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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자동차 10 (랜드로버 디펜더90 / ‘섹스 앤 더 시티 2’)

2016.10.13장우철

영화 역사에 등장한 가장 매혹적인 자동차 100대, 자동차 역사에 아로새길 100편의 영화. 우리는 영화를 떠올리며 자동차를 생각했다. 자동차를 기억하며 영화를 다시 봤다.

플리머스 ‘사보이 1957년형’, < 티파니에서 아침을 > 1961 플리머스는 1928년부터 2001년까지 크라이슬러에서 만든 브랜드의 이름이다. 크라이슬러의 여러 브랜드(험머, 머큐리, 폰티악 등) 중에서 어쩌면 가장 미국적인 자동차였다. 저렴한 가격, 머슬카의 상징인 요란한 뒤태까지. 그중 1957년식 사보이가 최고인데, < 티파니에서 아침을 >의 엔딩 시퀀스에서 ‘옐로 캡’으로 등장할 때 이 차의 성격을 제일 잘 보여준다. 노란 택시 안에서 홀리(오드리 헵번)는 브라질 갑부를 찾아 가려 하고, 프랭크(조지 페파드)는 그녀가 가지 못하도록 실랑이를 벌인다. 사보이는 오드리 헵번처럼 우아하면서도, 조지 페파드처럼 굵직굵직해서 꼭 미국 같다. ‘미국차’라는 정의에 대표로 놓고 싶다.

 

 

랜드로버 ‘디펜더90 SVX 2008년형’, < 섹스 앤 더 시티 2 > 2010 SUV가 길면 안 예쁘다. 일명 ‘쇼트 보디’라야 군더더기 없이 반갑다. 최고를 꼽자면 역시 디펜더 90이다. 알짜만 남긴 단순한 기능, 둥근 곳은 바퀴와 핸들뿐. 거기에 어디든 헤쳐 나갈 수 있는 힘까지. < 섹스 앤 더 시티 2 >에서 리카르드(맥스 라이언)는 뚜껑 없는 디펜더 90 천장 위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사막을 헤치며 나타난다. 배꼽까지 풀어 헤친 흰색 셔츠, 반짝이는 브라이틀링 시계, 거친 카고 바지 덕분에 어떤 남자인지 단박에 짐작할 수 있다. 그를 만난 사만다 존스는 눈썹이 애벌레처럼 꿈틀대고, 눈알이 노골적으로 들썩인다.

 

 

푸조 ‘리모비앙’, < 무드 인디고 Mood Indigo > 2013 미셸 공드리의 영화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줄곧 아니라고 답했다. 그의 영화는 숏과 숏으로 연결되는 촘촘한 ‘영화’로서의 가치보다는 엉뚱한 ‘상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 무드 인디고 >에서 콜랭(로망 뒤리스)과 클로에(오드리 토투)가 결혼식이 끝나고 타는 웨딩카, 푸조 리모비앙이 그 절정이다. 그 속이 다 비치는 투명한 리무진을 보며, 미셸 공드리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자동차야말로 ‘낭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차라고 느낀다. 전기차, 자율 주행차같이 편리한 거 말고, 롤스로이스 던처럼 사치스러운 거 말고, GT-R처럼 마냥 빠른 거 말고, 전혀 쓸모없지만 아름다운 것. 자동차가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낭만을 리모비앙에서 봤다.

 

 

 

도요타 ‘캠리 1986년형(V10), 2000년형(XV20)’, < 스포트 라이트 > 2015 마지막 시퀀스. 스포트라이트 팀은 끝내 신부들의 성추행 사건을 보도하는 데 성공하고 후속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일요일에 출근한다. 회사 앞 텅 빈 주차장. 마이크(마크 러팔로)가 탄 오래된 캠리 (V10) 옆에 월터(마이클 키튼)의 최신 캠리(XV20)가 멈춘다. < 스포트라이트 >는 담담하고 담대한 영화다. 캠리도 오랫동안 그런 차였다.

