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전기차가 자리를 펴기도 전에 수소 전기차가 등장했다. ‘눈치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약 3년 전, BMW 영업 및 마케팅 책임자 이언 로버트슨은 “앞으로 10년간 자동차 산업이 지난 세기만큼의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지 가로저을지는 각자의 몫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우리 삶을 떠올려보면 그의 말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가늠하는 지표가 될 터다. 인류의 의식을 저마다의 손바닥 안에 파묻게 만든 아이폰은 2007년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최초 양산 전기차 닛산 리프는 2010년 등장했다. 모두 10여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Y2K가 불러올 재앙을 상상하면서 호들갑 떨기 전이던가, 후이던가. 자동차 업계는 석유가 동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극복하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자동차에 전기 심장을 이식하려는 시도가 줄을 이었다. 그 결과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배터리 전기차(BEV), 수소 전기 차(FCEV) 같은 생소한 단어가 생겨났다. 괄호 속 알파벳을 면밀히 분석하면 ‘EV’라는 공통 성분을 추출할 수 있다. HEV와 PHEV는 기름에 불을 지펴 달리는 엔진과 전기 모터가 힘을 합쳐 움직이는 자동차다. 전기를 외부에서 끌어올 수 있는가(PHEV) 없는가(HEV)에 따라 나누기는 했지만, 내연기관과 배터리 및 전기 모터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본질은 비슷하다. 반면 EV와 FCEV는 자동차의 심장을 완전히 제거한, 터미네이터 같은 자동차다. 사람들은 이들을 순수 전기차 혹은 배출 가스를 내지 않는 차라는 의미에서 ZEV(Zero Emission Vehicle)라고 부른다.
순수 전기차 하면 대부분 배터리 전기차를 떠올린다. 닛산 리프도, 코나 일렉트릭, 아이오닉 일렉트릭, 니로 EV와 자동차 업계의 ‘풍운아’ 테슬라의 모든 라인업이 이에 속한다. 배출 가스가 없기 때문에 친환경 차 스티커도 발부하고, 덕분에 고속도로 통행료나 공영주차장 주차료도 감면 해준다. 하지만 정말 친환경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외부 전력망에서 충전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발전 과정이 친환경적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화석연료를 태워서 만든 전기로 자동차를 몰면서 친환경을 외치는 일은 조삼모사일 뿐이다. 핵심 부품인 배터리 원료 역시 희토류를 비롯한 광물자원이기 때문에 먼 훗날 석유처럼 유한한 매장량에 발을 동동 구를 염려도 있다. 이런 허점을 파고들며 등장한 게 수소 전기차다. 지구에 무한대에 가까운 양이 있는 수소를 활용해 자체 발전을 한다. 차 내 저장 탱크에 수소를 충전한 뒤 산소와 결합시키면 화학반응으로 전기를 생성해서 연료전지를 채운다. 전기로 모터를 돌려 동력을 발생시키는 점은 배터리 전기차와 같다. 다만 수소 전기차에 수소를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론상 5분에 불과하다. 완속 충전 시 10시간 이상, 급속 충전 시 2시간이 소요되는 배터리 전기차와 비교하면 대단히 빠르다.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도 600킬로미터 이상으로, 400킬로미터 안팎인 최신 배터리 전기차보다 길다.
