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열 "너 뭐하는 사람이냐고 하면 포토그래퍼라고 했어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류준열 "너 뭐하는 사람이냐고 하면 포토그래퍼라고 했어요"

2021-11-24T15:31:49+00:00 |interview|

류준열이 거기 있었다.

캐멀 컬러 더블 브레스티드 시어링 코트 5백만원대, 울 캐시미어 블렌드 케이블 스웨터 25만원대, 데님 팬츠 40만원대, 캐멀 레이스업 부츠 가격 미정, 모두 폴로 랄프 로렌.

GQ 2년 전 다른 자리에서 여름에 만났는데 이번에는 겨울에 만나네요. 그사이 준열 씨는 무엇이 달라졌을지 궁금했어요.
JY 그러게요. 2019년에는 코로나 전이라서 미국에 왔다 갔다 할 때였는데.
GQ 표면적으로 감지한 변화 중 하나는 사진이었어요. 원래도 카메라를 늘 지니고 다닌다는 건 알았지만 좀 더 본격적이어진 것 같더라고요?
JY 맞아요. 그전에도 관심은 있었는데 딱 그 시기,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하게 됐죠.
GQ 이 사진집을 들고 와 봤어요. 준열 씨의 첫 사진집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전부 2019년 미국에서 찍은 사진이더라고요.
JY 오, 어떤 사진 제일 좋아하세요?
GQ 저는 제일 첫 장의 벤치에 앉은 남자 뒷모습 사진.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이 사람이 뭘 하고 있을까.
JY 저도 이 사진 좋아해요. 이때 한 두세 장 찍었나? 툭탁 찍고 빠졌는데. 저는 주로 그런 식으로 사진을 찍었던 것 같아요. 느낌이 올 때 탁.
GQ 당시 미국행 이유는 “단기 어학연수”였잖아요.
JY 그건 그냥 듣기 좋게 말하느라고. 단기 어학연수는 실패, 대실패예요.

GQ 수업을 착실히 안 들었나 봐요?
JY 들었는데, 학교에 앉아서 공부하는 게 제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GQ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도 어학연수는 명목인 것 같고, 류준열 씨가 스스로에게 주는 휴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긴 했어요.
JY 휴가는 아니었어요. 저한테 휴가는 일주일 정도 리조트에서 쉬다 오는 거고, 6개월씩 떠난 건 새로운 뭔가를 하려고 간 거죠. 왔다 갔다 하느라 진득하니 있은 건 3개월 정도밖에 안 되지만, 여하튼 그때 사진을 너무 열심히 찍어서…. 거의 뭐, 아침에 일어나서 해 질 때까지 사진 찍고, 밤에는 사진 정리하고, 해 뜨면 다시 사진 찍고. 이런 일상이었다 보니까 휴가라고 하긴 좀 그래요.
GQ 새로운 뭔가를 하고 싶었군요.
JY 네. 사진도 찍고 싶었고.
GQ 류준열이 찍은 순간들을 보는데 제 눈에는 유독 빛과 그림자라는 요소가 눈에 띄더라고요. 그중에서도 그림자.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어떤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상실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감정처럼 느껴졌어요.
JY 이때 사진들, 지금 바라본 사진들이 그 찰나이긴 해요. 왜냐면 대부분 해가 지는 순간에 찍은 거라서, 그리고 그 시간이 제일 좋은 시간이라서, 그때는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죠. 해가 지기 시작하면 30분이면 껌껌해지니까 그땐 뭐 신경 쓸 것도 없이 목숨 걸고 찍어요. 사진이라는 게 결국에는 그 순간을 잡아내는 것,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 잠깐이 지나가면 사라져버리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집착이 있긴 하죠, 네. 그런데 그 집착이 사진에는 묻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GQ 그래요?
JY 아무래도, 영원하다는 건 말 그대로 영원하기 때문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데, 집착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으니까.
GQ 흥미롭네요. 모순되는 것 같으면서도 말이 돼요. 사진이라는 건 순간을 잡아내는 수단 혹은 대상인데, 사진을 찍으면서 이 순간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는 게.
JY 그렇죠.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이제, 그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거기 있었다’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이건 내가 찍었으니까. 내가 거기 있었다.
GQ 아주 중요한 지점이네요.
JY 그게 제일 중요해요. 이 사진 자체가 내 존재의 유 有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는.

