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베컴을 알지만 누구도 베컴을 모른다 | 지큐 코리아 (GQ Korea)

누구나 베컴을 알지만 누구도 베컴을 모른다

2022-01-25T17:09:51+00:00 |interview|

베컴으로부터.

자카드 크로셰 테일러드 기모노 재킷, 페이턴트 스트랩,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내가 필드에 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데이비드 베컴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걸 알고 있다. 만약 내가 아버지보다 잘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만족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태어난 날, 세 살 터울 형이 된 브루클린은 너를 보곤 겁냈지. 하지만 브루클린의 코와 네 어머니 빅토리아의 뺨을 꼭 닮은 너는 아버지 눈에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네 형도 금세 너를 아꼈어. 사람들은 네 이름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뜬 것이라 추측했지만, 글쎄.
네가 열 살의 나이로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에 입단했을 때 평소 아들들이 원한다면 커서 프로 축구선수가 되길 소원한 아버지로서 크게 기뻤다. 비록 그 팀이 데이비드 베컴이란 이름을 세계에 알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아니라 아스날이란 사실에 모두 의아해했으나 말이다. 알다시피 프리미어리그 1,2위를 앞다투던 팀이잖니. 그것도 ‘맨유 미드필더 7번 베컴’이 있던 1997년부터 2003년 사이에는 믿을 수 없이 유별나게. 네가 어릴 때 보러 간 아스날 경기에서 벵거 감독이 다정하게 선물한 유니폼이 그 이유였을까?

그랬던 네가 2년 만에 스스로 정말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았다. 네 형도 같은 말을 하고 축구를 그만두었으니까. 브루클린의 말이 곳곳의 신문에 새겨졌지. “내가 필드에 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데이비드 베컴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걸 알고 있다. 만약 내가 아버지보다 잘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만족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멈춰도 괜찮다고, 축구는 진짜 원할 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아버지는 마음이 매우 아팠다.
“다른 누구보다 내 아들을 엄하게 다뤄주길 바랍니다.” 아버지로서 감독에게 청한 말은 이것이었다. 네가 6년 만에 다시 축구장으로 돌아왔을 때, 첫 데뷔한 프로 선수이자 포트 로더데일 CF의 한 명으로 경기를 치른 2021년 9월 20일 그때. 네가 오른쪽 윙어로서 크로스 찬스를 만들려 했던 79분 동안의 경기, 19번의 볼 터치에 대해 어떤 기자는 “경기 후반에 유망한 순간을 여럿 보였고 크로스를 올리며 공격을 지원했다”고 적었고,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같은 킥 정확도를 갖추지 못했다. 여전히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리킥을 차는 순간 절묘하게 꺾이는 네 왼쪽 발목을 보고 관중은 데이비드 베컴을 떠올리지. 네 볼 터치가 연결되지 못할 때 관중은 데이비드 베컴이 터뜨린 골을 그리워하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필드에 나갈 때마다 들리는 데이비드 베컴의 아들이란 소리는, 데이비드 베컴을 기준점 삼아 내리는 평가는.
그럼에도 너는 다시 베컴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었다. ‘Beckham’이란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다시 축구장에 들어선 날 너는 “Follow Your Dreams”라는 문장을 남겼다. 무엇이 네 꿈일까. 가족, 축구, 요즘 부쩍 자주 올리는 여자친구 미아 리건과의 시간. 네가 SNS에 기록하는 사진을 통해서나마 로미오 베컴으로서 느끼는 행복과 기억해두고 싶은 순간, 그것이 가리키는 미지의 꿈을 감지할 뿐이다.

분명한 것은 네 등에 새겨진 백 넘버는 11번이라는 사실. 맨유 베컴을 대표하는 7번도, 레알 마드리드 베컴을 상징하는 23번도 아닌 로미오 베컴의 11번이라는 고유함. 네가 디딘 두 발 역시 그 누구의 것이 아닌 로미오 베컴의 신체라는 대체 불가한 진실.
그리고 이것은, 로미오 베컴 Romeo Beckham이란 이름이 언급된 2020년 9월 1일부터 2022년 현재까지의 뉴스 발췌록. 스토리는 떠돌고 누구나 베컴을 알지만 누구도 베컴을 모른다. 11번의 베컴, 로미오 베컴의 진정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한다. 베컴으로부터 로미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