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최초의 아이패드를 선보이고,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2010년부터 실리콘 밸리는 기회의 땅으로 불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실리콘 밸리의 성공 신화는 여전히 유효할까?
지난 9월 30일 위워크가 IPO, 즉 주식 상장을 철회했다. 지난 8월, 위워크는 오랜 실적 악화로 인해 60억 달러의 추가 대출을 받는 조건으로 올해 IPO로 최소 30억 달러를 조달해야 한다는 채권은행들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결국 IPO를 못 이룬 위워크는 대출을 갚지 못하면 파산할 위기에 처했다. 회사의 막대한 경영권을 가지고 온갖 사치와 대환장 파티를 벌인 것으로 드러난 창업자 애덤 노이만은 쫓겨나듯 사퇴를 했다. 남은 경영진은 전 직원의 30퍼센트를 해고하고 자산을 팔아 급한 돈을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5월에 간신히 IPO에 성공한 우버의 처지도 예상보다 심각하다. 상장 당일에 7.5퍼센트의 주가가 하락했으며, 의무예수기간(주가 급락을 방지하기 위해 대주주들이 의무적으로 주식을 팔지 못하는 기간)이 끝나는 날에는 많은 주주가 우버 주식을 헐값에 팔아 치웠다. 하루 거래량이 무려 1억 1천만 주에 달했다.
실리콘 밸리의 투자 회사들은 우버와 위워크의 IPO 실패를 연이어 목격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수익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괴물을 키워선 안 된다는 기본에 가까운 진리 말이다. 벤처 캐피털 회사인 뉴뷰 캐피털 NewView Capital의 설립자 라비 비스와나탄은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테크 컨퍼런스인 웹 서밋 Web Summit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수익성을 내기까지 얼마만큼 남았는가, 어떻게 수익을 내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비용 대비 성장보다 더 중요해졌다. 우리는 지금 실제로 그 결과들을 보고 있다” 이 말을 통해 우버, 리프트, 펠로톤, 위워크 같이 수익을 내지 못한 거대 기업들이 처한 위기를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미국의 경기 침체 직후인 2010년부터 실리콘 밸리의 10년은 강산이 변하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2010년에 애플은 최초의 아이패드를 내놨고,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알고리즘의 귀신 같은 맞춤 추천, 드론과 인공지능 기반의 배달 서비스, 전동 킥보드, 반 자율 주행 자동차 등의 기술을 가진 회사들은 호흡, 걸음 수, 심박수, 친구 요청은 물론 수면과 배변 주기까지 모니터링하는 손목 밴드를 차고 다니는 엔지니어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막대한 돈을 뿌리다시피 지급했다. 조인트벤처 실리콘 밸리 Joint Venture Silicon Valley가 매년 발표하는 실리콘 밸리 인덱스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평균 소득은 미국 평균의 2배를 웃도는 연간 14만 달러로 급등했고, 벤처 자본가들은 5백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이젠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유니콘’이 탄생했지만 사실 이 성장은 소수의 대기업이 주도했다. 그들은 작은 회사들을 조용히 인수했고 도시를 넘어 경제, 정치, 사회를 뒤흔들 만한 혁신을 입맛에 맞춰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실리콘 밸리는 급격히 거대해지고 비대해졌고, 비정상적인 성장 뒤에 따르는 부작용에 대해선 모두가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실리콘 밸리는 벤처 캐피털을 통한 투자 문화를 빼놓고는 아무것도 논할 수 없다. 스타트업이 유니콘이 되고자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많은 벤처 캐피털의 자금을 포함해 그들의 업적을 천문학적으로 실현(어쩌면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 Blackstone의 CEO 스티븐 슈워츠먼은 올해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업계는 예전과 차원이 다른 수준의 평가 규모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수익성 없는 기술 창업에 막대한 돈을 투입해 사모펀드 시장을 뒤흔든 소프트뱅크의 1천억 달러 비전 기금이 스타트업 시장에 사행성을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그 우려가 현실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프트뱅크는 실제로 14년간 우버와 위워크에 투자한 금액 상각으로 인한 첫 분기 손실을 발표했다. 이 초유의 사태로 인해 손정희 소프트뱅크 회장은 기자 회견을 열어 “투자 판단이 여러 면에서 잘못되었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입장문을 냈다. 그 동안 실행 불가능해 보이는 아이디어로 신기루를 만들었던 자들은 인정과 그에 따른 엄청난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를 통해 ‘실행 가능한 모델’이 자금 확보의 기본이자 열쇠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당연하면서도 경시됐던 그 사실 말이다. 그 요지는 무척 간단하다. 수익 그래프가 궁극적으로 비용을 초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은 있다. 오히려 변해야만 하는 것들이라 더 슬픈 부분이다. 실리콘 밸리의 젠더 다이내믹스는 절망적인 수준이다. 작년에 미국에서 여성을 타깃으로 한 여성 전용 관련 창업은 벤처 캐피털 자금 전체 중 2.2퍼센트만을 받았다. <산호세 머큐리 뉴스>의 분석에 따르면, 2015년 실리콘 밸리 상위 10개 기업의 여성 취업 비율은 1999년에 비해 눈에 띄게 낮아졌다. <뉴욕타임스>는 “벤처를 지원받고 있는 기술 스타트업에서 여성의 비율은 8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2018년 결국 사기로 기소되면서 막장 드라마로 끝난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 사건으로 인해 여성 기업가에 대한 이미지가 훨씬 나빠졌다는 분석이다. 그 이면에는 안타까운 현실의 분위기도 읽힌다. 똑똑하고 야망 있는 여성이 명문대를 자퇴하고 자수성가한 이야기 따위엔 모두가 열광한다. 그에 반해 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임원 출신 여성 7명이 설립한 벤처 캐피털 #angels 이야기는 아무리 유력 신문들이 잇따라 보도해도 그들의 이름은 뜨거워지지 않는다.
