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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문 "내가 행복해야 관객이 행복할 수 있어요"

2021.09.17전희란

나는 나로 산다. 이희문의 산뜻한 결심이 진짜를 만들었다.

블랙 코트, 블랙 수트, 레더 부츠, 모두 보테가 베네타. 선글라스, 젠틀몬스터. 헤어 수트, 매치.

GQ 극도의 스트레스에 다다르면 유튜브에서 ‘씽씽’을 재생해요. NPR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요.
HM 저는 그거 보면 스트레스 받는데. 아핳핳핳.
GQ 왜요?
HM 씽씽이 해체해서 그때 그 곡들 부를 수 없으니까.
GQ 그건 저도 너무 아쉬워요. 그래도 그 당시 이야기해도 되나요?
HM 물론이죠. 당시엔 즐거웠으니까요.
GQ 그 영상으로 이희문을 알았고, 그 뒤에 낸 앨범, 공연 모두 좋아해요. 그런데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영상에는 뭔가가 있어요. 씽씽이 뜬금없는 상황에 불시착한 느낌이랄까? 간혹, 완벽히 준비한 공연보다 더 신나는 리허설도 있잖아요.
HM 아트 마켓 APAP의 월드 뮤직 페스티벌 참가 차 미국에 갔는데, 딱 하루가 비었어요. 그때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의 밥 보일렌 PD가 씽씽이 미국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거죠. 그 방송이 그렇게 영향력 있는지도 몰랐어요. 15분만 공연하면 된다고 해서 4시간 동안 기차 타고 간 기억이 생생해요. 엄숙하고 백인들의 도시로 상상한 워싱턴 DC는 흑인 천지였고, 프로듀서는 어제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맞아줬어요. 잠도 덜 깼고, 목도 안 풀린 부스스한 상태인 데다 마이크는 수음만 되어서 우리가 노래하는 목소리도 들을 수도 없었어요. 여러 모로 난감했죠. 어차피 여기서 우리 알아보는 사람 없으니 관객 신경 쓰지 말고 우리끼리 신나게 놀자, 그런 마음으로 그냥 놀았죠.
GQ 역시. 그 뜬금없는 상황, 그리고 누가 뭐라든 내식대로 놀겠다는 태도가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HM 전통 음악은 관객과 호흡할 일이 많아요. 거기서 나오는 즉흥적인 바이브가 있죠. 그리고 비주얼을 기괴하고 우스꽝스럽게 치장한 것도 한몫했어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죠.
GQ 관객으로서 정말 궁금해요. 무대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란 어떤 걸까?
HM 씽씽이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로 알려진 뒤 처음 한 클럽 공연이 아직도 생생해요. 표는 8분 만에 매진됐어요. 공연 전부터 객석이 술렁술렁하는데 벌써 마음이 울렁거리더라고요. 떼창하고 싶어서 안달난 모습이 마치 하이에나 떼처럼 보였어요.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서고 등골이 서늘해졌죠.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관객 모두가 따라 부르더라고요. 아마도 그때였을 거예요. 잠깐 저 세상 다녀온 기분이 들었던 건. 그 많은 에너지를 이 작은 몸으로 받아서 파도를 뒤집듯 다시 그쪽으로 분출하는데 영혼이 확장되는 듯한 경험을 했어요. 상상해봐요. 10대부터 70대까지 뒤섞여 민요를 따라 부르는 희한한 광경.
GQ 씽씽의 모토가 된 게 2014년 ‘쾌’ 공연이었죠?
HM 맞아요. 안은미 연출의 ‘쾌’에서 한국 현대판 굿을 주제로 과감한 콘셉트와 비주얼을 시도했고,그 전에는 ‘잡’이라는 공연이 있었어요. 나에게 맞는 무대, 의상, 콘셉트를 만들어 공연하겠다, 제대로 된 나를 보여주자가 목표였죠. 남자 사회, 여자 사회. 한국 사회가 가진 통념 있죠? 그동안 가지고 있던 관념을 모두 털어버리자고요. 어차피 너도 나도 다 다른데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가 가진 보석이 무엇인지 알아봐주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GQ 그게 벌써 7년 전이라니. 우리는 이제야 젠더 뉴트럴이란 말을 겨우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는데 말이에요.

블랙 수트, 벨보이. 펀칭 디테일 톱, 드리스 반 노튼. 스웨이드 부츠, 생 로랑. 선글라스, 젠틀몬스터. 헤어 수트, 매치.

