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알아야 할 일이 있다. 그 일을 다룬 다큐멘터리 <Allen v. Farrow>가 공개됐다. 우디 앨런은 여전히 말이 없고, 상흔은 짙어갈 뿐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음반에서 무슨 곡을 제일 좋아하세요?” 지루하게 이어지던 술자리, 하릴없이 감기던 눈이 확 맑아지는 그런 질문이 있다. 가장 아름다운 모차르트의 느린 악장이 무엇인지,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와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에드몽 당테스 중 더 끝내 주는 복수자는 누구인지 같은 물음들. 그리고 또 하나의 완벽한, 아니 한때 완벽했던 질문, “우디 앨런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게 뭐예요?”
나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통해 두 남녀가 아무렇지 않은 거리에서 나누는 아무렇지 않은 대화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그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 벌어진 장소라는 이유만으로 텅 빈 그 거리가 그리 스산하게, 또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을 낮추는 농담이 때로 상대의 눈에 드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 영화에 대한 책을 좋아하지 않지만(굳이 영화를 활자로 다시 볼 이유가 있을까?), 그의 영화를 챕터 삼아 스웨덴 영화감독 스티그 비에르크만이 쓴 인터뷰집 <우디가 말하는 앨런>은 예외였다.
오랜 세월 우디 앨런은 예외적인 존재였다. 그는 시나리오와 연출에 대한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지난 40여 년간 거의 매년 한 편 이상의 영화를 만들었다. <애니홀>(1977)과 <젤리그>(1983),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 <매치 포인트>(2005), <블루 재스민>(2013) 등의 걸작이 모두 그렇게 탄생했다. 10년을 단위로 내 멋대로 뽑은 우디 앨런의 걸작 리스트는 그의 영화를 오래 봐온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모두 다를 것이다. 앨런은 그가 연출한 50여 편의 영화를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탔고, 세상 모든 배우가 그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불과 몇 년 전까지 말이다.
미국의 영화 제작사는 더 이상 우디 앨런에게 투자하지 않는다. 근작인 <레이니 데이 인 뉴욕>(2019)과 <리프킨스 페스티벌>(2020)은 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티모시 샬라메 등 출연 배우들은 “영화에 출연한 것을 후회한다”며 출연료 전액을 성폭력 대응 단체 등에 기부했다. 2020년 우디 앨런의 자서전 <헛수고 Apropos of Nothing>를 출간 예정이었던 출판사 아셰트 그룹은 편집 실무자들의 항의와 파업에 백기를 들고 판권을 포기했다.
2014년, <뉴욕 타임스>에 게재된 우디 앨런의 수양딸 딜런 패로의 공개 편지는 앞서 언급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우디 앨런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게 뭐예요?” 편지는 1992년 어느 날, 우디 앨런의 연인이던 미아 패로와 그의 일곱 자녀가 여름을 보내던 코네티컷 별장의 다락방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일곱 살 때, 우디 앨런은 내 손을 잡고 나를 어둡고 좁은 2층 다락방 침대로 이끌었습니다. 배를 깔고 누워 동생의 장난감 기차를 가지고 노는 동안 그는 나를 성추행 했습니다. 그 짓을 하는 동안 그는 가만히 있는 내게 착하다며, 이건 우리만의 비밀로 간직하자고 귓속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파리로 갈 것이며, 우디 앨런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켜주겠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동안 장난감 기차가 선로를 도는 것을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장난감 기차를 보기가 힘듭니다.”
