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카텔란의 바나나가 남긴 것

2020.02.05GQ

미술계의 악동 카텔란이 또 일을 저질렀다. 흔해 빠진 바나나를 벽에 붙였고 누군가 그걸 먹어 치웠다. 유머와 풍자, 기획과 자본, 그리고 아이러니가 난무하는 현대미술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카텔란이 어떻게 마이애미에서 작품을 선보이게 됐는지는 오직 엠마뉴엘만 알아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미술가 마우리지오 카텔란이 15년 만에 아트 바젤에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경위에 대해서 페로탕 갤러리 직원들도 잘 모른다며 관계자가 들려준 얘기다. 페로탕의 대표 엠마뉴엘 페로탕과 카텔란의 비밀스럽고 파격적인 ‘작전’은 지난해 12월 초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트 바젤 기간 내내 최대 이슈였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카텔란은 흔해 빠진 바나나를 은색 덕 테이프로 붙여 놓고 ‘사람들이 무엇을 가치 있다고 여기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설치 작품 ‘Comedian’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세 개의 에디션으로 제작됐는데 사흘 동안 두 개 에디션이 각각 12만 달러(약 1억 4천만원)에 팔렸다. 12월 7일, 미국 아티스트 데이비드 다투나가 바나나를 떼어내 천연덕스럽게 먹어 치웠다. 지나가던 아트 바젤 직원이 갤러리에서 기획한 퍼포먼스인 줄 알고 관람객 중 하나가 되어 휴대 전화로 촬영할 정도였다. ‘배고픈 아티스트의 퍼포먼스’ 직후 SNS는 이 작품을 둘러싼 밈 Meme으로 폭발했다. 바나나를 든 유명인들의 셀피, 인스타그래머들의 재치 넘치는 합성 사진, 몇몇 브랜드에서 발 빠르게 제작한 패러디 광고까지, ‘Comedian’에 대한 조롱과 유희가 작렬했다. 갤러리 관계자는 여분의 바나나를 다시 테이프로 붙여 설치하면서 “비록 원래의 바나나는 사라졌지만, 이는 예술 작품이 파괴된 게 아니”라며 “바나나 자체가 아닌 개념이 예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작품을 구매한 사람은 금세 썩어 없어질 바나나가 아니라 작품에 딸려 오는 정품 인증서를 소장하게 된다. 작품 설치에 대한 정확한 지시 사항이 포함된, 카텔란의 작품임을 입증하는 증서 말이다. 이 해프닝 이후 ‘Comedian’은 값이 올라 15만 달러(약 1억 7천5백만원)에 팔렸고 아트 바젤 마지막 날인 12월 8일 오전, 안전을 문제로 작가의 동의를 받고 부스에서 철거됐다.

한편 회화,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창작하고 갤러리도 운영하는 데이비드 다투나는 마이애미에서 경험한 15분간의 유명세에 대해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일담을 전했다. 토요일 아침 카텔란의 작품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배가 고플 때까지 기다렸다고 말이다. “그것은 바나나가 아니라 개념입니다. 저는 예술가의 개념을 먹었을 뿐이에요. 때문에 카텔란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아요.” 그는 마르셀 뒤샹의 ‘샘’(1917)을 예로 들어 개념 미술이 주는 충격에 관해 설명했다. 당시 마이애미에서 이슈가 실시간으로 퍼져 나가는 걸 목도한 아트 컬렉터 이소영이 말했다. “저는 카텔란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번 작품은 좀 해도 해도 너무하네, 싶더라고요. (웃음) 마르셀 뒤샹이 소변기에 서명하던 그 시절의 미학보다는 훨씬 솜털 같지만 이런 것도 현대 미술의 한 측면으로 이해합니다. ‘Comedian’을 창작한 건 카텔란이지만 그 모든 일련의 상황을 진두지휘한 건 사실상 갤러리 그리고 엠마뉴엘 페로탕이기 때문에 그들이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발칙한 현대미술사>에서 윌 곰퍼츠가 표현한 대로 “미술가가 ‘만든’ 것이 아닌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곧 작품”이라는 개념, 그 시작에 마르셀 뒤샹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뉴욕 생활 2년 차의 프랑스 청년은 배관 전문 업체에서 구입한 소변기에 검은색 물감으로 가명과 날짜(‘R. Mutt 1917’)를 적고 ‘샘 Fountain’이라는 제목을 달아 당시 막 설립된 진보적인 독립미술가협회의 전시회에 출품했다. 카텔란보다 점잖은 외모와 애티튜드를 지녔지만 짓궂은 익살과 농담으로는 한 수 위인 뒤샹은 기성 조각품이라는 뜻의 ‘레디메이드’라는 예술 방식을 고안해내며 현대 미술에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문을 냈다. 그는 공산품을 선택해 그 물건의 본래 기능을 없애버리고 예기치 못한 제목을 붙여 보는 사람들의 관점을 배반함으로써 예술품으로 새로 태어나게 한 것이다. 바로 ‘샘’이라는 이름의 소변기! 기존 관념에 혁명적인 균열을 내는 희대의 작품을 두고 협회 주최 측은 불쾌감을 느꼈다. 심지어 분노한 위원 하나가 소변기를 박살 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질 정도. “유감스럽게도 그의 가장 대표적인 이 레디메이드 원본은 한 번도 공개되지 못한 채 분실되었다.”(<뒤샹 딕셔너리>, 토마스 기르스트)

