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을 확보해야만 차량을 구입할 수 있는 차고지 증명제가 제주에서 시행 예정인 가운데, 둘러본다. 주차 근황 어떻습니까?
“ 주차장이 멋있어요.” 최근 완공되어 화제가 된 송은아트센터에 다녀온 젊은 건축가 C에게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아닌 게 아니라 송은아트센터의 주차장은 처음부터 눈에 띈다. ‘파사드’라 부르는 이 건물 전면에는 보통 건물 전면에서 보이는 유리 현관 대신 양쪽 귀퉁이에 작은 홈만 있다. 건물을 등졌을 때 좌측이 입구, 우측이 주차장 입구다. 길 건너에서 보이는 건 주차장뿐이니 인상적인 전면이다. 주차장으로 차를 집어넣는 길도 널찍하고 번쩍거린다. 최고의 주차장이라 하기는 머쓱하나 서울, 특히 강남권의 다른 주차장들과 다른 건 확실하다.
“새 차가 긁혀서 마음의 상처가 컸습니다.” 출고 한 달도 되지 않은 테슬라 모델 Y 롱레인지를 크게 긁은 회사원 M의 푸념이다. 보통 주차장은 이런 상황에서 미움의 대상으로만 등장한다. “여의도의 오래된 주차장들은 진입로가 좁고 경사가 가팔라요. 차를 긁어서 차 밖으로 나가봤더니 제 차가 긁힌 곳에 페인트 자국이 엄청 많았어요.” 요즘 나온 차를 타며 여의도나 종로 등 구도심의 오래된 건물 주차장에 가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이야기다.
“빙빙 돌다 보면 뭐 이렇게 만들어놨나 싶죠.” 다양한 운전 경험을 자랑하는 자동차 저널리스트 김태영에게도 주차 경험을 물으니 여러 회상이 돌아왔다. 그가 꼽은 난감한 주차장은 크게 둘이었다. 하나는 롯데월드타워 주차장. “한 층을 내려가려면 한참 돌아야 하고, 주차를 하기 위해서 가야 하는 거리가 너무 길어요. 그것도 차에 무리가 가는 일인데.” 다른 하나는 청담동의 어느 빌딩. “거기는 지하 6층까지 한 번에 내려간 다음에 역으로 올라오는 구조예요. 내려가는 길이 엄청 좁고 가팔라서 차 긁기 십상이에요.” 그런 주차장에 아우디 R8처럼 넓고 낮은 자동차를 몰고 내려가면 혹시 긁을까 봐 서킷 못지않은 긴장감이 든다. 겁이 나서 촉촉해진 손바닥으로 스티어링 휠을 쥐고 고민하게 된다. 왜 주차장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주차장은 규격이 대체로 정해져 있어요.” 주택과 상업 시설, 대형 건축과 소형 건축 등 다양한 건축을 진행한 관록의 건축가 H의 말이다. “규격이 정해져 있으니까 건축가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요.” 옛날 건물은 옛날 규격에 맞춰서 만들었기에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나쁜 주차장에 대해서는 점잖게 언급을 피했으나 좋은 주차장에 대해서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종로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에 가보세요. 아주 쾌적하게 대접받으며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그 회사 회장님이 그런 걸 중요하게 여긴다고 볼 수도 있겠죠.” 실제로 가보니 역시 쾌적했다. “실무 건축 설계에서는 주차를 알아야 디자인이 된다고 볼 수도 있어요.” 음식평론가 이용재는 작가가 되기 전 프로 건축가였다. 그는 미국에서 주차장 설계만 4년 정도 해서 주차장 건축에 일가견이 있었다. “다양한 제약 안에서 효율과 경제성을 생각하는 건 좋은 디자인 공부가 되기 때문에 주차장 건축은 좋은 공부가 돼요. 설계 회사에는 임원이 되지 못하고 부장으로 남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하나씩 자기 전문 설계 분야가 생기죠. 그중에는 주차장 전문가도 있고요”라는 말과 함께 그는 주차장 건축에 대해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좋은 주차장의 조건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네요.” 그가 꼽은 첫 번째 조건은 법규 준수였다. “건물이 수용할 수 있는 차량의 대수 등 주차장과 관련된 여러 가지는 법으로 정해져 있어요. 그 법을 준수하는 게 우선이죠. 우리가 쓰는 주차장 중에서 경사가 너무 가파르거나 동선이 애매해서 ‘왜 이렇게 만들었지’ 싶은 것들도 그 법규를 통과했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두 번째 조건이 중요하다. “건축으로서의 완성도가 있어야겠죠. 