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 강이 없었다면 이집트는 존재할 수 없었다 | 지큐 코리아 (GQ Korea)

나일 강이 없었다면 이집트는 존재할 수 없었다

2022-03-17T16:04:11+00:00 |travel|

수천 년 역사의 한 꺼풀 속으로. 이집트라는 보물을 찾아서.

클레오파트라 7세 Cleopatra VII가 통치하던 기원전 57세기에 지은 에드푸 신전 Temple Of Edfu.

여기에는 천사나 천상의 문, 예수와 함께하는 저녁 식사 같은 건 없어요.” 단정한 블라우스에 화이트 데님을 입은 가이드 할라 사예드 Hala Sayed가 우리를 안내한다.
이집트 학자이기도 한 할라의 설명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상상했던 사후 세계는 이승에서의 삶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9월 어느 아침, 우리는 타흐리르 Tahrir 광장에 자리한 카이로 박물관을 찾았다. 독특한 살몬색 외관으로 눈길을 끄는 이곳은 평소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고요만이 그윽했다.

나일강의 유람선 ‘스팀 십 수단 Steam Ship Sudan’.

곡물을 갈거나 맥주를 제조하는 사람들의 모습, 가족이나 애완동물 등 고인이 그리워할 만한 사랑스러운 대상들의 나열, 혹은 성적인 묘사. 할라가 알려주는 이집트의 무덤 장식은 일상적인 소재들이라서, 사후 세계에 대한 그들의 상상력이 부족하다 느껴질 수도 있다.(하나 이집트인들은 말벌의 머리와 하마의 몸을 지닌 여신 아티 Ahti를 탄생시킬 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었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할라가 말을 이었다.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잘 살았어요. 이집트가 바로 낙원이었으니까요.”
오전 9시, 기온은 이미 32도에 달했고 우리 일행은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상태였다. 이번 여행은 이집트 남부, 아스완 Aswan과 룩소르 Luxor 사이에 흐르는 나일강을 따라 늘어선 신전과 무덤을 거쳐 카이로 Cairo를 방문하는 여정이다. 위엄 있는 기자의 피라미드, 박물관, 스핑크스까지 우리가 늘 꿈꿔온 여행이었고 오늘은 그 시작이 되는 중요한 날이다. 하지만 시차와 더위 때문에 나의 열두살 난 아들 조의 얼굴색이 평소보다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여행하다 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수 있으며, 그렇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할라는 능숙하게 여행 코디네이터에게 전화를 걸어 논의한 후 불과 몇 분 만에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만한 새 계획을 세웠다. 우선 조를 호텔로 데려다주고 의사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조의 상태를 지켜본다. 나는 할라와 함께 기자로 가 여행을 계속한다. 이것이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계획이었으나 조가 가장 기대했던 날을 놓치게 되어 나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곧 다시 기자를 여행하자고 조와 약속하며, 할라와 나는 바쁜 정오의 교통 체증을 뚫고 목적지를 향해 나섰다.

나일강의 유람선 ‘스팀 십 수단 Steam Ship Sudan’에서.

평생을 카이로에서 산 할라는 1990년부터 시작해 4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집트 여행사 아베크롬비 & 켄트 Abercrombie & Kent에서 일하고 있다. 이 나라 여행사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가이드처럼 할라 역시 이슬람 예술 및 건축 분야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는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할라의 설명에 따르면 카이로와 기자 주변으로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인구로 인해 이 일대는 거의 2천1백만 명이 사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또한 대통령 시시 Sisi가 카이로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새로운 행정 수도를 건설 중인데, 완공된다면 이 일대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계획 도시가 될 것이다. 카이로는 과거와 현재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형태로 혼합되어 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우리는 도시 대부분을 덮고 있는 피라미드에 가까워졌다. 고대 3대 피라미드 중 하나이자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지의 피라미드는 실제로 보더라도 사진 속 모습 그대로일 거라 예상했다. 완벽한 오산이었다. 엄청난 크기와 기운, 태양 아래 사막에 반사되어 비치는 풍광, 그 모든 것은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이 압도적이었다.
우리는 할라의 조언에 따라 더위가 누그러지고 사람이 덜 붐비는 오후 시간에 이곳을 방문했는데, 이 시간이 아니더라도 요즘 이집트를 찾는 관광객은 예전만 하지 못하다. 세계를 덮친 팬데믹 영향은 물론이고, 이집트는 그보다 앞서 일어난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 줄어들기 시작한 관광객 수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정부는 개관이 거의 10년이나 연기된 이집트 대박물관 The Grand Museum Of Egypt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관광객을 다시 불러 모으기를 기대하고 있다. 저 멀리 유리와 콘크리트로 만든 거대한 실루엣이 보인다. 10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투입해 투탕카멘 Tutankhamun 무덤에서 가져온 5천6백여 점의 유물을 옮겨놓은 최첨단 시설이다. 2022년 마침내 새롭게 개장하는 이집트 박물관을 충분히 채울 양이다. 그리하여 이집트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고학 박물관으로 기록될 것이다.
거대 피라미드 내 가파르고 낮은 천장의 터널을 올라가자 중앙 묘지에 도달했다. 그곳의 관리인이 방 한가운데 서서 눈을 감으면 신비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의 말대로 나는 두 눈을 감고 그곳의 공기를 느껴보았다. 흐르는 고요함 사이 어떤 균형감이 느껴졌다. 하나에 무려 2톤이 넘는 화강암 2백만 개가 쌓인 공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4천5백여 년 전에 사망한 쿠푸왕 Khufu의 시신이 누워 있던 자리에 나 혼자 서 있기 때문일지도.

