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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복제를 통한 동물 보존

2021.08.11GQ

어쩌면 멸종 위기 동물의 골든 타임이 연장될지도 모르겠다. 사라져가는 동물의 유전자를 보존하고, 언젠가는 복원까지 가능하게 할 기막힌 백업 플랜에 대한 이야기.

멸종될 위기에 처한 얼룩무늬 타마린 원숭이.

용액에 담겨 액체질소 냉각 처리를 기다리는 동물 세포의 샘플들. 나중에 필요할 때까지 동결 상태로 둔다.

네이처스 세이프 설립자 털리스 맷슨. 냉동 샘플을 보관하는 거대 극저온 탱크 중 하나를 옆에 두고 선 모습이다.

털리스 맷슨은 헬리콥터를 타고 남아프리카의 수렵 금지 구역 상공을 지나는 중이다. 관목이 점점이 뒤덮인 먼지투성이 풍경 위로 기체가 원을 그리며 돌자, 먼지와 자갈이 뿌옇게 피어오른 가운데 사력을 다해 도망치는 수코끼리의 모습이 간신히 눈에 들어온다.
코끼리는 거대한 몸집을 이끌고 사방으로 펄쩍펄쩍 뛴다. 꿈틀대는 근육 덩어리 사이로 위압감이 엿보인다. 이미 옆구리에 마취 총을 두 방이나 맞았을 텐데 마비와 싸우며 한사코 쓰러지기를 거부한다. 쓰러지기는커녕 몸부림과 함께 인근 물웅덩이로 향하는 모습이다. 헬리콥터는 코끼리의 이동 방향으로 앞질러 진로를 방해하려 한다. 물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코끼리가 무릎을 구부리고 대치 상황은 끝난다. 그 와중에 코끼리의 몸에 덤불이 뭉개진다. 근처에 와 있던 트럭 옆으로 헬리콥터가 착륙한다. 그 후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그야말로 기이하다는 말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코끼리는 배를 깔고 주저앉은 상태였는데 작업원들이 달라붙어 몸을 옆으로 뒤집었다. 회복 자세처럼 옆으로 눕혀 코끼리가 숨을 쉴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영국 출신으로 올해 쉰세 살인 맷슨이 등장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사파리 레인저처럼 카키 팬츠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는 코끼리 옆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커다란 콘돔처럼 생긴 기구에 코끼리의 생식기를 연결했다. 그러자 야생동물 보존 전문가가 가느다란 탐침 같은 것을 생식기에 삽입했다. 미량의 전기 충격으로 전립선을 자극하는 도구인데, 이른바 전기 자극 사정을 유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생식기에 연결한 기구의 펌프를 움직여 정액 채취를 끝낸 후에는 장비를 챙겨 헬리콥터에 올라탄 채로 상공을 맴돌며 코끼리가 정신을 차리고 길을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이 묘하고도 낯선 광경은 맷슨이 왓츠앱으로 보내준 영상에 담겨 있었다. 2019년 10월에 촬영한 것인데, 그날의 경험은 지금껏 살아오며 겪은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한다.
성공적으로 채취한 코끼리 정액은 우선 맷슨 소유의 목장에 저장하고, 차후 번식 프로그램 등에 사용한다. 영국 동물 학대 방지협회 RSPCA에 따르면 포획된 상태의 코끼리는 사산할 확률이 높고 새끼 사망률도 높게 나타난다.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향후 수십 년 안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보존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은 세계 각지의 코끼리 보호소와 협력해 야생 코끼리의 정액을 모으고 있다. 수집한 정액 샘플은 필요한 다른 곳으로 옮겨 인공 수정된 새끼 코끼리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 사용한다.
맷슨은 야생동물 공원 직원도, 코끼리에 특화된 보존 전문가도 아니다. 영국 슈롭셔 지방에 위치한 집안 소유 목장에서 경주마 인공수정 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일 뿐. 그의 회사는 대회 우승 전력이 있는 종마의 씨를 받아 저장해뒀다가 인공수정에 사용한다. 위기에 처한 동물의 왕국에 등장한 구원자가 맷슨이라는 사실이 다소 의외일 수는 있으나, 어쨌든 그는 그런 일을 한다.
맷슨은 말을 다루며 익힌 기술과 노하우를 멸종 위기종에 적용함으로써 유럽 최대 규모의 동물 세포 은행, 즉 바이오뱅크를 세우는 게 목적이다. 그가 2020년 설립한 비영리단체인 네이처스 세이프 Nature’s SAFE는 장차 유전자 샘플 5천만 개를 수집해 극저온 탱크에서 “영구 냉동 보존”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여기에는 주요 멸종 위기종인 아무르표범, 검은코뿔소, 마운틴 치킨 개구리 등도 포함된다. 맷슨은 체스터 동물원, 유럽 동물원 및 수족관 협회,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진 등의 협력을 얻어 정액을 비롯해 난자와 다른 세포들의 샘플을 채취, 보존하겠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이렇게 수집한 재료들은 향후 개체수가 줄어드는 동물의 번식 활동에 사용함으로써 멸종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와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눈 건 네이처스 세이프 발족으로부터 한 달이 경과한 시점이었고, 당시 그는 타마린 원숭이, 쥐사슴 (애기사슴), 콜롬비아거미원숭이, 팬서 카멜레온을 포함해 30개 종의 샘플을 획득한 상황이었다. “이 정도는 피상적인 수준에 불과해요. 우리는 밀레니엄 시드 뱅크처럼 되고 싶어요. 다만 씨앗이 아닌 동물의 샘플을 수집하는 거죠.