주차장 도면을 보면 주차 부스가 45도로 틀어졌거나 해서 주차하기 쉬워 보이는 곳이 있어요. 그런 곳은 사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해서 주차장을 잘 짠 경우에 속합니다.” 주차장 버전 UI나 UX라고 볼 수도 있을까? “그런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라고 이용재가 답했다. 주차장 건축 경험이 풍부한 이용재가 꼽은 서울 인근의 좋은 주차장은 어디일까. “새로 생긴 이케아 주차장이 괜찮았던 것 같아요. 기흥과 광명과 고양 이케아에 모두 가봤는데 주차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곳은 진입로와 출입로의 경사와 넓이가 적당했고 차량 사이 간격도 불편함이 없었다. 특히 이케아는 ‘가구를 실어야 한다’는 조건을 염두에 둔 듯 기본적으로 차 사이의 칸이 다른 주차장보다 조금 더 떨어져 있었다. 나쁜 주차장은? 그는 목동 현대백화점 옆에 있는 어느 건물을 예로 들었다. “거기는 진출입로가 사람이 다니는 좁은 나선 계단처럼 폭이 아주 협소했어요. 출차할 때 정체가 생기니까 좁은 경사로에 기울어진 채 멈춘 모양새가 되더군요. 약간의 폐소공포증이 올 정도였습니다. 꼭 그런 게 아니어도, 앞으로의 주차장은 장애인 접근성이나 전기차 충전 등의 요소를 더 고려해야 할 거예요.”
“주차장은 차 한 대만큼 면적의 모듈이 정해져 있고요, 건축주들은 할 수 있는 한 면적을 작게 쓰려 해요.” 역시 실제 건축 설계를 하고 있는 건축가 조세연의 말에 따르면 불편한 주차장은 결국 건축주의 뜻이다. “주택인지 근린생활 건물인지에 따라 한 건물 안에 의무적으로 설정해야 하는 주차 대수가 정해져요. 그 모듈에 따라서 건물의 모양이나 디자인 등 요소가 제한을 받기도 하고요.” 이렇게만 들으면 주차장은 건축주에게도 건축가에게도 짐인가 싶어진다.
“그런데 건축가에게는 주차장 건물 설계에서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들이 있어요.” 조세연의 말을 들어보면 사람은 어디서나 기회와 재미를 찾아낼 수 있다. “주차장은 건물 특성상 바람, 열, 비 등을 막아줘야 한다는 건물의 숙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져요. 기존 건축에서의 숙제이자 제한이었던 요소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입면을 도전적으로 쓸 수 있고요. 이게 건축가들에게 아주 재미있는 기회가 됩니다.” 그가 알려준 ‘재미있는 주차장 건축’의 주인공 역시 송은아트센터를 설계한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다. 그들은 2010년 마이애미의 링컨 로드 1111에 파격적인 주차장을 지었다. 이 주차장은 외벽 없이 기둥과 바닥만으로 이루어져 카드로 만든 집처럼 생겼다. 현대 사회의 건축은 기능적인 쓸모를 넘어 건물 자체가 명소가 되어야 한다는 숙제를 떠안는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주차장까지 명소로 만들었으니 실로 건축의 마법사이자 (건물을 명소로 만들어 건물 시세도 올렸으니) 디벨로퍼의 뮤즈다. 앞으로의 주차장 건축은 어떻게 될까. 시대 변수를 고려하면 크게 두 가지 정도 가설을 그려볼 수 있다. 하나는 전기차 시대. 전기차가 더 확충된다고 생각하면 주차 슬롯마다 자동차 충전시설이 놓일 수 있고, 그러면 앞으로의 주차장은기존 자동차의 주유소 기능을 흡수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자율주행 시대다. 자율주행의 먼 미래는 아무도 차를 소유하지 않은 채 자율주행하는 차들을 택시처럼 잡아 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차들은 개인 주차장이 아니라 버스의 기점처럼 특정 장소에서 대기하다 출동하면 그만이다. 그때 개인은 주차의 짐에서 해방되고, 그 말인즉슨 개별 건물의 주차장이 아예 필요 없어져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 세상이 오면 남는 주차장 부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시대의 숙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글 / 박찬용(앤초비 북 클럽 운영자)
- 피처 에디터
-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