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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닛산 리프’를 타고 횡단하는 남자

2018.09.03GQ

폴란드에서 온 탐험가 마렉 카민스키는 비행기가 아니라 닛산 리프에서 내렸다.

유럽에서 서울까지 자동차로만 달려온 여정이 다소 무모해 보인다. 게다가 전기차라니. 폴란드에서 출발해 러시아와 몽골, 중국을 거쳤고 최종 목적지는 일본이다. 지금까지 1만2천 킬로미터 넘게 달렸다. 주변에서도 모두 말렸다. 길이 험악할 테고, 차가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그래서 일부러 고비 사막을 거치는 경로를 추가하는 등 더 위험한 코스로 짰다. 전기차로도 해낼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다. 아무도 시도한 적 없었으니까.

충전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출발하기 전에 규칙을 정했다. 주행 가능 거리가 50킬로미터 이하로 떨어지면 반드시 충전할 것. 사전에 구글맵에서 사진을 찾아 빛이 있는 곳을 표시해뒀다. 전기가 나온다는 단서다. 폴란드어와 러시아어, 영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전기를 빌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또 주행 거리가 4백킬로미터에 달할 만큼 전력 효율이 좋은 차를 에어컨까지 끄고 달렸다. 그러니 자주 충전할 필요도 없었다.

내연 기관차였다면 더 편했을 텐데. 기름이 떨어지면 트렁크에 챙겨놓은 여분의 기름을 넣으면 그만이니 편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두 달에 걸친 횡단이다. 내연 기관차의 소음과 진동은 피로만 쌓이게 한다. 또 내연 기관차였다면 긴 거리를 달리는 동안 얼마나 많은 배기가스를 뿜었을까? 애초부터 ‘흔적을 남기지 않는 대륙 횡단’을 계획했고, 이에 공감한 닛산이 전기차 리프를 제공했다.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탐험가의 의무라면, 새로운 방식으로 가는 것도 탐험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숙박은 어떻게 했나? 차 안에서 모든 걸 해결했다. 리프는 내부 공간이 넓어서 개조를 조금만 하니 2백20센티미터짜리 침대를 놓을 수 있었다. 차 안에 테이블도 설치하고, 필요한 물건을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수납 시설도 만들었다. 옷은 세탁을 자주 안 해도 되는 소재를 주로 입었다. 장기간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회복’이다. 하루에 꼭 일정한 시간을 할애해 요가와 명상을 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나를 챙겼다.

아마 세계에서 최신 전기차를 가장 집중적으로 탄 사람일 거다. 전기차는 이제 어떻게 진화할까? 전기차를 도심형 자동차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전기차가 오프로드는 물론이고, 충전 계획만 잘 세우면 장거리 주행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엔진이냐 모터냐에 따라 다를 뿐이지, 내구성만 뒷받침된다면 전기차라고 못 갈 곳은 없다. 닛산 리프는 폴란드에서 서울에 오기까지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이제 전기차의 주행 가능 거리가 1천 킬로미터를 훌쩍 넘을 것이고, 가장 큰 과제인 충전 문제도 앞으로는 더 잘 해결될 것이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기처럼 바닥에 깔린 충전 시설 위에 주차하면 빠른 시간 내에 충전이 끝나는 시대가 열릴 거라고 생각한다. ‘전기 배달부’ 역할도 하게 될 거다. 닛산이 하와이에서 이미 시행 중이기도 한데, 가득 충전한 전기차를 전력 전달이 어려운 지역으로 보내 전기를 나누고 있다. 수혈과 비슷하다. 운송 수단 이상의 역할을 전기차가 짊어지는 것이다.

다음 프로젝트는 뭔가? 일단 부산까지 가면서 한국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살펴보고 싶다. 이후 배편을 이용해 일본으로 향할 것이다. 이번 겨울에는 전기차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한 번 더 할 예정이다. 혹한기에 시베리아를 건너는 것 같은? 전기차의 배터리는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겨울에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다. 겨울 시베리아 횡단을 통해 어느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했는지 경험하고 싶다.

    에디터
    이재현
    포토그래퍼
    김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