복제를 통한 보존 사라져가는 종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멸종한 생물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랫동안 동물 보존론자들의 머리 속을 가득 채워왔다. 인간이 동물의 삶에 끼친 영향을 되돌리기 위한 어려운 싸움을 수십 년간 별다른 소득 없이 계속해온 탓이다.
그러나 2003년,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산양이 피레네아이벡스 출산에 성공한 사건이다. 현지어로 부카르도라고도 불리는 피레네아이벡스는 200년에 걸쳐 계속된 사냥으로 개체수가 줄어들어 결국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었는데, 실리아라는 이름이 붙은 그 마지막 한 마리조차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에 맞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런데 호세 폴크 페라 박사의 지도 아래 스페인 아라곤 지방의 농업 영양학 기술 연구원 소속 연구진이 멸종한 이 생물을 최초로 복원해낸 것이다.
폴크 페라 박사와 그가 이끄는 연구원들은 최후의 피레네아이벡스가 사망한 직후 귀에서 피부세포를 채취해 액체질소에 보존했다. 다음 단계로 샘플을 해동한 후 현지 산양의 핵을 제거한 난자에 피레네아이벡스 DNA를 삽입했고, 이렇게 마련한 난자를 다양한 스페인아이벡스 또는 염소-아이벡스 잡종 개체에 이식해 대리모를 통한 복제를 시도했다. 그러나 실제로 임신이 된 것은 일곱 건에 불과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결코 높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가 무사히 출산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부카르도 새끼가 호흡부전으로 태어난 지7분 만에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해부 결과 폐는 이상이 있었지만 다른 장기는 전부 정상적인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피레네아이벡스는 두 번이나 멸종된 최초의 종이라는 조금 애매한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이처럼 부활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과학자들은 한 가지 간단한 이론을 증명해낸 셈이었는데, 바로 멸종된 동물의 얼려둔 세포가 해당 종을 복원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동물 복제에 관한 2009년 논문을 통해 폴크 페라 박사는 “우리의 현재 연구에 따르면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 전부 혹은 적합한 일부의 세포와 조직을 적절하게 보존하는 것은 미래의 복제 기반 보존 활동에 유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장려해야 한다”고 적기도 했다.
2019년 UN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수십 년 안에 동식물 100만 종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검은코뿔소, 오랑우탄, 순다호랑이 등 많은 동물종은 이미 이른바 멸종의 소용돌이에 들어섰다. 개체군의 크기가 감소함에 따라 유전자 풀을 극도로 제한하는 바람에 근친 교배가 유일한 선택지로 남고 말았다는 뜻이다. 이처럼 멸종의 소용돌이에 진입한 동물들의 생존율은 더욱 낮아지며, 그 결과 천천히 멸종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소용돌이에서 빠져나가는 몇 가지 방법 중 하나는 현재의 유전자 풀에 없는, 지금은 잊힌 오래전 선조의 DNA를 새롭게 공급하는 것이다. “개체군 감소를 멈추고 되돌리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을 동원해야 하고, 바이오뱅크가 그중 하나인 거죠”라고 코펜하겐 동물원의 보존유전학자이자 유럽 동물원 및 수족관 협회의 회원이기도 한 크리스티나 흐빌솜이 설명한다.

