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이 눈앞에서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요. 얼마 전 인스타그램 계정에 ‘배우 재개’라고 쓴 게시물을 봤어요. 거기에도 썼지만 지난 10년은 배우가 아닌 영화감독으로 살았어요. 첫 연출작 <톱스타>를 선보인 뒤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지냈죠. 그런데 배우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꽤 많은 사람이 ‘박중훈은 왜 활동을 안 하지’라고 생각하더군요. 활동이 뜸한 배우로 인식된 거죠. 저는 배우가 아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감히 마이클 조던에 비유하면, 그가 야구도 좋아해서 야구 선수로 뛴 거지, 농구를 버린 게 아니에요. 농구와 야구 둘 다 사랑했어요. 저도 배우이면서 감독을 했어요. 그래서 배우로 돌아온다는 표현은 맞지 않아요.
연기에 집중하기로 한 거군요. 네. 새로운 소속사와 계약을 맺고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몸도 만들었어요.
경력이 36년에 달하는 배우가 오랜만에 몸을 푼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금메달리스트가 다음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태릉선수촌에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에요. ‘나 금메달 딴 사람이야’ 이런 태도로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어요. 지난 영광은 접어두고 국가대표 선발전부터 준비해야 해요. 한 마디로 출발인 거죠.
출발요? 재출발이 아니고 출발. 전 타석에서 역전 만루 홈런을 때린 타자도 다음 타석에 서면 0스트라이크, 0볼에서 시작해요. 직전 활약과 상관없이 말이죠. 타율이 어떻고, 홈런을 몇 개 쳤는지는 해설가가 해줄 이야기예요. 아무리 홈런을 몇백 개 기록한 선수라 해도 타석에 들어선 순간에는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요.
타자로 비유한다면 스스로의 포지션은 뭐라고 생각해요? 한때는 4번 타자로 경기에 나섰지만 지금은 1번 타자를 하고 싶어요. 1번 타자의 목표는 진루예요. 안타를 치든 번트를 대든 볼넷을 골라내든 일단 1루로 나가야 해요. 방금 전에 출발이라고 말했잖아요.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그 말이 성립되지 않아요. 비행기가 이륙하듯 화려하게 날아오르는 것도 출발이지만 한 걸음 내딛는 것도 출발이에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공항에 발이 가 있을 테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를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지향하는 바도 달라졌나요? 전에는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죠. 지금은 오래 하고 싶어요. 오래 한다는 말에는 잘한다는 의미도 포함돼요. 그래서 오래 하는 배우가 훨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후배들에게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해요. 10번의 경기에 나가 10번의 KO 승리를 거둔 권투 선수와 50번의 경기에서 30번 정도 승리를 기록한 선수가 있으면 저는 출전 경기가 훨씬 많은 선수한테 마음이 더 간다고요.
성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잖아요. 본인의 커리어 성적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보통 흥행이 되고 좋은 평가를 받아야 성공했다고 말하는데요. 둘 중 하나만 충족되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해요. 흥행은 안 됐지만 훌륭한 영화라는 소리를 듣거나, 평가는 그럭저럭 받았는데 흥행이 잘됐으면 그것도 괜찮아요. 제 기준에서 보자면 반 타작은 한 것 같아요. 5할 정도, 약간 그 이상?
10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40여 편의 영화를 찍었어요. 다시 꺼내보기도 해요? 저는 영화배우 박중훈의 관객 박중훈이기도 해요. 무슨 말인가 하면 관객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저도 매우 좋아해요. 미안한 말이지만 시사회에서 본 게 전부인 영화도 있어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내 깡패 같은 애인>은 다시 봐도 늘 흐뭇해요.
박중훈은 한국 영화계의 자화상이고,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어요. 이 사실이 버겁다고 느껴지기도 하나요? 부담감은 없어요. 배우로 국한해도 인재가 얼마나 많은데요. 저 하나 빠진다고 해서 우리 영화계가 무너지지는 않아요.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1991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거든요.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개봉한 직후였죠. 유학을 가기로 결정하면서 내가 없으면 영화계는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했어요. 당시 30대 중후반의 역할은 안성기 선배님한테, 그보다 젊은 주인공 역할은 다 저한테 왔거든요. 정말이에요.
박중훈의 시종일관 능청스러운 유머와 웃기는 액션에 대한민국이 통째로 웃었던 시절이죠. 그런데 제가 떠난 뒤 그해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원년이 됐어요. 전보다 훨씬 잘됐죠. 그러니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건 오만한 생각이에요.
