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보여줄 게 많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걸 봤는데, <대세는 백합>을 보고 나서야 그 말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꼭 맞는 역할 속에서 각각 다른 표정이 보이더라고요. 촬영은 공동 작업이잖아요. 촬영장에 가야 시작이죠. 촬영장 분위기를 타요. 아니, 잘 모르겠어요. 내가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안 해요.
그게 소극적인 거예요. 그럼, 소극적인 걸로. 하하.
<대세는 백합> 이후에 딱히 달라진 건 없다는 거네요? 인터뷰가 많아졌어요. 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아요.
인터뷰는 어때요? 상당수의 답변을 만화영화에 비유해서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그렇게 했다고요?
네, 만화영화가 영감의 원천인 줄 알았죠. 영감은 곳곳에 있고, 만화영화는 만화영화예요.
<세일러문>은 인생 만화영화고요? <짱구는 못말려>도, <호호아줌마>도 좋아해요.
그러니까요. ‘짱구’와 ‘호호아줌마’를 비유로 사용해요. 하하, 그러네요. 만화영화 말고 되게 많은데, 그 순간에 그게 떠오른 게 재밌네요.
생각이 많은 타입이에요? 많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있을 땐 많고, 없을 땐 없고.
주로 고민하는 게 뭔데요? 물건 두 개 놓고 뭘 가질래, 하면 고민해요. 고민은 한도 끝도 없어요. 몸을 안 움직이면 고민이 생겨요.
춤을 좋아한다면서요. 그럴 때 춤을 추나요? 모든 게 다 춤이라고 생각해요. 움직이는 것은 다 춤이에요. 모든 충동은 다 춤이에요.
혼자 있을 때도 춰요? 네, 음악 들으면서.
어떤 음악? 여러 가지 많아요. 거울 보고 추는데, 아, 비욘세의 ‘Move Your Body’. 어렸을 때. 아, 또 어렸을 때 얘기하네. 하하. 어렸을 때 <하나둘셋> 보면서 추는 느낌이에요.
“짤랑 짤랑 짤랑”, “으쓱 으쓱 으쓱”. 네, 그런 거요.
어릴 때 많은 게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아니요. 모든 건 현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기할 때 과거의 경험을 많이 참고하지 않아요? 맞아요. 자꾸 꺼내야 해요. 고된 작업 같아요. 하하. 머리가 컴퓨터 같은 거 아니에요?
컴퓨터가 머리 같은 거죠. 왜요? 어느 장소에 가면 뭐가 딱 떠오르고 뭘 먹으면 그때가 딱 생각나는 게 있잖아요. 연기가 그런 작업 같아서요.
자신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알고 그 자리에 있는 것. 그러니까 그냥 예쁘게 있는 것도 연기력이 뛰어난 거라고 봐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디션 연기 테크닉’이라는 수업에서 문정희 선배가 그랬어요. 뭐 하나라도 하고 가면 붙는다고요. 그게 네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예쁘게 하고 가면 붙는다고. 물론 더 많은 얘길 했지만 그 말이 기억에 남아요.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요즘 알겠어요.
<대세는 백합>의 세랑처럼, 여자를 좋아해본 적 있어요? 아니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의도가 느껴져야 성립되는 것 아닌가요.
남자 고등학교보단 여자 고등학교에서 사례가 더 많지 않나요? 시대가 뒤받쳐주지 않는 짓은 안 하는 것 같아요.
누울 자리 보고 뻗는다? 소극적인 거죠? 하하하.
이건 좀 다르죠. 이 시대보다 뜨겁게 살고 싶은데.
하하. 진짜? 아직은 아니지만 ‘버닝’ 중이거든요.
어디서 그 느낌을 받아요? 몸이 편해졌고, 숨을 잘 쉬어요. 긴장하면 긴장하는 대로 아, 긴장하는구나,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아, 불편하구나, 생각해요.
자길 인정하는 거네요. 그럼 <대세는 백합> 들어가기 전엔 뭘 연구했어요? 전 연구 안 해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스럽게 보는 건 잘 모르겠고, 내가 사랑스럽게 본다고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 같아요.
하하, 한편 그 말이 맞아요. 하지만 <대세는 백합>에는 동성 간의 키스가 있잖아요. 그것도 별 생각 없이 한다고요? 그거야말로 현재에 충실하죠.
거부감이 들지 않고요? 거부감이 생겨요? 거부하라고 하니까 생기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하지만 아무리 나쁘고 잘못됐어도, 20년 넘게 그렇게 교육받았다면 무시할 수 없죠. 하지만 전 배우니까요. 여자랑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내가 들어본 적이 있었나…. 자연스럽게 내가 판단할 수 있도록 여지를 준 것 같은데.
그럼 좋은 교육을 받은 거고요. 하지만 사람은 가르침을 들어서, 잘못을 저질러봐서 안 하지 않아요. 잘못인 것 같은 지점을 알아서 안 하는 거죠. 한계를 긋는 교육을 받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건 매우 어려워요. 자기 머리로 생각하려는 노력이 있어야죠. 그렇네요. 즉흥 연기 시간에 미어캣 흉내 내는 연습을 한 적이 있거든요? 정말 힘들었어요. 저 사람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게 있잖아요. 하지만 누가 나를 어떻게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때 나 자신을 제일 느끼는 것 같아요.
키스 신 찍고 나서도 별 생각 없었어요? 모니터하러 갈까 말까 고민했죠.
모니터해보니 잘한 것 같던가요? 한 대로 나왔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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