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 겉멋, 요즘 것들’. 해쉬스완은 자신이 관종이고 겉멋을 부리며 요즘 것들의 기준이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원래 체력이 별로 안 좋은데 너무 열심히 놀아서 그렇다.
공연할 때 예전과 달라진 분위기를 좀 느끼나? 지난 해와 올해 차이가 많이 나더라. 사람들이 내 노래를 다 알고 따라 해주니까 공연할 때 힘들지가 않고 너무 재밌다. 요즘엔 뭘 해도 좋아해주는 것 같다. 심지어 무대에서 물만 먹어도 좋아해주는 것 같다(웃음).
문제적 발언 아닌가? 하하.
관객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는 같나? 요즘엔 같다. 관객들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도 ‘요즘것들’이다. 그 노래 덕분에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음원도 관심을 받게 됐다. 그래서 의미가 크다.
스스로 요즘 것들이라고 느끼나? 그렇다.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내가 ‘요즘 것들’의 기준이라고 말하고 있다(웃음). 일단 나 어리지 않나. 그리고 유행에 민감하다. 유행을 따라가려고 민감하게 반응한다기보다는 어떤 식으로 유행이 변화하는지가 궁금하다. 모두가 유행을 따라 할 필요는 없지만 그걸 지나치게 배척하는 사람은 싫어한다. 유행을 알면 오히려 그 반대의 흐름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랩 하는 방식도 거기서 나온 거다. 남들이랑 다르게 해보자 싶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한 거다. 처음부터 이렇게 한 건 아니다.
처음엔 굉장히 센 랩을 했다던데, 욕도 하고 그랬나? 엄청 많이 했다(웃음). 핫독일 때도 그랬고 팬시아일 때도 그랬다. 가사도 일부러 더 세게 쓰고 화낼 일도 없는데 막 화내고 그랬다. 사실 평탄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려운 것도 없었고 힘든 일도 없었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가질 수 있었지만 너무 비싼 건 또 못 갖는 그런 평범한 집안이었다. 학교생활도 평범했는데 왜 화가 나있었는지 모르겠다(웃음). 세상이 나한테만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때 배운 것도 많다. 왜 화가 나 있는지 곱씹어보면서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 이후로 1년마다 한번씩 지난 해의 나를 되돌아본다. 내년에는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어리게 느껴질 것 같다.
홈즈 크루와 함께 만든 곡 ‘배웠어’의 가사가 그렇게 나온 건가? 맞다. 표현할 데가 없어서 가사로 써봤다. ‘배웠어’ 가사를 쓸 때 상태가 무척 안 좋았는데 가사를 쓰면서 정리가 됐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느껴온 모든 감정이 다 그 가사에 녹아 있다. 그 노래로 내 인생이 정리될 수 있다.
‘배웠어’의 가사를 다시 쓴다면 어떤 내용을 추가할 것 같나? ‘생각보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배웠어’라고 추가할 것 같다. 의도적으로, 악의적으로 나쁜 사람들이 있더라. 근데 이런 부정적인 내용은 굳이 가사로 쓰고 싶진 않다. 웬만하면 좋은 내용을 가사로 쓰고 싶다.
왜 그런가? 그 가사에 영향 받는 사람이 최소 몇 명이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가출해야 해’라고 쓰면 가출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생길 수 있다. 나도 다른 래퍼들의 노래를 들으며 그런 식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다. 모든 건 직접 경험해보고 배우는 게 맞다.
그럼 어떤 얘기를 하고 싶나? 내 가사엔 항상 ‘난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어 조금만 더 해봐 너도 분명히 할 수 있어’라는 암시가 있다. 내가 최고고 너와 난 태생이 다르다는 식의 가사는 절대 쓰지 않는다. 힙합이라는 장르 때문에 다소 거칠게 표현됐지만 잘 들여다보면 이런 얘기다.
해쉬스완이 이렇게 될 거라고 아무도 예상 못했나? 동네 친구들 그 누구도 예상 못했다고 하더라. 가끔 친구들이 술 취해서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너한테 술을 얻어 먹을 줄은 몰랐다.”고. 그럼 난 그런다. “꺼져.”(웃음) 운이 정말 좋았다. 내가 열심히 했던 시기에 힙합이 트렌드가 됐고 사람들이 독특한 걸 찾는 시기가 와서 나한테도 기회가 생겼다. 절대적으로 날 믿어준 친구가 딱 한 명 있긴 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동원이라고, 내 가사에 나오는 친구 얘긴 다 그 친구다. 지금 군대에 있다. 훈련소 있을 때 나랑 친구라고 말했는데 선임들이 어디서 구라를 까냐며 뭐라고 했다고 하더라(웃음).
그 친구가 믿어준 게 도움이 많이 됐나? 그 친구로부터 자극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 학원에서 컴퓨터를 가르칠 정도로 이미 실력이 있었다. 적은 돈이었지만 그 친구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을 버는 모습이 큰 자극이 됐다. 게다가 난 할 일이 있어도 친구들이 놀자고 하면 놀러 나가는 스타일인데 그 친구는 할 게 있으면 절대 안 나가더라(웃음). 그것도 좀 멋있었다. 오히려 뮤지션들에게 자극 받은 건 별로 없고, 사는 방식에 대해 자극 받고 닮고 싶고 멋있다고 생각한 건 그 친구다.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가 가사에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그럼 언제부터 화를 내지 않는 랩을 하게 된 건가? 고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 흔히 ‘현자타임’이라고 하는 게 왔다. 그때 이름도 해쉬스완으로 바꾼 거다. 갑자기 어느 순간 난 하나도 힘들지 않은데 왜 화를 내고 있지 싶더라. 어제도 엄마가 해준 밥 잘 먹고 잠 잘고 학교 잘 가고 잘 놀았는데 말이다. 내가 왜 ‘세상은 잘못됐어 여긴 썩었어’란 가사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더라(웃음). 솔직히 가사도 잘 안 써졌다. 그런 감정을 못 느껴봤으니까 당연히 잘 써질 리가 없었다. 화를 표현해봐도 뭔가 어색한 거다. 아, 화를 내는 것 자체가 나랑 안 맞는구나 싶었다. 이런 단어를 써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보면 호구 같은 거다. 난 어떤 상황에서도 웬만하면 지고 들어간다. 말도 안 되는 사람과 굳이 감정 소비하면서 이기고 싶지 않다. 난 감정 소비 안 해서 좋고 그 사람은 나 이겨서 좋고 그렇게 ‘윈윈’하려고 한다. 싸우는 걸 진짜 싫어한다. 그래서 <Show Me The Money>가 안 맞았다. 그런 변화 덕분에 지금의 내 모습이 확립된 것 같다.
