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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의 가구

2021.08.10전희란

‘수도원의 가구’라는 부제가 붙은 건축가 승효상의 가구에는 침묵이 놓여 있다. 수도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거닐게 한다.

GQ 오늘 검도 하고 오셨나요? 전에 선생님 건축 사무소 방문했을 때 본 검도장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HS 네. 매주 월·수·금, 정해놓은 시간에 해요. 요즘은 시국 때문에 혼자 하는데 머릿속 잡음을 없애기 좋아요. 타격하며 분노를 잠재우기도 하고. 하하.

GQ 오픈식에서 샴페인 원샷을 권하는 모습이 무척 신나 보였어요. 전시는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HS 가구 전시를 처음 한 게 7년 전, 2014년에 서울 옥션에서였어요. 그때만 해도 가구 전시가 가능할까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꽤 잘되었죠. 그 뒤로 서울 옥션에서 다시 전시를 하자고 계속 요청이 왔어요. 한데 가구가 그만큼 쌓여야 하니까 벼르고 벼르다 이제야 다시 하게 되었네요.

GQ 7년 전 전시 타이틀은 <우리 모두의 수도원을 위한 가구>, 이번 전시의 부제는 ‘수도원의 가구’. 조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분이니, 둘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는지 궁금해요.

HS 당시는 우리 모두가 수도사가 되자. 가구에 의탁해 수도사적인 삶에 가까워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최근에 세계 5대 수도원인 왜관 수도원 내 피정의 집을 설계했는데, 거기에 놓을 가구로 새롭게 고안해 디자인한 것을 더했죠. 비로소 수도원의 가구란 이름을 붙일 수 있었어요.

GQ 가구 하나로 선생님이 가진 도시와 건축 개념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셨죠.

HS 이 가구들을 보세요. 굉장히 단순하고 평온해 보이죠? 지금처럼 앉으면 가구가 몸무게를 받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결구를 이루는 부재들 사이에 엄청난 투쟁이 벌어져요. 겉으로 보면 매끈하고 깨끗하지만 그 평화는 내면의 긴장과 치열한 투쟁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죠. 내 건축도 그래요. 대체로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에 가닿기 위해 굉장히 치열한 작업이 있지요.

GQ 건축은 사용자가 명확한 작업인 데 비해 가구는 불특정 다수가 대상이죠. 이번에 론칭한 이로재 오브젝트 Iroje Object의 시작이 궁금해요.

HS 세상에 저에게 직접 설계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지극히 특수하고 특별한, 한정된 건축주만이 존재하죠. 그동안 집 설계를 부탁할 수 없다면 가구라도 갖고 싶다고 말하는 분이 많았어요. 나는 건축하는 사람이지 가구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사코 거절해왔는데, 한번은 생각했죠. 가구로 누군가가 위안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래서 공격적으로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GQ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구분이 명확한 시대에, 건축가가 가구를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HS 건축가가 가구 디자인을 하지 않는 건 건축가의 고유 직무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전통적인 건축가는 도시부터 건축, 가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는 환경을 두루 상상했지요. 건물만 지어서는 바른 건축을 할 수 없어요. 도시를 설계하면서도 가구적 생각을 투입할 수 있고, 가구 하나에도 도시가 존재할 수 있어요. 서로 상호 연관되어야 온전히 가시적 환경이 나온다고 봐요. 설계하는 공간 안에서 사람이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삶의 형태에 대해 그릴 수 있어야 해요.

GQ 구체적인 상상이 있어야 하는군요.

HS 그렇죠. 그래야 그 공간에 대한 확신이 생겨요. 꼭 가구를 직접 만들지 않더라도요.

GQ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요즘은 패션 매장에 가구가 놓여 주인공이 되기도 해요. 경계를 넘나드는 현상을 어떻게 보세요?

HS 당연한 일이에요. 집이든 상점이든, 공간에 어떤 가구가 놓이는가에 따라 공간을 지배할 수도 있죠. 가구와 공간의 연관 관계가 무척 중요해요. 이번 전시 포스터에도 공간 속에 가구 한 점이 놓여 있는데, 그건 공간에 관한 사진이에요. 그런데 가구 없이는 공간이 의미하는 바가 없지요. 가구가 놓임으로써 공간 속의 가구, 공간과 가구의 관계가 비로소 성립되는 거예요.

GQ 한편으로는 가구의 본질에 대한 논의 없이 비주얼에만 주목하는 트렌드가 우려되기도 해요.

HS 장식에만 치중한 가구는 예술적으로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본질을 떠나 있기 때문에 가구가 아니에요. 저는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가구가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때 비로소 아름답죠.

GQ 소위 ‘건축가의 가구’라고 말할 때, 그 말에는 어떤 책임이 따라야 할까요?