현대미술 책 <Seven Keys>에서 저자 사이먼 몰리는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샘’은 1950년대부터 전해지는 복제품을 찍은 사진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될 법하지만, 여기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략) 비슷한 종류의 서명이 들어간 소변기라면 어떤 것이든 작품이 될 수 있었던 셈이다.” 누군가 먹어버렸지만 새로운 바나나로 대체하면 되었던 카텔란의 바나나처럼 말이다.

100년 전 꽤 진보적인 쪽에 속했던 미술계 인사들조차 소변기를 보고 불쾌감을 느꼈던 것처럼 거무튀튀해지기 시작한 바나나를 보면서 ‘이게 과연 예술일까?’라는 물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카텔란이 보여주는 작업은 ‘믿음’을 시험해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믿음은 각자가 가진 예술 그 자체에 대한 믿음, 예술의 가치에 대한 믿음,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한 믿음이에요. 그 믿음에 동의하거나 혹은 동의받지 못하더라도 자기 확신에 찬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카텔란 식 작품을 사거나 후원할 수 있죠. 게다가 믿음과 유머의 결합은 무척 강력한 것이라 카텔란, 얄밉도록 완승! (웃음)” 독립 큐레이터 박수지가 말했다. 그녀는 또 ‘Comedian’에서 확산한 밈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카텔란의 제스처를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전유하거나 모방하는 것 자체가 지금 사회에서는 다 자본화되니까요. 카텔란은 이 모든 것을 다 염두에 둔 초고수···.”

초고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뒤샹의 직계쯤 되는 카텔란이 화제를 몰고 다니는 문제적 작가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듯싶다. 2016년 <예술가의 뒷모습>에서 세라 손튼이 “대학 수업을 전혀 듣지 않았으면서 미술관이 높이 인정한 예순 살 이하의 미술가”라고 표현한 카텔란은 1960년생으로 올해 예순 살이 되었다. 은폐된 정치계, 종교계, 미술계의 문제를 고약하다 싶은 유머와 도발적 표현으로 풍자하는 카텔란은 등장하면서부터 파격을 일삼았다. 1989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카텔란은 “나는 곧 돌아옵니다 Torno Subito”라고 적힌 표지판을 전시장에 매달아 관람객들이 기약없이 자신을 기다리게 했다. 1996년에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자 근처의 갤러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그 안의 작품들은 물론 팩스와 테이블까지 훔쳐 자신의 전시장에 가져다 놓았다(‘또 다른 빌어먹을 레디메이드 Another Fucking Readymade’). 1999년에는 이탈리아 갤러리스트 마시모 데 카를로 Massimo De Carlo를 예의 덕 테이프로 갤러리 벽에 붙여놓고는 ‘완벽한 하루 A Perfect Day’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결국 카를로는 기절해서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갔다.

2011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의 회고전과 함께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5년 만에 돌아와서 같은 미술관의 유니섹스 화장실에 ‘America’라는 제목의 18k 황금 변기를 설치하고는 “사람들이 볼일을 보면서 셀카를 찍는 방식으로 작품과 함께하길 바란다”라고 익살을 떤 것도 잊을 수 없다. 2018년 ‘America’는 영국 블레넘궁에서 전시 중에 도난당했는데 아직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마침 이탈리아 미술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던 미술 보험회사 아르테 제너럴리 Arte Generali는, 황금 변기를 본뜬 종이 모형을 들고 누드의 카텔란이 폴짝거리는 광고를 제작해 이슈를 모으기도 했다. 카텔란은 4백80만 파운드(약 70억 원)짜리 황금 변기를 도난당한 대신 만만찮은 금액의 모델료를 받았다. 종종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해 분노를 표출해온 카텔란이 세계 무역을 상징하는 ‘Comedian’과 인간의 탐욕과 지나친 부를 풍자하는 ‘America’로 억대의 재산을 벌여들었다는 것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평론가들이 작품이라고 인정하는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 ‘샘’을 선보인 뒤샹의 작품이, 오늘날에는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교육 기관에서 관여한 덕에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작품으로 대중에 각인된 것처럼 말이다. 글 / 안동선(프리랜스 에디터)

    에디터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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