조금 이상한 직업 큰 키로 여기저기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맷슨은 늘 칠부 바지 차림인데 실험실 가운을 걸쳤을 때도 바지는 변함이 없다. 그런 그는 ‘알맞은 때 알맞은 곳에 있었기에’ 인공수정 사업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맷슨은 열여섯 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곧장 경마에 뛰어들었다. 첫 시작은 기수였다. 그러나 장애물 경주에서 실패한 후 경주마 브리딩으로 분야를 옮겼는데 암말이 사망하는 사고를 겪으며 인공수정으로 눈을 돌렸다고 한다. 그로부터 30여 년간 맷슨은 브리딩에 집중했고, 나중에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애도하는 고객들을 위해 애완동물 복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다 2018년 미국에서 열린 어느 컨퍼런스에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비아젠이라는 동물 복제 회사와 파트너십을 체결, 냉동 체세포를 유럽까지 더욱 편리하게 이송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고양이나 강아지, 말의 세포를 보낼 수 있다면 희귀종 세포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죠”라고 맷슨은 설명한다.
맷슨은 체스터 동물원 측에 자신의 구상을 처음 들려줬을 때, 문전박대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복제를 통한 동물 보존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도 아니었다고 얘기한다. “동물원 측에서는 제 제안을 거절했어요. 너무 프랑켄슈타인 같다는 게 이유였죠. 넘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선이라는 게 있다는 거였어요.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지만요.”
체스터 동물원의 과학 부문 책임자이자 네이처스 세이프의 공동 설립자인 수 워커는 전통적으로 동물원이 동물 복제에 발 들이는 걸 피해왔다. 개체 하나를 복제하는 데도 엄청난 비용이 들며 실패율까지 높은 데다 태어난다 해도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겪거나 조기에 사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재번식과 서식지 보존을 통한 멸종의 소용돌이 예방이 낫다는 것이 동물원들의 인식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보존 활동이 가능한 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멸종 위기종이 살아남을 가능성마저 희박해지는 상황에서는 인공수정, 극단적인 경우에는 복제가 최선이거나 유일한 선택지일 수도 있다.
3월 어느 날 아침, 맷슨을 따라 슈롭셔 윗처치에 위치한 목장으로 나섰다. 본관 1층에는 세포 샘플을 보관하는 극저온 탱크들이 설치되어 있다. 소형 탱크는 커다란 우유 통 모양이고 두 개의 대형 탱크는 흡사 거대한 산업용 통처럼 보인다. 맷슨이 작은 받침대에 올라 탱크 하나를 열자 증기가 자욱하게 피어 오른다. 내부에는 지정된 칸 안에 둥둥 떠 있는 칵테일 빨대 크기 시험관 수천 개가 있다. 경주마 DNA를 보관하는 시험관이다.

네이처스 세이프에서 보관 중인 냉동 샘플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멸종 위기종도 있지만 단순히 미래에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존하는 경우도 있다.

얼룩무늬 타마린 원숭이 — 서식지 브라질 마나우스시 북쪽과 동쪽의 삼림지대. 개체수동물원에 약 170 마리가 있으며, 야생 개체수는 불명. 도시 확장에 따라 맨얼굴 타마린 원숭이의 세 가지 하위종 중 가장 극심한 멸종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베트남 쥐사슴 — 서식지 베트남 해안가의 울창한 삼림지대. 개체수 불명. 밀렵으로 멸종 직전이다. 지난 2019년, 30년 만에 처음으로 야생에서 목격된 바 있다. 은색 등 애기사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팬서 카멜레온 — 서식지 마다가스카르 북동부 정글. 개체수 불명. 노지베섬에 45만 1,730마리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멸종 위기종은 아니며 화려한 색깔 덕에 반려동물로 인기가 많다.

마운틴 치킨 개구리 — 서식지 몬트세랫섬과 도미니카. 개체수 도미니카 야생에는 100마리 미만으로 존재하며 몬트세랫섬에는 2마리가 남았고 동물원에 236마리가 있다. 극심한 멸종 위기종으로 세계를 휩쓴 항아리곰팡이 탓에 90퍼센트가 사망했다.

