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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 "연극하는 삶 속에서 때때로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2022.02.28김은희

김신록, 창발하다.

페인티드 실크 홀터넥 드레스, 하나차 스튜디오.

GQ <지옥>(2021)보다 앞서 김신록이란 인물의 힘이 드러난 드라마가 있죠. <방법>(2020). 캐스팅 제안이 왔을 때 “왜 나를”이라 되물으셨다고요.
SR <방법>의 김용완 감독님이 전화해서 무당 역할이고 주인공 엄마인데 해보겠느냐 제안했을 때, ‘나는 방송 쪽에 있는 배우도 아닌데 굳이 왜 나를 섭외하시려고 하나’ 생각했죠. 그랬는데 김용완 감독님이 몇 년 전에 단편 영화 촬영 현장에서 저를 보고 기억해뒀다가 연락했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고, 어떤 작품에서 꼭 한 번 함께 해보고 싶다 생각했고, 역할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그리고 퇴폐적인 느낌이 날 것 같다, 석희라는 역할과 맞을 것 같다 그러는데, 이 퇴폐라는 말이 데카당스잖아요. 데카당스! 그래, 뭔가 반동적이고 예술적이고 그런 느낌을 받으셨나 보다. 해보자. 그리고 제가 또 어떤 제안이 들어오면 일단 해보는 쪽을 많이 선택하거든요? 모르는 분야니까 한번 해보자 시작한 게 꼬리의 꼬리를 물고 여기까지 오게 됐죠.
GQ 공개를 앞둔 <재벌집 막내아들>과 <무빙>, 아직 밝힐 수 없는 작품들까지, 꼬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네요.
SR 사실은 <방법>을 하고 나서 너무 재밌는 거예요. 카메라 연기가 이렇게 재밌구나. 왜냐면 모르니까 재밌고, 더 알아가고 싶은 것이 많으니까 재밌고. 그래서 <방법> 끝나고, 연극하면서 1년에 한 작품 정도 하면 좋겠다, 좋은 작품 만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괴물>(2021)을 만나게 됐고, <괴물>이 끝나고서는 적극적으로 이 필드에서 활동해보고 싶어졌어요. 작은 역이든 큰 역이든 경험을 많이 쌓아보고 싶어졌죠.
GQ 모르는 분야라는 건 영상 매체이지, 무대 연극에서는 잔뼈가 굵으셨죠.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김신록 배우의 자취에서 일부분만 모았는데도 A4로 40장 분량인 거예요. 눈앞이 깜깜했는데, 보면 볼수록 제게 공통적으로 읽히는 키워드들이 있더군요.
SR 뭐지? 뭘까요?

골드 버클 장식 니트 플리츠 드레스, 토즈.

GQ 아버지, 워크숍과 훈련, rock2da@gmail.com.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김신록 배우에게 맡길게요.
SR 와, 뭐가 관심 있으세요? 뭐로 시작해볼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런데 메일은 왜 추리셨어요?
GQ ‘배우가 만난 배우’ 기사가 흥미로워서요. 웹진 <연극in>의 편집위원이셨잖아요. 그때 김신록 씨가 인터뷰어로서 배우들을 만난 인터뷰 기사 끝에 이 이메일 주소가 늘 적혀 있더라고요.
SR 하하하하하, 어 맞아요.
GQ 독자들로부터 메일 좀 받으셨어요?
SR 메일이 오죠. 그런데 “팬이에요” 이런 건 아니고요, 진지한 질문이나 자문 구하는 메일이 가끔 와요. 유학 가려고 하는데 어디가 좋을까, 연기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연기 과외 하시냐 이런 거. 메일 주소를 찾아서 보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공을 들이는 일이에요. 잘은 못해도 답을 해주기도 하고 그랬죠.
GQ 자 그럼 메일을 보내는 마음으로, 저도 인터뷰어 김신록 씨의 기록을 읽으며 밑줄 그은 몇 부분을 읊어볼게요.
SR 좋습니다.
GQ <스위트홈>에서 빈 유모차를 끌고 다니던 명숙 역을 연기한 배우죠. 이봉련 배우와의 인터뷰에서 그러셨어요. “나는 에너지가 구조나 상황, 외부, 설득해야 할 대상으로 빠지는 스타일이다. 에너지가 상대를 향해 치고 나갔다가 다시 나라는 베이스캠프로 돌아오고, 치고 나갔다가 돌아오고. (그런데 봉련 배우의 에너지 혹은 존재의 층위는 근경 혹은 본인의 내부 가까이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SR 응, 기억나요.

