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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CUT – GET LUCKY!

2022.04.01박나나

시간은 빠듯하고 시절은 남루했으며 체력은 비실했다. 그런 이유로 한동안 라운딩과 레슨, 연습까지 멀리했다. 골프로 새로 알게 되고 한결 더 친해진 골프 버디들 또한 바다 위 작은 섬에 반짝이는 비늘만 남기고 사라진 인어처럼 유유히 멀어졌다.

A양 — 가장 많은 라운딩을 함께한 후배.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연습과 레슨을 꼬박꼬박 챙기고, 각종 월례회로 아젠다에 빈틈이 없다. 비슷한 구력이지만 타고난 파워와 성실한 연습량으로 실력은 한 수 위. 특히 쇼핑에 관심이 많은데 골프 쇼핑을 위해서라면 번역기를 돌려 슬로바키아 사이트에서 볼마커를 구입할 정도. 오호츠크해를 지나는 선박에 A양이 주문한 골프 백이 세 개는 실려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골프장의 풀과 꽃과 나무 냄새를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여름 그늘집의 수박.
B양 — 작년에 부쩍 가까워진 선배. 구력은 오래됐지만 레슨과 연습이 전무한 이유로 딱히 스코어를 논할 수 없다. 하지만 뛰어난 운동 신경과 부러운 피지컬 덕에 여자 골프 버디 중 가장 장타자. 브라이언 디섐보처럼 드라이버 헤드가 부러져 날아간 순간을 아찔하게 기록해두었다. 성격이 급해 그린에 가장 먼저 도착하지만, 그 때문에 짧은 퍼팅을 자주 놓치기도 한다. 공에 대한 애착이 강해 틈만 나면 볼 라이너로 표식을 하고 부족하면 별 다섯 개를 더 그린다. 그것도 아주 아티스틱하게.
C군 — 필드 위에서 가장 웃긴 남자 사람 친구. 신개념 유머 코드의 소유자로 일행은 물론 캐디 선생님들에게도 인기 만점. 감정이 온몸으로 전달되는 단점이 있어, 드라이버가 잘 맞으면 어깨가 귀에 닿을 듯 올라가고 미스 샷을 하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카트를 타지 않고 터덜터덜 걷는다. 멘털이 약해 그와는 어떤 내기를 해도 단박에 이길 수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건 그의 경쟁 상대는 왜인지 늘 여자라는 점.
D군 — 실력 차가 상당히 많이 나는 고수이자 지큐 골프 콘텐츠 기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 이미 야구와 테니스까지 모두 섭렵한 운동 마니아로, 골프의 구력과 실력도 상당하다. 필드에서 등산화나 러닝화를 신고도 어렵지 않게 원 온(파 4홀에서)이나 버디 하는 걸 보면 실력자인 건 확실하다. 나의 취약점인 벙커 샷을 될 때까지 알려줄 땐 다정한 오빠 같지만, 다소 수다스러운 편이라 솔직히 내겐 없는 친언니처럼 여긴다.
E양 — 골프 입문 때부터 나를 어미새처럼 챙겨주는 큰언니. 특별히 연습이나 레슨을 받지 않아도 늘 80점대 초반를 유지하는 동부이촌동의 숨은 실력자다. 가장 좋아하는 건 골프와 술, 가장 무서워하는 건 한창 예민한 시기의 딸. 딸의 하교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여서 늘 안개와 함께 새벽 라운딩을 해야 하는 불만이 있지만, 오전 9시도 되기 전 전반 9홀을 마치고 소주 한 병을 후딱 해치우는 장군적인 기개와 포스에 군말 없이 따라나선다.
F군 — 똑딱이부터 함께한 대치동 골프 선생님. 나의 작은 장점과 큰 단점을 이 세상에서 가장 정확히 알고 있다. 실력이 늘지 않는 건 스승이 아니라 다 내 탓이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한 선생님만 고집하는 이유도 있다. 처참한 운동 신경, 타고난 게으름, 조류와 견줄 만한 기억력을 모두 다 이해하고 딱 맞는 눈높이 교육을 실천한다. 괜한 말로 헛된 기대를 불어넣거나 자신감을 심어주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과도한 업무량에 전화기를 자주 보고 스케줄 잡기가 쉽지 않은 게 작은 불만이지만.

 


<지큐 골프> 2호에는 골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골퍼가 많이 등장한다. 스치듯 본 사람, 무척 궁금했던 사람, 이미 아는 사람, 전혀 모르는 사람.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골프 버디들이다. 계절이 바뀌면 연어가 돌아오듯 인어도 돌아온다. 이제 다시 만날 때가 되었다.

    편집장
    강지영
    패션 에디터
    박나나
    포토그래퍼
    곽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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