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원정대는 지금 환불 받으러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쎈’ 언니 4명을 모았는데 왜 기운이 조금 빠질까?
MBC [놀면 뭐하니?]의 새로운 프로젝트 ‘환불원정대’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여성 멤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일을 해온 프로페셔널한 여성 연예인들이다. 엄정화는 1993년에 데뷔를, 이효리는 1998년에 데뷔한 이후 개인적인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잠시 연예계를 떠나있었던 시간 외에 꾸준한 활동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마련해놓은 충실한 직업인들이다. 제시도 마찬가지다. 10대 중반의 나이에 데뷔해 다시 이름을 알리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거침없고 솔직한 스스로의 모습을 가지고 꾸준히 매체에 등장했다. 이들 중 가장 막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화사는 1995년생이지만, 현재 한국 아이돌 산업 나아가 연예계를 통틀어 독보적인 무드와 캐릭터로 이르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처음부터 여성 멤버들 간의 기싸움을 강조하던 ‘환불원정대’지만, 이 프로그램은 지금 한국 연예계에서 송은이가 만들어놓은 여성 연예인 간의 연대와 흡사한 풍경을 보여주는 유일한 인기 프로그램이다. 나이를 먹었다고 투덜대면서 “가슴이 처졌다”고 얘기하는 이효리의 모습과 어떤 방송에서도 쉽게 보지 못한 솔직한 모습에 크게 웃으며 응수하는 화사의 모습을 같이 담을 수 있고, “(내 가슴을) 보여주겠다”며 아무렇지 않게 언니들을 이끄는 후배 제시와 어쩔 줄 모르는 선배 엄정화의 모습도 같이 담기는 화면. 이 화면 안에서 네 사람은 신경전이나 기싸움이 아니라 지미유(유재석)에게 “음악에 간섭하지 말라”고 입을 모아 얘기하던 프로페셔널한 여성 직업인들끼리 나누는 특수한 교감의 영역을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는 정작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중심부의 인물들을 주변부로 밀어낸다. 많은 사람들이 [놀면 뭐하니?]를 통해 다시 조명을 받은 연예인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이 김태호 PD와 유재석의 새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워 하는 장면도 생생하다. 이런 서사의 흐름 자체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설 곳이 없던 동료 연예인들을 다시 한번 주말 프라임 시간대에 TV 앞에 앉은 시청자 앞으로 불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인기를 끈 프로젝트인 ‘싹쓰리’에서 비의 경우에는 우스꽝스러운 밈으로 소비되던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 관리에 철저하지만 어수룩한 호감형 연예인으로 바꿔놓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환불원정대’에서는 이 자리에 네 명의 여성이 놓이지 않는다. 매니저라는 이름으로 김종민과 정재형을 비의 자리에 앉히고, <놀면 뭐하니?>는 걸그룹 프로젝트가 아니라 매니저 선발 프로젝트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한 회차가 넘는 긴 시간을 할애한다. 희한하게도 지미유는 이미 완성형에 다다른 네 명의 여성 연예인들의 음악에 “간섭”하기 위해 작곡가들을 만나러 다니고, 그토록 “간섭”을 원하지 않았던 네 명의 여성은 “쟤는 내가 챙겨줘야 되잖아”와 같은 소리를 매니저들에게 하면서 두 남성의 미완성된 어수룩한 모습을 웃음의 소재로 만들어주는 사람들로 전락해버린다. 가수라는 직업을 지닌 네 사람의 수다나 지미유를 상대로 분쟁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은 전문적인 직업인의 태도가 반영된 예능 캐릭터가 아니라 억세고 무서운 ‘센 언니’들로만 비춰지는 데 그칠 뿐이다.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과정이 본격적으로 방송되기 시작하면 이런 단점들은 조금씩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매니저를 뽑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네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는 잊히고, 웃음을 자아냈던 몇몇 장면만이 남았다. 이것은 ‘환불원정대’를 선택한 네 여성 아티스트가 거꾸로 지미유와 매니저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는 그릇이 되어버렸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안긴다. “사실 나 환불 잘 못 해.” “저도요.” 미안해서, 귀찮아서, 소심해서 등 갖가지 이유로 정작 환불을 못한다는 여성들에게 안되는 환불도 가능하게 만들 것 같은 언니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실상 자기 의견이 뚜렷해보이고 쉽게 토를 달 수 없게 만드는 강렬한 인상을 지녔다는 이유로 졸지에 ‘환불원정대’가 된 이들은 ‘블랙 컨슈머’, 즉 ‘진상 고객’의 이미지에 가깝게 지미유와 매니저들을 달달 볶는 소비자가 되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놀면 뭐하니?] 제작진에게 환불을 요청해야 할 사람들은 이 네 사람이 아닐까. 이건 정말 주객전도가 된 프로젝트니 말이다.
- 에디터
-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 사진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