그래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미국으로 가기 전에 한국에 돌아오면 세 편의 영화를 찍기로 약속했어요. 그런데 한 편은 찍다가 엎어졌고, 두 편은 촬영도 못 했어요. 딱 원하는 시기에 컴백을 못 해서 초조했죠. 그래서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을 했어요. 베트남에서 촬영을 하고 왔더니 강우석 감독님이 저한테 영화를 하나 같이 하자고 했어요. 그게 바로 <투캅스>였죠. 영화로 따지면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다음 작품이 <투캅스>였으니 나름 괜찮은 흐름이었어요.
4년 전 드라마 <나쁜 녀석들 : 악의 도시>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머나먼 쏭바강> 이후 24년 만의 드라마 출연으로 화제가 됐죠.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드라마 산업이 잘 된다고 하니까 감독 입장에서 대체 어떤 시스템이고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했어요. 혼자 골방에 갇혀 트렌드와 거리를 두는 건 아닌가 싶었죠. 현 소속사에 들어간 것도 그래요. 저한테는 큰 변화예요. 전에도 소속사가 있었지만 거의 모든 결정을 제가 했어요. 제가 생각한 대로 한 게 곧 트렌드였던 때가 있었죠. 지금은 트렌드를 이해하고 소화하기 벅차요. 그래서 고민 끝에 선택적 조언을 듣는 게 아니라 조언을 들어야만 하는 시스템에 들어갔어요.
시대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충무로가 한국 영화계를 상징하는 단어로 쓰이던 때가 있었어요. 제가 충무로 시대의 마지막 세대예요. 충무로에서 영화계 사람들을 다 만났죠.
충무로로 통용됐던 한국 영화가 최근에는 ‘K-무비’라고 불리며 해외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어요. 무엇이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예전에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외국 영화는 우리와 때깔부터 달랐어요. 화질, 사운드가 차원이 달랐죠. 한국 영화가 손자국이 잔뜩 묻은 안경이라면 외국 영화는 깨끗하게 닦인 안경이었죠. 영화의 내용을 떠나 기본적으로 본다는 것 자체에서 차이가 났어요. 지금은 영화 선진국과 후진국의 간격이 꽤 좁혀졌어요. 한국 영화의 기술은 할리우드를 거의 따라잡았죠. 최근 <승리호>를 봤는데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비주얼이잖아요. 영상과 기술력을 따로 떼고 보면 한국 영화인지 모를 정도로 훌륭해요. 20~3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죠. 놀라운 발전이에요.
국내 배우 최초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기도 했어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에요. 할리우드 진출의 선구자라고 말해주기도 하는데 큰 영광이죠. 후배들에게 고마운 일이에요. 저는 미국 진출의 결과가 미약했어요. 이병헌처럼 할리우드에서 자리를 잡고 인정받은 배우들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제 이야기도 언급되고 재평가 받는 부분이 있어요.
감독을 준비했던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건가요? <톱스타> 연출한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조금 섣불렀을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그때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감독으로서 차기작도 염두에 두고 있나요?
네. 하지만 연출을 하기 위한 작품은 하지 않으려고요. 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우선이에요.
어떤 의미인가요? 영화감독으로 10년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요. 오랫동안 생각을 해온 사람한테는 못 당해요. 봉준호 감독은 청소년기부터 감독을 꿈꿨다고 해요. 오랫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상하고 발전시켰어요.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도 첫 시나리오를 완성하기까지 10년이 걸렸어요. 물리적인 기간과 생각의 깊이가 반드시 비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숙성이 필요해요.
어른 박중훈도 계속해서 성숙해지고 현명해지는 부분이 있겠지요? 폼 잡는 이야기로 들릴진 몰라도 나이가 들수록 확실해지는 게 있어요. 물이 깊으면 흐르는 소리가 안 난다고 해요. 노욕이라고 해서 나이가 들면서 더 욕심이 생기는 부분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너그러워지고 이해의 폭이 넓어졌어요. 더 품게 된 거죠. 그러면서 타인과의 관계도 원만해지고, 후배들도 많이 따라요. 하상욱 시인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나보다 어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의 어제를 사는 게 아니라 같은 오늘을 그저 다른 나이로 살아갈 뿐.” 이렇게 생각하니까 나이 어린 사람들과 더 어울리게 되더라고요. 시대가 달라지기도 했어요. 이삼십 대를 보냈던 1980~1990년대는 나이가 계급이었어요. 지금은 그때와 세상이 달라요. 나이로 윽박지르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죠. 자기 혼자 외롭게 소리 지르는 것밖에 안 돼요.
