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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알코올?

2022.01.13전희란

논알코올도 술인가를 따지는 논쟁은 촌스럽다. 요즘 알코올 빠진 드링크의 맹랑한 시도는 ‘취해야 제맛’이라는 술꾼들의 신념에 매콤한 펀치를 날리고 있다.


토요일 오후 세 시였다. 이 시간이면 햇빛 색깔이 화이트 와인처럼 변한다. 와인 한잔 마시기 딱 좋은 시간이라는 거다. 하지만 나는 알코올 프리 스파클링 와인을 마셨다. 써야 할 글이 하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감 때면 와인 한 잔 우아하게 마시고 자판을 두드리는 작가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시면 바로 졸린다. 알코올 프리 와인은 이럴 때 딱 좋다. 술 마시는 기분을 내면서 알코올로 인한 진정 작용을 피할 수 있다. 게다가 요즘 무알코올 와인은 맛도 제법 괜찮다. 이날 내가 마신 유기농 샤도네이로 만든 알코올 프리 와인의 경우 잔으로 냄새를 맡을 때는 향이 조금 약했다. 하지만 입에 넣으면 상큼한 과일 향이 가벼운 탄산과 함께 부드럽게 혀와 코를 자극했다. 옆에서 진짜 와인을 마시던 주당 친구가 한 잔 시음해보고서는 한 잔 더 마셔도 되겠냐고 물어볼 정도의 맛이었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뿌듯했다. 술에 약한 사람이라면 아마 알 거다. 다들 술을 마실 때 콜라나 사이다를 마시는 것과 논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건 느낌이 다르다. 왠지 모르게 동질감이 느껴진다. 술잔을 앞에 두고 아주 조금만 마시는 방법도 있긴 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 잔이 비워지는 동안 내 잔은 그대로인 걸 보고 있으면 괜히 위축된다. 안 마시면서 마시는 시늉을 하면 ‘넌 위선적이야’라는 외침이 머릿속을 맴도는 것만도 같다. 식당이나 펍에 논알코올 맥주가 있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친구들이 맥주 한 잔을 추가할 때마다 나도 따라 논알코올 맥주 한 캔을 더 시키면 그냥 막 자신감이 충전된다.


무알코올 음료의 인기는 계속 상승 중이다.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만 해도 지난 2014년 81억원에서 2020년 2백억원으로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2025년 탄산음료, 차, 커피를 포함한 무알코올 음료 시장이 1천8백8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전에도 꾸준히 무알코올 음료 소비가 늘고 있었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상승 폭이 더 커졌다. 미국 아마존에서 2021년 1~7월 논알코올 맥주 판매량이 2020년 같은 기간에 비해 85퍼센트 증가했을 정도다. 언뜻 봐서는 의아할 수도 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19 여파로 다른 소비는 대부분 줄었지만 술 소비는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주류 구매액이 13.7퍼센트나 증가했다. 미국에서도 2020년 3월부터 9월까지 주류 판매량이 2019년 같은 기간보다 20퍼센트 증가했다. 변화가 두 가지 방향으로 동시에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집에서 혼술하면서 전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집에서 건강관리에 더 주의를 기울이면서 주량을 줄이고 무알코올 음료로 대신한 사람이 있을 거란 얘기다. 실제로 노르웨이에서 설문 연구한 결과를 보면 2020년 4~7월에 응답자 대부분은 주량이 약간 줄었다고 답했으나 상위 5~10퍼센트 음주자는 주량이 되레 늘어난 걸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노르웨이 전체 술 소비량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혼술에 탄력을 받아 마신 술이 더 늘어난 사람도 있고 무알코올 음료를 마시면서 알코올 섭취를 줄인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다.
요즘에는 종류도 다양해졌다. 무알코올 와인, 무알코올 맥주, 무알코올 칵테일 Mocktail, 무알코올 막걸리에 심지어 무알코올 위스키까지 맛볼 수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전에는 술 대신 지겹도록 탄산수만 마시다가 무알코올 음료로 갈아탔다는 사람도 늘었다. 무알코올 음료라고 칼로리 제로는 아니지만 과일주스나 탄산음료와 비교하면 칼로리가 낮은 제품이 많다. 알코올은 1그램에 7킬로칼로리로 지방 다음으로 열량이 높다. 알코올을 없애거나 0.5퍼센트 미만으로 줄이면 당연히 칼로리가 낮아진다. 논알코올 맥주 330밀리리터 1캔은 30~80킬로칼로리로 일반 맥주의 절반 이하다. 무알코올 와인도 120밀리리터 한 잔에 20~30킬로칼로리로 일반 와인에 비교하면 1/3 수준이다. 레스토랑에서 코스 메뉴에 와인 페어링 대신 주스 페어링을 내놓지만 주스는 식사와 함께 하기엔 너무 달거나 혹은 달지 않더라도 열량 과잉을 생각해 피할 수밖에 없을 때가 많다. 무알코올 음료 페어링은 그런 면에서 매력적이다.


