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에 대한 가장 현재적인 해석, 펜디의 2019 S/S 컬렉션.
요즘 패션 하우스의 관심사는 한 가지다. 과거의 전통과 유산을 어떻게 하면 젊고 세련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은 펜디에서 찾을 수 있다. FF 로고, 모노그램 캔버스, 가죽과 퍼 같은 브랜드의 시그니처를 동시대적인 관점으로 재기 발랄하게 해석하기 때문에. 덕분에 펜디는 지금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쿨’한 브랜드가 됐다. 이들의 명민함은 이번 2019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이탈리아의 아티스트 니코 바첼라리 Nico Vascellari와 손잡고 브랜드의 DNA를 재구성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펜디와 로마의 알파벳 순서를 바꾼 애너그램. FENDI는 작은 악마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FIEND로, ROMA는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 AMOR로 바꿔 신선한 분위기를 환기하고, 붓으로 그린 듯한 FF 로고를 컬렉션 전면에 배치했다. 또 뿔 달린 악마, 혀가 FF 모양으로 갈라진 뱀, 발톱이 난 개구리 같은 신화적인 모티프도 덧붙였다. 물론 펜디식 유머도 빼놓지 않았다. 펜디 몬스터를 킹으로,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를 퀸으로, 칼 라거펠트를 조커로 표현한 트럼프 카드 일러스트레이션이 옷과 가방, 액세서리에 위트를 더했다. 전체적인 룩은 레드와 블랙, 화이트, 브라운 팔레트 안에서 펼쳐졌다. 흥미로운 점은 무겁고 견고해 보이는 소재도 실제로는 가볍게 처리했다는 것. 초음파로 미세하게 구멍을 낸 가죽 블루종, 메시 소재로 만든 재킷, 종이처럼 얇은 레인 코트와 아노락 점퍼가 니트 셔츠, 스포츠 쇼츠와 조화를 이뤘다. 슬링백 모카신과 기능성 샌들 러닝화, 크로스백 같은 아이템도 다시 등장했다. 펜디의 헤리티지는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하려는 듯이.
Bag Collection
2019 S/S 컬렉션에는 새로운 가방도 대거 등장했다. 그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건 피카부 엑스라이트와 몽트레조다. 지금까지 여성 라인에서만 선보이던 모델을 남성용으로 소개했기 때문. 피카부 탄생 10주년과 #MeAndMyPeekaboo 캠페인을 맞아 출시한 남성용 피카부 엑스라이트는 흘러내리는 듯한 호보 형태가 특징이다. 남자들도 부담 없이 들 수 있도록 컬러와 사이즈를 바꾸고, 고무 코팅 필름을 입힌 기능성 패브릭으로 안감을 처리해 실용성까지 높였다. 몽트레조 역시 남성용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기존의 형태와 가방 입구를 여미는 끈은 그대로 유지하고, 메시 소재와 양쪽 손잡이, 넉넉한 수납 공간을 더해 스포티하고 남성적인 매력을 강조했다. 사이즈는 라지와 스몰, 두 가지. 덕분에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또 있다. 바로 펜디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페퀸 모티프를 부활시킨 것. 1983년 첫선을 보인 이 패턴은 블랙과 브라운을 번갈아 배치한 줄무늬로, 한때 펜디를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펜디는 이 페퀸을 남성 몽트레조 백부터 토트, 벨트 백 등 다양한 가방에 적용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이 밖에도 레드 FF 패턴의 코팅 캔버스 백, 니코 바첼라리의 트럼프 카드 일러스트레이션을 넣은 클러치, 스몰 레더 굿까지. 지갑을 열게 만드는 아이템이 너무나도 많다.
펜디의 2019 S/S 남성복 컬렉션에는 이탈리아의 예술가 니코 바첼라리가 참여했다. 이로써 그는 조각가 존 부스, 일러스트레이터 수 틸리, 디지털 아티스트 헤이 라일리에 이어 펜디와 함께한 네 번째 게스트 아티스트가 됐다. 로마와 비토리오 베네토를 오가며 활동하는 그는 포스트모던의 렌즈를 통해 빛과 소리, 움직임, 공간 등을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하는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다. 파리 팔레 드 도쿄, 로마 막시 미술관과 메디치 빌라, 맨체스터 휘트워스 아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베네치아 비엔날레, 로마 콰드리엔날레, 매니페스타7에 참가하며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가 새롭게 해석한 펜디 애너그램과 로고, 일러스트레이션은 컬렉션 곳곳에 삽입되어 독특한 유머와 생동감을 부여한다.
- 에디터
- 윤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