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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착륙한 <승리호>와 OTT 서비스의 득과 실

2021.03.17GQ

<승리호>가 넷플릭스에 착륙했다. 갈 곳 잃은 영화가 OTT로 인공호흡 받는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이는 희미한 생명 유지 장치인가, 부활의 손길인가.

<승리호>가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2월 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계약 조건이 정확하게 공개되진 않았지만, 극장 개봉 후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8백만~9백만 관객을 모았을 때 올릴 수 있는 수익을 보장받았다고 알려졌다. 철저히 사업자 마인드에서 생각하면 코로나19 시국 극장의 오랜 침체 속에 대작 영화가 손해를 보지 않고 오히려 이윤을 남겼다는 점에서 꽤 괜찮은 거래였다. 하지만 영화 내적으로는 어떨까?

극장 영화는 극장 상영 시스템에서 가장 완벽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큰 스크린으로 우주 공간을 볼 때 어떤 컬러가 가장 이질감 없이 배경에 녹아들 수 있을 것인지, 관객이 볼 화면 사이즈를 생각했을 때 우주선의 속도감을 가장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는 동선과 촬영은 무엇인지, 제작 과정에서 감독이 던지는 모든 질문은 극장 상영을 전제로 답이 나오게 돼 있다. 그러니 집에서 넷플릭스로 본 <승리호>는 애당초 감독이 생각했던 그림이 아니다. 극장 스피커를 풍성하게 채울 수 있도록 소리를 디자인하며 사운드의 입체감에 신경 쓴 작품이라면, 스테레오 환경에서 감상했을 때 오히려 사운드가 뭉개지는 부분도 생긴다. <승리호>의 제작비는 <인터스텔라>의 8분의 1 수준이다. 효율적인 프로덕션을 위해 촬영 회차를 과감하게 줄이고 필요한 분량만 찍으며 제작비를 운용했다. ‘한국 최초 우주 블록버스터’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해나가야 했던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지금 버전보다 드라마 요소를 줄이고 액션 비중을 늘렸다면 아마 제작비가 몇백 억은 추가됐을 일이다. 시나리오는 제작비 2백억원으로 찍을 수 있는 내용이어야 했고, 그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시장 분석을 통해 흥행성을 점친 후, 향후 극장 관객의 만족도를 예상해야 한다. 극장 아닌 플랫폼에서 공개됐을 때 이 계산 역시 어그러진다.