서식지 상실 때문에 1,200마리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리빙스턴과일박쥐는 멸종 위기종이다. 번식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백업으로 샘플도 냉동 보존되어 있다.

사진 속 바 스툴 크기의 극저온 탱크는 트레이에 담긴 멸종 위기 동물 샘플들을 영하 196도로 보관한다.

일부 과학자는 멸종된 매머드 유전자와 아시아코끼리 유전자를 편집해 상아의 길이를 줄임으로써 밀렵꾼의 관심을 돌릴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우리는 밀레니엄 시드 뱅크처럼 되고 싶어요. 다만 씨앗이 아닌 동물의 샘플을 수집하는 거죠.”

“액체 질소예요.” 그가 커다란 극저온 통을 맨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한다. “영하 196도나 되죠. 움직이는 모든 것을 멈춰버려요.” 세포 보존을 위해 맷슨의 직원들은 동결보호제를 섞는다고 한다. 동결보호제는 냉동 과정에서 생체 조직의 손상을 막아주는 장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일종의 부동액인 셈이다. 맷슨의 회사는 지난해 21개국을 상대로 총 450만 파운드어치의 말 정액을 수출했다. 옆방에는 네이처스 세이프가 사용하는 노란색 극저온 탱크가 자리 잡고 있다. 아직말 정액 샘플에 비해 그 규모가 한참 작은 현실을 방증하듯 탱크 크기는 바 스툴 정도다. “앞으로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할 거예요. 시간에 쫓기는 작업이거든요. 프로젝트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이론적으로는 각 종마다 50개의 샘플을 갖춰야 해요.” 맷슨이 설명한다.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들을 구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다양한 유전자 재료를 과학자들에게 제공하려면 최소 50개의 샘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샘플을 바탕으로 복제할 경우 개체들은 모두 유전적으로 동일할 것이며, 따라서 번식에 필요한 개체군을 확보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연구소 견학을 마치자 맷슨은 목장의 주요 수입원을 보여주겠다며 지붕을 씌운 휑한 공간으로 안내한다. 오른편에 커다랗고 네모진 기계체조용 안마 같은 기구가 높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 마굿간이 두 개 보인다. 하나는 온순한 검은 암말이 들어 있고 다른 하나는 빈 모양이다. 반대편 커다란 문을 통해 목장 관리 업무를 보조하는 조시 스티어가 나타나고, 사육 담당인 테레사 헤일리와 에밀리 쿰스도 클리피라는 이름을 가진 밤색 털 씨말을 데리고 함께 들어온다. 쿰스의 손에는 거대한 갈색 고무 콘돔처럼 생긴 물건, 전문 용어로 ‘인조 암말 생식기’가 들려 있다. 스티어가 씨말을 통제하며 암말과 교감하게 하는 동안 헤일리는 말의 관심도를 확인해 알려준다. 우리는 두 말이 서로를 평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클리피가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헤일리가 말한다.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인조 생식기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액체는 착실하게 콘크리트 바닥을 적신다. 아름답거나 고상한 장면은 분명 아니다. 클리피가 울음소리를 내며 바닥을 찬다. “생각 중이에요.” 헤일리의 목소리가 추운 실내에 울린다. “생각 중….” 잠시 정적. “생각 중….”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죠” 라며 맷슨이 끼어든다. “첫 만남이니까요. 와인이라도 한 잔씩 먼저 한다면 도움이 되겠는데요.” 이윽고 클리피는 지켜보는 관중이 있음에도 짝짓기를 단행하기로 결심했고, 그러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움직인다. 우선 쿰스는 천과 양동이를 들고 뛰어가 생식기를 깨끗이 닦는다. 정액 샘플을 박테리아 오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고 나서 직원들이 클리피를 말 모형이 있는 곳으로 유도해 인조 생식기에 고정시키자 몇 번의 움직임 끝에 모든 작업이 끝난다.
딱히 화려할 것도 없는 작업이지만, 다소 원시적일 수 있는 이 속임수야말로 말 정액을 채취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이렇게 채취한 정액 샘플은 우수한 경주마를 원하는 세계 각지의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게다가 아프리카의 코끼리에게 일어난 일에 비하면 조금이나마 문명화된 접근법이기도 하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야생동물의 유전자 샘플을 획득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취나 전기 자극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조금 이상한 직업인 것은 맞아요”라고 스티어도 인정한다.

