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의 간판 SUV CR-V가 터빈을 달고 귀환했다.
“다 좋지만, 재미가 없다.” CR-V를 평가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다. 동의한다. 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일식집에서 피자 찾는 격이다. 운전하는 재미와 멋스러운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겠지만, CR-V는 편안한 주행을 추구하는 사람을 파고드는 차다. 전략은 정확했다. 판매량만 놓고 보더라도 여태까지 실패한 적이 없었다.
CR-V는 세대를 거듭할 때마다 굵직한 변화가 있었다. 아직도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세대부터 살펴보자. 3세대에서 4세대로 넘어오면서 5단 자동변속기는 CVT로 바뀌었고, 5세대로 넘어오자 엔진에 터빈을 달았다. 덕분에 1.5리터라는 낮은 배기량으로도 최고출력 193마력, 최대토크 24.9kg∙m의 힘을 낸다. 주행의 즐거움과 ‘짠물 납세’의 이상적인 접점이다.
외모도 극적으로 변했다. 부드러운 선과 작별하고 각진 실루엣으로 다듬었고, 앞모습과 뒷모습 모두 강한 인상으로 디자인했다. 그래서인지 전보다 길이와 폭은 3.5센티미터, 높이는 겨우 0.5센티미터 커졌지만 스테로이드를 맞고 몸을 불린 것처럼 커진 느낌이 든다. 최저지상고가 전보다 높아졌다는 것도 ‘덩치’가 돋보이게 하는 데 한몫한다.
CR-V답게 내부 공간과 수납공간은 여전히 동급 최강 수준이고, 타고 내리기가 수월하다는 점도 5세대로 고스란히 내려온 CR-V만의 시그니처. 게다가 3.1센티미터 폭을 넓힌 시트와 확 트인 전방 시야의 조합은 운전자의 마음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할 만큼 편안하다.
시동을 걸면 스티어링 휠 뒤 대시보드에 투명창이 올라와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역할을 한다. 미니와 같은 형태다. 기분 좋은 엔진의 회전 질감을 느끼며 가속하면 계기판에 동력을 네 바퀴에 어떻게 분배하고 있는지 화살표의 길이로 표시한다. 나긋나긋하고 여유로운 가속이 CR-V의 특징 그대로다. 노면에서 전해지는 충격은 서스펜션이 너그럽게 포용한다.
차를 이리저리 흔들어봐도 견고한 차체와 조립 품질이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든든하다. 고속 안정감도 훌륭하다. 하지만 만점을 주기엔 조금 부족한데, 속도가 시속 120킬로미터가 넘어도 스티어링 휠이 여전히 가벼워 심리적인 부담이 생긴다. 기능과 기능이 촘촘하게 엮여 제 기량을 발휘하도록, 조금만 더 정성 들여 세팅했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혼다 센싱’이라고 부르는 주행 보조 시스템이 빠진 것도 옥에 티다. 당연히 가격 때문이겠지만 이왕 타는 차 더욱 안전하게 타고 싶은 사람을 위해 선택 사양으로라도 마련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특히 풍성한 기능을 담은 차를 원하는 국내 정서를 고려하면 혼다 센싱은 앞으로 버려서는 안될 카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R-V의 성공은 이미 보장되어 있다. 차를 바꾸고 싶어도 고장이 나지 않아 새 차를 살 수 없다는 내구성, 모든 차를 통틀어 손꼽을 정도로 편한 운전은 CR-V를 믿음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이번에도 CR-V가 쌓아 온 신뢰는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크기― L4590 × W1855 × H1690mm
휠베이스 ― 2660mm
무게 ― 1600kg
엔진형식 ― 직렬 4기통 가솔린
배기량 ― 1498cc
변속기 ― CVT
서스펜션 ― (앞)맥퍼슨 스트럿, (뒤)더블위시본
타이어 ― 모두 235/60 R 18
구동방식 ― 4WD
0→100km/h ― 8.3초
최고출력 ― 193마력
최대토크 ― 24.8kg·m
복합연비 ― 12.2km/l
CO2 배출량 ― 138g/km
가격― 4천3백만원
- 에디터
- 이재현
- 사진
- HON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