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KBO 리그에는 리더도, 소통도 없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재미도 없었다. 도대체 2021년 KBO 리그에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이 문제였을까?
2021년 시즌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SK 와이번스 구단이 신세계그룹으로 갑작스럽게 매각되면서 큰 변화가 찾아왔지만, 정용진 ‘구단주’의 등장과 SSG 랜더스 구단의 창단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KBO 리그에 모습을 나타낸 정용진 부회장, 아니 “용진이 형”은 클럽하우스를 통해서 팬들과 직접 소통을 이어가면서 많은 팬을 긴장(?)하게 했다. 한국 프로 스포츠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구단주의 모습이었다. 정용진 구단주는 팀에 대한 애정과 강한 승부욕을 팬들에게 확인시켜주었고, 동시에 통 큰 투자를 팬들과 직접 약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SSG 랜더스는 곧장 메이저리거 추신수 선수를 영입하는데 성공하며 많은 야구팬을 설레게 하였다.
2013년 시즌 류현진 선수를 시작으로 김광현과 양현종 같은 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연이어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택하면서 슈퍼스타의 부재가 느껴졌던 상황이라 추신수 선수의 영입은 말 그대로 빅뉴스였다. 계약 발표와 함께 곧장 팀에 합류한 추신수 선수는 행동하는 리더십으로 시즌 내내 SSG 랜더스를 이끌었다. 아쉽게도 SSG 랜더스 구단은 1경기 차이로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추신수 선수는 말 그대로 프로였다. 최고의 선수들이 뛰는 메이저리그에서 16년 동안 그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팬들은 경기장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었고, 추신수 선수는 보란듯이 경기력으로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시즌 초반의 축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반기를 채 넘기지도 못한 상황에서 결국 사고가 터졌다. 7월 9일, NC 다이노스 1군 선수단 내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나왔고, 7월 10일에는 두산 베어스 1군 선수단 내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결국 갑작스럽게 경기들이 연이어 취소되었고 리그 일정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확진 판정을 받은 일부 선수들이 방역 수칙을 어기고 원정 숙소에서 모임을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선수들의 안일한 프로 의식에 팬들은 실망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당 구단들의 소극적인 대응은 도마 위에 올랐다. KBO 리그 전체를 뒤흔든 이슈였다.
결국 7월 12일 KBO 리그 사무국과 이사회는 경기 일정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 7월 13일부터 7월 18일까지, 총 30경기가 순연되었고 올림픽 휴식 기간을 마치고 8월 10일에야 시즌이 재개되었다. 이는 시즌 전 준비해놨던 운영 매뉴얼을 스스로가 무시하는 결정이었다. 올림픽 휴식 기간과 맞물려 한 달 가까이 중단되었던 리그가 다시 재개되었을 땐, 아쉽게도 이미 팬들의 관심은 떠난 상태였다. (당시 KBO 이사회 회의록을 검토한 문체부는 매뉴얼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리그 중단을 결정한 부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2021년 시즌이 실질적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희망 없이 끝난 시즌은 아니었다.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의 성장은 새로운 대형 스타의 등장을 의미했고, 프로 4년 차 시즌을 보낸 KT Wiz의 강백호 선수는 꾸준히 맹타를 휘두르며 팀을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KIA 타이거즈의 차세대 에이스 이의리는 ‘슈퍼 루키’다운 안정적인 활약을 선보이며 신인왕을 거머쥐면서. 류현진, 양현종 그리고 김광현의 뒤를 이어 한국 야구의 새로운 좌완 괴물 투수의 등장을 예고했다.
리그 운영과 행정은 팬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지만, 실제로 필드에서 확인한 젊은 선수들의 활약은 팬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많은 잡음 속에서도 KBO 리그의 브랜드 가치가 아직까지는 살아 있다는 희망의 뜻이기도 했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메이저리그가 중단되면서 2020년 시즌 KBO 리그 경기들이 ESPN을 통해서 미 전역은 물론 130개국에 중계가 되었다. 일본 리그(NPB)와 대만 리그(CPBL)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지만, ESPN의 선택은 KBO 리그였다. KBO 리그 경기를 생중계로 접한 미국 팬들의 반응은 당시 기대 이상이었다.
KBO 리그는 한때 1천만 관중 시대를 눈앞에 둔 리그였다. 불과 2,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기당 평균 TV 시청률 1퍼센트 이상을 기록했고 매일 저녁 방송되는 하이라이트 프로그램도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다. 인기팀이 만나는 매치업이 성사되면 시청률 2퍼센트는 거뜬히 넘겼고 3퍼센트까지 기대했던 것이 불과 3년 전 상황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엔 시청률 1퍼센트를 넘긴 경기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리그 중단 이후 시청률 하락을 지켜본 방송사들은 결국 시청률 감소에 대한 손해배상을 KBO 리그에 요청했다. 그리고 원인 중 하나로 리그 중단을 꼽았다. 일방적인 중단 통보에 손해를 떠안아야 했던 방송사들이 결국 참다못해 들고 일어난 것이다.
프로 스포츠 리그에서 TV 중계는 선수와 팬이 만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연결고리다. 방송사들의 중계 없이는 리그가 지속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KBO 리그 사무국은 방송사들에 대한 아무런 배려 없이 리그를 중단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먼저 KBO 리그에는 리더가 없다. 총재는 그럴듯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지만, 수행 능력도 없고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위기 상황이 찾아왔을 때 총재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더더욱 어렵다. 솔직히 때론 총재가 아예 없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직까지 KBO 리그 사무국과 총재는 리그 중단 사태 관련해서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많은 팬이 실망했지만, KBO 리그는 시즌이 끝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침묵으로 대응하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팬들과의 소통. 하지만 KBO 리그는 소통을 모른다.
정지택 총재는 지난 1월 취임식에서 “팬들에게 더욱 신뢰받고 사랑받는 리그가 되기 위해 팬 성향을 조사, 분석해 팬 서비스 사업을 확대하고, 우수 팬 서비스 구단에 대한 시상 제도를 도입하겠다”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KBO 리그의 공식 SNS 계정들을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아주 기본적인 리그 일정과 정보만 올라올 뿐 볼만한 콘텐츠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유튜브 채널도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고, 그나마 가끔 올라오는 콘텐츠들은 대학생 마케터들이 제작한 포스팅들이 전부다. 미국 팬을 위해 오픈했던 트위터 계정은 작년 시즌을 끝으로 포스팅이 올라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바로 이게 KBO 리그의 현실이다.
KBO 리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산업화를 외쳐왔지만, 고객이나 마찬가지인 팬들과 아주 기본적인 소통도 하고 있지 않다. 2021년은 KBO 리그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시즌이었다. 재미도 없었고 감동도 찾기 어려웠던 힘든 시즌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선수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팬들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떠난 이후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뉴욕 양키스의 레전드 요기 베라가 남긴 명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2021년 KBO 리그 시즌은 끝나기 전에 끝나버린 시즌이었다. 글 / 대니얼 김(야구 해설위원, 야구 칼럼니스트)
- 피처 에디터
- 신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