유전자 샘플 획득 과정의 윤리 네이처스 세이프의 극저온 탱크에 샘플을 제공하게 될 멸종 위기 동물들을 맷슨과 직원들이 친히 방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죽고 나서야 샘플 채취가 시작된다.
예를 들어 키티돼지코박쥐의 경우 말이나 코끼리의 정액을 채취하는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포유류로 몸길이가 3센티미터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몸무게가 18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남극 대왕고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멸종 위기종의 유전자 풀을 확대하려는 보존 활동가들의 야심을 가로막는 건 단순히 작업 과정상의 어려움만이 아니다. 국가마다 관련 규정이 상이한데, 영국에서는 왕립수의대학 윤리지침에 따라 보호 중인 멸종 위기종의 DNA 채취가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건강검진 같은 정당한 사유가 있거나 사망한 이후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체스터 동물원의 동물들이 남쪽으로 40킬로미터 떨어진 맷슨의 극저온 탱크로 향하는 건 후자의 경우다. “앰뷸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을 상상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요란하지 않아요.” 워커가 설명한다. 생명을 다한 동물은 먼저 동물원에 상주하며 동물들의 의료 관련 사항을 모두 담당하는 수의학자에게 보내진다. 수의학자가 정밀한 수술 절차를 거쳐 죽은 동물의 고환이나 난자, 체세포를 추출한 뒤 맷슨에게 알리는 식으로 진행한다. 맷슨의 목장에 설치된 연구실 작업대 위에 조그마한 천조각처럼 생긴 박쥐의 귀와 올리브 씨 크기의 고환 한 쌍이 놓여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다. 체스터 동물원의 세바짧은꼬리박쥐는 주로 ‘과일박쥐의 숲’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구역에서 지낸다. 박쥐에게 먹이를 주는 56파운드짜리 ‘체험 상품’을 판매하기도 하는 곳이다. 세바짧은꼬리박쥐가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생물 다양성 감소 현상이 전지구적으로 심해지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섣불리 안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업대 위에 놓인 샘플의 주인은 자연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유전자는 남아 오래오래 살아갈 것이다.
네이처스 세이프의 과학 자문 역을 맡은 루시 모건은 먼저 박쥐 귀의 털을 미는 작업에 착수한다. “귀는 평생에 걸쳐 일정 수준까지 계속 자라기 때문에 원래부터 성장하고 재생하는 능력을 가진 세포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죠. 배양을 염두에 둔다면 귀를 사용하는 게 좋은 이유예요.” 그녀가 설명한다.
털을 모두 밀어낸 귀 샘플은 살균을 위해 클로르헥시딘에 담기고, 모건은 타이머의 스위치를 누른다. 2분이 지나자 다시 샘플을 꺼내 페트리 접시에 옮겨 담고 초코칩 정도의 작은 크기로 잘라내기 시작한다. 그녀는 잘라낸 조각들을 핀셋으로 집어 동결보호제가 담긴 냉동 바이알에 넣는다. 미세한 크기의 고환 한 쌍은 통째로 보존할 예정이다. 정액을 추출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기존 방식으로 보존 처리하기에는 너무 작은 동물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어려움이라고 한다.동물 세포나 정액, 난자를 냉동 바이알 또는 시험관에 무사히 집어넣으면 이제는 극저온 탱크로 이동할 차례다. 유전자 샘플은 동물원 혹은 야생에서 실시할 재번식 프로그램에 사용될 때까지 해동을 기다린다. 해부학적 제약 때문에 정액이나 난자를 통한 인공수정이 불가능한 일부 동물은 냉동 상태로 수십 년은 더 머물러야 할 수도 있다.
지금은 네이처스 세이프가 보유한 샘플이 전부 한 곳에 모여 있지만, 재단 측은 향후 백업 시설을 추가로 마련할 계획이다. 세포들을 분산 보관해 안전성을 높이겠다는 것.

털리스 맷슨. 배경은 동물 세포, 정액, 난자 등을 보존하기 위한 준비가 이뤄지는 네이처스 세이프 연구실.

정액 샘플은 빨대 모양 시험관에 담겨 액체 질소로 냉동된다. 극저온에서 세포가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결보호제를 사용한다.

“시간에 쫓기는 작업이에요. 프로젝트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이론적으로는 각 종마다 50개의 샘플을 갖춰야 해요.”

