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효도관광 매뉴얼

2019.06.21GQ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에 나서겠다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한 이들을 위한 조언.

어쩌다 보니 햇수로 6년째, 부모님 두 분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매해 떠나고 있다. 파리, 리스본, 헬싱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프라하, 상트페테르부르크, 홍콩, 교토, 방콕까지 등등. 짧게는 4일, 길게는 2주간 부모님을 모시는 관광 가이드로, 매번 효도와 극기훈련을 넘나들며 휴가를 보냈다. 혹시 올해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계획 중인 이들이 있다면 아래의 작은 팁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한 알의 비타민이 되기를….

1. 호텔은 시내 한복판, 공원 근처로 잡는다.
부모님의 평균 기상 시간은 새벽 5~6시. 취침 시간은 밤 9시 정도다. 호텔을 고를 땐, 부모와 자식의 활동 시간이 겹치지 않는 새벽과 깊은 밤에도 무언가 활동이 가능한 위치인지를 따져본다. 일찍 일어난 부모님들이 새벽에 동네를 둘러보기에 너무 심심치 않은 곳, 공원이 근처에 있어 아침 산책을 다녀올 수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밤 9시 이후 부모님이 주무실 때, 내가 잠깐 칵테일이라도 한잔 마시고 올 수 있는 동네면 더 좋다. 보통 공원과 시내가 동시에 인접한 호텔은 가격이 비싸다. 효도관광에서 호텔비 예산을 넉넉하게 잡아둬야 하는 이유다.

2. 건조동결 인스턴트 식품을 챙긴다.
아무리 짧은 여행이라도, 부모님은 한식이 당긴다. 한식당을 갈만큼은 아닐지라도, 쌀밥에 국물 정도는 나조차도 자주 (나이가 들수록 더 강렬하게) 떠올랐다. 컵라면을 해체해서 가져가는 건 친구들끼리 여행갈 때나 하는 방법. 부모님과 떠날 땐 건조동결 인스턴트 식품을 챙긴다. 호텔 머그컵에 작은 블록을 넣고 포트에 데운 물을 부으면 시래기국, 미역국으로 변신하는 제품을 구비한다. 컵밥 제품을 해체해서 가져가는 것도 방법이다.

3. 일정표를 짤 때, 식사 시간은 반드시 지킨다.
하루의 일정표를 만들 때, 식사 시간은 제때에 할 수 있도록 동선을 짠다. 동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점심을 2시 넘어서 먹어야 하는 스케줄이거나 예약시간 때문에 저녁 식사 시간을 8시 넘겨야 잡아두었다면 일정표를 다시 손보는 게 좋겠다. 부모님들은 젊은 우리와 달리 제때 식사를 해야 힘이 난다. 갑자기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무리 좋은 것을 본들 즐거울 리 없다.

4. 내 체력의 60퍼센트를 소진했을 때, 관광을 멈춘다.
식사도 제때 챙기고 우버 택시로 체력을 많이 아꼈더라도, 부모님의 체력은 나보다 한참 떨어진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내 체력이 60퍼센트 정도 소진됐다는 느낌이 올 때, 관광을 멈추고 근처 카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부모님은 이미 100퍼센트를 소진한 상태가. 너무 멀지 않다면 호텔로 잠깐 복귀해 낮잠을 자고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멀리까지 여행왔는데 조금 무리하면 어때, 생각했다간 여행 막바지에 약국을 찾아 뛰어나디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5. 이왕이면 내가 가본 관광지를 간다.
나홀로 배낭여행이라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도 그게 다 추억이고 경험이 된다. 부모님과 함께라면 추억보다 부담이 더 먼저 온다. 내 뒷통수만 바라보고 기다리고 계신 부모님을 의식하다보면 잘 되던 영어도 멈추고 잘 돌던 머리도 굳어버린다. 결국 압박스러운 상황에서 좋지 못한 선택을 해 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 이왕이면 내가 가서 좋았던 곳, 내가 충분히 알고 즐겼던 도시로 부모님을 모시고 간다. 같은 곳을 또 간다고 해도, 부모님과 함께 가면 그 기분이 또 완전히 다르다. “내가 지난번에 여길 와봤는데 너무 좋아서 엄마랑 꼭 한번 또 오고 싶었어”라는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부모님은 그걸 다 느낀다.