알코올을 제거하면서 술맛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알코올이 없으면 맛도 달라진다. 와인의 복잡한 풍미를 내는 향기 물질은 대부분 알코올에 녹아 있고 알코올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와인의 구조, 바디, 질감에도 알코올이 중요하다.(무알코올 음료에 글리세린, 잔탄검, 아라비아검을 넣는 것도 질감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아예 처음부터 알코올이 생기지 않도록 무발효 방식으로 만드는 무알코올 맥주, 와인도 있고, 발효해서 술을 만든 뒤 알코올을 제거해 만드는 비알코올 맥주, 와인도 있다. 논알코올(비알코올) 맥주나 와인의 경우에는 뒷면에 에탄올이 0.5퍼센트 미만 함유되어 있으니 임산부는 섭취를 주의하라는 경고 문구가 보인다.(제품에 따라 1퍼센트 미만 에탄올로 표시된 경우도 있다.) 이 정도 함량이면 숙성된 과일에 들어 있는 에탄올 정도여서 크게 문제될 건 없지만 알코올에 예민한 사람들은 술 마셨을 때처럼 얼굴이 빨개지거나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필자는 논알코올 맥주나 와인을 마시면 얼굴색은 그대로인데 조금 나른하다. 다행히 술을 마실 때처럼 참을 수 없는 졸음은 아니어서 글 쓰기 전에도 논알코올 맥주는 한 잔 마실 수 있다.
무발효 방식은 보리주스나 포도주스에서 일부 당분을 제거하고 맥주나 와인의 풍미를 더하는 방식이라면, 발효 방식은 알코올 제거가 중요하다. 감압 증류(Vacuum distillation) 방식으로 낮은 압력에서 알코올을 제거한다. 산 정상에서 밥을 지으면 낮은 기압으로 인해 물이 더 낮은 온도에서 끓는 것과 같은 원리다. 기압을 최대한 낮춰서 진공에 가깝게 해주면 저온에서 알코올을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알코올을 날려보내는 과정에서 와인의 향기 물질도 일부 사라진다. 감압 증류할 때 분리된 향기 물질을 알코올을 제거한 와인에 다시 섞어줄 수도 있다. 역삼투압 정수기처럼 와인을 역삼투압 시스템으로 처리해서 물과 알코올만 따로 걸러서 여기에서 알코올을 제거하고 다시 나머지 혼합물과 합치는 방식도 쓴다. 사실 이 방식은 논알코올 와인을 만들 때만 쓰는 게 아니고 와인의 알코올 함량을 줄일 때도 사용한다. 와인 병 라벨에 표시된 알코올 함량에 맞추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정이다. 왜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냐고? 논알코올 와인이라고 무시하지 말라는 얘기다.


아직 모든 무알코올 음료가 만족스럽진 않다. 무알코올 스파클링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은 마실 만한데 무알코올 레드 와인은 덜 단 포도주스에 가까운 게 대부분이다. 무알코올 막걸리는 막걸리도 아니고 곡물음료도 아닌 애매한 맛이다. 무알코올 칵테일은 알코올 특유의 화한 맛이 없으니 너무 빨리 다 마시게 된다. 점막을 자극하는 알코올 특유의 성질을 대체하긴 어려우니 쓴맛을 조금 추가해서 천천히 마시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술이라 생각하고 마시면 맛없다. 술을 모방했지만 술과는 다른 음료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즐겁다. 현대적 논알코올 맥주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건 미국의 금주령 때문이었다. 그에 비하면 요즘 세상은 살 만하다. 술 마시는 사람과 무알코올 음료를 마시는 사람이 한자리에서 웃고 떠들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글 / 정재훈(약사, 푸드 라이터)

    피처 에디터
    전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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