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아테온이 순전히 내 공간이라면, 네 팀의 아티스트는 어떻게 만들까?
Arteon 아테온은 신조어가 필요하다. 세단인데 쿠페의 선을 지녔다. 쿠페의 선을 지녔는데 문은 네 개다. 문이 네 개인데 프레임리스 윈도라는 쿠페의 특징을 공유한다. 즉, 편안하고 안정적인 세단을 타는 감각으로 쿠페와 같은 아름다운 외관과 드라이빙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다. 아테온은 합성어다. 차가 단지 도구가 아닌 예술 ART과 무한한 시간 EON과 같은 영속적인 작품이길 바란다. ‘My Space’는 그것을 한낱 수사가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다. 네 팀의 아티스트가 공간을 만들어가면서 네 개의 작품과 아테온 사이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졌다. 아테온은 신조어가 필요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쿠페단’ 같은 말은 이상하지 않나. 이 창의적인 공간들이 그 단어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Elevation 엘리베이션은 보는 것을 넘어 만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체험 공간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질감과 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운전자가 차를 운전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교감하면서 하나의 개체를 이루는 이미지를 상상했다. “우리 몸의 신경계 사진을 보면 굉장히 화려하고 복잡하잖아요?” 육중한 돌의 표면을 가진 운전석과 조수석이 에어호스를 통해 자동차와 끈끈하게 이어지는 모습이다. 아테온의 특징적인 노란색을 산업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노란색 에어호스와 겹쳐놨다. 무거운 검은색 밧줄과 노란색 에어호스의 대비 역시 서로 다른 성질의 것이 교감하고 이어지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무대 디자인을 전공한 엘리베이션의 대표 김태환은 공간에 하나의 ‘내러티브’를 입히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러니까 엘리베이션이 의도하는 것은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들여, 그 위에서 사랑하고 대화하고 갈등하는 배우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Very Things 그 이름과 달리 베리띵즈는 줄이려고 한다. “요즘 공간 관련해서 클라이언트들이 항상 얘기하는 게 ‘많은 콘텐츠’예요” 하지만 베리띵즈는 조금 모자란 공간이 역설적으로 많은 콘텐츠가 나올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어디 앉아서 사진 한번 찍으면 끝나는 공간 말고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공간은 조도, 향 등이 모두 부담스럽지 않아서, 오래 머물며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지는 공간이에요.” 자동차에도 동일한 기준이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필요 없다. “차는 수많은 사람, 일과 떨어져 혼자 있을 수 있는 피난처예요. 차가 제게 주는 위안이 정말 크거든요. 그래서 좀 더 부드럽고 둥글둥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어요.” 애초에 베리띵즈는 실내 식물 작업으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식물을 바라보는 관점도 비슷하다. “초록이 주는 위안이 아니라 초록이 주는 답답함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다들 광택제로 파릇파릇해진 강박적인 초록을 원하죠.” 베리띵즈는 좀 더 많은 “시들었는데 예쁜 초록”, “온도에 따라 변하는 이 파티오라금처럼 얼룩덜룩한 초록”을 보고 싶다.
House of Collections 하나의 그릇에는 하나만 담는다는 관습적 합의가 있다. 하우스 오브 콜렉션스 역시 이 합의를 따른다. 다만 숫자 1을 아주 두껍게 쓰고, 콜라주 또한 1이라고 정의하면서. 이지연, 조정미, 홍지연 세 명의 아티스트는 하우스 오브 콜렉션스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관심사를 걸러내기보다 최대한 살려내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아테온을 타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가정 아래 바다로 떠나는 식도락 여행을 상상했다. 일상과 예술을 결합한, 거울, 카펫 같은 그들의 특징적인 작품들을 배치하고, 사적인 오브제들을 더해 역시나 압도적인 공간을 완성했다. 누가 봐도 하우스 오브 콜렉션스라는 걸 알 수 있는 공간이지만, 이것은 하우스 오브 콜렉션스가 공간을 표현하는 방식이 자의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 공간의 특성을 파악하는 게 표현보다 먼저”라고 말한다. 아테온의 어원과 기능, 질감, 색깔을 탐구했고, 이 차에는 관습을 뛰어넘는 즐거움이 어울린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우스 오브 콜렉션스가 숫자 1에 대해 시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Artist Proof 3면에 친 이 커튼들은 자동차로 말하면 일종의 ‘틴팅’이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아티스트 프루프가 만드는 자신의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와의 단절이다. “온전히 저한테 집중할 수 있어야 해요.” 가장 본능적인 것, 가장 비밀스러운 것을 스스로 마주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한 단계 한 단계 정확히 쌓아가는 판화 기반의 작가답게, 아티스프 프루프가 만든 공간은 엄밀하다. 선과 면이 단단하게 제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아티스트 프루프가 추구하는 것은 완벽한 비례가 아니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색깔과 패턴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 다르다. 아름다움에서 충돌과 균형은 다른 말이 아니다. “숨통이 트이는” 요소를 집어넣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서는 모래다. 모래는 이 강박적인 구성이 흐트러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 추가했다. 이를테면 “메아리 같은” 것이다. 그렇게 작고 희미하게나마 아티스트 프루프는 이 공간의 심상에 대한 공감을 구한다.
- 에디터
- 정우영
- 포토그래퍼
- 이신구,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