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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옮기면 한없이 어색한 섹스 판타지

2019.11.27GQ

어린 시절부터 품고 있던 섹스 판타지를 현실로 옮겼다가 경험한 참혹한 결과에 대해.

섹스온더비치는 모래를 남기고
별빛이 쏟아지는 까만 밤의 해변에서 은밀하고 뜨겁게 섹스를 하는 판타지가 가슴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최소한 푸켓 해변 정도에서 극적으로 이뤄지리라 예상했는데 머드 축제가 끝난 보령의 한 해수욕장이 내 판타지를 실현 시켜줄 줄이야.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해변을 걷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으슥한 공간을 발견하고 곧장 ‘섹스온더비치’로 돌입했다. 쾌락은 잠시, 옷을 챙겨입자 마자 후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모래가 온 몸 구석구석 들어가 일주일 내내 털어도 털어도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씻어도 악령처럼 나를 따라다니던 모래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김기범, 남, 32세

상황극 하는데 대사가 막히고
판타지 치고는 조금 클리셰지만, 선생님과 제자가 벌이는 금단의 사랑은 성인 영상 제작물 상위권에 랭크 될 만큼 인기있는 소재다. 3년 넘게 만난 여자친구와 섹스가 너무 루틴하게 돌아갈 때쯤, 상황극을 제안했다. 교생 선생님과 고등학생 정도로 너무 과하지 않게 설정을 해봤는데, 막상 우리 둘 다 연기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쪽대본 수준으로 대사를 대충 지어내려니까 “나는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이상이 안나와서 흥분도 안되고 서로 민망한 상태로 옷을 다시 주워 입을 수 밖에 없었다.
황지훈, 남, 29세

음소거 섹스는 존재하지 않고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는 남녀 공용 군용 텐트에서 모두 잠든 후에 소리 한번 내지 않고 하는 섹스 신이 등장한다. 여자친구와 남양주 어디 캠핑장을 가게 됐는데, 잠을 청하려니 불현듯 오래된 영화의 기억이 떠올랐다. 텐트들이 나란히 있고 귀뚜라미 우는 소리만 들리는 밤, 여자친구의 입을 틀어막고 국소부위만 노출한 채 침묵의 섹스에 몰입하고 있었는데 옆 텐트 지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발을 신고 비척비척 걸어온 누군가는 우리 텐트를 치며 “섹스 할거면 집에 가서 합시다”라고 소리쳤다. 우리가 섹스 중이라는 게 온 캠핑장에 울려퍼졌고 바지를 올릴 수 밖에 없었다. 음소거 섹스는 영화라서 가능했나보다.
원기준, 남, 37세

앞치마만 입으면 맨 살에 기름이 튀고
<섹스앤더시티>를 보면 사만다가 남자친구 생일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주요 부위에 스시를 얹고 누워 있는 장면이 나온다. 부엌에서 옷을 벗는다는 건 꽤 도발적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남자친구 생일에 한번쯤 벗어봐야지 하다가, 앞치마만 입고 부엌에서 요리하는 장면을 연출해보기로 했다. 요리라고 해봤자 반조리 식품을 데우는 정도였는데, 생각보다 맨 살에 뜨거운 팬이 닿거나 기름이 튀기면 엄청 아팠다. 뜨겁다고 호들갑을 떨다보니 그냥 옷을 다시 입고 싶어졌다.
장윤아, 여, 31세

비상 계단에서 하면 너무 불안하고
일본에는 여성들을 위한 ‘어덜트 비디오’를 제작하는 ‘실크라보’라는 회사가 있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설정은 회사 남직원과 비상 계단 같은데서 급하게 섹스를 하는 것. 월급 주는 회사에선 차마 할 수가 없어 기회만 엿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막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의 회사 건물 1층에서 술을 마셨는데, 저 가까이에 비상 계단으로 가는 문이 있는거다. 취한 김에 남자친구 손을 잡아 끌고 비상 계단실로 들어가 키스를 퍼부었다. 하지만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우리는 행동을 멈추고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는 통에 진도를 뺄 수 없었다. 역시 월급 주는 곳에서 하는 건 너무 불안하다.
최한원, 여, 33세

제압 당했는데 너무 무섭고
나를 지배하고, 제압하는 여자와 섹스하는 판타지가 있었다. <툼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 같은 캐릭터가 벗으라면 벗고 까라면 까고 싶은 그런 거 있지 않나. 몇년 전 우연히 만난 그 여성은 내 판타지를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본인 역시 남자를 지배하면서 쾌감을 느낀다고 했으니까. 서로 잔뜩 기대에 부풀어 만난 그날, 침대에 걸린 수갑을 보자마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양팔을 결박한 상태에서 눈까지 가리니까 흥분 보다는 무서움이 앞섰다. 혹시나 이 수갑 열쇠를 잃어버리면 대신 신고를 해달라고 부탁해야하나 어쩌나 하는 마음에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한 채 끝이 났다.
박민준, 남, 28세

    에디터
    글 / 도날드 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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