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국 축구계는 신태용이 바꿔야 한다

2017.05.10GQ

한국 축구는 이제 그를 알아봐야 한다. 그게 바로 한국 축구의 정권 교체다.

시국도 불안한데 축구계도 어수선하다. 국가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국정을, 아니 대표팀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불신이 쌓이고있다. 대한축구협회가 난상토론을 펼친 끝에 슈틸리케 감독을 탄핵, 아니 경질시키지 않기로 했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자연스레 슈틸리케 감독 이후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내국인 감독이라면 U-20 청소년 대표팀을 이끄는 신태용 감독이 적임자일 것이다. 나 역시 신태용 감독을 지지한다.

K리그보다는 국가대표팀의 활약을 우선하는 한국의 정서상 신태용 감독은 과소평가 돼 있다. 현역 시절 A매치 23경기에 나서 3골을 넣은 게 전부인 신태용 감독은 또래의 황선홍 감독이나 홍명보 감독보다 대표팀에서의 기여도가 부족했다. 월드컵 무대에 나서본 적도 없고 23차례의 A매치 중 평가전이 17번일 만큼 선수 시절 대표팀에서 보여준 활약은 대단하지 않았다. 참고로 홍명보 감독은 136차례나 A매치에 나섰고 황선홍 감독은 A매치 출장이 103회에 이른다.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나가야 진가를 알아보는 한국 축구계에서 그는 ‘국내용’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K리그에서의 활약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태용 감독은 일화에 입단해 선수 생활 동안 한 번 하기도 어려운 K리그 3연패를 두 번이나 이뤄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K리그를 연이어 정복했고, 2001년부터 2003년까지도 K리그 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팀을 잘 만나 운 좋게 우승 메달을 받은 것도 아니다. 신태용 감독은 늘 주전으로 팀을 이끌었고 1996년에는 득점왕에 올랐다. 1995년과 2001년에는 K리그 MVP를 수상했는데 이는 K리그 최초로 두 번의 MVP를 받는 역사가 되었다. 데뷔 시즌인 1992년부터 1996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고, K리그에서 가장 찬란한 역사를 보유한 성남일화의 모든 역사는 그와 함께였다.

홍명보 감독이 선수 시절 K리그에서 156경기 출장 14골 8도움을 올렸고, 황선홍 감독은 K리그에서 64경기 출장 31골 16도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툭하면 대표팀에 불려갔고 해외에서 뛴 기간도 길어 이들이 K리그에서 보여준 건 별로 없었다. 홍명보 감독과 황선홍 감독은 대표팀의 레전드일 순 있어도 K리그의 레전드는 아니다. 그렇다면 신태용 감독은 어떨까. 그는 K리그에서 무려 401경기에 나와 99골 68도움을 올렸다. 100득점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기도 했지만 그는 “페널티킥으로 100호 골을 넣고 싶지는 않다”며 ‘쿨하게’ 100호 골 득점자 단일화를 거부하기도 했다. 신태용 감독에게 100호 골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K리그에서 이룬 업적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지지하는 첫 번째 이유는 업적에 비해 평가가 박하다는 점 때문이다. 대표팀이라는 거대 여당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외된 K리그라는 소수 야당이었던 그는 늘 지지율이 높지 않았다. 이제는 그가 집권할 차례다. 그의 집권은 K리그라는 소수 야당이 더 큰 무대로 진출할 수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신태용 감독의 현역 시절 경력이 과소평가 되는 걸 바꾸고 싶을뿐더러 그가 야당에서 여당이 되어야 한국 축구의 뿌리인 K리그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계 정권 교체는 반드시 신태용 감독의 손에서 이뤄져야 한다. 현역 시절 대표팀에서 활약했다고 그 인지도를 앞세워 지도자로 승승장구하는 건 ‘포퓰리즘 축구’다. 신태용 감독의 집권은 이런 ‘포퓰리즘 축구’에 기꺼이 반기를 드는 일이다.