별수 없지만 실리콘 밸리도 쇼비즈니스에 물들었다. 유별나고 이름난 인물에 대한 세간의 평에 크게 요동치고 휘둘린다. 회원 정보 공유 파문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있는 마크 저커버그는 대담하고 젊은 몽상가에서 최악의 정치꾼으로 추락했다. 일론 머스크는 그가 올해 발표한 우주 프로젝트를 진짜 실현시켜 보이기 전까진 이 구역에서 미친놈 취급을 견뎌야 한다. 트위터의 CEO 잭 도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떠나게 하기 위해 트위터에서 정치 광고를 금지했다는 음모론에 휘말렸다. 우버의 창업자로 성추행 등 온갖 더러운 짓을 일삼다가 사임한 전 CEO 트레비스 캘러닉은 또 어떤가. 그새 또 다른 플랫폼 서비스 클라우드 키친을 창업해 그의 외모와 언변, 저돌적인 사업 스타일에 대한 팬덤을 무기로 투자금을 끌어모으는 추세다. 이 인물들이 실리콘 밸리 생태계에 계속 머무르는 한, 그들을 닮고 싶은 실리콘 밸리 생태계 교란자들은 끝도 없이 유입될 것이다. 또 투자자들이 지갑에 손을 넣고 다음 스타트업 스타를 찾고 있는 이상, 떨어지는 떡밥을 향해 불나방들은 몰려들 게 분명하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여전히 유요한 사업 아이템임이 분명하고 공유 킥보드부터 공유 주택과 공유 주차장까지 문명이 소유한 모든 물건을 다 나눠 쓸 때까지 계속 창업될 기세이긴 해도 에어비앤비, 우버, 위워크만큼의 임팩트를 주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래 사업으로 가장 유망할 것으로 분석되는 생명과학 분야는 이미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를 떠나 샌디에이고 등 남쪽 캘리포니아와 다른 지역들로 퍼져나가고 있다. 샌디에이고에선 대학 졸업 예정자의 상당수가 일루미나 illumina, 고서머 바이오 Gossamer Bio 등 생명공학 및 바이오테크 분야의 유망한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 지역으로 모인다. 스타트업 꿈나무들의 시선도 방향이 바뀌고 있다. 실리와 숫자를 따지며 더 나은 성공이 보장된 기회의 땅을 찾으려 하지, 더 이상 베이 지역을 고집하지 않는다.
작고 과열된 가두리에 플레이어만 넘쳐난다면 그 안에선 득보다 실이 커질 일만 남는다. 그러나 이런 현상 또한 시장의 일부일 뿐, 실리콘 밸리의 추락으로 단정 짓긴 어렵다. 실리콘 밸리 주요 로펌 중 하나인 펜윅 앤 웨스트 Fenwick & West가 최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밸리에 본사를 둔 회사들이 2019년 3분기에 마감한 1백89개의 벤처 파이낸싱 조건을 분석한 결과, 2015년 이후 벤처 캐피털 평균 가격이 최고점을 찍었다고 한다. 소프트웨어 및 디지털 미디어 산업, 핀테크 분야는 가장 강력한 평가 결과를 낼 만큼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일시적인 교란이 와도 생물적 다양성이 건재한 생태계는 제자리를 다시 찾는다. 시작은 미미할지언정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가 실리콘 밸리에서 계속 나와야 하는 이유이며, 누군가의 차고에서 시작한 구글과 애플의 성공 신화가 아직도 통하는 이유다. 글 / 이경은(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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