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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상 "오염되지 않은 선택을 해보고 싶었어요"

2021.04.23GQ

낡은 날은 벗어두고, 윤계상이 새 옷을 들어올렸다.

케이블 니트, 폴로 랄프 로렌. 와이드 데님 쇼츠, 이타우츠 at matchesfashion.

스트라이프 코튼 티, 선스펠 at 비이커. 네이비 팬츠, 스튜디오 니콜슨 at matchesfashion. 척테일러 70 클래식 하이톱, 컨버스. 코인 펜던트 네크리스, 에르메스. 실버 네크레스, 불레또.

화이트 슬리브리스, 렉토. 데님 팬츠, 리바이스. 블랙 페니 로퍼, 토즈. 코인 펜던트 네크리스, 에르메스.

화이트 셔츠, 폴로 랄프 로렌. 화이트 치노 하프 팬츠, 라코스테. 스트라이프 삭스, 아르켓. 컬러 블록 스니커즈, 로에베.

GQ 윤계상 씨가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3부작 쇼트 필름 <테이블>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KS 아이, 감독 아니고 그냥, 그냥 한 건데.

GQ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지만 ‘디렉터 윤계상’이란 자막은 팩트니까.

KS 제 친구가 포토그래퍼거든요. 심심해서 둘이 그냥 ‘꽁냥꽁냥’ 하다가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냥, 어떤 리얼한 생활적인 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 어요. 계기는…, 좀 힘든 시간을 겪고 있었는데 제 현재 상황을 숨기는 그 자체에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의 지금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고, 그런데 제가 배우라고 생각하니까, 리얼한 모습이지만 좀 더 극화해서 영화라는 장르에 가둬두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하게 됐죠.

GQ 페이크라는 단어 뒤에 윤계상 씨의 진심을 숨겨 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숨기는 것 없이 바로 말씀하시네요. 지금의 내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KS 맞습니다. 메시지죠, 뭐. 긍정적인 메시지.

GQ 그 메시지를 더 들여다보고 싶어요. 3부작은 윤계상 씨가 물건이 늘어진 테이블을 치우는 것에 서부터 시작돼요. 뭘 그리 치우고 싶었어요?

KS (<테이블>은) 지나간 과거, 현재의 어려움 같은 것들을 치운다,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거거든요. 어느 순간 테이블을 봤는데 물건이 너무 잡다하게 쌓여 있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몇 년치가 쌓인 걸 수도 있고, 어제 쌓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걸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니까 벗어나고 싶어하는 제 마음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GQ 그러니까. 물건을 치운다는 건, 특히 갑자기 물건을 버린다는 건 그때의 기억, 과거, 어떤 추상적인 것을 정리하는 행위이기도 하잖아요.

KS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항상 그때 그 상태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되잖아요. ‘쟤가 무슨 일을 겪고 있구나’ 아니면 ‘쟤가 무슨 드라마를 찍고 있구나’ 이런 현재 모습이 노출돼 있잖아요. 그런데 그때의 나의 시간은 저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걱정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얘가 너무 숨어 있으니까 걱정하는 사람도, 뭐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는 사람도 있을 텐데, 저한테 조금이나마 관심 있는 분들에게 “저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나 괜찮아!” 이렇게 에너지를 확 발산하고 싶지는 않았고, “충분히 고통 스러워했고, 충분히 아파하고 있는데 괜찮습니다. 잘 이겨내고 다시 시작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는 의미였어요, 실은. 그래서 테이블을 만드는 과정(2화) 보시면 제가 막 웃고 괜찮거든요? 윤계상이 그냥 일상생활을 하고 있구나, 살아가고 있구나, 그런 거죠. 별건 아니에요.

GQ “저 괜찮아요” 말하고 싶은 이유, 그런데 대중은 윤계상이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예상한 이유.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이별인 건가요?

KS 변화가 많았죠.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게 나는 오히려 더 고통스럽더라고요. 힘들 거거든요? 인간이라면. 그게 무슨 이유든 상관없이. 그런데 그걸 제가 괜찮다고 어느 순간 딱 나타나서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지나가는 것도 너무 별로인 것 같고, 그걸 가지고 또 고통스럽다고 얘기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고. 그러니까, 좀 훌륭하게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어요. 예의 있게.

GQ 윤계상식 방법인 거네요.