 

 

 

캐딜락 ‘CTS 2003년형’, < 매트릭스 2 – 리로디드 > 2003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와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는 키메이커를 데리고 차량을 탈취한다. 이때 캐딜락의 CTS를 타고 도망 가는데, 이들을 쫓는 트윈스의 차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EXT다. 최근 출시한 캐딜락 3세대 CTS는 성능에서 꽤 좋은 평가를 받지만 처음 출시된 2003년 1세대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는 혹평 일색이었다. 하지만 < 매트릭스 2 – 리로디드 >의 자동차 추격 신을 통해 왜 이런 차가 필요한지 제대로 보여줬다. 미래를 생각하는 차 말고, 미래를, 상상도 못한 새로운 ‘처음’을 보여준 차. 캐딜락 CTS 같은 디자인이 지금 필요하지 않을까?

 

 

지프 ‘레니게이드 저스티스의 시작 스페셜 에디션’ <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 2016  이 영화는 대체로 모든 면에서 망했다. DC 코믹스 팬은 분노했으며, 협찬한 많은 회사가 절망했다. 지프도 같은 맘이었을까? 하지만 “브루스 웨인이 절대 안 탈 것 같은 저렴한 차인데도 꽤 그럴 듯했다”는 말은 어떨까. 람보르기니도, 배트카도, 배트모빌도 아닌데. 말하자면 브루스 웨인이 탄 차 중 ‘나’도 탈 수 있는 첫 번째 차였다.

 

 

쌍용 ‘코란도 1세대’ < 복수는 나의 것 > 2002  “아저씨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우리 조직 테러단체니까 아저씨 죽어. 백프로, 확실히.” 동진(송강호)에게 고문당하던 영미(배두나)가 한 말은 ‘뻥’이 아니었다. < 복수는 나의 것 > 속 모든 건 진짜였다. 류(신하균)의 초록색 머리, 영미의 보라색 침대 커버, 동진이 쥔 끝이 휜 칼까지. 잔인했지만, 진짜여서 아름다운 영화다. 영미가 말했던 그 조직원들은 정말 울퉁불퉁 코란도를 몰고 왔다.

 

 

로터스 ‘에스프리 SE 1989년형’ < 귀여운 여인 > 1990 에스프리는 007 시리즈 < 나를 사랑한 스파이 >에서 잠수함으로 변하는 차로 유명하다. 어떤 차보다 영화에서 ‘임팩트’가 강해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그중 제일은 < 귀여운 여인 >에서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이 운전하는 장면이다. 에드워드(리처드 기어)의 수동 변속 운전은 미한데, 비비안은 아주 능숙하게 운전한다. 차와 여자가 섹시하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내 첫 차도 2002년식 SM520 수동이다.

 

 

스바루 ‘임프레자 WRX STi 2012년형’ < 분노의 질주 : 더 세븐 Furious 7 > 2015 ‘임프레자 WRX STi’는 빠르게 코너를 공략하는 세계 최고의 랠리차다. 한국에 스바루가 이 차를 들여오길 기대했는데, 결국 ‘소음’ 때문에 포기했다. 한국의 온갖 소음을 떠올리자니 어찌나 분노가 생기던지. 스바루는홀연히 한국을 떠났고, 브라이언(폴 워커)의 모습도 그게 마지막이었다.

영화와 자동차 1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 1600 / ‘졸업’)

영화와 자동차 2 (재규어 XK140 /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영화와 자동차 3 (캐딜락 퓨너럴 코치 / ‘고스트버스터즈’)

영화와 자동차 4 (현대 그레이스 / ‘폴리스 스토리 4′)

영화와 자동차 5 (시트로앵 DS / ‘고환’)

영화와 자동차 6 (쉐보레 콜벳 C3 / ‘애정의 조건’)

영화와 자동차 7 (폰티악 GTO / ‘섬씽 와일드’ )

영화와 자동차 8 (메르세데스-벤츠 240 D / ‘엘리펀트’)

영화와 자동차 9 (알파 로메오 줄리에타 스파이더 / ‘자칼의 날’)

    에디터
    장우철
    양승철(컨설턴트, 사진가)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