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까운 차들. 어떻게 해서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올드카 8대.
올즈모빌 98
교통 체증으로 꽉 막힌 퇴근길이면 컨버터블에 앉아 노을 진 해안가를 여유롭게 누비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상상 속 자동차는 항상 1959년식 올즈모빌 98 컨버터블이었다. 5.6미터가 넘는 차를 8기통 6.5리터 엔진의 푸짐한 힘으로 끌면 도로 위를 유영하는 요트에 앉은 듯 황홀할 테다.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동시대의 캐딜락 엘도라도도 멋스럽지만, 하늘로 힘껏 치솟은 테일핀이 다소 과하게 보인다. 반면 올즈모빌 98은 일자로 뻗은 테일핀이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차체가 더욱 길어 보이는 효과도 낸다. 미국 경제 호황기의 넉넉한 감성이 그득한 올즈모빌 98을 탈 수 있다면, 매캐한 매연마저 사랑스러울 듯하다. 윤지수(<로드테스트> 기자)
패커드 160 슈퍼 에이트
패커드는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여러 번 달았지만, 60년을 넘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미국 고급차 회사다. V12 엔진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패커드는 경제공황과 2차 대전으로 얼어붙은 시장을 녹이고자, 진입 장벽이 낮은 8기통 모델을 선보이기로 한다. 보닛이 길쭉한 5인승 2도어 컨버터블로 제작하고, 전면에는 바퀴를 든 ‘속도의 여신’ 조각을 올렸다. 6.0리터 직렬 8기통 엔진과 3단 수동변속기의 조합으로 160마력을 발휘한 패커드 160이다. 모델명 뒤엔 8기통으로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담아 ‘슈퍼 에이트’라는 말을 덧붙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낭만으로 무장한 빈털털이 신사 같은 역사가 좋아 더 갖고 싶어진다. 박소현(<매경닷컴> 기자)
랜드로버 디펜더
굉음과 함께 진흙과 자갈 위를 누비는 네바퀴 굴림 오프로더. 지프 랭글러와 메르세데스-벤츠의 G바겐, 그리고 랜드로버 디펜더가 대표적이다. 기름을 잔뜩 먹고 승차감도 좋진 않지만, 나에겐 어떤 슈퍼카 부럽지 않은 차들이다. 그중에서도 꼭 구하고 싶은 건 이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랜드로버 디펜더다. 국내에선 정식 판매한 적이 아예 없고, 그나마도 2016년 단종되는 바람에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다행히 다시 개발을 시작해 2020년이면 한국에 들어온다고 하지만, 각진 차체를 그대로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디펜더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던져진 선택지는 두 가지다. 아주 가끔 매물로 나오는 중고 구매하기, 신형 디펜더에는 제발 곡선이 없기를 기대하기. 박강환(<탑기어 코리아> 기자)
람보르기니 쿤타치
람보르기니는 전설적인 소나 경기장 등 투우와 관련된 명칭을 모델명으로 삼는다. 하지만 1974년 출시한 쿤타치는 예외였다. 북부 이탈리아의 방언이자 속어로 ‘끝내준다’ 정도의 직설적인 뜻이다. 지금 봐도 40여 년 전의 차처럼 보이지 않는데, 쿤타치를 기점으로 정립된 ‘쐐기형’ 디자인과 위압적인 인상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290마력의 최고출력은 600마력을 훌쩍 넘는 지금의 람보르기니와 비교할 순 없지만, 당시 슈퍼카들 사이에서 쿤타치가 일으킨 파급은 역대 어떤 모델보다 강력했다. 쿤타치의 시저스 도어를 열고 차에 올라 수동 기어 노브를 쉴 새 없이 움직여가며 달리는 출근길. 상상만으로도 가격에 대한 현실 감각은 뒷전이 된다. 이재현
페라리 308 GTB
페라리 308 GTB는 1970~80년대를 풍미한 미드십 슈퍼 스포츠카이자 가장 아름다운 페라리로 평가받는 모델이다. 한 영화에서 308 GTB는 마피아 두목의 차로 등장하며 눈과 귀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밀라노 거리를 배경 삼은 새빨간 308 GTB의 질주는 단조로운 사각의 스크린을 뚫고 나온 듯 뇌리를 뒤흔들었다. 철판을 꺾고 꼬며 입체적인 차체를 구현하는 지금의 페라리와 비교하면 지극히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담백한 선과 면 속에서 오히려 여유로운 멋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내내 울리는 V8 엔진의 중후한 소리도 이 차에 반한 이유 중 하나. 308 GTB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외 모든 물욕이 말끔히 사라질 것 같다. 문영재(크리에이터)
포르쉐 911(993)
영화 <나쁜 녀석들>의 마지막에 나온 쉘비 코브라와 911(964)의 맹렬한 추격 신이 지금도 선명하다. 포르쉐에 대한 환상을 품은 건 이때부터다. 내가 어떻게든 구하고 싶은 993은 964의 후속이다. 964의 굵직한 디자인 요소는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차다. 게다가 993은 마지막 공랭식 911이다. 너무 올드카스러운 964와 ‘개구리 눈’을 버려 아쉬웠던 996 사이에서 993은 이상적인 접점처럼 보인다. 진짜 바늘과 숫자로 된 계기, 기능 위주의 무뚝뚝한 실내엔 아날로그 감성이 진하다. LCD와 터치 버튼으로 도배한 요즘 포르쉐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멋이다. 취향 저격에 역사적 가치까지 지닌 993은 내게 매물이 없어 아쉬운 차다. 아, 돈이 없어 아쉬운 차라고 해야 하나? 이광환 (<카랩> 기자)
- 에디터
-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