KS <테이블> 음악 맡아주신 정예경 음악감독님이 드라마 <초콜릿> 음악감독이셨어요. 어느 날 메시지를 보내셨어요. 제가 힘들어하고 있을 것 같다고 예상하셨나 봐요. “계상 씨,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이 감정을 한번 풀어보세요. 아티스트적인 배우니까 그걸 풀어보세요” 이런 응원의 메시지였는데 그게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맞아, 감정 이라는 게 지나고 나면 기억조차 안 나지. 사랑했 던 기억도, 힘들었던 기억도, 5~6년 지나면 아무 기억도 안 나는데.’ 그때 그 순간을 남기고 싶었어 요. 저에 대한 기록 차원에서요.

GQ “슬픔 안에는 슬픔만 있는 건 아니다.” 영상 소개 글 중 한 문장이죠. 영상마다 함께 있던 글도 인상 깊었어요. 직접 쓴 거예요?

KS 글을 남기고 싶은데 말은 쉽지만 글은 평생 남는다고 생각해서 전문적으로 글을 쓰시는 분에게 요청했고, 제가 인터뷰를 나누면서 같이 썼어요. 되게 많은 얘기를 나눴고 그건 또 따로 글로 남겼어요. 그건 공개는 못 하겠더라고요.

GQ 사적인 인터뷰인 거네요?

KS 네. 저의 어떤 것들을 남겨놓은. 개인적인 기록.

GQ 그 인터뷰가 궁금해지는데.

KS 하하하하, 되게 궁금해하시는 표정. 그 인터뷰만 빼고, 얘기 나누면서 쓴 글은 다 유튜브에 올려 놨습니다.(<테이블> 3부작은 유튜브 채널 ‘필름 린’에 게재돼 있다.) 그게 제일 중요한 거니까.

GQ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해요.

KS 그래요?

GQ 어딘가에 내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개인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어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 쭉 짚어본 개념인 거잖아요?

KS 네. 제가 바라보는 저의 모습, 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의 시선이 궁금했어요. 어찌됐건 작년에 여러 가지 사태를 겪었고 저의 인생의 전반전이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번 정리하고 싶었어요. 마흔세 살, 43년을.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세요, 라고 해서 그냥 막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어서 서너 시간을 끊임없이 얘기했어요.

GQ 질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윤계상 씨가 말할 기회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KS 맞아요. 제가 생각하는 것들, 정리되지 않은 저의 모습을 좀 정리하고 싶었어요. 그게 필요했어요.

GQ 정리가 좀 됐어요?

KS 너무너무. 되게 재밌더라고요. 위로도 받고.

GQ 왜 전반전이 끝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를 묻기 전에, 관객으로서 윤계상 씨가 걸어온 길을 보면 꾸준했어요. 쉼이 없어요. 개봉 준비 중인 영화 <유체이탈자>도 있고, 곧 촬영 들어갈 새 드라마 <크라임퍼즐>도 있고, 전반전이 끝났다고 하기에는 오래 멈춰 있었던 적이 없어요. 그런데 스스로는 터널에 갇힌 기분이었나 싶네요.

KS 음…, 지났으니까 얘기하는 건데, 작년 초에 뇌동맥류 판정을 받고 혈관에 스텐트와 코일을 심었어요. 어찌됐건 다행인 거죠. 미리 발견해서 다행히 잘 겪어냈는데, 그런 걸 겪으면서 뭔가 좀…, 인생을 살면서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자각 못 하잖아요. 뇌동맥류라는 건 뇌혈관이 부풀어서 어느 순간 고통 없이 가는 상태가 될 수 있는 건데, 이게 발견되지 않았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었던 거잖아요. 우연한 계기로 발견돼서 다시 한번 살 수 있는 기회를 받았고, 운이 좋았던 거죠. 그런 일을 가만히 겪으면서 새 생명을 얻은 듯한 느낌이더라고요.

GQ 저 빼고 다 아는 얘기예요?

KS 아무도 몰라요. 처음 얘기하는 거예요.

GQ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담담하게 말해요. ‘다 아는 데 이 사람은 모르네’ 그런 표정 같잖아요.

KS 하하하하. 1년이란 시간이 지났으니까. 이번 주 수요일에 검사하거든요. 자리 잘 잡혔는지. 그거 지나면 이제 괜찮을 것 같아요. 완전히.

GQ 괜찮아요?

KS 너무너무 괜찮아요.

GQ 지나고 나니까 웃으면서 얘기하지.