우디 앨런의 사생활이 모두의 관심사가 된 것은 1992년의 일이다. 미국 영화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커플로 꼽히며 13편의 영화를 함께 작업한 우디 앨런과 배우 미아 패로가 이별하며 벌어진 양육권 공방 법정 다툼. 둘의 관계는 패로가 앨런의 아파트에서 동양계 여성의 나체 사진 여러 장을 발견하며 파국을 맞았다. 문제는 사진 속 여성의 정체가 당시 대학교 1학년이던 미아 패로의 한국계 수양딸 순이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앨런과 패로 사이엔 딜런을 포함해 세 명의 자녀가 있었다. 패로는 앨런을 용서하지 않았고, 세 자녀의 양육권을 위한 법정 투쟁을 불사했다. 딜런 패로가 우디 앨런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밝힌 1992년 여름은 양육권 분쟁이 한창이던 때였다. 우디 앨런은 아동 성추행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 이듬해 열린 재판에서 미아 패로에게 양육권을 주는 판결이 내려졌고, 담당 검사는 어린 딜런의 정신적 피해를 우려해 “상당한 혐의가 있지만” 기소를 포기했다. 우디 앨런은 1997년 순이와 결혼해 지금껏 함께 살고 있으며, 아동 성추행과 관련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 복수심으로 가득한 미아 패로가 자신의 명예에 흠집을 내기 위해 어린 딸을 세뇌했다고 주장한다.
올 2월 말부터 미국 케이블 TV 채널 HBO MAX가 방영하는 <Allen v. Farrow>는 우디 앨런의 아동 성추행 혐의를 다룬 4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일련의 사건 전개 과정보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의 시점으로 우디 앨런의 작품을 다시 바라보는 부분이다. 고장난 신호등의 깜빡이는 불빛에서조차 도덕적 딜레마를 발견하고 고뇌하는 우디 앨런의 작품 속 주인공은 채 성인이 되지도 않은 연인과의 육체 관계에는 거침이 없다. 그의 초기 걸작 중 하나인 <맨해튼>(1979)은 네 명의 남녀가 식당 테이블에서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중에는 주인공의 연인인 열일곱 살 소녀도 있다.
다큐멘터리엔 <맨해튼>을 촬영하던 당시 우디 앨런의 비밀 연인이던 모델 크리스티나 엥겔하트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가 앨런과 만나기 시작한 것은 열여섯 살부터다. “영화를 본 저는 기쁨으로 가득 차 그에게 물었죠. ‘내가 당신의 뮤즈인가요?’” 영화에 어린 연인 역할로 출연한 배우 마리엘 헤밍웨이의 인터뷰도 나온다. “촬영을 끝낸 후 앨런은 내게 같이 파리 여행을 떠나지 않겠냐고 물었죠. 물론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았지만요.” 우디 앨런은 과거 인터뷰에서 순이와 사랑에 빠진 순간을 회상하며 자기 사무실에 딸린 필름 영사실에서 고전 영화를 보다가 눈이 마주쳤고, 키스했다고 말했다. “순이는 내가 언제쯤 이렇게 다가올 건지 궁금했다고 말했죠.” 당시 미아 패로 큰아들의 연인이자 자주 별장에 찾아가 어린아이들과 가족처럼 놀아준 프리실라 길먼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도 그 영사실로 초대받은 적이 있어요. 제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있었죠. 모두 거절했지만, 순이는 거기에 간 거죠.”
우디 앨런은 <Allen v. Farrow> 제작진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대신 제작진은 앨런이 직접 녹음한 자서전 오디오북에서 그의 음성을 인용한다. 자서전에서 눈에 띄는 건 앨런이 자기 자신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온갖 운동에 능하고 주변이 늘 친구로 가득했다는 학창 시절 자신에 대한 이야기부터 그렇다. 마치 어수룩하고 소심하며 신경증적인 영화 속 캐릭터와 실제의 자신은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우스꽝스럽고도 슬픈 일이다. 지적인 유대인 남성이라는 자기 캐릭터와 널리 알려진 연애사를 픽션과 솜씨 좋게 겹치고 교차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아이러니는 우디 앨런 영화의 핵심 매력 중 하나였다.
그가 아동 성추행범인지, 권력을 이용해 자신과 가까운 어린 여성에게 습관적으로 부적절하게 접근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현재로서는 명확하게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우디 앨런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게 뭐예요?”라는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답은 예전처럼 다양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 글
- 정규영(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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