얼어붙은 동물원 맷슨의 구상이 대단히 야심 찬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목장에서 8,000킬로미터 떨어진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바이오뱅크는 1970년 설립 이후 세포주, 생식 세포, 배아 세포 샘플을 1만 개 이상 모아왔다. ‘얼어붙은 동물원 Frozen Zoo’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바이오뱅크는 꿩과에 속하는 여러 종의 새끼를 부화시킨 전력이 있는 데다 냉동된 고양이 난모세포를 시험관에서 성장 및 수정시켜 태아로 발달시키기도 했다.
2020년, 샌디에이고 동물원은 30년 된 샘플을 사용해 검은발족제비 복제에 성공함으로써 또 한 걸음 나아갔다. 엘리자베스 앤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족제비는 콜로라도에 위치한 연구 시설에서 12월 10일에 태어났는데, 1988년 사망한 족제비 윌라와 동일한 개체였다. 검은발족제비는 80년대에 이르러 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번식 프로그램 덕분에 6,000마리까지 늘어날 수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개체군의 혈통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다. “복제 같은 최신 생식 기술을 활용한다면 이미 사라진 유전적 다양성을 되살려 동물을 멸종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 거예요.” 검은발족제비 복제에 참여했던 비영리단체 리바이브 앤 리스토어의 라이언 펠런이 말한다.
공통의 목적을 위해 협력 관계를 맺은 학계 주도 바이오뱅크들의 연합도 있다. 이들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세포 샘플을 수집하는 것인데, 동물 번식이 아니라 연구 재료 확보를 위해서다. 따라서 접근 방식도 현실적인 관점에서 이뤄진다. 멸종 위기에서 구할 수 없다면 차라리 멸종 이후에도 연구할 수 있도록 샘플을 최대한 많이 갖춰두겠다는 것.
미국 자연사 박물관 산하 앰브로스 모넬 크라이오 컬렉션도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바이오뱅크 중 하나다. 샘플을 100만 개까지 수용 가능한 자연사 박물관 냉동 세포 연구소는 이미 나비, 개구리 발가락, 고래 피부, 악어가죽 등의 샘플을 동결 상태로 질소 냉각 탱크에 보관 중이다. 비슷한 기관으로 영국에는 크라이오아크스가 있는데, 영국 최초의 국립 동물학 바이오뱅크로서 동물 유전학 및 유전체학 연구에 필요한 샘플을 수집한다. 크라이오아크스 런던 자연사 박물관,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 그리고 에딘버러 동물원 총 세 군데에 시설을 운영한다. 여기에 더해 유럽 동물원 및 수족관 협회와 프로즌 아크에서 운영하는 바이오뱅크도 연합에 참여하고 있다. “동물 샘플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야생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해요.” 크라이오아크스의 수석 조사원이자 프로즌 아크 프로젝트의 감독인 마이클 브루포드가 설명한다. “따라서 좋은 점이 많아요. 야생 환경에 피해도 덜 끼치고 인력이나 장비 같은 것도 아낄 수 있죠. 하지만 점점 대두되는 문제는 우리가 현재 보유한 샘플의 동물들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거예요. 다들 멸종해버렸어요.”
크라이오아크스가 보관 중인 광범위한 냉동 샘플은 샌디에이고 동물원이나 네이처스 세이프보다 훨씬 앞서 수집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더 오래전에 멸종된 동물을 연구할 기회가 월등히 많고 이미 사라진 생태계나 서식지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발견해낼 가능성도 높다는 얘기다.
네이처스 세이프의 차별점은 단순히 수의학적 목적이나 연구 목적으로 DNA를 추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차원 높여 인공수정을 위해 세포주와 생식 세포에 초점을 맞춘다는 데 있다고 흐빌솜이 설명한다. “네이처스 세이프는 바이오뱅크의 다음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현재 추진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추진하려는 연구를 통해 세포주를 만능 줄기세포(체내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로 분화시킨 뒤 다시 생식세포로 분화시켜 동물을 새로 만들어낼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거예요.”
브루포드는 유전자 재료를 보존할 때 이미 포획된 작은 개체군에서만 채취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다양성이 최대한으로 확보된 유전자 풀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각지에 있는 냉동 샘플 보관 시설의 규모를 생각하면 수백만 개의 샘플을 수집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거예요.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샘플을 보존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그 샘플이 어디에서 온 건지, 알맞은 샘플을 선별해서 사용하고 있는지의 여부죠. 크라이오 아크스의 중요성은 이 지점에 있다고 봐요. 연구자와 보존 전문가에게 현시점에서 가용한 샘플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최적의 전략을 짤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죠.”
물론 기존에 수집한 샘플 라이브러리에는 허점도 있다. 브루포드는 이를 두고 아쉬움을 담아 ‘과거의 실수’라 부르는데, 생긴 모습이 예쁘지 않거나 덜 매력적인 동물들은 단지 기억에서 잊혔거나 보존이 어렵다는 이유로 누락되곤 했다는 것이다. 주로 지렁이 같은 무척추 동물이 그렇다. “어쩌면 가장 매력적으로 생긴 생물일 수도 있고 어쩌면 가장 징그럽게 생긴 생물일 수도 있겠지만, 생태계에서의 역할을 본다면 지렁이는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동물 중 하나예요. 그런데 바이오뱅크에 지렁이 샘플은 전무하다시피 하죠.”