6. 부모님께 작은 미션을 준다.
완벽한 관광 가이드로서 철저한 준비를 했다고 해도, 함께 여행하는 부모님에게도 한번씩미션을 부여해본다. 그저 자식에게만 모든 걸 기대어 수동적으로 여행하는 것보다는 부모님께도 배낭여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특히 은퇴한 아버지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작지만 간단한 미션으로 훨씬 분위기가 좋아진다. “호텔 앞에 10번 버스 정류장이 있다던데, 정확한 위치가 어딘지 한번 찾아봐주세요.”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진다는 기분에 정류장을 찾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평소보다 더 힘에 넘치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무뚝뚝한 아버지를 적극적인 여행자로 만들어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7. 맛집을 가기 전, 그 맛집의 음식 사진을 따로 저장해둔다.
영어 메뉴판이 없는 맛집을 갈 때 자주 쓰는 방법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여행할 때는 영어 메뉴판이 있는 집이라도 사진을 꼭 휴대폰에 챙겨서 간다. 주문할 때 이 사진을 보여주기 위한 용도도 있지만, 해외 음식 경험이 많지 않은 부모님에게도 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메뉴를 선택하도록 안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로 그냥 “비프스튜처럼 걸쭉한 국물에 고기와 야채가 들어있는 요리인가봐”라고 설명하면 또래친구들은 다 알아듣지만, 부모님은 비프스튜에서부터 상상이 막힌다.

8. 부모님의 여행 언어를 이해한다.
부모님의 여행 경험치와 나의 여행 경험치를 동기화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원하는 바를 잘 몰라 여행이 삐그덕거릴 때도 많았다. 부모님은 우리처럼 해외여행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항상 여행초보자 시절의 나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부모님이 “현지인들이 많은 진짜 그 도시 분위기가 녹아 있는 음식점 가보고 싶어”라고 말했다고 해서 정말 다큐멘터리에나 나올 것 같은 로컬 식당을 찾아갈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근사한데 가보자. 돈 좀 써도 되니까”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미슐랭 3스타 10코스 정찬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부모님의 여행의 경험폭은 우리보다 좁다. 그 안에서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걸 늘 염두에 둔다. 너무 극단적인 선택은 피한다.

9. “나도 잘 몰라”라는 말을 최대한 피한다.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하면 의외로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것이다. “엄마, 나도 사실 그런 것까지는 잘 몰라.”, “아빠, 그건 나도 몰라. 가서 물어보고 와야 해.” 해외여행을 하면서 부모님에게 짜증을 내게되는 순간도 아마 이 말을 하면서 일 테다.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모른다’가 아닌 다른 말을 하려고 노력해본다. 그것만으로도 감정 콘트롤이 수월해진다. 부모님도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다기보단, 새로운 환경에 쳐해서 그저 감탄사처럼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계속 상기한다.

10. 같은 곳을 두 번 방문하는 일을 피하지 않는다.
나라면, 같은 곳을 절대 두번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다르다. 정말 맛있었던 가게를 다시 가고 싶어할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언제든 마음 먹으면 이 도시를 다시 방문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지만, 부모님은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라는 마음이 더 강하다. 정말 좋아서, 정말 맛있어서, 다시 한번 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기꺼이 함께 또 가본다. 더 좋은 추억으로 깊게 남을 것이다.

11. 최대한 부모님 사진을 많이 찍는다.
부모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최소 10장은 넘게 건져야 한다. 애인 사진을 찍어주듯이, 틈틈히 휴대폰을 꺼내 일단 찍는다. 동영상 촬영도 잊지 않는다.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의 부모님 표정, 길거리 악사들을 보고 박수치는 모습, 부부 커플 샷을 어색해하는 그 요상한 포즈, 외국인에게 부끄럽게 음식을 주문하는 그 순간…. 사진은 부모님의 추억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효도가 부모님만을 위한 일이 아닌 것처럼.

    에디터
    글 / 손기은(프리랜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