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은 뮤지션이다. 이랑은 영화감독이고, 각본가다. 이랑은 만화가다. 이랑은 질문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이랑의 노래 ‘신의 놀이’는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처음 이 노래를 듣고 느낀 몇 가지 당혹스러움을 기억한다. 앨범의 첫 트랙, 첫 목소리를 이처럼 난감한 질문으로 시작하다니. 한국, 태어나, 산다는 것, 의미 두기, 문장의 모든 단어가 나를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의 당대성, 지금 ‘여기’의 지역성, 그 좀처럼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질문, 내가 오래도록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 갑자기 엄습해 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처럼 형언할 수 없는 고민들의 어려움이, 이어지는 가사인 “좋은 이야기가 있어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좋은 이야기에 대한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나요”라는 질문으로 그려지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이야기(하기)를 믿을 수 없으면서, 그래도 이야기(하기)를 믿는 것이 이랑이 생각하는 ‘신의 놀이’가 아닐까. 이 땅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지난 3월, 이랑은 앨범 <신의 놀이>로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했고, 그 수상 퍼포먼스를 통해 다시 질문했다. 이랑은 그간의 월수입을 밝히며 명예만 있고 돈도 재미도 없는 이 시상식에서 돈을 벌어야겠다며, 트로피를 즉석 경매로 판매했다. 50만원이었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질문이었다. 모든 예술이 돈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이야기가 돈을 벌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이 땅에서, 돈이 될 수 없는 예술은 무엇이 될 수 있기나 할까. 먹고사는 일을 해결할 수 없는 예술이 스스로 존속할 순 있을까.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의 세계, 즉 한국에서, 자본과 무관해짐으로써 사회와도 무관해져가는 이 예술이란 것이 대체 어떤 의미를, 힘을 지닐 수 있을까. 그것이 이랑이 던진 질문이었고, 그 역시 쉽게 답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이랑을 좋아하는 이유다. 예술가란 끊임없이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고, 이랑은 훌륭한 예술가다. 나는 그런 이랑이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작업을 계속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수상 이후 이랑이 얻은 것은 트로피를 팔아 얻은 월세와 ‘태도’에 대한 찬반 논쟁 정도뿐이었고(태도가 뭐가 어쨌다는 것인지), 젊은 뮤지션의 개념 발언 운운하는 재미없는 인터넷 기사들과, 계속 되풀이되어 온 기울어진 문화산업 구조에 대한 한탄뿐이었다. 그런 반응들이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이랑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마 두 번째 앨범을 내기 전이었을 것이다. 이랑이 지나가는 말로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지 푸념했다.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적극 말을 얹지는 못했지만 속으론 애가 탔다. 이랑이 이야기 만들기를 그만두면 안되는데, 너무 좋고 너무 재미있는데….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누군가 이랑에게 돈을 주라고. 일을 주라고. 예술가가 부자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예술가는 가난해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것은 언제나 가난을 두려워하고, 가난과 맞서는 일. 한국에서 태어나 예술을 한다는 것은, 가난을 둘러싼 현상과 관념에 맞서며 자꾸 질문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없다면, 그런 비극도 없으리라.
이 글을 보는 사람 가운데, 만일 당신이 재미있으면서도 현실적이고, 그런데도 어딘가 미쳐 있는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 쓸 필요가 있다면, 이랑에게 일을 주면 된다. 이랑은 영화도 찍을 수 있고, 드라마도 만들 수 있다. 만약 좋은 음악이, 공연이 필요하다면, 이랑에게 일을 주면 된다. 이랑의 음악은 아름답고 슬프면서도 재치 있다. 재미있는 만화를 원한다면, 이랑에게 일을 주면 된다.
이랑은 손도 빠르다. 이랑은 글도 잘 쓴다. 솔직하고 흥미로운 예술가의 기록이 읽고 싶다면, 이랑이 쓴 책과 함께 제작한 이랑의 앨범을 구입하면 된다. 다른 글이 궁금하다면, 이랑에게 일을 주면 된다. 이랑은 뮤지션이고, 감독이고, 각본가고, 배우이고, 만화가다. 이랑은 할 줄 아는 것이 많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낼 줄 안다. 이랑은 일을 잘한다. 나도 이랑과 일을 해봐서 안다. 이랑에게 일을 주면 당신은 만족할 것이다. 이랑 역시 만족할 것이다. 이랑을 지지하는 나 역시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이랑은 일을 하면서 계속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랑에게 일을 주면 모든 것이 잘 풀린다. 이랑에게 일을 줘라. 당신이 일을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면, 그런 입장의 누군가가 이랑이 일을 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주변에 널리 알리면 된다. 나 역시 그러는 중이다.
- 에디터
- 글 / 황인찬(시인)
- 일러스트레이터
- 이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