그렇다면 공룡도 복원할 수 있을까?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아직 공룡들이 인간을 잡아먹기 전인 초반부에 잘 알려진 신이 있다. 가죽옷 차림으로 등장한 이안 말콤 박사(제프 골드블룸)가 공원 사장 존 해먼드(리처드 애튼버러)에게 윤리에 관해 설교하는 장면인데,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당신네 과학자들은 공룡을 복원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과연 그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고민한 적이 없죠.”
타당한 지적이다. 수십 년 전 멸종한 동물을 복원할 수 있다면 세이버투스 호랑이나 도도새, 매머드 같은 수백 수천 년 전 동물과 심지어 티라노사우루스까지 복원하겠다고 나설 게 뻔하기 때문이다. 16년간 냉동 상태로 보관한 쥐의 세포를 사용해 건강한 복제 쥐를 성공적으로 탄생시킨 일본의 유전학자 테루히코 와카야마의 연구는 그보다 훨씬 옛날에 멸종한 동물도 부활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도도새나 매머드를 복원하려는 시도 앞에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매머드의 경우 얼음에 갇혀 제대로 보존된 샘플을 구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DNA는 퇴화하며, 건강한 동물을 복제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 정보를 온전히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그렇지만 지난해, 멸종된 지 1만 년 된 매머드의 유전자 지도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해독되면서 매머드 DNA 합성 가능성이 다시금 검토되기 시작했다. 검은발족제비 복제에 성공한 연구진이 다시 모여 올해 3월에 매머드 부활 펠로우십을 출범했다. 이들은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의 저명한 유전학자인 조지 처치의 연구실에서 매머드 탈멸종에 필요한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지난 3월 처치 교수와 통화를 했다. 잡음 탓에 통화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지만 멸종된 동물을 부활시키는 데 따르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그에게 물었다. 현재 살아 있는 종을 보호하는 대신 과거의 동물을 되살려내는 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빨대 시험관에 담겨 액체 질소로 냉동된 세포 샘플. 번식 프로그램에 충분한 유전적 다양성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최소 50개 개체로부터 채취한 샘플이 필요하다.

사진 속 말은 2008년 세상을 떠난 경주마의 클론이다. 원본과 동일한 세포로 이뤄졌지만 키가 2인치 더 작다.

