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유럽 4대 리그 더비 매치, 꼼꼼히 정복하기

2021.10.12GQ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유럽 축구 4대 리그의 더비 매치 5.

엘 클라시코
‘지상 최대의 축구 더비’라고 불리는 엘 클라시코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의 더비 매치를 일컫는다. 두 클럽의 라이벌 관계는 단순히 축구를 넘어 지역, 정치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역사에서 오랜 앙숙 관계였다. 수도이자 왕실이 있는 마드리드는 권력의 중심인 카스티야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였고, 이에 반해 바르셀로나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항구 도시로서 부의 중심지인 카탈루냐 지방의 거점이었다. 스페인 내전 이후 권력을 쥔 카스티야가 카탈루냐를 탄압했고, 1930년대 정권을 잡은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카탈루냐를 억압하면서 카탈루냐는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분리 독립에 대한 요구가 쏟아졌다. 이 때문에 두 지역의 자존심 대결은 유독 축구 경기에서 강하게 표출되어 왔다. 대표적으로는 1943년 코파 델 레이 준결승전에서 1차전에서 대패한 레알 마드리드가 2차전 11:1로 바르셀로나에 승리한 사건이다. 바르셀로나 라커룸에 들어온 정부 고위 관료들의 협박과 노골적인 승부조작으로 두 클럽의 감정의 골은 더욱 심해졌다. 이후 바르셀로나의 부주장이었던 루이스 피구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라이벌 의식은 극에 달하게 된다. 양 팀 간의 최근 맞대결은 레알 마드리드가 3연승을 하면서 아주 근소한 우세를 보이고 있다. 매 시즌 우승 경쟁을 하는 두 팀이라 시즌 중 맞붙는 경기를 이겨야 우승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 더 치열하게 펼쳐진다.

통산 전적 98승 52무 97패 레알 마드리드 우세

노스웨스트 더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노스웨스트 더비는 영국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라이벌 더비 매치다. 두 팀은 1892년 리버풀이 창단된 이래 100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수없이 맞붙었다. 창단 후 줄곧 안정세를 보이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달리 리버풀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2부 리그로 강등되는 등의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던 1962년, 리버풀에 빌 샹클리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 두 팀의 악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때부터 서로를 넘어야 우승 트로피를 차지할 만큼 치열한 경기를 펼친다. 경기 자체도 흥미롭고, 배경은 화려하고, 다툼은 격렬하다. 같은 시기에 전성기를 보내면서 선수 간의 충돌은 기본이고, 감독과 감독, 선수와 팬, 팬들 간의 충돌이 매 경기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게리 네빌은 주장 완장을 찬 뒤 리버풀에 대한 적대심을 드러냈는데, “나는 리버풀과 관련된 거라면 뭐든 참을 수 없다”라는 말을 하며 공개적으로 악감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 리버풀의 루이스 수아레스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파트리스 에브라의 충돌은 노스웨스트 더비의 치열함을 대변한다. 선수들 못지않게 팬들도 자주 맞붙었다. 두 팀이 경기할 때마다 팬들 간의 패싸움이 벌어지면서 현지 경찰 당국은 많은 병력을 배치하고, 경기 시간을 변경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적도 수차례에 달한다. 극과 극인 두 팀은 만날 때마다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남긴다. 두 팀의 지역 라이벌로는 각각 맨체스터 시티와 에버튼이 있다.