퍼플 퀼티드 드레스, 제이든 초. 언밸런스 블랙 드레스, 페타르 페트로브 at matchesfashion.

GQ 굉장히 추상적인 얘기잖아요. 그런데 최근 단 몇 달간의 영상 매체 작업, <지옥>이나 <방법>, <괴물> 등에서 김신록이란 인물이 보여주는 연기를 떠올렸을 때 무슨 말인지 바로 알겠는 거예요. 그러면서 궁금해졌어요.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 잘 표현하지? 나의 에너지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늘 주시하나? 자신을 분석하는 데 능하다면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
SR 저는 사실 ‘난 어떤 사람이지?’ 이런 고민이 별로 없어요. 다만 움직이는 방식, 사람이 몸을 움직이는 방식, 그리고 그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 그 방식 자체에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면 누구는 부정적으로 생각해, 흔히 이렇게 말하잖아요. 누구는 낙천적으로 생각해, 이것도 하나의 방식이고. 일종의 관점이나 렌즈, 프레임인 거죠.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 자체에 관심이 가요. 흥미가 있어요.
GQ 방식···. 어떤 사유의 출발점이 궁금해지는 건가요? 아니, 출발점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네요. 방식이란 과정일 수도 있고, 이야기 끝에 나온 결론일 수도 있으니까.
SR 그렇죠. 뭐라고 해야 할까···. 미국 뉴욕에 시티 컴퍼니 SITI Company라고 연극사에서는 되게 중요한 극단이 있는데 그 극단에서 훈련할 때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훈련은 너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게 한다.” 너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게 한다. 제가 배우 훈련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움직이거나, 생각하거나 말하는 방식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 인지할 수 있게 하는 것.
GQ 움직이거나 생각하거나 말하는 방식···. 그 방식에 대해 좀 더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데 그 전에, 그런데 판소리 창작자인 이자람 배우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하셨네요? “나는 요새 밖에서 까불 데가 없다. 그럭저럭 나이가 들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말하고 글 쓰고 했더니 너무 엄숙해졌다. 망했다.”
SR 하하하하하하. 너무 많이 까불었어가지고.
GQ 너무 엄숙해졌어요?
SR 그래서 모르는 곳으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연극 쪽에서 제가 이제 마흔 가까워지고 경력이 쌓이면서 어디 좌담회 같은 데, 예를 들어 서울 연극인 2020년 무슨 무슨 TF팀, 세미나, 학회 이런 데 잘 불려 다니고 이런저런 글도 청탁 받아 쓰다 보니까, 내가 한 말은 또 지켜야 되고, 중요한 자리니까 좋은 말 해야 하고, 말 그대로 바른 생활에 대한 강박과 불편함이 있었던 거죠. 일종의 엄숙함이나 진지함.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 화이트 웨이스트 코트, 실크 셔츠, 오버사이즈 메탈 브로치, 모두 제이든 초. 핸드 페인티드 롱 드레스, 하나차 스튜디오.