요즘 화제를 모으고 있는 클럽하우스에 ‘배우 박중훈이에요’라는 제목의 방을 열고 청취자들과 소통한 것도 같은 맥락일까요? 맞아요. 세상과 접속하는 거죠. 클럽하우스에 대한 비관론과 낙관론이 팽배한데 저는 긍정적인 입장이에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같은 SNS는 과거를 공유해요. 글, 사진, 동영상은 지나간 일을 기록한 콘텐츠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표면적으로 연결된 느낌의 강도가 약해요. 관계의 강도가 제일 강력한 건 영상 통화겠죠. 그리고 그 중간 지점이 클럽하우스예요. 소리를 기반으로 하며, 실시간으로만 소통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요. 듣기만 하는 것도 가능해 부담도 적어요.
본인 이야기를 하는 데 열려 있는 쪽인가요?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제가 밝힐 수 있는 내용이라면요. 그보다는 공통 관심사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더 재미있어 해요.
타인과의 관계에 큰 가치를 두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며 살고 싶어요. 행복은 관계에서 나온다고 믿어요. 스타와 관객도 하나의 관계이고, 그 관계에서 인정과 환호를 받는 것이 바로 인기예요. 돌아보면 이삼십 대에 어마어마한 인기라는 권력을 쥐게 되면서 성격이 괄괄해지고 타인을 돌아보지 못했어요. 그럴 겨를이 없었죠. 그러다 보니 의도하진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 거예요. 스타 박중훈이 가진 존재감과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잖아요. 남들과 똑같은 실수를 해도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와 트라우마로 남았을지도 몰라요. 너무 미안한 일이죠. 그래서 인간적으로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커요.
선한 사람이 연기도 잘한다고 생각하나요? 배우는 괴팍하거나 예민하거나 엉뚱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좋은 연기가 나오지 못해요. 마음의 그릇이 잘 비워지고 깨끗해야 그 안에 캐릭터와 감정을 잘 담을 수 있어요. 그릇이 지저분하고 뭔가 차 있으면 제대로 담을 수 없죠. 게다가 인성은 감출 수 없어요. 눈길에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살아온 이력이 얼굴에 새겨져요.
화면을 가득 채우는 하나의 드라마이자,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되는 이미지란 점에서 배우에게 얼굴의 역할과 중요도는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얼굴로 드러나는 인성을 곱게 다듬기 위한 나름의 습관이나 노력이 있을까요? 운동선수가 경기를 복기하듯 밤에 자기 전에 하루든, 일주일 단위든 지난 시간을 복기하곤 해요. 사실 괴로운 습관이에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좀 더 유연하게 행동했어야 했는데, 하며 스스로 자책하고 반성하게 되거든요. 후회가 과거 집착형이라면 반성은 지나간 실수를 교훈 삼아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미래 지향적인 태도예요. 그런 점에서 후회는 없되 반성을 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반성은 남들보다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출연작 중에서 자신의 인생에 잘 부합하는 제목을 하나 꼽는다면요? 바로 떠오르네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1일 동안 비를 맞으며 찍은 마지막 장면은 몇 번을 다시 봐도 에너지가 철철 넘쳐흘러요. 저는 일생을 에너지로 살아왔어요. 되든 안 되든 에너지로 밀어붙여 여기까지 왔죠. 지금은 그 에너지가 내공으로 바뀌었어요. 안으로 깊어지고 밖으로는 무뎌지면서. 하지만 에너지의 질량은 바뀌지 않았어요.
예전 인터뷰에서 “과거 사진들을 보면 죄다 웃고만 있어요. 다른 얼굴이 없어요”라고 했었죠. 그 말처럼 대중 안에서는 유머러스한 박중훈이 존재해야만 했어요. 원하는 대로 셀프 포트레이트를 찍는다면 어떤 얼굴을 남기고 싶은가요? <라디오 스타>의 주제곡인 ‘비와 당신’을 녹음할 때 에너지를 쥐어 짰어요. 노래에 소질은 있지만 가수는 아니니까. 고음을 내기 위해 으아아아, 거의 우기다시피 불렀죠. 그런데 이 곡의 어쿠스틱 버전이 있어요. 영화 종반부에 안성기 선배님이 연기했던 매니저가 떠나고 혼자 남은 제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요. 이 장면을 찍을 때 이준익 감독님이 그러더군요. 힘을 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힘을 들이지 말고 부르라고. 어떡해, 난 이미 감정이 북받쳐 있는데. 어쨌든 감독님 주문대로 힘 빼고 불렀는데 결과적으로 감정이 선명하게 잘 전달됐어요. 여태까지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았다면, 지금은 ‘비와 당신’의 어쿠스틱 버전처럼 제 얼굴을 찍고 싶어요. 힘을 싹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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