HM 안은미 선생님 덕분이에요. 그가 자고 있는 의식을 깨워주었어요. 살아서 돌아다녀도 의식은 잠들어 있는 사람이 많거든요. “너 마돈나 되고 싶은 거 아니니? 내가 방패가 되어줄 테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제가 틀린 게 아니라고 용기를 주셨죠. ‘쾌’는 성이 없는 박수무당 콘셉트였는데, 전통 음악 신에서는 상당히 파격이었어요. 무대에 나를 올려놓고 잔인한 실험을 거행한 셈이죠. 이렇게 실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과정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괜찮다 괜찮다 되뇌었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병도 얻었죠.
GQ 안은미 선생님을 만난 모두가 의식이 깨지는 않았을 거예요.
HM 의식을 깨기까지 걸린 시간이 7년이에요. 한번은 <미생>을 보는데 오 과장이랑 안은미 선생님이 겹쳐 보였어요. 오 과장이 끊임없이 장그래를 깨우치는 역할을 하잖아요. 처음엔 못되게 하는 것 같은데 오해죠. 드라마를 보다 눈물이 막 났어요. 선생님께 장문의 문자를 보냈죠.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깨닫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 것 같네요.”
GQ 무언가가 열린 순간이었군요. 그랬더니 안은미 선생님은 뭐라시던가요?
HM 7년 걸려서라도 알았잖아. 죽을 때까지 모르고 가는 사람도 많아. 내가 다 고맙다, 라고요.
GQ 잔인한 실험이란 게, 복불복이잖아요. 잔인한 실패가 남겨질 것은 두렵지 않았어요?
HM 결과가 좋든 안 좋든 상관없어요. 거기서 내가 뭘 얻느냐, 그게 중요하죠. 공연은 사실 나를 위한 거지 관객을 위한 게 아니에요. 관객이 착각하고 오는 거예요. 내가 행복해야 관객이 행복할 수 있어요. 관객을 위해 서비스하겠다고 싫은 걸 억지로 한다? 요즘은 관객들도 똑똑해서 다 알아요. 그러니까 내가 행복해야 해요. 자꾸 마니악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 같아요.
GQ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기로 한 뒤로, 본인의 사랑스러움이 눈에 들어오던가요?
HM 음…, 어렴풋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정도예요. 말보다는 행동을 좋아해요. 경험하거나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굳이 말을 늘어놓지 않고요. 주로 침묵하는 편이에요.
GQ 씽씽을 기점으로 전통 음악이 어쩌다 힙한 장르가 되었죠. 그런데 대개는 분석하기에 급급하더라고요. 느끼기도 전에.
HM ‘쾌’ 작업할 때 음악 감독한테 특별히 주문한 건 내가 춤출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어요. 흔들면서 노래하고 싶으니까, 춤출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달라고요. 민요는 원래 질펀하게 노는 자리에 놓여 있던 음악이에요. 그런데 이 시대에 오니 다들 엄숙하게 대하잖아요. 민요를 원래 자리, 노는 곳으로 데려다 놨을 뿐 어떤 사명감으로 음악을 한 게 아니에요. 그런 걸 가지고 자꾸 힙으로 정의하는 것 같아요. 힙이란 마니아 문화로 정착되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느낀 건데, 거기엔 마니아 문화가 확실히 정착되어 있더라고요. ‘내가 좋으면 그만’ 그런 식으로.
GQ 유학은 왜 일본으로 갔어요?
HM 아버지가 재일 교포라 언어가 들리니까 만만했어요. 그때 미국으로 갔어야 했는데….
GQ 미국 갔으면 뭔가 달라졌을까요?
HM (정수리를 뚜껑 여는 시늉을 한다.) 꼭지가 이렇게 열렸겠죠. 7년 걸릴 게 단축되었을 거예요. 유학 가기 전에 친구 따라 신점을 봤는데 그때는 불신이 있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 나에 대해 뭘 알겠어? 들어가자마자 무당이 제 어깨를 탁 치면서 힘 빼라고 하는 거예요. 무슨 얘길 해도 안 믿을 거 알지만 들어, 라는 식으로 너는 아주 큰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그래야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들을걸. 그게 너무 후회돼요.

어깨에 걸친 재킷, 아워레가시. 블랙 니트 톱, 2 몽클레르 1952. 벨트 디테일의 체크 스커트, 푸시버튼. 링, 키픔. 헤어수트, 매치.

GQ 그러면 마돈나가 됐을까요?
HM 그보다 더한 게 됐겠죠. 이희문 가가? 아핳핳핳!
GQ 후회 같은 건 안 하는 성격일 줄 알았어요.
HM 사실 후회 안 해요. 그때 태평양을 건넜다면 더 일찍 재밌게 살았겠다 싶은 정도죠. 노래하고 리듬 타고, 춤추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무기로 갈고 닦은 시간으로 10년을 쓴 것에 대해 후회 없어요. <눈이 부시게>에서 김혜자 씨가 그러잖아요. 등가교환의 법칙! 하하하핳.
GQ 드라마에서 자주 교훈을 얻는군요. 요즘은 어떤 드라마 봐요?
HM <결혼작사 이혼작곡>.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소위 막장 드라마라고 하지만 이게 진짜 현실인 거 같다. 가끔은 섬찟섬찟해요. 임성한 작가는 대단한 사람이에요. 누가 뭐라든 초지일관 자신의 세계관을 끌고 왔잖아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이 말이 딱 맞아요.
GQ 소문에 요즘 연기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요.
HM 핳핳. 무대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니까, 보통의 배우처럼 말고 내 언어로, 내 노래로 표현하는 것에 연기적인 요소가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연기하는 사람처럼 연기해야 된다는 관념을 버리자. 내 언어를 써도 된다. 연기적 요소를 더한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미생에서 완생으로 가기 위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GQ 젠더 뉴트럴 시대, 비로소 이희문의 시대가 온 것 아닐까요?
HM 우리 몸은 도구일 뿐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니 살아 있는 영혼을 위해서 명상을 해야 해요. 영화 <아바타>, <인터스텔라>에서처럼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 내 안에 있는 나를 만납시다!
GQ 내 안의 나를 직면한다는 게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더라고요.
HM 내 안의 내가 얼마나 세상의 관념이란 레이어로 두껍게 쌓여 있는가. 나를 직면하기 무섭다는 감정은 거기서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착하다는 말이 좋은 말이 아니에요. 그만큼 자기 자신을 버리고 세상에 순응하고 산다는 거니까.
GQ 나로 살기 위해, 여전히 결심이 필요해요?
HM 아니요. 할 만큼 하고 있고, 충분히 재밌고 행복해요. 그런데 여전히 고독하긴 해요. 그게 외로움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다만, 지금은 그 고독을 즐기는 단계에 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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