HS 평소에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라고 해요. 제 성질이 그래요. 건축도 마찬가지죠. 설계를 할 때 왜 이런 설계를 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어요. 건축 설계란 다른 사람의 삶을 조직시켜주는 일이에요. 삶을 이해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설계해야 하니, 항상 3자적 입장이어야 해요. 자기를 타자화시킬 줄 알아야 하죠. 하지만 논리로만 설명해서는 재미가 없어요. 뻔해지죠. 거기에 특별한 무언가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해요. 저는 그걸 영성 Spirituality라고 해요. 영혼을 두드릴 수 있는 무언가. 일상적으로 사는 집에서도 깜짝 놀랄 만한 공간을 만들어 스스로 성찰하게 하는, 사유하게 만드는 모티프를 제공하는 게 제 건축, 디자인에서는 굉장히 중요해요.

GQ 전시 오픈 날 인상적이었던 점이 있어요. 분명 자유롭게 앉을 수 있도록 열어둔 가구들인데, 아무도 앉지 않고 멀찍이 바라보았다는 거예요.

HS 일상의 풍경이 아니니 마음의 문을 못 연 거죠.

GQ 그런데 확실히,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어떤 기운이 있었어요. 존재를 둘러싼 긴장과 고요 같은.

HS “명료함만큼 신비로운 게 없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말이에요. 가장 단순하고 클리어한 것이야말로 신비롭다는 것이죠. 영혼을 두드리는 건 단순함으로부터 와요. 성찰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조선시대 선비들의 문방을 보면 깨끗한 서탁 하나, 저 멀리 백자 하나 탁 놓는 식이죠. 단순함이 선비 정신을 일구는 모티베이션이었어요.

GQ <빈자의 미학>에서 무용의 공간의 가치, 필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어요. 가구는 목적을 지니는 물건이지만, 꼭 정해진 쓰임이 있어야 할까요?

HS 여기 놓인 가구들은 어떤 장식도 없고, 요구하는 것도, 주장하는 것도 없어요. 지금 앉아 있는 긴 의자는 누워 잘 수도, 앉아서 밥을 먹을 수도 있어요. 원하는 대로, 느끼는 대로 쓸 수 있겠지요.

GQ 선생님 사무실에 있던 좁고 가파른 계단이 문득 떠오릅니다. 정신 차리지 않고선 넘어지기 십상이었죠.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통해 제 자신을 감각하는 계기도 되었어요.

HS 몸이 아플 때 기관을 의식하듯이 어마어마하게 큰 공간 혹은 굉장히 좁거나 고민스럽게 만든 공간은 신체를 의식하게 만들죠. 끊임없이 자신을 의식하게 하는 공간은 감옥이고 고문이겠지만, 그것이 길 가다가, 혹은 일상에서 뜻밖에 만나는 공간이라면 의식을 깨우는 장치가 될 수 있죠. 삶의 유익한 모먼트가 될 수 있을 거예요.

GQ 불편함은 때때로 우리를 즐겁게 할까요?

HS 옛날 집은 건넌방, 문간방 다 떨어져 있어도 저 방에서 뭘 하는구나 짐작할 수 있었어요.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도 심리적으론 가까웠죠. 수고를 통해 서로가 만나는 과정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줄 거예요. 그래야 건강한 삶이 된다고 믿어요.

GQ 선생님의 수도원 순례기 <묵상>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어요. “건축은 동결된 음악? 아니다. 느리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늘 소리를 내는 아름다운 음악일 게다.” 그 아름다운 음악은 아무에게나 들리는 건 아니겠죠?

HS 그렇죠. 맞습니다.

GQ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HS 어떤 장소에 가려면 먼저 장소에 대한 공부를 반드시 해야 해요. 책으로 하는 공부는 자기의 상상을 불어넣게 되니 환상이에요. 현장이나 현실과는 다를 때가 왕왕 있어요. 그럼에도 상상과 다른 그 괴리감을 찾아내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돌아와서 다른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그 삶이 진실일지 아닐지에 대한 판단 구분이 명확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여행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에요.

GQ 건축에 아름다운 음을 더하는 사람이 되려면요?

HS 건축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어요. 거주하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갖지요. 바른 삶을 위한 바른 건축을 하는 게 제 목표고, 이후 다른 사람이 거주하러 와서 자기의 경험을 덧대 더한 풍경을 만들어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제 건축이 늘 같은 모습으로 있기를 바라지 않아요. 그 변화를 지켜보는 일이 굉장히 즐거워요.

GQ 건축은 그렇게 차차 완성되어 가는 걸까요?

HS 건축은 건축가가 생명을 시작시키고 사는 사람이 시간과 더불어 완성시켜 나가는 거예요. 생명이 다하면 언젠가는 무너질 테고요.

GQ 어쩌면 지금 저희가 앉아 있는 가구가 건축보다더 오래 생을 이어나갈 수도 있겠네요?

HS 그렇죠. 망가지면 고쳐 쓸 수 있으니까. 건축보다 더 오래 살 수 있어요.

    피처 에디터
    전희란
    포토그래퍼
    안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