GQ 까불 데가 없다 한 때가 2019년 12월이었거든요. 영상 매체로 활동 반경을 넓힌 시기, 새로운 것에 동했던 때와 맞물리네요.
SR 맞아요, 맞아요.
GQ 좌담회나 TF팀, 여기저기서 부른 이유에는 이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앞서 얘기한 뉴욕 시티 컴퍼니를 비롯해 덴마크, 폴란드에서의 유학 경험, 워크숍 리더로서의 활동, 학문적인 연구 등 연기를 향한 공부 자취가 무수하잖아요. 무엇을 나침반 삼아 움직인 건가요? 왜 유학을 갔고, 왜 워크숍을 열고, 왜 연기를 연구하세요?
SR 되게 긴, 이츠 어 롱 롱 스토리인데, 돌이켜보면 강원도 원주의 노뜰이라는 극단에서 ‘국제 무대 예술가 워크숍’ 이런 걸 몇 년 동안 해마다 개최했어요. 저는 2006년에 참여했는데 그 당시 호주에서 온 안무가, 말레이시아에서 온 무용수, 폴란드에서 온 연출가, 이런 사람들과 워크숍을 했어요. 워크숍이라함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연극의 철학이나 메소드들을 나누는 자리인 거죠. 그때 처음 그런 훈련이라는 것을 접했는데 너무 재미있고 충격적인 거예요. 연기라는 게 어떤 메소드, 그러니까 방식 Method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배울 수 있고 나눌 수 있다. 연기는 심리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신체적일 수 있다.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알게 되면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게 다 한 다리 건너서 외국에 누가 ‘카더라’, 이렇게 배우는 거잖아요. 나는 이게 진짜 어떤 것인지 실제로 보고 싶은 마음인 거예요. 그 극단도 실제로 가보고, 연극사에서 보는 사람도 실제로 알아보고, 책에서의 사람도 실제로 만나보고. 그래서 연극원 졸업하는 해에 국가에 기금 지원을 신청해 2년 동안 해외의 극단들과 연극인들을 만나보고 오겠다는 프로젝트를 받아서, 거점을 한국에 두고 들락날락하기는 했지만 굉장히 많은 시간 유럽과 미국을 돌아다녔어요. 그때 만난 연극인들이나 어떤 메소드라면 메소드, 철학이 제게 굉장히 큰 영향을 줬어요.
GQ 실제로 가보니 어떻던가요? 정말 뭔가 다르던가요?
SR 좋은 질문이에요.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직접 맞닥뜨리면, 직접 대면하면, 총체적으로, 갑작스럽게,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로토프스키라고 하는 폴란드의 일종의 연극 혁신가가 있는데 굉장히 어려워요. 그 사람에 관련된 논문도, 자료도, 유튜브 영상도 많은데도 늘 모호한 지점이 있었는데, 폴란드에 그로토프스키 인스티튜트라는 데가 있어요. “여기가 그로토프스키 인스티튜트 맞나요?” 물어물어 어딘가 딱 들어갔는데 그 곳이 실제로 그로토프스키가 단원들을 데리고 연습했던 연습실이었어요. 거기에 들어가는 순간 되게 희한하게 많은 걸 탁 알게 됐어요. 책에 묘사돼 있던, 단원들을 이끌고 13열의 연극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연극 혁신을 어쩌고, 당시 사회는 어땠는데 저쩌고 이런 것들이 무슨 말인지, 딱 들어서니까 그냥 감각적으로 알겠더라고요. 그때 탁 “알겠다”는 감각이 들었던 그 순간이 제게 중요하고, 이게 제가 말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직접 가 보니까 그냥 알게 되는구나! 실제로 그로토프스키를 아는 건 별로 안 중요해요. 여기에 가니까 알게 됐다는 것이 나한테는 되게 중요한 거예요. (앞에 텀블러가 있는 듯 손을 취하며) 제가 매일 들고 다니는 텀블러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커피 한 잔의 그것이 중요한 것처럼. 표상하는 것들에 집중하는데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고, 그 방식이 나한테 중요한 거예요. 그걸 알게 되고 살면서 많은 부분에서 제가 그런 방식으로 구조화됐죠. 맞닥뜨리면 알게 된다. 모르겠으면 해보면 된다. 예를 들면 <방법>이 내게 왔을 때도 ‘이걸 내게 왜? 해보면 알겠지’ 한 것처럼.

골드 버클 장식 니트 플리츠 드레스, 토즈. 레더 팬츠, 8 by yoox.