거대한 스핑크스 뒤로 보다 더 거대한 피라미드가 보이는 기자 고원의 풍경.

나일강을 유랑하는 배에 올라 즐긴 시간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 순간은 해가 질 무렵이다. 일정을 마치고 배로 돌아와 시원한 음료와 소금에 절인 땅콩으로 에너지를 회복하며 그 순간을 즐겼다.

우리가 아는 이집트는 나일강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실은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8백 킬로미터 떨어진 아스완으로 향하는 비행 1시간 30분 동안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다. 사하라사막은 국토의 94퍼센트를 덮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에서 몇 킬로미터 이내에서만 살고 있다. 메마른 땅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나일강의 모습은 마치 유유히 움직이는 에메랄드빛 뱀처럼 보인다. 이집트에서의 삶의 거의 모든 요소는 나일강의 범람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데, 심지어 시체를 방부 처리하는 데 70일이 걸리는 것도 그 연유다. 시리우스가 70일간 모습을 감췄다 하늘에 모습을 드러낼 때 나일강이 범람했고, 그때 죽은 자가 환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파라오는 세금을 매길 때도 나일강에 의존했으며 거의 모든 신전에는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설계된 깊은 우물과 같은 측정 도구가 있다.
나일강 줄기의 도시 아스완은 수천 년 동안 이집트와 다른 아프리카 지역을 연결하는 접점이자 중요한 상업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1970년에 완공된 두 개의 댐인 아스완 댐과 아스완 하이댐뿐 아니라 아스완이란 이름을 유명하게 만드는 향신료와 낙타는 아주 귀중한 존재다. “낙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동물이면서 가장 말을 듣지 않는 동물이기도 해요.” 앞으로 며칠 동안 우리와 동행할 유머러스한 이집트 학자 모하메드 에자트 Mohamed Ezzat가 자신의 삼촌이 키우는 낙타가 2주 동안 아팠던 삼촌을 따라 2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다가, 며칠 후 삼촌이 대마초를 피우자 낙타 역시 대마초를 피우더라는 일례를 “맹세”했다. 우리는 배로 돌아오기 전 잠시 향신료 시장도 둘러보았다. 우리가 거의 모든 종류의 향을 맡는 동안 인내심 있게 기다려준 주인의 상점에서 밝은 주황색과 노란색 커민과 향이 톡 쏘는 카르다몸, 여러 향신료를 환상적으로 혼합한 두카를 샀다.

이집트와 수단의 역사적인 접점지인 엘레판티네섬 Elephantine과 아스완을 잇는 루트를 지나는 여객선들.

