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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과 [도도솔솔라라솔]에서 ‘의상’이 갖는 의미

2020.11.03박희아

JTBC 드라마 [사생활]의 주인공 차주은(서현)은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는다. 사기꾼이라는 직업은 계속 되는 변장술로 사람들을 현혹시켜야만 하는 차주은의 입장을 옷의 변화로 알려주며, 이것은 차주은보다 몇 수는 위인 사기꾼 정복기(김효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 두 사람이 첫 회부터 현재까지 입고 나온 옷들은 수십 벌에 달하고, 머리 모양을 바꾸기 위해 쓴 가발만 해도 여러 개다. 마치 ‘부캐’를 보는 듯한 현란한 변장이 이 드라마의 핵심 관전 포인트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KBS 드라마 [도도솔솔라라솔]은 피아니스트였던 구라라(고아라)가 유명 코스메틱 브랜드의 외동딸이었던 과거는 모두 뒤로 하고 옷 가방 하나만 달랑 남긴 채 살아남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구라라의 가방에서는 새 옷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마법의 가방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동네 피아노 학원에 면접을 갈 때나 길거리에 덩그러니 놓인 피아노 한 대에 앉아 밤 늦은 시간까지 홀로 연주를 하며 즐거워할 때도 그는 새로운 옷을 입는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 두 편의 드라마는 고가의 패션 브랜드 제품을 활용해 세 여성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고스란히 드러낸다.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브랜드 제품은 대부분 ‘된장녀’라는 여성 혐오적인 사고를 뒷받침하는 데에 쓰이곤 했다. 특히나 허영을 그대로 내비치는 옷과 액세서리들이 주로 드라마 주인공이 아닌 그들을 괴롭히는 악역의 겉모습을 치장하는 데에 이용되면서 ‘고가의 브랜드=허영심 가득한 악역’이라는 공식으로 자연스레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일일 드라마들을 통해 시청자들은 여성 주인공들의 허영을 비웃었고, 마침내 그들이 권선징악의 공식에 의해 무너질 때 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사생활] 속 차주은은 생계형 사기꾼이다. 정복기는 불미스런 일로 아나운서 직에서 물러나 김재욱(김영민)에 의해 사기꾼이 된 여성이다. [도도솔솔라라솔]의 구라라는 자신에게 사기를 친 사람을 감히 사기꾼이라고 의심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순수하며, 해맑은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세 여성 캐릭터에게 있어서 고가의 패션 브랜드란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삶의 역설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차주은은 1년 6개월의 형을 마치고 고가의 옷과 액세서리들을 쇼핑한 뒤, 허름한 옥탑방에 드러누워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이 웃음은 곧 울음으로 변한다. 구라라는 자신의 옷이 어떤 브랜드인지도 모르는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입고 있는 옷이 아니라 “내 피아노 소리를 듣고 할아버지가 울었다”는 기쁨 하나만으로 삶을 지탱할 힘을 얻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착용하고 있는 고가의 브랜드 제품들은 단순히 악역의 성격, 여성의 허영심 등을 드러내고 비하하고자 하는 수단이 아니라 여성 주인공들을 내세운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인식된다. 차주은과 정복희가 직시하게 되는 삶의 공허를 마주하게 하며, 기형적으로 설계된 한국의 부의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캔디형 캐릭터인 구라라를 통해서는 가난하고 불행한 가정환경을 타고난 인물이 아니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부잣집 여성 또한 자본력이 아닌 건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건강한 삶의 태도로 다시금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작품들을 본 어떤 시청자들은 “옷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고가의 브랜드 제품들 마케터들 중에는 이들 작품이 “홍보 수단이 된다”며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드라마를 어떤 시각으로 재미있게 감상할지는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이제야 드라마 안에서 본격적으로 이 브랜드 제품들이 주인공들의 활약상 안에서 비로소 서사를 갖게 되고,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획일적인 시각으로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지 않도록 끊임없이 창작자들에게 요구해온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긴 2020년의 드라마들은 그들이 지닌 소품마저도 남다른 의미를 갖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조금씩 바뀌어간다.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JT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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