그를 지지하는 이유가 단순히 현역 시절 활약 때문만은 아니다. 지도자로서도 그는 성공을 이뤘다. ‘왕조’였던 성남일화가 망해가던 2010년 신태용 감독은 이 팀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지금 중국 슈퍼리그 팀들이 우승 한번 해보겠다고 1년에 수백억 원씩 쓰고 있는 바로 그 대회에서 신태용 감독이 국가대표도 아닌 선수들을 데리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건 지금까지도 신태용 감독뿐이다. 역사가 찬란한 유럽에서조차 채 10명도 이루지 못한 일이고, 아시아에서는 신태용 감독이 유일 무이하게 그런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국가대표만 중요한 한국에서 그의 지도자로서의 업적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신태용 감독은 그나마 남아 있던 선수들이 다 다른 팀으로 팔려나간 2011년에도 FA컵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또 한 번 역사를 썼다. FA컵에서도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첫 주인공이 된 것이다. 보통 구단의 좋지 못한 사정을 언급하며 구단 탓을 하는 감독이 많지만, 신태용 감독은 어려운 사정에서도 이런 멋진 인터뷰로 나 같은 지지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게 감독의 몫이다.” 신태용 감독은 아침마다 기자들과 코치들을 불러놓고 ‘X모닝’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누구 탓도 하지 않고 오롯이 한계를 인정하면서 이를 타개해 나갈 방안을 찾는 지도자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데 성남이 망한 건 신태용 감독이 팀을 떠나면서부터였다.

신태용 감독은 현역 시절 누구보다 엄격한 지도자를 많이 겪었다. 신태용 감독은 외국인 선수도 때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박종환 감독부터 차경복 감독과 김학범 감독 등 전형적인 한국형 명장(?), 그러니까 눈만 마주쳐도 선수들이 벌벌 떠는 엄격한 지도자들 밑에서 선수 생활을 해왔다. 그가 지도자로 변신했을 때 그의 지도 방식을 걱정했던 이들도 많았다. 엄격한 지도자들 밑에서 보고 배운 게 야구 방망이를 드는 것은 아닐지 우려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아는 지도자다. 선수들이 원하는 게 뭔지, 싫어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안다. 2010년 화이트데이에 열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신태용 감독은 선수들에게 전술이 아닌 더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이겨서 여자친구와 달달한 와인을 마시며 즐길지, 져서 인상 쓰며 쓴 소주를 마실지는 너희한테 달렸다. 알아서 해라.”

성남 선수들은 여자친구와 달달한 와인을 마시며 이 화이트데이를 즐기고 싶었을까. 이날 인천을 상대로 무려 6-0 대승을 거뒀다. 이게 바로 신태용 감독의 방식이다. 한번은 여자친구와 다퉈 힘들어하는 선수가 신태용 감독을 찾아왔다. “여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운동에 집중을 못 하겠어요.” 다 큰 프로 선수가 여자친구 때문에 감독과 면담한다는 건 거의 드문 일이다. 이 말을 들은 신태용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러면 만나고 와야지. 나가서 다 풀고 와.” 그 선수는 여자친구와 오해를 풀었고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여자친구와 결혼까지 했다. 다른 감독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지도 방식으로 신태용 감독은 성적을 냈다.

이제는 국가대표팀에 외국인 지도자는 옳고 국내 지도자는 그르다는 선입견을 버려야한다. 감독도 감독 나름이지 외국인이라고 다 지도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국내 감독은 지도력이 형편없는 것도 아니다. 한 나라의 축구가 성장하려면 비단 선수들만 발전하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 지도자의 멘탈과 정체성이 발전해 국내 지도자가 대표팀 감독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답은 신태용 감독이다. 그가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하길 지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감독이라고 해 꽉 막히고 선수들을 다그친다고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 선입견을 깨면서 성적까지 낼 수 있는 감독을 지지하는 건 지극히 상식적인 일 아닌가. 시대의 흐름이 변했고 이제는 신태용 감독처럼 파격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는 늘 비주류였다.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여당 역할을 할 때 늘 야당이었고 지금도 저평가 받고 있다. 당시에는 축구계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영남대를 졸업해 학연의 도움도 받질 못했다. 한국 축구가 자국 리그가 아닌 국가대표 위주로 돌아가는 이상한 흐름 때문에 소외받을 수밖에 없는 선수이자 감독이었다.

이제 그는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더 많은 이가 ‘신빠’가 됐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신태용 감독이 선수 시절 K리그를 평정하고 일본 J리그 이적설이 나왔을 때 했던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다면 아마도 더 많은 이가 신태용 감독을 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신태용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K리그 MVP는 J리그에 가지 않는다.” 축구계 정권 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면 이런 인물이 리더가 돼야 하지 않을까.

    에디터
    글 / 김현회(축구 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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