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drink

서울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레스토랑 4

2020.11.30GQ

오래된 식당에서 새롭게 만나는 선물 같은 식사.

르꼬숑

요리의 맛은 어떻게 기억될까? 프렌치 레스토랑 르꼬숑은 문화와 요리의 접점을 찾기 위해 애써온 곳이다. 르꼬숑의 모든 맛은 스토리로 기억된다. 최근 한결 더 어울리는 장소로 이전했다. 김수근 건축가의 구 공간사옥, 현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옆으로. 정상원 문화총괄 셰프가 말한다. “여든한 번째 메뉴 지음; between the lines’는 재료의 기질, 조리의 변주, 변연호 셰프의 기법, 스토리텔링이 요리의 행간에서 더 깊은 대화를 유도합니다.” 피아노 형상의 테린, 포르치니 버섯 요리, 와르르 부서지는 쾌감의 밀푀유 몽블랑, 그리고 그윽한 보헤미안느 커피까지. 임병갑 목수와 함께 제작한 해체주의적 테이블이 독특한 리듬을 만든다. 무엇보다 창 너머로 보이는 비원의 풍경이 르꼬숑의 요리와 기막힌 마리아주를 이룬다.

10월19일

디저트를 코스로 즐길 수 있다면? 그것도 2시간에 걸쳐 다섯 가지 맛을 음미하는 꽤 기나긴 여정으로 말이다. “10월 19일에 만나자”와 같은 언어 유희가 가능한 매장의 이름은 박지현, 윤송이 셰프의 결혼 기념일이다. 최근 대구에서 예술의전당 근처 한적한 동네로 이전했다. 요리를 했던 두 사람은 달고 바삭한 것 그 이상의 보다 복합적이고 섬세한 맛을 만들어낸다. “아직까지는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다이닝에 대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해봤으면 좋겠어요.” 요거트로 속을 채운 아삭한 미니 오이를 시작으로 셔벗, 아이스크림, 채소, 허브류 등을 다채롭게 사용한 정교한 디저트가 따뜻한 나무 테이블 위로 오른다. 어여쁜 코스 메뉴는 계절에 따라 변화한다. 사려 깊게 고른 와인 페어링을 곁들이면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싶어진다.

수퍼판

세련되고 친근한 서울의 맛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수퍼판이란 이름이 첫 번째로 스친다. 동부이촌동의 사랑방 같았던 이곳이 압구정에서 2막을 연다. 요리연구가 우정욱 대표는 누구보다 서울의 맛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머니가 3대 서울 토박이세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해준 단정한 음식을 먹고 자랐죠.” 함박스테이크, 시래기 리조토, 수육, 보쌈, 가지찜, 새우젓찌개, 떡볶이, 깍뚜기 등등. ‘무국적’으로 불리는 수퍼판의 요리는 정갈하고 따뜻하다. 건강하고 담백하다. 익숙함으로부터 오는 안도의 맛이다. 무엇 보다 반주를 부르는 마성의 메뉴들이 촘촘하게 숨어 있다. 연말에 홈파티를 계획하고 있다면 레이즌 버터와 서울 테린을 테이크아웃 해도 좋다. 뭘 좀 아는 센스 있는 사람으로 확실하게 각인될 수 있을 테니까.

에비던스

이토록 컬러풀하고 촘촘한 구성의 파스타를 본 적 있던가? 청담동 깊숙한 골목길에 숨어 있는 에비던스는 파스타를 코스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기존의 틀을 깨고 싶었어요. 이런 것도 파스타가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접시 안에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하고, 뛰어난 향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안티트러스트의 오픈 멤버인 이태우 셰프의 말이다. 마치 아이돌이 데뷔하듯 수련 기간을 거쳐 첫 번째로 독립을 했다. 요리 잘하는 친구 집에 놀러온 것처럼 푸근한 분위기다. 옥수수, 치즈, 허브를 채워 넣은 노란 라비올리, 생선 뼈로 우려낸 육수의 오징어 먹물 파스타, 뵈프 부르기뇽을 응용해서 만든 파스타까지. 바에 착석하는 순간 셰프의 필살기가 쏟아진다. 탱글탱글한 생면을 입 안 가득 넣으면 삶의 의욕이 솟는다.

 

    에디터
    김아름
    포토그래퍼
    김래영, 홍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