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고 요란하지만 거부할 수 없다. 2018 F/W 구찌 사이보그의 매력.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를 볼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든다. 복잡하고 화려하고 유별난 옷, 게다가 액세서리는 또 어찌 그리 많은지. 눈에 띄는 건 사실이지만 이런 게 아름답냐고 묻는다면? 단박에 답할 수 없다면 그 기준은 누가 만든 걸까? 미켈레는 구찌로 데뷔하면서부터 온갖 규율과 경계를 모호하게 했다. 처음엔 성별, 다음엔 세대를. 2018 F/W 시즌도 다르지 않았다. 또 한 번 “사회적 정체성에서 자유로워지자”고 외쳤다. 얼핏 사회 운동가의 구호 같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패션이다. 그의 머릿속엔 철학적 주제를 패션으로 풀어낼 묘책이 가득했다. 우선 배경은 수술실이다. 그곳에서 미켈레는 온갖 생명체를 조합하거나 해체했다. 한 번에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인류를 창조한 것이다. 이른바 구찌의 ‘사이보그’다.
쇼 당일, 온몸을 구찌로 감싼 사람들 사이에서 쇼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초대장의 콘셉트는 다이너마이트. 작은 박스를 건네받은 순간부터 자꾸 신경이 쓰였다. 쇼 시작까지 남은 시간을 알리는 빨간색 숫자가 쉴 새 없이 촉새처럼 움직였다. 때문일까, 다른 시즌에 비해 늦은 사람도 적었다. 캘빈 해리스 주니어, 클로에 세비니, 설현도 일찌감치 제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삭막한 기계음과 클래식 교향곡이 섞인 낯선 선율이 흘렀다. 첫 번째 사이보그가 나타났다. 박시한 꽃무늬 실크 셔츠에 빈티지풍 치마와 트레이닝 팬츠를 겹쳐 입은 금발 여자는 막 병실에서 탈출한 듯 창백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그녀의 손에 들린, 끔찍하게 정교한 머리! 머리가 두 개인 인간은 쇼 중반 한 명 더 등장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미켈레의 팀은 이 얼굴 피규어를 만드는 데만 무려 6개월을 썼다. 어쨌든 이 괴기스러운 생명체가 퇴장한 후에도 ‘구찌 사이보그’는 계속 출현했다. 손등에 눈이 있는 남자, 뿔이 달린 소년, 아기 용을 마치 자식처럼 안고 나온 소녀. 문득 ‘세비지 그레이스’란 단어가 떠올랐다. 징그럽기도, 한편으론 우아하기도 해서. 요즘식 수트와 터번, 뉴욕 양키스 비니와 르네상스식 자카드 가운, 동양의 갓과 프랑스풍 투피스 등 문화가 뒤섞인 스타일링도 여럿 발견했다. 액세서리는 언제나처럼 풍요로웠다. 특히 머리 장식이 유난했는데, 그중에서도 1920년대의 플래퍼를 연상시키는 비즈 모자가 가장 화려했다. 믈론 사자 머리 모양 비즈를 엮어 만든 목걸이도 만만치 않았지만. 유치원 가방처럼 생긴 백팩은 차라리 애교였다. 어깨끈이 아주 긴 버킷 백과 공 모양 토트백, 보석을 체인처럼 장식한 구찌 버전의 어글리 스니커즈 역시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미켈레의 구찌는 모두가 당연히 여기는 보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에겐 은하계를 넘어선 상상력, 꼼꼼하고 재치 있는 스타일링 능력이 있다. 구찌의 기묘한 매력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 에디터
- 안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