“사람들의 관심이 공룡 복원 같은 것에만 쏠려 정작 우리가 하려는 일은 지금 살아 있는 동물들의 보호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을까 우려돼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법은 없죠.” 그가 입을 뗀다. “멸종은 야생뿐 아니라 동물원 또는 포획 상태에서도 일어날 수 있어요. 우리는 그저 동물이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살짝 힘을 보태는 것뿐이에요.” 그러면서 19세기에 멸종 직전까지 갔다가 재번식에 성공해 1만 2,000마리까지 늘어난 바이슨을 예로 든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결국 생물 다양성 증진이라고 생각해요.” 처치 교수는 매머드 부활 프로젝트의 목적이 멸종된 종을 부활시키는 데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멸종된 종의 유전자를 현대에 소개함으로써 생물 다양성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현대의 생물종과 생태계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에요.” 연구진은 고대 매머드의 특징을 가진 올리고 DNA(개별적으로 합성된 단일 나선 DNA로서 염기서열 범위는 40과 350 사이)를 선별 후 편집해서 아시아코끼리의 게놈에 삽입하는 방식을 택하는데, 처치 교수는 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을 사용해 한기와 바이러스에 내성을 가진 코끼리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게다가 이렇게 태어난 코끼리는 상아가 짧아 밀렵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고 한다.
“현대 생물종의 다양성 증진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멸종된 동물의 복원만 추구하는 프로젝트는 아마 없을 거예요”라는 것이 그의 얘기다. 멸종 위기에 몰린 동물의 DNA를 보존하려는 절박한 움직임과 더불어 이처럼 동물 유전자에 다양성을 직접 편집해 넣으려는 시도가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냉동 상태로 보관한 코끼리 세포의 대다수는 지난 10년 사이에 수집한 것들이라고 처치 교수는 설명한다. 그런데 그런 샘플을 역으로 편집하면 선조들의 DNA를 꽤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일 개체의 DNA를 기반으로 실시한 복수 편집 최고기록은 우리가 ‘3.0 버전’이라 부르는 돼지에서 얻어낸 거예요. 유전자를 42개나 바꿨죠.” 두 개의 서로 다른 종이라면 그보다 더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주요 유전자에 대해 유의미한 다양성을 확보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다. 멸종 위기 동물의 세포 샘플이 부족할 경우에는 유전자 편집으로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수백만 개의 종을 복원하려 한다면 이 방식이 비용 측면에서 더 뛰어날 수도 있다.
처치 교수에 따르면 멸종된 동물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래보다 더 건강하고 다양성이 강화된 개체를 얻는 것도 가능하다.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 수집한 유전적 특성을 주입할 수 있거든요. 서로 아득히 먼 시대에 먼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던, 서로 마주친 적도 없었을 두 종의 교배도 가능하죠. 흥미로운 부분이에요.”
처치 교수는 과학자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 같은 것은 없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종을 야생에 풀어놓는 것과 관련해서는 극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갈라파고스섬에 풀어둔 염소들이 섬의 풀을 다 뜯어먹은 결과 침식을 초래하고 희귀 식물이나 나무의 생존을 위협하는 한편 코끼리거북 등 토종 동물의 식량마저 빼앗은 사례를 예로 든다. 흐빌솜 또한 보존을 목적으로 한 복제와 오래전에 사라진 종을 복원해내는 것 사이에 선을 분명히 긋는다. “적어도 저한테는 그래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물을 돕는 것과 한참 전 멸종한 매머드 같은 동물을 복원하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동물들의 서식지를 재건하고 인간이 끼친 악영향을 되돌리는 게 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식으로도 손을 쓰기 어려울 때만 복제 기술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미래 슈롭셔로 다시 돌아가보자. 맷슨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공룡 복원 같은 것에만 쏠려, 정작 우리가 하려는 일은 지금 살아 있는 동물의 보호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을까 우려돼요.”
네이처스 세이프는 동물원들이 제정한 윤리규정을 철저히 따를 뿐 아니라 모든 협력기관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도록 양해각서도 작성했다. 네이처스 세이프가 수집한 샘플들의 소유권은 여전히 동물원들이 전부 갖고 있으며, 향후 보존이나 재번식 프로젝트에 사용할지 여부도 동물원이 결정한다. 재단 측에서 샘플을 해동하는 경우는 오로지 보존 상태를 확인하는 정기검사를 위해서다. 아직까지는 네이처스 세이프에 보관 중인 샘플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가 없었다.
맷슨과 함께 목장을 걷던 중 작은 방목장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손을 들어 머카스 젬이라는 이름을 가진 흰 말을 가리켰다. 2011년에 태어났는데, 2008년 세상을 떠난 경주마 젬 트위스트를 복제한 것이다. 들판을 달리고 풀을 뜯어먹는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구경꾼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우리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재미있는 것은” 맷슨이 말을 시작한다. “이 녀석은 오리지널의 완전한 복제란 거예요. 세포 하나까지도 똑같아요. 그런데도 키가 2인치 더 작아요.” 어쩌면 원본을 출산한 어미말의 몸집이 더 컸을 수도, 혹은 어미 뱃속에 더 오래 머물렀을 수도 있겠다. 피레네아이벡스로부터 거의 20년, 복제양 돌리로부터는 25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유전학의 세계는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에디터
    Natasha Bernal
    포토그래퍼
    Tim Flach, Sebastian Nev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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