아스완과 룩소르를 여행하는 데 크루즈는 아주 유용한 교통편이다. 고대 이집트를 지탱해온 나일강과 그 해상 교통의 발달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40개의 선실을 구비한 ‘생추리 선 보트 Sanctuary Sun Boat Ⅳ’호는 아르데코 스타일의 크루즈로, 먹고 마시고 누워서도 나일강을 보기에 충분한 공간을 갖췄다. 배를 타고 즐기는 나일강 여행에는 특정한 루틴이 있다. 첫 목적지는 대개 신전에서 시작하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승객들이 배로 돌아오면 배는 다시 다음 신전을 향해 나아간다. 아스완에 머물렀던 첫날 오후에 우리는 목조로 만든 전통적 소형 범선인 펠루카 Falucho에 몸을 실었다. 맨발의 선장이 좀처럼 잡기 어려운 바람을 타며 열심히 항해하는 동안, 모하메드는 키치너섬 Kitchener Island의 아스완 식물원이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나일강의 죽음>(1937) 촬영지인 올드 카타락트 호텔 Old Cataract 같은 랜드마크를 소개했다. 현재 소피텔 Sofitel이 운영 중인 올드 카타락트 호텔은 1899년부터 시작해 아스완을 방문한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나 다이애나 왕세자비 등 셀러브리티들이 머문 유서 깊은 호텔이다.
나일강을 유랑하며 즐긴 시간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 순간은 해가 질 무렵이다. 일정을 마치고 배로 돌아와 시원한 음료와 소금에 절인 땅콩으로 에너지를 회복하며 그 순간을 즐겼다. 조와 함께 강둑을 내려다보며 물속으로 뛰어드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흔드는 손에 인사한다. 귀가하는 어부를 보며 그의 TRAVEL보트가 내는 모터 소리를 듣는다. 해가 질 무렵 황금빛으로 물드는 도시를 배경으로 우리는 흐르는 강을 바라본다.
여행 중 방문한 신전들 역시 어느 하나 뺄 곳 없이 인상적이었다. 아스완에서 약 48킬로미터 떨어진 콤옴보 신전 Temple Of Kom Ombo에는 천장에 특별한 기법이 사용된 미술이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으며, 룩소르 근처이자 신전이 밀집되어 있는 카르나크 Karnak에서도 아몬-라 신 Amon-Ra을 숭배하는 신전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신전답게 웅장하다. 하지만 가장 내 마음을 움직였던 신전은 필레섬 Philae의 이시스 신전 Temple Of Isis이다. 이곳에서 서기 394년에 쓰인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그곳에 새겨진 문자는 고대 이집트 상형 문자의 마지막 증거로 추정된다. 만둘리스 신 Mandulis에 대한 내용은 당시 문자 체계와 이에 따른 생활 방식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여, 이 비문에 대한 해석은 과거 이집트에 대한 역사적인 의문이 3천 년 만에 풀린 순간이었다.

에드푸 Edfu에서 다양한 향신료를 판매하는 한 시장.

카이로로 돌아와, 할라가 기자 피라미드에서 남동쪽으로 약 24킬로미터 떨어진 고분 마을 사카라 Saqqara에서 새롭게 발견한 와흐티에 Wahtye 무덤으로 이끌었다.
할라는 4천1백 년 전의 인물 와흐티에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무덤은 와흐티에의 이미지로 가득했는데, 그 이미지들은 그가 왕실의 사제였으나 왕족은 아니었던 서글픔 속에서 그럼에도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흔적처럼 느껴졌다.

모하메드는 5세기에 이곳을 차지했던 기독교인들이 이집트 신들의 얼굴을 훼손한 사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십자군 전쟁 중에 몰타군이 남긴 낙서나 1799년 나폴레옹 군대가 남긴 낙서, 1884년 수단에서 전사한 영국군의 명단이 외벽 윗가장자리에 남아 있었다. 당시의 기록이 문자와 낙서로 남아 있는 이 지역 전체는 현대 엔지니어링의 인상적인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에 건설된 아스완 댐으로 인한 홍수로 신전이 침수될 위험에 처하자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가 이곳의 모든 건축물과 바위를 아질카아섬 Agilkia Island으로 옮겨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천 년 동안 모든 크고 작은 사건을 마주했던 신전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켜켜이 쌓여 있다.
“우리는 뼈를 발견했고, 관광객에게 목걸이를 판매해 돈을 벌었어요.” 이집트 학자 모하메드 압델레힘 Mohammed Abdelrehim이 1970년대 룩소르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왕가의 계곡 Valley of the Kings 근처에서 자란 압델레힘은 우리에게 낙타 이야기를 들려준 가이드 모하메드의 친구다. 프라이빗 투어로서 압델레힘이 신왕국 New Kingdom 왕족이 묻힌 고대 묘지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집트의 신왕국은 기원전 1550년에서 1070년 사이 시대를 말한다. 당시는 이집트 예술의 황금기였으며 정치적으로도 매우 안정적이었다. 수염과 탐험가 모자가 마치 인디아나 존스를 연상시키는 압델레힘은 룩소르의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고고 유적지 주변의 반쯤 무너진 집들을 지나갈 때 그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무덤이 분명 있을 것이기에 정부가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 이곳의 일부를 매입했다고 말해주었다. 그가 어렸을 때는 어느 집에서나 깔려 있는 러그를 치우면 집주인들이 땅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파낸 터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룩소르에 위치한 카르나크 신전 지구. 2천여 년에 걸쳐 수많은 이집트 파라오가 건설에 참여했다.