KS 그땐 진짜 조금 힘들었습니다, 사실. 그러니까 별 생각을 다 하고, 단편영화 찍고. 수술대에 올라가기 전에는 안 좋은 생각밖에 안 났어요. ‘괜히 잘못 건드려서 혈관이 터지면 죽는 건데’ 겁도 나고.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그런데 결국 그 시간을 맞이하는 건 또 저밖에 없더라고요.

GQ 결국 내가 겪어내야 하는 일이니까.

KS 괜찮아, 걱정하지 마, 너무너무 간단한 시술이야, 다독여주시지만, 오로지 내가 겪어야 하는 일인 거죠. 그런데 수술 딱 끝나고 몇 시간 만에 깨어 났을 때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어요. 그걸 계기로 1년을 쉰 거거든요. 2020년은 인간적으로 저를 다시 되돌아본 시간이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된다는 마음을 먹으면 좋은 에너지를 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리고 되게 많은 후회를 했거든요. 건강을 못 챙겼던 거라든지 여러 가지.

GQ 자신을 자책하게 되죠.

KS 응, 자책하게 되고,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욕심을 부렸을까, 자기 성찰을 만들어내면서 좋은 미래를 꿈꾸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마음먹었어요.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니 그 후반전을 너무너무 행복하게 잘 살아야겠다고. 잘하고 싶어요, 이제는. 뭐가 됐든 행복하게. 좋은 마음으로.

GQ 이제야 퍼즐 조각이 맞춰지네요. 왜 전반전이 끝났고, 왜 자꾸 다시 출발하고 싶다고 하는지.

KS 네. 뇌동맥류라는 게 원인을 모른다는데 괜히 연기할 때 얼굴에 힘을 너무 많이 줬나 이런 생각도 들고, 하하하하. 몸을 너무 함부로 굴렸나 싶고.

GQ 나를 잘 돌봐야겠다 싶어지잖아요. 아프고 나면.

KS 확실히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유별나게 굴지는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 어차피 인생 짧으니까. 너무 자잘한 것에 휩싸이지 않고 항상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GQ 예전의 윤계상 씨 인터뷰를 보면 이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윤계상 씨는 항상 화에 차 있네.

KS 맞아요.

GQ 잘하고 싶은 마음이 화로 발현되는 것 같은.

KS 맞아요. 제가 하는 노력에 대한 대가를 정확하게 받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욕심이지, 누가 그렇 게…. 그렇게 노력한다고 결과물이 좋은 것도 아 니고, 제가 너무너무 욕심쟁이였다고 생각해요. 피드백이 잘 안 오니까 화로, 막 화, 울, 이쪽으로 오니까 자신을 더 괴롭히고, 그게 또 악순환이 되고. 그 세월을 많이 보냈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싱글 재킷, 베스트, 화이트 슬리브리스, 화이트 데님 팬츠, 모두 렉토. 레이스업 부츠, 처치스.

니트 베스트, 아르켓. 네이비 팬츠, 스튜디오 니콜슨 at mr.porter. 스트랩 버킷 햇, JW 앤더슨. 화이트 페니 로퍼, 처치스.

케이블 니트, 볼 캡, 모두 폴로 랄프 로렌. 와이드 데님 쇼츠, 이타우츠 at matchesfashion. 레이스업 부츠, 처치스.

레드 로고 볼 캡, 이자벨 마랑 옴므.

GQ 오늘은 정말 좀 편안해 보여요.

KS 너무 편안합니다.

GQ 어떤 후반전을 보내고 싶어요?

KS 음…, 여전히 욕심이 많은 것 같지만, 다 해보고 싶어요. 인간적으로. 배우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결혼도 하고 싶고, 가정생활, 가족을 형성하는 것도 해보고 싶고, 여러 가지 취미도 갖고 싶고, 연출도 그렇고,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거 하나 하기 위해선 이걸 하면 안 돼. 노력의 시간이 분산돼’ 이런 까탈스러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거 없이 누가 ‘너 여기서 잠깐 놀아봐’ 하면 가서 ‘와아아아’ 놀고, 다시 ‘이번엔 저기서 놀아봐’ 하면 가서 또 ‘와아아아’ 놀게 되는 것 같아요. 어디 한 군데 사로잡혀 빠져 있지 않고 삶을 살고 싶어요. 여러 경험을 하고, 영감을 받고 싶기도 하고.

GQ 시선이 넓어졌네요. 욕심이라고 해도 좀 다른 욕심 같아요. 예전에는 배우, 연기, 이쪽으로만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면, 지금은 범위를 넓혀서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욕심인 거잖아요.

