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직전인 이 남자는 1933년에 태어나 1999년에 돌아갔다. 이름은 한영수, 그는 사진가였고 도시인이었다. 포마드로 잘 빗어넘긴 머리에 셔츠와 재킷과 코트를 갖춰 입은 스타일로부터 그의 사진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까. 지금 서울에서는 한영수의 1950년대 여러 작품이 두 개의 전시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의 사진이 어쩐지 다르다면 그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근대성과 세련미, 우선 떠오르는 두 개의 단어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우리가 한영수의 사진이 세련되었다고 느낄 때 더 생각할 수 있는 두세 가지 것들
“1959년 종로에서 이런 옷차림이 가능했다니”, “어떻게 그때 당시 이런 앵글을 구사할 수 있었을까” 물음표와 느낌표를 동시에 찍는 듯한 이런 말을 한영수 (1933~1999)의 전시 안팎에서 자주 접한다. 2017년 5월 현재 서울에서는 한영수의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여러 작품이 두 개의 전시로 선보이고 있는데, 서울역사박물관의 <내가 자란 서울>과 스페이스22의 <시간 속의 강>이다. 그런데 서울이라는 시공간을 펼쳐낸 두 전시에서 어떤 세련미는 ‘서울의 옛날 흑백사진’이라는 익숙한 맥락으로부터 한영수의 사진을 감각적으로 홀연히 분리해준다. 이미지 평론가 이영준은 최근 출간된 책 <근대성의 사진가 한영수>의 도입에 이렇게 썼다. “사진이 근대의 시각 장치라고 하지만 모든 사진가들이 다 근대적 시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여 처음의 질문을 이렇게 바꾼다. 한영수의 사진은 어떻게 다른가?
우선 한영수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포즈를 떠올려본다. 그는 조용히 찍는다. 대상을 지나치듯 할 뿐, 그것을 향해 군림하지 않는다.(당시 카메라의 가치나 희귀성을 고려한다면 더욱 특별한 점이다.) 그래서 사진을 대하는 우리도 강요받지 않는다. ‘이 소년의 얼굴에서 시대의 불행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 복잡한 골목 풍경에서 삶의 애환이 느껴지지 않는가’ 하는 투의 주장이 한영수의 사진에는 없다. 포즈라고 말했지만 결국 역할과 태도의 차원일 터, 한영수 사진의 세련됨은 거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자칫 그를 소심한 작가로 의심한다면, 한영수가 직사각형을 구획하는 대담함에 얼마나 공격적인 쾌락이 있는지 눈여겨볼 일이다. 한영수의 프레임에는 정적이거나 동적이거나 간에, 무엇을 보려는지 곧장 파고드는 힘이 있다. 게다가 떡하니 배치한 인물의 머리를 자르는 식으로 대상을 ‘생략’하듯 잘라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요소다. 그 시대를 떠올려본다. 쉽지 않게 마련한 카메라와 필름(직사각형)이라는 형식을 두고 그 바깥을 도모하려 한다는 것은 그가 얼마만큼 사진의 기능과 가치를 고민하는 사진가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프레임 안에 들여놓는 것과 프레임 밖으로 잘라내는 것 사이의 대조에서 그 역시 뭔가를 궁금해하는 게 아닐까. 그는 사진이라는 과정에 놓여 있다.
또한 그 자르기는 도시라는 시공간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자 입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시의 거리에서는 많은 일이 제각각의 소용과 속도로 진행된다. 이 사람은 이리로 걷고, 저 사람은 저리로 걷고, 전차는 달리고, 인력거는 멈춰 있고, 소년은 여기를 보고, 여자는 땅을 보고, 다른 남자는 그 여자를 본다. 이런 동시다발성은 카메라를 든 그를 다만 숨죽이게 만들지 않았을까. 한영수가 넓은 앵글로 도시를 잡을 때면 영락없이 각각의 시간을 따로 진행하는 것들이 한바탕(혹은 기능적이라 할 만큼 정확하게) 분방한 소요를 이룬다. 똑같이 흐를 수 없는 도시의 에너지는 프레임 안에 잠시 머물 뿐, 전부이자 완결이라 할 수 없음을 그는 견지한다. 한영수가 본 도시는 카메라 밖으로 더 넓으며 셔터를 누른 후에도 여전히 지속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한영수의 사진에서 핀처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게 있다. 바로 개인의 취향이다. 그걸 진보한 개념으로 간주해도 좋을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배제하는지, 무엇을 예뻐서 자꾸 쳐다보는지, 무엇을 굳이 돌아보지 않는지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것은 다시 한 번 시대를 감안하기로 희귀한 감각이다. 우리는 ‘그때의’ 사진이 갖는 기록이라는 성격에 길들여진 나머지, 한영수의 사진에서 마치 패션 화보를 찍을 때처럼 ‘그게 예뻐서’라는 동기를 발견할 때마다 심지어 놀라게 된다. 긍정의 제스처라지만 자칫 게으른 오만일 수도 있다. 어떻게 그 시절에 그럴 수 있었나 하는 식의 의문보다, 그때 이미 있었고, 누군가는 그걸 택했다는 인정이 마땅할 테니까.
한편 한영수의 사진이 세련되었다 느낄수록, 전시 제목으로 쓴 ‘내가 자란 서울’이라는 말의 맥락과 그 포스터에 사용한 서체는 한영수의 사진이 지닌 가치를 오히려 제한하는 듯해서 유감스럽다. 가령,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풍속화’로만 한정 지으면 얼마나 작은 세계에 국한될 것인가. 기왕 한영수의 사진을 보면서 근대성과 세련됨을 느끼는바, 우리는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조금 더 보려고 했던 세련된 도시인 한영수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새로운 질문을 할 때다.
- 에디터
- 장우철
- 포토그래퍼
- 한영수
- 사진제공
- 한영수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