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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햇살 아래 선 자동차

2021.06.04GQ

옐로 선! 여름 햇살이 내려앉은 순간의 풍경, 찰나의 단상.

Portofino M ― 건물을 돌아 나왔을 때 포르토피노 M이 LED처럼 환하게 빛났다. 투명한 바다 같기도 하고, 비행기에서 본 구름 같기도 한 아무튼. 깨끗한 하늘색 보디를 은은하게 감싸 오른 햇살은 맨 꼭대기에서 가장 밝게 빛나며, 흐르듯 이어지는 포르토피노 M의 몸선을 입체감 있게 비췄다. 잔잔한 물결처럼 매끈하게 넘실대는 포르토피노 M의 조용한 존재감이 한껏 늘어져 있던 도시의 여름을 긴장하게 만든다. 하늘색 포르토피노 M이 심심한 무채색 건물 사이를 유유히 돌아 나올 땐 엉뚱한 상상도 한번 해본다. 누군가 이 장면을 보고 여기가 산타모니카의 도심이냐고 물어온다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묘한 능청 한번 부려볼까. 빨간색도, 그렇다고 노란색도 아닌 귀한 하늘색 페라리가 저기 있으니까.   

Q8 ― 태양을 붓에 꾹꾹 눌러 묻혀 칠하면 저토록 화려할까. 선명한 오렌지색 Q8이 햇살 아래로 들어왔을 때 검은색 아스팔트는 해변의 황금빛 모래가 되고, 낡은 컨테이너는 마치 이탈리아의 치비타베키아처럼 이색적이고 화려한 항구도시로 순간 배경을 바꾼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느 날 해변에서 바라본 아득한 석양빛 같기도 하고,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멍하게 바라본 모닥불 같기도 한 Q8의 묘한 색감은 어찌됐든 여름을 떠올리게 만드는 여름의 색이다. 참, 하와이 와이키키도 오렌지빛 해변으로 유명하지. 초록색 컨테이너 너머로 빛망울이 비누방울처럼 내려오다 유리창에 부딪쳐 퍼진다. 아직은 연약하게 퍼지는 저 햇살이 찌르듯이 달려들다 조각조각 부서지면, 그땐 정말 한여름이겠지?

IONIQ 5 ― 꼭 어느 가사처럼 그랬다. 네모난 건물 아래 네모난 주차장에서 네모난 눈을 뜨고 있는 아이오닉5 아래로 네모난 그림자가 떠 있다. 건물을 타고 내려온 배수관도, 반듯하게 간격을 맞춰 그린 주차 선도, 그리고 저 멀리 우뚝우뚝 솟아 있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도 길쭉하게 뻗은 모습이 서로 닮았다. 햇살과 아이오닉5가 숨바꼭질하듯 벽을 사이에 두고 섰을 때, 마치 조형도처럼 정리된 모습은 꼭 조카가 대충 만들어놓은 레고 마을 같았다. 가짜 같은 귀여운 현실을 비추고 있는 건 회색빛 건물 뒤에서 넘어오는 노란 햇살이다. 햇살이 없었다면 진짜 같은 모형처럼 어딘가 건조했을 장면이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저 햇살이 없었다면 아이오닉5의 넓디넓은 솔라루프도 열을 받아내지 못했을 테지.

K9 ― 가지가 짧은 어린 은행나무는 넓은 그늘을 만들 순 없지만 많은 바람을 들일 순 있다. 뜨거운 엔진룸을 식히러 그늘 아래로 들어온 K9은 어린 은행나무가 열어놓은 바람길을 따라 모든 창문을 내려두고 잠시 숨을 고른다. 어린잎을 비집고 새어 나온 햇살은 강하지 않아서, 루프와 리어 라인에 내려앉은 햇살 역시 눈부시지 않고 은은하게 빛난다. 그러고 보면, 영화 <그린 북>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두 주인공이 대륙을 가로지르는 투어 중에, 타고 있던 1961년식 캐딜락 드빌 세단의 모든 창문을 열어두고 잠시 휴식하는 장면이다.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던 나무 그림자와 BGM으로 은은하게 깔리던 피아노곡의 조화가 서정적이었는데, 눈앞에서 영화 속 한 장면을 쏙 빼닮은 순간을 이렇게 만났다.

    에디터
    신기호
    포토그래퍼
    김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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