KS 네. 바삐 바삐 움직이려고요. 케어도 잘하고.

GQ 와중에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은 엄청 큰 변화 아닌가요?

KS 옛날에는 구체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더 늦기 전에.

GQ 예전엔 그랬잖아요. “나는 결혼과 안 맞는 사람.”

KS 하하하하. 아이, 그건 ‘예에에에에에엣날’에. 한 10년 전 얘기 같은데. 그때는 너무 어리니까. 그 때는 완전히 배우, 연기를 열망했을 때니까. 아우, 막, 너무 되고 싶었을 때니까. 그래서 화산같이 폭발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GQ 단순히 그래서 결혼과 거리를 뒀다기보다는 이런 얘기도 했잖아요. “부모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다”고.

KS 지금도 여전히 아무것도 없어요. 여전히 막연한 생각인데, 아무 시도하지 않고 넘어가는 건 슬픈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사’와 ‘해요’라고 제가 키우는 강아지들이 일곱 살이 됐어요. 이 아이들이 늙고 있는 게 보여요. 되게 고통스러워요. 마음이 아파요. 이제는 말귀를 너무 잘 알아 들어서 거의 사람하고 똑같아요. 엄마랑 속삭이듯이 얘기해야 해요. “엄마, 나 갔다 올게. 애들 맡겨도 되지?” 이러면 감사, 해요가 (훽 돌아서 서 째려보는 얼굴로) “맡겨? 뭘 맡겨!” 이래요. 와…. 시간이라는 게 정말 무섭다. 인생을 너무 쉽게 쉽게 살면 안 되는 것 같아요. 항상 소중하게 생각해야 해요.

GQ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KS 맨날 그 고민입니다. 세상도 많이 변하고 있고.

GQ 이 얘기를 꺼내도 될지 모르겠는데 오늘 콘셉트로 적어둔 문장을 보고 울컥했다고 들었어요.

KS “(늘 몸에 꼭 맞는 수트 차림에서 벗어나)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란 문장? 어떻게 들으셨지? 하하 하하. 그냥,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계속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렇잖아요. 제 인생을 잘 보면 소년 대성의 아주 표본같이 너무 어렸을 때 너무 잘 돼서 사실은 내려오는 길만 남은. 그런 공포감 속에서 살다 보면 사람이 가진 것에 대한 애착이 엄청 생기거든요. 잃어버릴까 봐 더 예민해지고, 그러면 더 그 안에 갇히게 되고. 그런 인생을 살다 보니까 ‘자유롭다’라는 것에 대해 잊게 돼요. 그 시도가 불편해지고, 무서워지고, 하면 안 되는 게 돼버려요. 그런데 열망하게 되죠, 너무너무. 인간 이기에. 훨훨 날고 싶지만 내가 이때까지 했던 커리어, 여러 가지 상황을 지키고 싶으니까 그게 또 안 되고. 사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GQ 음….

KS 그런데 가끔 이런 말들이 되게 위로가 돼요. “자유로워도 돼요”, “충분히 잘 살아왔고, 너무너무 좋은 성향을 갖고 있고, 충분히 착하고, 충분히 좋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조금은 잊어도 되는 상황이 딱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내 본능이 갑자기 장첸처럼 막 사람을 죽이고 그러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예전에는 지켜야 하는 것 들에 항상 사로잡혀 있었거든요. 성실해야 하고, 착해야 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그런 강박이 있었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위로가 돼요. “이럴 때 너가 제일 멋있어. 이럴 때 너가 제일 괜찮은 것 같아” 이런 데서 얻는 위로?

GQ 아니, ‘이럴 때’가 아니라 ‘뭘 하든’.

KS 아이, 너무 감사합니다. 믿어주시다니.

GQ 인사 받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대중이 윤계상 씨 에게 기대하고 예상하는 이미지에는 <초콜릿> 의 멋있는 어른이나 <트리플>의 싱그러운 청춘의 모습도 있지만, 윤계상 씨는 그걸 넘어서는 모습도 자주 보여줬잖아요. 대표적인 예로 <범죄도시>의 장첸이 있겠고, <죽여주는 여자>에 윤계상 씨 나왔을 때도 저는 놀랐거든요.

KS 아유, 감사합니다. 별거 아니었는데.

GQ 별거 아니었으니까. 역할 크기나 중요도에 한계 짓지 않고 새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 듯 보이니까.