그렇게 갑자기 나른하고, 어떻게 보면 다소 기운 없는 랩이 됐나? 처음엔 말도 안 되는 것 많이 했다. 지금이야 조용히 랩을 해도 가사가 다 들리지만, 옛날엔 옹알이 수준이었다. 내가 들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아무리 생각을 안 하고 가사를 썼다고 해도 문법적으로도 말이 안됐다. 내가 무슨 감정인지도 모르겠고.
핫독, 팬시아, 해쉬스완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사실 전에 쓰던 활동명에 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하진 하지만 뭐 이미 다 노출됐으니까(웃음). 3일짜리도 있었고 2시간짜리도 있었지만 그건 영원히 묻어두자. 핫독 때는 이유 없는 분노의 시기였다. 팬시아는 과부하 걸린 혼돈의 시기였다. 그래서 팬시아의 가사는 ‘아무말 대잔치’였다. 아는 것도 없는데 정치 얘기도 했으니 뭐. 해쉬스완은 안정과 절제의 시기다. 핫독, 팬시아, 해쉬스완 때의 성격, 삶의 방식 등이 다 다르고 그건 음악에도 영향을 줬다. 이젠 내가 어떤 얘길 하려면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절제의 시기라고 했는데 가사에 돈 얘기가 많다. 다 실화인가? ‘진짜 그만큼 버나?’라고 의심하는 분들이 많은 것 안다. 근데 ‘나 그만큼 벌었어’가 아니라 ‘나 그만큼 썼어’라는 거다. 난 버는 만큼 다 쓰는 타입이다. 남들보다 씀씀이가 큰 건 사실이다. 그리고 잘 살펴보면 미래형 가사가 많다. ‘난 포르쉐를 타고 있을 거야’라고 가사를 쓰면 사람들은 ‘애 포르쉐 타?’ 그런다. 꿈에 대해 얘기하는 거다.
아까 택시 타고 오던데. 그러니까 말이다.
그럼 지금껏 해본 가장 큰 낭비는 뭔가? 구찌? 루이 비통? 지금도 낭비는 많이 하고 있다(웃음). 옷에 돈을 제일 많이 쓴다. 친구들 만나면 주로 내가 내고. 근데 요즘 또 ‘현자타임’이 왔다. 예전보다는 덜 산다.
힙합 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구찌를 좋아하나? 가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외국 힙합 노래 들으면 브랜드들이 많이 나온다. 뭔 소린지도 모르면서 그 브랜드들은 잘 기억한다. 그들이 언급한 브랜드들을 찾아보고 그러다가 하나 정도는 사도 되지 않을까? 하고 사게 되고 그런 거다. 사실 겉멋이다(웃음).
관종이라고 고백도 했던데, 맞나? 관심 받는 것 좋아한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까. 굳이 그 기회를 마다하고 싶지 않다.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알아봐주면 기분 좋다. 방송 나가서 20시간 대기하고 2시간 촬영했던 게 헛되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내 랩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지난 몇 년간 노력했던 게 헛짓은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도 든다. 근데 그걸 관종이라고 표현하더라(웃음).
관심 받기 위해 이런 것까지 해봤다 하는 게 있나? 예전에 화가 많을 때는 ‘난 뭐가 싫다’고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말을 sns에 올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래서 어쩌라고’ 싶다. 그것도 배우는 거다. 아, 내가 진짜 멍청했구나. sns에서 바지 벗는다고 사람들이 주목하는 건 아니다. 곡을 잘 써야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거지.
해쉬스완의 국어 사전에 꼭 있어야 하는 단어는 무엇인가? ‘됐어, 필요 없어, 꺼져’다. ‘됐어’는 2가지 의미다. 이제 충분하다는 것과 이제 그만 하라는 것. 나한테는 마법의 단어들이다. 이유 없이 갑질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 별 필요 없는 도움을 주겠다고 자존심 밟는 사람들에게 ‘됐어, 필요 없어, 꺼져’면 모든 게 다 정리된다.
참, 우원재에게 선물은 받았나? 둘 다 바빠서 아직 받진 못했지만 선물 사왔단 얘긴 들었다. 우원재에게 선물 받는 놀이가 갑자기 너무 커져서 누군 비싼 것 사주고 누군 싼 것을 사줄 수가 없어서 초콜릿으로 통일했다고 하더라. 근데 그 양이 얼마나 많았던지 세관에 걸려서 돈 엄청 많이 냈다고 하더라(웃음).
- 에디터
- 나지언
- 포토그래퍼
- JDZ CHUNG, 인스타그램 @hashblanccoa
- 스타일리스트
- 이잎새
- 헤어
- 솔희 (at 요닝)
- 메이크업
- 연진 (at 요닝)
- 어시스턴트
- 황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