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오가며 ‘조선’과 마주칠 때마다 어쩐지 복잡해지고 만다.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창경궁 홍화문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며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아이라도 어깨 힘이 제법 좋다면 여기서 돌을 던져 명정전 앞마당까지 너끈하지 않을까. 지체 높은 정삼품 도승지께서 연회를 즐기며 술상을 받는데, 대뜸 돌멩이가 날아들어 소반을 쩍 뽀개놓으니 혼비백산 나자빠지는 상상이란 부질없고 과장되었을망정 한 가지는 살릴 수 있다. 조선의 궁궐이 새삼스럽도록 작더라는 인상 말이다.
누구나 알 듯 한반도 역사상 대한민국은 조선왕조 바로 다음이고, 서울은 거진 한양에서 이름만 바뀐 곳이다. 서울에는 여전히 수많은 ‘조선’이 유적이며 유물이며 전통에 역사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남아 있는 바, 때로 그것은 온통 우글거릴 정도로 힘이 세다. 무엇보다 사회에 만연한 생각과 인식이 그렇다. 대통령을 임금에, 시민을 백성에 빗대는 수사에 언론이며 세간이며 별다른 의심도 없다. 주군을 섬긴다느니, 역린을 건드렸다느니, 가만 보면 그런 말은 철 지난 권력자의 자기 위안적 유희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스스로를 아직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어리석은 백성’의 자리에 놓는 게 아닐까. 현대란, 민주주의란, 개인이란 무엇일까. 수많은 촛불이 (닫힌 채) 굳건한 광화문을 향하는 장면이 상징적으로 보이는 판에.
내 경우, 조선의 궁궐이 새삼스럽도록 작다는 생각이 조선에 대한 어떤 신화나 거짓말을 거두는 데 도움이 됐다. 기회만 잡으면 김홍도와 신윤복을 떠받들면서 교보문고든 국립중앙박물관이든 변변한 화집 하나 없다는 사실은 미학적 역설이 아니라 다만 이곳의 저열과 뻔뻔함을 드러낸다. 단청 보수는 엉망으로 하면서 경회루는 발도 못 들일 지엄한 곳으로 정해놓는 상황은 어디서 어떻게든 반복된다.
그런 마당에 조선의 궁궐이 작다는 생각은 일방적인 무시가 아니라 똑바로 보려는 시도가 되었다. 앞뒤 자연스레 유연한 법이라고는 없이 온통 낯두껍게 짜 맞춘 듯한 서울에서, 일상으로 오가며 마주치는 유적을 대함에 온전한 감상과 생각을 도모하는 시간은 작심한 답사보다 오히려 스치는 풍경으로부터일 때가 많다. 한국일보 건물 앞, 길 위에 섬처럼 떨어진 동십자각을 보면서 예전엔 경복궁 담장이 여기까지 닿았음을 가늠하는 일, 교보문고 앞 고종즉위 40년 칭경기념비를 둘러친 동물석상의 다종다양한 귀여움을 관찰하는 일, 사도세자의 뒤주가 놓였던 창경궁과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화성 융릉에 유난히 귀룽나무가 많다는 사실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것들, 종묘와 창경궁을 잇는 공사가 한창인 율곡로를 지나며 1995년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그렇게 없애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 현대 서울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하나하나 따로 볼 줄 아는 시각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곧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 독립적이며 다르다는 현대적 시민성으로도 이어진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싸잡아 넘어가려는 시도를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그런 두루뭉술이야말로 우리 것도 남의 것도 영원히 모르는 자의 기만적 허세일 뿐이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라는 전시가 열렸다. 거기서 놀란 것은 이국적이며 화려한 문명의 유물로부터 신라의 금관이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가 신라의 왕관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것이 또한 조선과는 어떻게 이어지지 않는지를 생각하는 일은 박물관을 찾고, 유적을 대하고, 역사를 살피는 서울사람의 마땅한 이치와 도리가 아닐까 했다.
이런 방면으로 관심이 동하면 꼭 찾게 되는 곳이 답십리 고미술 상가다. 답십리역 주변에 띄엄띄엄 1동 2동 흩어져 있는데, 그중 하나는 성인 콜라텍과 한 건물을 쓴다. 어느 날 나는 그곳 한 가게에서 관요 백자 한 점에 넋이 나가 있었다. 눈앞에 놓인 것이 흰색인지, 흰빛인지 좋아라 헷갈려 하고 있을 때, 마침 피크타임을 맞은 콜라텍에서 가공할 비트가 건물을 울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가게에 놓인 이 백자 저 청자가 일제히 덜그럭덜그럭 리듬을 탔다. 그 꼴에 웃음이 났다. 무슨 문제가 있다는 식의 개탄이 아니었다. 그리고 웃음 끝에 방금 전까지 백자를 고상하고 우아하고 고급한 것으로만 보던 시각이 어쩐지 달라졌다. 내내 보고 있던 백자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 에디터
- 장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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