KS 시도만 하고 있고 매번 실패하고 고통스러워해 요. 저는 항상 결과에 연연했던 것 같아요. 노력의 성과를 체크하고 싶어 하고. 제가 연습하고 훈련한 게 어떻게 발현되는지 항상 체크해야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GQ 관객수 같은 물리적인 수치 말인가요?

KS 아뇨, 저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어떤.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그 체크를 너무너무 오랫동안 했어요.

GQ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KS 네. 너무너무. 타고난 게 중요한 것도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걸 노력으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안 그래요. 지금은 제가 뭘 가 졌는지 알아요. 저의 장점을 잘 아는 것 같아요.

GQ 장점이 뭐라고 생각해요?

KS 협업. 후반전 주제는 그겁니다. 도움을 요청하자. 같이 하자. 혼자 하지 말자. 작품을 하는 것도 그렇고, 팀을 이루는 순간 엄청난 힘이 발휘된다는 걸 이제야 좀 알게 됐어요.

GQ 윤계상 씨의 자기 평가 기준은 뭐예요? 본인의 노력이 결과로 산출되는 걸 어떻게 평가했어요?

KS 간단하게 얘기하면, 배우란 진짜 같은 어떤 걸 구현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 순간에 의심이 들지 않게. 그러려면 필요한 게 저는 리듬 같은데, 말을 하는 것도 리듬이고 움직임도 리듬인 것 같은 데, 그 리듬이 한 번에 ‘촤악’ 연주되는 걸 항상 꿈꿨어요. 그런데 안 되죠. 덜커덕거리는 순간이 매번 찾아오죠. 그 리듬을 혼자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니더라고요. 인간은 각기 다른 우주를 갖고 있잖아요. 너무너무 다른 우주가 만나서 연주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지금은. 넌 어떻게 생각해? 넌 어떤 태도야? 넌 어떻게 움직이고 싶어? 넌 어떻게 가고 싶어? 이런 것들을 계속 소통하다 보면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로 딱 뭉쳐지 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그때 발휘되는 에너지는 보다 완벽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추구하는 완벽함보다 더 위에 있는 완벽함인 것 같아요.

GQ 조별 과제가 더 힘들거든요. 협업은 혼자 일할 때 보다 더 많은 인내심과 더 많은 이해심이 필요하 고 나의 여러 심성을 테스트하게 되는 일 같아요.

KS 하하하하. 맞아요. 그런데 그 품는 에너지는, 저는 저보다 센 사람을 못 봤어요.

GQ 이제야 자찬이 나오네요.

KS 그냥 저는, 포기를 잘 안 해요. 불구덩이 속에 뛰어드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팀은 어디론가 향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서로 계속 눈치 보는 순간 이상해지는 것 같고, 코어에 불덩어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맡은 역할이 그런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GQ 불덩어리.

KS 지금 새 회사를 택한 것도 그런 에너지를 느껴서예요. 몰라, 내가 옛날 사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모두가 다 힘들 땐 서로를 잡아먹지 않거든요? 모두가 다 힘들 땐 용인이 돼요. 정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데 그 정이라는 게 요즘 시대에는 참 보기 힘든데 같이 부둥켜안고, 울고, 행복해할 수 있는 에너지를 이 팀에서 느꼈어요. 이게 또 하나의 실수가 될 수도 있지, 하하하하. 하지만 분명한 건 저는 아직 오염되지 않은 선택을 해보고 싶었어요. 올해는 진짜 열심히 일하는 태도를 취할 거고 너무너무 활발하게 움직일 겁니다.

GQ <테이블>의 새 테이블, 정말 직접 만든 거예요?

KS 그럼요. 영상에서 놓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영상 속 장소가) 제 집이거든요. 아유, 테이블이 제일 쉽다고 해서 도전한 건데 너무너무 어려웠어요. 두 달 동안 만들었어요. 다리 모양이 또 특이한 거였잖아요. 쉬운 거 안 하고 괜히 오버해 가지고. 나무를 깎다 보면 ‘이러면 뭐가 될까?’, ‘이게 맞나?’ 게다가 너무너무 오래 걸리니까 ‘계속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감히?’ 싶은데 어느 순간 조금이나마 형태가 잡혀가고, 다음 날 형태가 또 조금 다르고, 하루하루 조금씩 변해가 다 결국 완성되잖아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좋은 거 배웠죠. 하나하나, 한 땀 한 땀 가져가는 것.

GQ 새 테이블 위에는 지금 뭐가 놓여 있어요?

KS 새 테이블 위에 또 쌓여가고 있죠, 뭐. 이런저런 새로운 이상한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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