GQ 사실 사진집 속 작가의 말에서 준열 씨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카메라 앞에서 하는 나의 이야기는 어딘가 모르게 점점 나와 멀어지고 있었다. 나였으면서 내가 아니었고 다시 나였다.” 이게 이런 마음이었군요.
JY 한 5년 일하면서,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결국에는 대중과의 소통이나 작품으로서 만나는 나의 모습들에 괴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이건 꼭 배우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남들 앞에서 가면을 쓰고 있는데 그에 대해 괴리감을 느끼는 찰나에 이런 (사진) 작업들을 하면서 좀 털어버릴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만 하더라도 연기하는 것보다 사진 찍는 게 더 좋았고, 누가 나한테 너 뭐하는 사람이냐고 하면 포토그래퍼라고 했어요. 그게 다른 의미가 아니고, ‘나는 배우다’, ‘나는 아티스트다’, ‘나는 뭐다’, 이런 어떤 하나에 국한되어 스스로를 가두는 것보다, 그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단 거예요. 아, 나는 배우가 아닐 수도 있겠다. 개중 잘하는 게 배우니까 지금 배우를 하지만 어느 날 아닐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좀 자유로운 사람이 된 것 같아요.
GQ 저 문장을 보며 준열 씨의 미국행을 ‘나를 찾는 여행’이 아닐까 여겼는데 그것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나를 찾는다기보다 그냥, 그냥 정말 ‘내가 여기 있었다’ 나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네요.
JY 맞아요. ‘찾는다’고 하면 ‘그럼 지금 나는 내가 아닌 건가?’ 싶은데 그건 아니고, 네, 그냥 내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거죠.
GQ 그 시간을 통해 충전이, 환기가 좀 됐어요?
JY 네. 그래서 요즘 새로운 운동을 하는 것도 새로운 재미를 찾아서 하는 일환이고, 그 과정에서 적어도 ‘내가 이래도 돼?’ 싶은 스트레스가 없죠.
GQ 미국 다녀온 후로 영화 <외계+인>, <올빼미>를 작업 중이고, 가장 먼저 대중과 만난 작품은 드라마 <인간실격>이었죠. 작품을 선택하는 데 여행이 영향을 미친 점도 있나요?
JY 재미없으면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더. 예전에는 아쉬운 점이 있어도 다른 이유가 붙어서 하기도 했는데, 그것들이 점점 더 가지가 쳐지고 그냥 ‘이거 하나만 보고 간다’ 이렇게 뭔가 하나가 꽂히면 할 수 있게 됐어요. ‘이것’이 뭔지 딱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냥 더 심플해졌어요.

GQ 이것도 그런 잔가지를 쳐내는 변화의 흔적인지 궁금해지는데, <인간실격> 메이킹 영상을 보면 준열 씨만 항상 대본을 들고 있더라고요?
JY 아! 푸흐흐흐. 모르시는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보여요? 대본을 들고 있는 게.
GQ 그냥, 대본 보네. 슛 들어가기 전까지 보는구나.
JY 학구적인 이미지? 열심히 하는 이미지?
GQ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허진호 감독님 인터뷰를 보고 알았죠.
JY 어? 허진호 감독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GQ “현장에 와서 대사를 외우는 식으로 자유로운 연기를 추구하는 류준열”이라며 재즈 같다 했어요.
JY 와, 포장을 잘해주셨네요.
GQ 3년 전 영화 <돈>의 박누리 감독님은 당시 준열씨가 즉흥적으로 연기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열심히 준비해온 걸 보고 놀랐다고 했단 말이죠. 그런데 이번 <인간실격>은 말 그대로 재즈처럼 보다 자유로워진 것 같은 거죠. 그게 재밌었어요.
JY 박누리 감독님도 잘 봐주셨고, 허진호 감독님도 잘 봐주셨어요. 이게 설명하기가 참 애매한데, 이런 차이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장르 영화냐, 아니면 드라마의 장르냐. <독전>, <뺑반>같이 장르 영화는 철저하게 계산해서 이런 장면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지점이 있고, <인간실격>의 경우에는 그런 계산을 통한 게 아니라 상황과 감정에서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즉흥적인 모습을 살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허진호 감독님과 잘 맞았고, 전도연 선배님도 그런 데 대해 전혀 거리낌 없이 연기를 하시니까 저도 다행히 그렇게 할 수 있었어요.
GQ 달라졌다기보다는 원래 상황에 열려 있는 방식도 좋아하는군요.
JY 원래 그런 연기를 좋아하는데 할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응답하라 1988> 때 그렇게 연기했죠. <리틀 포레스트> 때도 그랬고. 공통점이 장르 영화가 아닌 (드라마) 작품인 거죠. 오랜만에 <인간실격>을 하면서 해소가 됐어요.

GQ 요즘 새로운 재미를 찾아 하는 새로운 운동이라는 건 골프죠? ‘축구 덕후’가 어쩌다 골프를 치게 됐어요? 분위기가 많이 다른 스포츠 아닌가요?
JY 다르죠. 달라서 한참 (골프를) 못 했는데 지금은 하고 있어요. 가볍게 얘기하면 기존에 알던 스포츠랑 달라서 흥미가 생겼어요. 골프를 죽어 있는 공을 살리는 스포츠라고도 하잖아요. 보통은 돌아다니는 공, 살아 있는 공을 쫓는데. 그리고 세상살이와 비슷한 느낌도 있고. 마음대로 안 되고, 너무나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복잡하고. 그러다 보니까 재밌어요. 수련하는 기분도 있고.
GQ 베스트 스코어는요?
JY ‘백돌이’는 깼습니다.
GQ 그럼 요즘 류준열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는 모습은 무엇이에요?
JY 내일 모레 가서 또 작업할 건데, 기존 작업과 정반대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GQ 뭘까, 정반대가.
JY 좀 차가운. 좀 딱딱하고 차가운 작업들에 눈이 가요. 가는 길에 또 따뜻함이 있기도 한데, 차가운 쪽으로 가고 있어요.
GQ 음, 얼마나 차갑고 딱딱할지 궁금해지네요.
JY 전쟁 사진 찍는 건 아니고요.
GQ 그래도 그 카메라 뒤에는 류준열이 있겠네요.
JY 아 그럼요. 내가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