수소와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산소는 공기 중에서 얻는다. 이때 연료전지 내구성 확보를 위해 공기 중 먼지와 일산화탄소를 제거한다. 현대 넥쏘의 경우 먼지 및 화학물질을 포집하는 공기 필터에서 초미세먼지를 97퍼센트 이상 거른다. ‘막가습기(가습막을 통한 건조 공기 가습)’의 표면에서 초미세먼지를 추가로 포집하고, 연료전지 스택 내부 미세기공 구조의 탄소섬유 종이로 된 기체 확산층에서 오염물질을 한 번 더 제거한다. 총 3단계 공기 정화 시스템을 통해 초미세먼지를 99.9퍼센트 걸러낸다. 발전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은 오직 물뿐이다. 수소 전기차를 달리는 공기청정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현대는 넥쏘 1만 대가 도로를 달리면 디젤차 2만 대가 배출하는 미세먼지를 정화한다고 주장한다. 당장 그런 풍경을 보기는 어렵겠지만, 넥쏘 1만 대가 달리면 약 5만 명의 서울 시민이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소 전기차 시대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유럽·미국·일본·중국, 그리고 국내에서 승용차·버스·트럭을 출시했다. 양산 승용차로는 현대 투싼 ix FCEV, 토요타 미라이, 혼다 클라리티, 현대 넥쏘가 대표적이다. “그런 차가 다 있어?”라고 되묻는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수많은 자동차 제조사가 생존을 걸고 이미 수소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었다. 아시아권 제조사만 혈안인 건 아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올해 GLC F-CELL을 유럽 시장에 내놨고, 아우디, BMW는 2020년에 양산할 계획이다. 선도업체와 후발주자 간 기술 제휴도 활발하다. BMW와 토요타, GM과 혼다, 현대와 아우디가 손잡고 곧 수소 전기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아직 수소 전기차를 길에서 보기 힘든 이유는 간단하다. 안 팔려서다. 토요타 미라이와 혼다 클라리티는 국내에서 판매한 적조차 없다. 지난해 3월 출시한 현대 넥쏘의 2019년 5월 말 기준 누적 판매량은 1,691대다. 한 달에 1백 대 남짓 팔린 셈이다. 국내 연간 친환경 차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수소 전기차 판매가 부진한 이유는 분명하다. 낯설고 불편해서다. 무엇보다 충전 시설 면에서 배터리 전기차보다 갈 길이 멀다. 국내에서 민간이 이용할 수 있는 수소 충전소는 고작 10개. 전시용 차가 아닌 이상 수소 전기차를 몰고 다니는 일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 충전소를 팍팍 지으면 되지 않느냐고 묻겠지만, 수소충전소 설치는 대단히 까다롭다. 특히 국내에서는 법규의 제약이 과중하다. 현행법상 유치원과 대학교를 포함한 학교 부지로부터 2백 미터 이내엔 설치할 수 없다. 주거전용지역, 상업지역, 등에는 충전소 설치가 아예 불가능하다. 이 모든 조건을 피해 설치하려고 해도 건설 비용이 전기차 충전소의 1천 배, 일반 주유소의 10배가 넘는다.
일본은 약 91기의 수소 충전소를 운영하고 수소 전기차를 1천 대 이상 보급했다. 미국은 수소 전기차 정책을 상용 보급 단계로 전환하고, 50기 이상의 수소 충전소 및 1천여 대의 수소 전기차를 보급했다. 국내 기업이 세계 최초로 수소 전기차를 양산했고 최신 모델까지 내놓으며 업계를 이끌고 있지만, 국내 수소 전기차 보급은 해외에 비해 늦다. 수소 충전소의 부재 탓이다. 특히 독일은 수소차 보급 대수와 관계없이 먼저 수소 충전소 인프라를 확보(42기)했고, 이후 수소 전기차 보급을 정부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수소 충전소 확충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급속도로 영역을 확장하는 배터리 전기차를 두고, 굳이 수소 전기차 개발을 추진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일을 되새겨봐야 한다. 195개국이 모인 파리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파리협정이 채택됐다. 그 결과,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인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량 전망치의 3퍼센트를 감축해야 한다. 수송 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전체 26.4퍼센트(2,590만 톤)다. 배터리 전기차의 대중화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내연기관을 대체하려면 수소 전기차와 배터리 전기차 각각의 강점을 두루 활용해야 한다.
수소 전기차 시대는 깊은 산골 마을버스처럼 언제 올지 모르는 막연한 시절이다. 분명한 것은 정부와 기업이 2030년을 목표로 전기차 대중화에 발 벗고 나섰다는 점이다. 주행 거리당 에너지 효율이 100킬로미터 이내인 거리에서는 배터리 전기차가, 그 이상 거리에서는 수소 전기차가 높다. 구조가 간단하고 부품 수가 적은 배터리 전기차는 단거리 운행용 승용차 개발에 유리하다. 구조가 복잡하지만 에너지 밀도가 높은 수소 전기차는 장거리 운행용 상용차 개발에 유리하다. 수소 전기차 기술과 배터리 전기차 기술은 상호 보완이 필요하다. 도심 이동수단과 장거리 운송수단으로 미래 자동차 세상의 쌍두마차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수소 전기차 시대는 배터리 전기차 시대와 다른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수소 전기차와 배터리 전기차는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처럼 경쟁 관계이자 공존 관계로서 벤치마킹과 상호 보완을 거듭하며 발전해야 한다. 현재 여러 이유로 점점 도태되고 있는 디젤처럼, 결국 둘 중 하나는 시장에서 밀려날지도 모르지만 그건 나중 문제다. 가치 판단은 훗날로 미루고, 지금은 흥행 몰이에 집중할 때다.
글 / 김성래(<탑기어 코리아> 편집장)
- 에디터
-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