더군다나 광활한 우주가 배경인 <승리호>는 작품의 특성상 OTT 환경에서 관람자의 몰입을 불러일으키기에 훨씬 불리하다. 스크린 크기가 클수록 영상에의 몰입도가 올라간다는 것은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된 바가 있다. 여기에 더해 톰 트로시안코 Tom Troscianko 외 2인이 연구한 결과 <영화 시청 중 인지: 물리적 화면 크기와 장면 유형의 영향>은 어떤 이미지가 스크린 크기에 따른 몰입도 저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보여준다. 이 연구에 따르면 얼굴 중심 화면의 경우 풍경 위주 화면보다 전반적인 몰입도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얼굴 중심 화면을 작은 스크린으로 볼 때의 몰입도와 유사한 그것을 풍경 중심 장면을 볼 때 끌어내기 위해서는 더 큰 스크린에서 감상해야 한다. 영화에 적용하자면, 관객은 미장센보다는 스토리, 배우의 연기와 대사에 집중하게 된다. <승리호>는 인물 중심의 드라마와 우주 쓰레기 청소부들의 터프한 액션이 공존하는 영화다. 특히 비주얼적으로 힘을 주어 만든 부분은 전부 대규모 액션 시퀀스다. 흥미롭게 보다가도 집중력이 떨어지고, 액션 시퀀스가 왠지 심심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스크린 크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폐쇄된 극장에선 재미가 있든 없든 관객이 반강제적으로 자리에 앉아 2시간 동안 영화를 보게 되지만, 넷플릭스는 감상 중 화장실에 가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다 간식을 먹는 일이 훨씬 자유롭다. 영화를 경유한 집단 경험의 특성이 달라진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볼 땐 코믹한 장면에서 함께 웃고 슬픈 장면에서 같이 눈물을 흘릴 관객이 옆에 앉아 있지 않다. 극장 외 공간에서 개인화된 영화 관람은 러닝타임 내내 이미지에 집중하는 몰입도는 저하시키는 대신, 외부 네트워크를 통한 다른 참여 가능성을 높인다. 가령 스마트폰을 통해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감상을 실시간으로 SNS에 공유하거나 메신저를 통해 중계하는 일이 가능하며, 이는 감상을 막 그만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극장의 집단적 경험과는 다른 상호작용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 역시 넷플릭스와 극장 환경의 큰 차이 중 하나인데, 이는 부정적인 방향이 될 수 있다. <승리호>에 대한 반응이 첫 상영 타임이 끝난 이후가 아닌, 공개 10분 후부터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승리호>의 넷플릭스 공개는 이윤을 남겼다는 것 외에 아무런 이점이 없는 선택이었을까. 먼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공개됐기 때문에 글로벌한 리액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글로벌 OTT만의 강점이다. 실제로 <승리호>는 넷플릭스 공개 첫날부터 4일 내내 전 세계 종합 순위(출처 플릭스패트롤 Flixpatrol)에서 1위를 차지했고 북미와 유럽, 아시아권에서 두루 인기가 좋다. 로튼토마토 지수 63퍼센트, 관객의 만족도를 보여주는 팝콘 지수가 84퍼센트로 반응도 호의적이다. 해외 네티즌들은 할리우드에서는 웬만한 우주 영화 제작비가 1천억원이 넘는데 2백억원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거나, 다양한 언어와 인종을 극에 등장시켰다는 점을 높이 산다. 하지만 <승리호>는 원래 한국과 중국 극장 상영 후 넷플릭스 공개를 논의했던 작품이다. 코로나19가 없는 가상의 시대에 <승리호>가 예정대로 극장 개봉을 선택했다면, 국내 극장에서 손익 분기점을 넘기고 해외에서도 인기를 끄는 일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코로나19 시국에도 손익 분기점을 넘긴 작품 <#살아있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넷플릭스가 투자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맨>,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극장에 가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시네필은 없을 것이다. 다행히 이들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노미네이트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혹은 감독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극장에서 제한 개봉 이후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하지만 <승리호> 같은 대중 영화는 어떨까. 먼저 넷플릭스가 극장 상영 가능성을 보장해줘야 할 중요한 이유가 사라지고, 킬링 타임용 팝콘 무비라는 인상은 더더욱 집에서 봐야 될 영화라고 치부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극장에서 관객이 느낄 쾌감을 최우선으로 했던 대중 영화가 OTT를 통해 공개되면서 포기해야 할 미덕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OTT 공개를 염두에 뒀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승리호>의 넷플릭스 공개는 극장과 OTT 경험 사이의 간극을 선명히 한 동시에, 극장 영화일 때 훨씬 빛나는 작품이 무엇인가 질문하는 일종의 사건이 됐다. 그리고 <콜>, <차인표>, <낙원의 밤>에 이르기까지 극장을 염두에 뒀으나 넷플릭스를 택한 작품의 사례가 늘어날수록 이 질문에 대한 답도 다채로워질 것이다. 무엇보다 OTT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가설에 무게가 실리게 됐다. 대중 영화라면 러닝타임은 줄이고, 2시간에 걸쳐 관객을 천천히 몰입시키기보다는 관객의 주의력을 붙들 수 있는 짧은 호흡을 고민한다거나, 스토리와 인물 위주 숏을 선호하는 방향이 될 수도 있겠다. 어떤 미래에 극장 영화가 지금의 뮤지컬, 연극과 같은 위치에 서고 OTT 영화가 표준이 된다면, 주류가 되는 영상 문법 자체가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넷플릭스를 위시한 OTT의 활성화가 앞으로 콘텐츠 산업에 결국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이가 질문하고 나름의 답을 고민해왔다. 분명한 건, 영화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영화가 될 수 없다.

    에디터
    글 / 임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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