통산 전적 81승 58무 68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우세

북런던 더비
단순히 지역 라이벌이었던 아스널과 토트넘은 잉글랜드의 1부 리그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승격 스캔들이 일어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원수지간이 됐다. 이는 과거 1914/15 시즌이 치러지던 도중, 1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었던 리그가 재개되면서 당시 2부 리그 5위였던 아스널의 1부 리그 승격, 1부 리그 20위였던 토트넘이 강등된 사건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1919년, 1부 리그 19위였던 첼시는 잔류했고 2부 리그 1, 2위 팀은 승격, 남은 한자리를 놓고 1부 리그 꼴찌팀인 토트넘과 아스널을 포함한 2부 리그 3위부터 7위였던 6팀이 입후보해 투표로 결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된다. 결국 투표에서 아스널이 승리해 1부 리그로 승격된다. 이때부터 아스널은 2021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2부 리그로 강등되지 않는 1부 리그 최장기간 생존 기록을 세우는 동시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과 함께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꾸준한 성적을 낸다. 반면 아스널 대신 2부 리그로 강등된 토트넘은 다시 승격을 해내지만, 오랜 기간 중위권에 머무르며 22년 동안 리그 순위에서 아스널을 넘지 못한다. 아스널과 토트넘의 질긴 악연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2001/02 시즌을 앞두고 북런던 더비에 기름을 붓는 일이 발생한다. 토트넘이 발굴한 유스 출신에 주장까지 지낸 수비수 솔 캠벨의 아스널 이적이다. 캠벨은 토트넘에 큰 애정을 품고 있었지만, 팀이 우승권에 들지 못하자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을 원하면서 이적이 성사된 것이다. 문제는 팀의 리더이자 핵심이었던 솔 캠벨의 이적이 자유계약이었기 때문에 토트넘은 아스널로부터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후 아스널은 캠벨의 합류 덕분에 리그와 FA컵을 우승하면서 더블을 달성했고, 그 유명한 ‘무패 우승’이라는 업적도 세우게 된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토트넘 소속이었던 이영표는 2015년 토트넘에 입단한 손흥민에게 빨간색 옷을 입고 밖에 나가지 말라는 등의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통산 전적 79승 51무 60패 아스널 우세

데어 클라시커
독일어로 ‘전통의 경기’라는 의미의 데어 클라시커는 이름과 달리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더비 매치다. 누가 뭐래도 독일 분데리스가의 최강자는 바이에른 뮌헨이다. 그러나 독주 체제가 길어지면 균열이 생기는 법. 바이에른 뮌헨이 방심하는 사이 1990년대를 기점으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강력한 우승후보로 성장한다. 때문에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리그 우승 경쟁에서 라이벌리가 형성된 더비라고 볼 수 있다. 오트마르 히츠펠트 감독의 지휘 아래 황금기를 맞이한 도르트문트는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낸 뒤, 마티아스 잠머를 비롯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해 1994/95, 1995/96 시즌 바이에른을 막아내고 분데스리가 2연속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게다가 1996/97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컵까지 들어 올리면서 두 클럽의 전세가 한때 뒤집히기도 했다. 이듬해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이 도르트문트에게 패하며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전부 놓치게 되자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은 점점 타오르게 된다. 2010년대 들어 도르트문트가 성적과 별개로 형편없는 재정 관리로 클럽이 파산 위기에 몰리자, 바이에른 뮌헨은 이 틈을 타 도르트문트의 핵심 멤버들을 영입하기 시작한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마츠 후멜스, 마리오 괴체 등의 이적은 팬들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 계기가 됐다. 이후 몰락한 도르트문트를 부활시킨 위르겐 클롭 감독의 영향으로 다시금 경쟁 구도를 이어가는 중이다. 현재 리그 9연패를 달성하며 독주를 이어가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과 리그 내 유일한 대항마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간의 경기는 분데스리가 내 최고의 빅 매치인 건 분명하다.

통산 전적 64승 33무 33패 바이에른 뮌헨 우세

밀라노 더비
이탈리아 밀라노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인터밀란과 AC밀란의 경기를 가리킨다. 밀라노 대성당에 있는 석상의 이름을 따와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라고 불리기도 한다. 두 클럽의 관계는 기묘하다. 우선 인터밀란의 시작은 AC밀란이다. 무슨 말이냐면, 인터밀란은 AC밀란 초기에 내부 반대 세력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창단 때부터 자연스럽게 라이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같은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해 홈/원정 구분도 없다. 인터밀란은 주세페 메아차 스타디움, AC밀란은 산 시로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 A가 강세를 보였던 8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두 팀이 밀라노에 가져온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만 10개에 이를 정도로 AC밀란과 인터밀란은 세계적인 명문이었다. 수십 년간 수십 번의 더비를 보고, 더비 속에서 살아온 이탈리아인들에게 밀라노 더비는 단지 축구 경기가 아니라 두 팀의 선수들, 클럽 회장들, 수백만 팬들 간의 자존심 승부나 다름없다. 최근 두 팀의 명성은 과거 유럽을 제패하던 시절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진 모양새지만, 이탈리아어로 검은색과 파란색을 상징하는 네라주리를 입은 인터밀란과 붉은색과 검은색을 상징하는 로쏘네리를 입은 AC밀란의 더비 매치는 여전히 엘 클라시코에 버금갈 정도로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주목을 받는다.

통산 전적 84승 67무 77패 인터밀란 우세

    에디터
    글 / 주현욱(프리랜스 에디터)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