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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2030을 위한 요즘 로맨스 드라마들

2021.03.02박희아

지난 몇 달간, 청춘의 고난을 이야기하는 로맨스 드라마들이 부쩍 눈에 띄었다.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제 박재원은 알아버렸어. 내가 그렇게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 드라마 <도시남녀의 사랑법>에서 주인공 이은오(김지원)는 전 연인의 배신과 취업이 취소됐다는 소식에 무작정 고속버스를 타고 양양으로 향한다. 자신이 동경하던 자유로움을 지닌 윤선아라는 인물의 이름을 사용해 무작정 새로운 삶을 살아 보기로 마음먹은 그는 양양에서 만난 박재원(지창욱)과 사랑에 빠지지만, 실제 자신의 모습이 아닌 윤선아의 흔적을 찾는 그의 앞에서 자신감을 잃고 자꾸만 물러선다.

지난 몇 달간, 청춘의 고난을 이야기하는 로맨스 드라마들이 부쩍 눈에 띈다. <도시남녀의 사랑법>을 비롯해 <청춘기록>,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런 온> 등이 그 예다. 이 드라마들은 초반부터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키거나 뒷심을 발휘해 매우 높은 시청률로 시선을 끄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이 드라마들은 시청률보다 마니아층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명대사 드라마’ 리스트에 오르고, 대본집을 갈망하는 팬들을 통해 인기의 정도를 체감한다. 영화관에서 외화를 보고 나온 <런 온>의 팬들은 극중 겨우겨우 작은 영화를 번역해가며 연명하던 영화 번역가로 나온 오미주의 이름이 “마지막 크레디트에 ‘번역: 오미주(신세경)라’고 뜰 것 같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 작품들에서 사랑하는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아웅다웅한 하루를 보여주는 일은 뒷전이다. 드라마들은 주인공들의 나이대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취업과 생활비 문제, 이뤄지지 않는 꿈을 향한 갈망을 얘기하면서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는다, 사랑에 빠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현실적인 고난이 뒤따르는지 말하면서 “내가 만들어낸 가짜니까 내가 아니야. 그러고 넌 가짜를 사랑했던 거고”와 같은 대사를 읊는 주인공들과,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에요”라며 상대의 부모에게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떤 변명도 없이 인정해버리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봐왔던 처량 맞은 사랑 이야기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굶어 죽기 직전”의 젊은이들은 사랑보다 목숨을 부지하는 게 더 급하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그들의 모습을 통해 가장 날 것에 가까운 사랑의 모습을 본다. 브이로그 형식을 차용해 웹드라마와 TV 드라마의 형식을 결합한 <도시남녀의 사랑법>은 이 시대에 어울리는 포맷 안에서 나 자신을 드러내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비춘다. 초라한 자신의 현실을 숨기고, 혹은 지나치게 부자인 자신의 정체를 가난한 연인에게 꾸며내고서라도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본능적이고 순수한 욕망이 드라마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런 온>에서의 날 선 대사들이 마음을 흔든 이유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정도로 날카롭게 오가는 대사 사이에서 사실은 상대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속내가 도리어 적나라하게 비춰진다.

이런 드라마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2021년을 사는 젊은이들의 씁쓸한 단면에 공감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자극적인 부분은 하나도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려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슬프다. 그 와중에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모습은 더욱 슬프다. 그리고 더욱 슬픈 것은, 드라마는 끝이 나도 삶은 계속된다는 점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