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기억해둘 만한 올해의 문장들 6

2020.12.27박희아

뮤지컬, 드라마, 영화, 음악 등 2020년을 달군 대중 문화의 면면에서 뽑아낸 기억하고 싶은 올해의 문장들.

‘시간을 잠시만 멈출까 / 이건 별것도 아닌 일인 걸 / 어디서부터 계단을 오를지 / 오늘 찾아볼까 마음 가는 대로’ – 이진아 [캔디 피아니스트]
이진아의 앨범 [캔디 피아니스트]에 실린 ‘여기저기 시끄럽게(Feat. 토이)’의 한 구절이다. 여기저기 이것저것 내가 다 해낼 거라고 떠들고 다니면서 아무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탓하는 화자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우리 진아 자랑하고 다니는데 / 여기저기 여기저기 여기저기 / 그런데 넌 늘 자신 없대 / 지금까지 아무것도 한 게 없대 / 난 정말로 네가 만든 멜로디 피아노 솔로 / 얼마나 네가 부러운데’라고 말해주는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다정하다. 내일, 어디서부터 계단을 오를지 마음 가는 대로 찾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그래도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음악을 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잖아요.” –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주인공 채송아(박은빈)가 했던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일에 대해 그 필요와 가치를 의심할 수 있다. 특히나 글이나 음악, 연기, 그림과 같이 타인에게는 취미의 영역이지만 사실은 그 취미를 일로 삼은 이들에게는 더더욱. 젊은 아티스트들이 모여 음악이 정말 힘이 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상황에서, 채송아의 이 한 마디를 들은 그들은 잠시 멍해졌다. 그렇다. 내가 믿어야만 내가 하는 일에도 가치가 생긴다.

“자기가 진짜 얘기하고 싶을 때 얘기해. 난 언제든지 들을 거야.” – tvN [악의 꽃]
tvN 드라마 [악의 꽃]에서 도현수/백희성(이준기)의 아내이자 형사인 차지원(문채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두 사람 분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스릴러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강렬한 믿음에 근거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해 변하는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종종 휴먼 드라마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차지원의 이 대사는 “언제든지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특히나 올해도 나의 곁을 지켜준 가족이나 연인에게 충분한 여유를 선물했는지 말이다.

‘한때 사랑했던 건 마음에 새겨져 있어 / 어두움 속에도 쉬이 길을 찾을 수 있어’ – 유아 [Bon Voyage]
오마이걸 유아의 첫 솔로 앨범 [Bon Voyage]에 실린 마지막 트랙 ‘End Of Story’는 공교롭게도 지금 시국과 꼭 맞아떨어지는 곡이다. ‘바람의 부드러운 손끝이 머리를 쓸어내리면 / 널 생각하며 쉬이 잠이 들 수가 있어’ 같이 다른 가사들도 위안이 되지만, ‘언젠가 좋은 날에 꼭 만나기로 해 / 때마침 모든 것이 완벽한 날에’라는 후렴구의 한 줄이 너무나 큰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일 필요까지도 없다. 다만, 조금은 우리에게 코로나19로부터의 자유가 허용되기를 바라며 이 곡을 들어보면 어떨까.

“No day but today!” – 뮤지컬 [렌트]
올해 9년 만에 무대에 오른 뮤지컬 [렌트]의 핵심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 한 줄이다. 한국어로는 “오직 오늘뿐”이라는 가사로 불리는데,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뮤지션 로저가 자신에게 “오직 오늘뿐”이라며 구애하는 미미에게 “다른 날 다른 시간”을 외친다. 하지만 미미는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에이즈라는 병 앞에서도 자신을 내던져 로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 작품은 늘 “한국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올해만큼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같은 일을 겪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돌아와 위안을 주었다.

“넌 요즘 널 위해 뭘 해주니?”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채송화(전미도)가 이익준(조정석)에게 묻는다. 사실 이 장면은 익준이 송화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에 가깝지만, 송화의 이 말 한 마디가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요즘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고 있는가. 극 중에서 캠핑을 좋아하는 채송화는 시간만 나면 자신이 좋아하는 캠핑을 하러 다닌다. 급한 콜이 오는 한이 있더라도 스스로를 위해 잠깐이나마 시간을 내준 뒤에 받아들이는 콜과 아닌 콜은 다르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 물어보자. 당신은 요즘 당신을 위해 뭘 해주고 있는가.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안테나, WM엔터테인먼트, 뮤지컬 [렌트],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