GQ 말 그대로 경험해봐야 알겠지만 상상이 돼요. 저의 방식 중 하나는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호기심 같아요. 예를 들어 이런 것. 연극 동료들 사이에서 365일 내내 아침 7시에 트레이닝한다고 알려진 인물이 양종욱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SR 응, 응, 맞아요. 양종욱 배우.
GQ 그 양종욱 배우가 자신의 트레이닝의 시작점으로 김신록 배우를 짚었어요. “무용 공연에 출연한 적이 있다. 거기서 뉴욕에서 활동하는 이양희, 김신록을 만났다. 그들이 하는 트레이닝은 매일매일 꾸준히 할 수 있는 체계적인 틀이었다. 나도 그들이 하는 트레이닝을 매일매일 하고 싶었다.” 365일 내내 아침 7시에 일어나게 할 만큼 인간을 자극시키는 트레이닝이란 대체 뭘까요? 김신록 배우가 하는 훈련이란 뭐예요?
SR 그 당시로는 스즈키 메소드라는 트레이닝인데 그건 기본적으로 ‘형 Form’이 있어요. 마치 태권도에 품새가 있는 것처럼, 어떤 시퀀스가 있고 정확하게 도달해야 할 폼 Form이 있어요. 그래서 그건 훈련할 수 있는 거예요. 그 폼을 익히는 과정 안에서 그 폼 이상의 것들을 체화해나가는 건데···, 이양희는 안무가예요. 저랑 시티 컴퍼니에서 만났어요. 서로 ‘어? 한국인이 있네?’ 하면서. 그래서 영어가 늘지 않았죠.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었죠, 하하하하. 여하튼, 사실 최근에 저는 훈련이란 말을 많이 쓰진 않아요. 훈련이란 말 자체가 가르치고 수련한다는 뜻이거든요? 트레이닝의 어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훈련이란 말 자체가 갖는 경직성이 있죠. 검은색 옷을 위아래로 입고 “지금부터 수련을 하겠어!” 해서 (기합 넣듯) “어잇, 어잇!” 하는 그 시간이 훈련이고, 끝나면 (몸을 늘어뜨리며) “아 오늘 훈련했다” 이렇게 되는.
GQ 아,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기 쉬운.
SR 배우 훈련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됐고 시대마다 변해왔어요. 연기는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어떤 훈련이 있다 치면 그 시대의 배우들은 인간과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그런 방식의 훈련이 필요했던 거죠. ‘훈련’이란 말을 쓰지 않더라도 훈련은 유효하고, 다만 훈련에 대한 이해나 방식이 바뀌는 거예요. 아까 “훈련은 내가 어딨는지 알게 하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게 한다”고 한 말을 저는 여전히 금과옥조처럼 가지고 있고, 그게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저는 요즘 훈련이란 단어 대신 탐구라는 말을 많이 써요. 탐구, 탐색. 리서치라는 말도 예술가들이 요즘 많이 쓰기 시작했어요. 자율성이 더 포함된 단어라고 느껴져서인 것 같아요.
GQ 탐구와 탐색. 그럼 요즘 배우 김신록이 탐구해보고 싶은 주제는요?
SR 요새 두 가지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생태 연극 스터디를 원래 좀 했는데 올해 다시 시작할 것 같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NFT에 관련해서도 스터디하고 있어요. 이 두 개가 멀리 있는 것 같은데···.
GQ 네.
SR 하하하하, 그런데 저는 어떤 지점에서는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요새 제가 ‘창발’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영어로는 ‘Emergence’인데요, 하위 구조의 어떤 현상이 상위 구조에서 갑자기 드러나는 걸 말한대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지금 이랬는데 (검지로 물길을 그리듯 움직이며) 뭐 하나 탁 추가됨으로써 갑자기 (불꽃이 터지듯 다섯 손가락을 촥 펴며) 이렇게 되고, (반복하며) 또 뭐 하나 추가되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개미가 10마리 모였을 때는 사회가 아니었는데 11마리 모이면 사회를 이루는 것처럼, 어떤 하나의 인자가 추가됨으로써 갑자기 트랜스폼 되고, 트랜스폼 되고, 어떤 현상이 되는 거죠.

러플 드레이프 드레스, 페인터스.

