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drink

셰프의 콧노래

2021.09.04김은희

셰프, 요즘 맛본 기쁨이 뭐예요?

다로베의 논나 서니 피자 제로컴플렉스 이충후 셰프 ㅡ 제로컴플렉스가 서울 서래마을에 자리하던 수년 전 처음 방문한 때가 생생하다. 아주 창의적인 프렌치라는 추천을 받고 내디딘 발이 잠시 주춤했다. 스테인리스 스틸 벽, 스테인리스 스틸 바, 스테인리스 스틸 테이블. 프렌치 레스토랑이라 하면 으레 따라 붙던 목가적인 분위기가 단 한 톨도 없던 공간.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아 맞이한 그날의 식사 코스에는 접시가 비칠 만큼 얇게 썬 빨갛고 동그란 래디시가 장식됐던 것 같기도, 도톰하고 촉촉한 흰살 생선이 나온 것 같기도 하다. 메뉴는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분명 생생하다. 완전히 새로운 맛, 신선한 놀라움에 사로잡힌 순간이었으니까. 차갑던 무드가 마치 연구에 성공한 실험실처럼 뜨거워지고, 나는 그 어디보다 선명한 무채색 공간을 경험한 사람이 되었다. 맛있는 음식은 그날의 공기를 새긴다. 나는 이것을 제로컴플렉스 이충후 셰프를 통해 배웠고, 그는 얼마 전 가족과 함께 먹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다로베의 논나 서니 피자를 떠올렸다.
“토마토소스에 이탈리아 소시지인 살시차, 리코타, 바질, 페페론치노 등이 올라간 피자예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후에도, 코로나 때문에 가족 여행 한번 가지 못했는데 잠시나마 우리에게 이국에서의 추억을 일으키는 맛이었어요. 너무 행복했습니다.”

반건조 생선 밍글스 강민구 셰프 ㅡ 제철 재료, 전통, 새로운 색, 한국적 맛…. 한식 기반의 파인다이닝이라 하면 꼭 하나는 언급되는 수식어들 앞에 설 때면 자꾸만 눈을 가늘게 뜨고 보게 된다. 과연 KBS <한국인의 밥상>을 뛰어넘을 수 있겠습니까. 셰프분들은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인데 나 혼자 대결을 붙인다. 그 가상의 대결에서 호쾌한 한 방을 꼽자면 밍글스의 시그니처 디저트, 장 트리오다. 된장, 간장, 고추장을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더하는 발상과 그로써 이뤄내는 단맛과 짠맛의 조화가 자꾸 손이 가게 만든다. 자타공인 제철 재료, 전통, 새로운 색, 한국적 맛이 어우러진 한식 파인다이닝을 이끄는 강민구 셰프가 최근에는 반건조 생선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번 여름에 밍글스의 브랜드인 한식구 레스토랑을 재오픈하기 위해 홍콩에 갔을 때 광둥 스타일 요리를 선보이는 파인다이닝인 체어맨에 들렀는데 옥돔 류의 반건조 생선 요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분감이 살아 있게 살짝만 건조시켜 촉촉한 식감과 쫄깃함이 동시에 느껴졌어요. 찜이나 튀김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하는 점도 좋았고요. 우리나라에서도 명태, 조기, 열기, 가자미 등 여러 생선을 반건조해서 요리해왔거든요. 맛이 깊고 고소하죠. 더 다양하게, 더 자주, 더 많이 반건조 생선을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쿠시카와의 쿠시아게 바위파스타바 김현중 셰프 ㅡ 전화도 다이렉트 메시지도 막아놓은 이 작은 생면 파스타집이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들썩이나, 예약에 실패할수록 궁금한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러니 취재를 문의합니다”라고 쓴 엽서를 두고 올 요량으로 바위파스타바를 찾았다가 동네에서 가장 빠른 피시방에 앉아 수강 신청하던 스무 살 기억을 좇아서라도 기필코 예약에 성공해야겠다 다짐했다. 아직 문 열기 전 컴컴한 동굴 같은 공간에서 김현중 셰프가 홀로 노란 바윗덩어리 같은 반죽을 치대고 있었다. 반가이 맞아주는 대화 중에도 그 손만은 멈추지 않았다.
“쿠시카와에서 쿠시아게를 아주 맛있게 경험했어요. 연근, 새우, 다양한 식재료에 덴푸라와 달리 빵가루를 입혀 적절한 식감과 재료의 맛을 살려 튀기는 건데, 완성도가 매우 높아 입이 즐거웠어요. 제가 하는 요리도 화려하다기보다 파스타 면 자체의 식감과 질감에 집중하는 편이라서 매일매일 섬세하게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계속 한 군데 박혀서 혼자 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조금 소홀해질 때가 있는데, 아주 미묘한 식감과 질감으로부터 오는 차이, 퀄리티의 차이를 쿠시카와에서 경험하고 나니 다시 한번 그 중요성이 상기됐습니다. 나도 좀 더, 더,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한 끗 차이의 섬세함에 신경 써야겠다 느꼈어요. 특히 송화버섯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간장게장 에빗 조셉 리저우드 셰프 ㅡ 미식 여행의 성지 호주 출신, 3주 여행하고 일주일 팝업 레스토랑을 열며 세계 16개 도시를 다닌 경험, 그러다 발효 음식과 나물에 매료되어 한국에 정착해 레스토랑을 연 첫해 미쉐린 1스타를 수상한 완성도, 창호지 문을 디저트 플레이트로 활용하는 시선. 에빗이 흥미로워지는 여러 이유 중에서도 내가 사로잡힌 건 단 하나였다. 그가 직접 그린 그날의 식재료 그림. 오리, 넙치, 게, 버섯, 삐뚤빼뚤 그린 그림은 ‘먹는다’는 행위를 ‘맛본다’는 경험으로 끌어올리는 순수한 열정이라서, 이런 사람이 만든 음식이 맛없을 리 없다는 믿음마저 심어주었다.
“간장게장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에요. 아무리 먹어도 계속 먹고 싶은 음식이 돼버렸어요. 처음에는 조리되지 않은 게, 게다가 알이 꽉 찬 꽃게를 먹어본 적이 없어 좀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셰프로서 여러 방식의 재료 준비를 경험했지만 단순히 간장에 마리네이트된 생꽃게라는 사실이 생경하더라고요. 하지만 새로운 식재료를 맛보는 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으니까 그냥 무작정 달려들었어요. 짭짤하면서도 살짝 매콤한, 게살의 크리미한 식감 모두 제가 싫어하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음식이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게딱지에 밥을 넣고 참기름에 비벼 감태에 싸서 먹는건데, 아,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네요.”

    피처 에디터
    김은희
    포토그래퍼
    김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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