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킷에서 확인한 우라칸 에보의 실체. 람보르기니의 지능적인 진화를 온몸에 휘감은 슈퍼카.
인제 스피디움에 근접하자 굉음이 진동했다. 여러 대의 람보르기니가 가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소리는 더 증폭됐다. 다정한 환영인사는 아니었다. 굉음의 출처는 우라칸 에보. 우라칸의 페이스 리프트 버전이다. 트랙을 돌고 들어오는 우라칸 에보에서 몇 가지 디자인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앞 범퍼에 옆으로 누운 ‘Y’자 모양을 더했고, 뒤 범퍼 하단엔 거대한 디퓨저가 장착됐다. 람보르기니 측에 따르면, 디자인 변화를 통해 공기 역학 성능을 5배나 높였다고 한다.
서킷에서의 일정은 ‘짐카나’ 주행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다. 고깔로 표시한 복잡한 코스를 스티어링 휠과 가속페달을 아주 섬세하게 다뤄가며 달려야 한다. 조향과 선회 능력, 차체의 움직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출발 전, 동승석에 오른 인스트럭터는 가장 먼저 TCS(차체 안정화 장치)를 껐다. “위험하지 않나요?”라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살수차가 등장해 트랙에 물까지 뿌렸다. 차의 한계치를 여과 없이 보여주겠다는 뜻이었다. 차체가 미끄러지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가속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줄지어 세워둔 고깔을 피해가는 첫 번째 코스. 고깔을 칠 듯 말 듯하며 공격적으로 방향 전환을 연속해도 차체가 허둥대지 않았다. 롤링(차체의 가로 흔들림)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곧이어 이어진 원형 코스를 고속으로 진입하자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TCS의 도움을 받지 못해 차체 뒷부분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라칸 에보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움직였다. 약간의 카운터 스티어링(뒷바퀴가 미끄러지는 방향으로 스티어링 휠을 돌려 진로를 바로잡는 운전 기술)으로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실 이렇게 발가락 끝이 짜릿한 상황은 의도된 설계로 만들어진 결과다. 운전자의 주행 의도를 파악해 통제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의 스릴을 선사하는 것이다. 전문 드라이버가 아니더라도 쉽게 카운터 스티어링과 드리프트를 구사하며 ‘극한 주행’에 도전할 수 있다.
트랙에선 640마력이라는 비현실적인 최고출력을 모두 쏟아내며 달려 나갔다. 전보다 30마력 높아진 힘과 개선된 다운 포스의 조합은 놀랍다. 엔진은 레드존을 넘나들며 격렬하게 박동했다. 반면 차체 움직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분했다. 람보르기니에서 ‘LDVI’라고 부르는 통합 차체 컨트롤 시스템도 짐카나 코스에 이어 트랙에서도 알게 모르게 큰 몫을 했다. 변속, 서스펜션, 조향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 주행 환경’을 조성한다.
이렇게 다루기 쉬운 람보르기니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과격한 성미와 이성적인 면모를 동시에 갖춘 슈퍼카도 처음이었다. 람보르기니는 슈퍼카의 개념을 새롭게 설정한 듯했다. 그 예시로서, 우라칸 에보의 자격은 충분했다. 가격은 3억 4천5백만원.
- 에디터
- 이재현
- 사진
- Courtesy of Lamborgh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