GQ 창발하는.
SR 네. 그런데 (창발이란) 이걸 그럴 만한 요소로 보느냐 안 보느냐의 시각 차이인 거예요. 예를 들면 어떤 회사가 새로운 신입사원이 들어오든지 말든지 “넌 조직의 일부야!” 이러면 이건 창발적인 요소로 작동하지 못하는 건데, 들어옴으로써 회사가 약간 달라지고, 새로운 계약을 맺음으로써 회사가 또 약간 달라진다면, 이 회사는 창발하는 거죠. 창발의 요소를 더 많이 포용할수록 사회가 생동하게 되는 거죠. 그런 면에서 저는 제가 잘 모르는 NFT 분야 자체가 이 시대에 들어온 하나의 새로운 요소인 것 같고, 이게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음하고 창발하는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연루될 수 있는지 보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스터디하고 있고, NFT 관련한 작품도 제작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생태 연극도 마찬가지예요. 생태 연극이란 것도 창발하는 사회와 세계에 대한 이야기, 얼마나 많은 요소를 창발의 인자로서 포섭하고 수용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니까 비슷하다, 맥이 닿는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GQ 기본적으로 학구열이 상당해 보여요.
SR 탐구열이 있는 것 같아요. 기질이겠죠, 뭐.
GQ 배우에 대한 접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버지 같았어요. 중학생 때 아버지가 지역 극단에 데려가 “연극이 아니라 인생으로 배우라는 거다” 말씀하셨다고요.
SR 맞아요.
GQ 제가 마음이 동하는 건 이런 것 같아요. 음···, 이런 거죠. 내가 태어나기 전에 연극 배우셨고, 나는 태어났고, 어린 나를 이끌고 이제는 당신은 서 있지 않은 무대를 보여주며 연극은 인생을 배우는 거라고 말씀하신 아버지. 그 아버지의 등에 묻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김신록이란 인물을 낳은 아버지의 서사가 저는 궁금했어요.
SR 우리 아버지가 되게 재주가 많으신 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연극도 좀 하셨고, 그림도 굉장히 잘 그리셨고, 바이올린도 하시고, 서예도 하시고, 아무튼 재주가 되게 많은 분이셨어요. 어느날 아버지가 “다음 생에 태어나면 꼭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우리 엄마가 다음 생 이야기를 왜 하냐고, 지금 도전해보라며 화구를 사주신 거예요. 그 뒤로 아버지가 흥미를 잃어버리셨어요. 하하하하하. 이게 아버지와 어머니거든요? 저는 아버지의 어떤 낭만을 물려받았고, ‘지금 해버려라’라는 어머니의···, 이걸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근성? 집요함? 그런 걸 물려받아서 지금 계속 연극을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메탈 스트럭처 트렌치코트, 로에베.

GQ 두 분의 기질을 적절히 물려받으셨군요.
SR 사실 아버지가 2011년에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GQ 아···.
SR 아, 의외로 아버지를 일상에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떠올리지는 않아요. 문득문득 떠올리면서, 영화 <코코>를 생각하며 농담으로 “아버지가 저기 저승에서 사라지진 않겠구만” 그래요. 하하하하.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치열하게 살지 못해서 후회가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이 저한테···, 원래 저는 그 말 듣고 갑자기 치열해지고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저는 어머니를 닮아서 치열하고 집요한 게 있는 사람이지만, 돌아가실 때 아버지 나이가 예순셋인가 그랬어요. 굉장히 빨리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제가 벌써 마흔이니까. 뭐, 백세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런 건 믿지 않고,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러니까 미래를 계획해서 ‘지금 이걸 선택하면 내년에 이렇게 되겠지’ 이런 생각은 다 무쓸모인 거예요. 그냥 지금 마음 가는 곳에서 마음이 가는 것을 하는 것이 최고다.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있어요.
GQ ‘좋다’라는 표현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뭔가 가슴에 와 닿네요.
SR 하하하. 남편이랑 싸우면 내가 그래요. “나 죽고 나면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겠지.” 그럼 남편이 그래요. “먼저 가시게.” 아니 내가 일곱 살이나 어린데.
GQ 혹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연극이 아니라 인생으로 배우라는 이야기에 답신을 드린다면요?
SR 음···. 연기를 통해 인생에 대해 무엇을 배웠냐고 물으면 “하는 힘”이라고 답하곤 하는데, 이건 어렵네요. 아버지에게 응답하려니 어려운 질문이에요. 아버지에게···. 제가 집에 가서 생각해보고 회신 드릴게요.
GQ 아니, 괜찮으시다면요. 문득, 하나의 발화점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SR 괜찮죠. 괜찮아요. 응, 발화점이란 말 굉장히 좋네요. 우리 아버지 굉장히 자기중심적인데 동시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분이에요.

페인티드 실크 홀터넥 드레스, 하나차 스튜디오.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김신록 배우가 답신을 보내왔다. 그대로 옮겨 적는다.
“아버지가 나의 발화점인 것 같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것 같아요. 유전적인 기질도, 연극에 대한 열정도, 학문에 대한 관심도 아버지로부터 점화된 것 같아요. 중학생인 저를 극단에 데려가서 ‘연극이 아니라 인생으로 배우라는 거다’라던, 지금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화답하자면, ‘저는 연극하는 삶 속에서 때때로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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