경비병들이 문을 여는 동안 우리는 아멘호테프 2세 Amenhotep II의 무덤 입구에서 기다렸다. 무덤은 훼손 방지를 위해 20년 동안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오직 프라이빗 예약을 통해서만 방문할 수 있었다. 아마도 조와 내가 올해 첫 방문객일 것이다. 운 좋게 이곳에 들어설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지만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이드는 무덤에 입장할 수 없기에 압델레힘이 앞서 우리에게 그곳에서 찾아봐야 할 것들에 대해 알려주었는데, 그의 조언이 없었다면 나는 밤하늘처럼 보이는 무덤 천장에만 매료되어 온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투탕카멘 무덤에 들어선 우리에게 관리인이 가까이 와서 미라를 보라고 손짓했다.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유리창을 통해 투탕카멘 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페르타리 여왕 Nefertari의 무덤에는 멋진 벽화들이 있었다. 압델레힘의 조언 덕분에 호루스의 눈 Eye Of Horus 문신이 있는 여왕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그뿐아니라 “장인들이 미숙한 아티스트들의 그림을 수정했던 빨간색 선”도 발견했다.
카이로로 돌아와, 할라가 기자 피라미드에서 남동쪽으로 약 24킬로미터 떨어진 고분 마을 사카라 Saqqara에서 새롭게 발견된 와흐티에 Wahtye 무덤으로 이끌었다. 할라는 4천1백 년 전의 인물 와흐티에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무덤은 와흐티에의 이미지로 가득했는데, 그 이미지들은 그가 왕실의 사제였으나 왕족은 아니었던 서글픔 속에서 그럼에도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흔적처럼 느껴졌다. 그 후 우리는 14세기 술탄 하산 Sultan Hassan의 모스크 마드라사 Mosque-Madrasa를 보기 위해 카이로의 이슬람 지구로 향했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스핑크스와 기자의 피라미드보다는 덜 알려진 곳이다. 조는 나처럼 이집트를 탐색할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 이집트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기원전 1279년경에 지은 세티 1세 Seti I의 신전. 아비도스의 대신전 Great Temple Of Abydos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TRAVEL NOTE
여행가 라미 기르기스 Rami Girgis는 일주일이라는 기간과 12세 소년과 함께한다는 두 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여행 계획을 설계한다. 2005년부터 아베크롬비 & 켄트 Abercrombie & Kent와 함께했으며,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 Condé Nast Traveler에서 선정한 최고의 여행 전문가 목록에 수년 동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라미 기르기스는 카이로에서 자라고 공부했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이집트 학자로서 수년을 헌신했기에 이집트에 대한 지식이 방대하다. 셀 수 없이 이집트를 여행한 그는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 현지 가이드들을 만난다. 덕분에 이번에도 아베크롬비 & 켄트의 전통적인 나일강 크루즈를 기반으로 이집트의 삶과 문화와 역사를 경험하는 여유롭고도 매력적인 여행 일정을 짤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프라이빗 투어로 무덤을 특별하게 경험했고, 고대 이집트의 일상생활의 세부적인 모습을 소개하고자 사원 방문 일정 대신 왕릉 주변에서 작업하는 장인들이 살고 있는 유적지 마을 데이르 엘 메디나 Deir el-Medina 방문을 추가했다. 아스완의 향신료 숍 방문부터 근처 교육 시스템을 볼 수 있는 대학 방문까지, 이번 이집트 여행 계획은 현지에 맞게 유연하게 짜여졌다. 라미와 현지 가이드 간의 깊고 지속적인 유대가 일반적인 패키지 여행에서 벗어나 남다른 프라이빗 여행을 탄생시켰다. 카이로에서의 3일, 아스완과 룩소르강 사이를 지나는 크루즈 여행 4박을 포함해 총 10일 여행 코스의 비용은 약 8천 유로다. 숙박과 가이드(유적지 및 공원 입장권 포함) 및 공항 이동을 포함한 교통 비용을 모두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