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몰트 위스키의 향을 끌어올리는 페어링 6 | 지큐 코리아 (GQ Korea)

싱글 몰트 위스키의 향을 끌어올리는 페어링 6

2022-05-03T13:02:25+00:00 |drink|

삼키지 않아도 삼켜지는, 싱글 몰트의 아름다운 벗들.

톤 체어, 보연정. 핸드 캔들 홀더, 아스티에 드 빌라트. 글렌 캐런 형태의 공예 잔, 한차연 작가. 시알크 센터피스, 에르메스.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굴을 맛보면 더 깊고 짠 맛이 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물며 그토록 섬세한 싱글 몰트는 어떨까. 글렌 캐런 잔에 코를 깊숙이 박고 킁, 미간을 찌푸리며 싱글 몰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만 늘어놓는 건 멋없다. 그건 테이스팅 때나 열심히 하는 편이 좋다. 대신 몰트 곁에 잘 고른 어떤 음악, 책, 향기, 공간, 하물며 오브제를 벗 삼아 두어 보자. 그들은 싱글 몰트의 맛과 향에 녹아 술의 캐릭터를 풍성하게 해줄 사려 깊은 안내자가 되기도, 훌륭한 조력자가 되기도, 멋진 친구가 되기도 한다. 오켄토션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오켄토션 12년은 부드러워요. 오죽하면 스코틀랜드에서 ‘Breakfast Dram(아침의 한 모금)’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집중하는 작업을 할 때 한 모금 훌훌 마시기 좋은데, 저는 빈티지 톤 체어를 곁에 둬요. 마른 헝겊으로 의자를 닦으면서 오켄토션을 한 모금 머금으면, 청소란 일이 새삼 고귀하게 느껴지죠.” <하루의 끝, 위스키>의 정보연 작가는 말한다. 빔산토리 브랜드 앰배서더 이성하는 오켄토션 12년을 따르기 전에 누자베스의 ‘Luv(sic.), Pt.3’를 재생한다. “귓가에 잔잔하게 남는 비트와 멜로디가 딱 이 술과 어울려요. 퇴근 후의 저를 기분 좋게 어루만지는 느낌이죠.”

먹물 드로잉, 글렌 캐런 형태의 잔, 모두 한차연 작가. 잎의 향이 가장 진한 나나향나무 분재, 우너프Woonerf 분재샵.

“주라 12년 셰리 캐스크를 한 잔 따라놓고 서가에서 조지 오웰의 <1984>를 꺼내요. 조지 오웰이 마지막 작품 <1984>를 쓴 곳이 바로 이 술과 동명인 주라섬이에요. 스코틀랜드 아일라섬 근처의 주라는 야생의 자연이 유지된 작은 섬인데, 조지 오웰은 이곳에서 산책을 하며 생애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그의 문장을 읽으면서 주라 12년 셰리 캐스크를 마시면, 그가 글을 쓴 시공간을 더듬어볼 수 있을 거예요.” 제이트레이딩컴퍼니의 안효정은 말한다. “라프로익 10년을 마실 땐 무라카미 하루키의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을 펼쳐보세요. 에세이 속에 등장한 아일라섬을 상상하며 특유의 스모키한 피트함을 천천히 음미하는 거죠. 강렬한 피트함에 압도되어 라프로익의 지독한 팬이 되거나, 두 번 다시 찾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거예요. ” 빔산토리 브랜드 앰배서더의 이성하가 덧붙인다. 정보연 작가는 라프로익 10년의 깊은 스모키함을 즐기면서 가장 정적인 순간을 즐긴다. 입 안에는 밤바다의 파도가 요동치는데 눈앞에는 다만 고요한 향나무 분재, 거친 돌, 투박한 형태에 낭만의 컬러를 입힌 한차연 작가의 잔이 놓인다. 마치 내 앞에 아일라섬을 데려다놓은 듯한 기분으로.

부채, 구찌. 정민호 작가의 미교다물요 차 사발, 보연정. 김오키 LP, <윤형근의 기록>, 모두 PKM 갤러리. 마세나 텀블러, 바카라. 윈스터 처칠 리미티드 에디션 2022, 다비도프.

발베니 25년 레어 매리지는 25년 이상 숙성된 희귀 원액들로 만들었다. 겹겹이 레이어링된 수많은 풍미가 도미노처럼 입체적이기도 하고, 수없이 덧칠한 유화처럼 어떤 지점에 탁월하게 포개진다. “몸에 딱 맞게 편안한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한 모금, 그다음에는 눈을 뜨고 모네의 ‘수련’을 감상해요. 눈앞에 펼쳐진 조화로운 평화. 발베니 25년 레어 매리지의 풍미에 색채가 입혀지는 느낌이에요.” 발베니 브랜드 앰배서더 김미정은 말한다. “발베니 25년은 장인의 도자기 작품을 감상하며 테이스팅하면 맛이 배가돼요. 반듯한 차 사발을 감상하며, 단정한 위스키 한 모금을 입에 머금는거죠.” 정보연 작가는 위스키와 공예로부터 연결 고리를 발견한다. “글렌피딕 26년 그랑코룬에는 윈스턴 처칠 리미티드 에디션 2022를 페어링하고 싶어요. 생크림에 흑설탕을 뿌린 것처럼 부드러운 위스키는 시가의 가죽 향기, 후추의 스파이스와 만나 뛰어난 조화를 이루죠. 세월의 무게를 견디어내느라 수고한 내게 주는 선물 같은 느낌이에요.” 다음은 글렌피딕의 브랜드 앰배서더 배대원의 말. “저는 거기다 음악을 더해볼게요. 키스 자렛 쾰른 콘서트 라이브 앨범을 재생하기 위해 진공관 앰프에 불을 지피고, 음악이 시작될 때쯤 26년 그랑 코룬을 한 모금 들이켜는 거죠. 재즈와 클래식 피아노 소나타 중간쯤 위치한 듯한 음악, 그리고 코냑을 숙성했던 캐스크에서 추가 숙성한 술의 합이 근사해요. 글렌피딕 23년 그랑 크루에는 다만 바카라의 마세나 텀블러면 충분해요. 술을 가득 따르면 잔 안에서 황금빛 만화경이 펼쳐지니까요.” 거기다 <윤형근의 기록>을 곁에 두고 읽는다면 어떨까. “자연 그대로의 질감과 빛깔이 영원성을 지니고 있는 미가 아닌가 싶다”라는 구절을 술과 함께 깊이 음미하면서.

파시폴리아 패턴 플래터, 에르메스. GG 모티프 문진, 구찌. 씨 다포딜 코롱, 조 말론.

“화사하다! 요즘 같은 날씨를 위스키로 표현하면 딱, 글렌 그란트의 아보랄리스죠. 스코틀랜드 전통 게일어로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빛’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요. 증류소에 위치한 가든의 나무 사이로 비치는 석양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한 모금 마셔보면 번뜩 이해가 될 겁니다. 그러니까, 이 술의 벗은 봄 풍경만으로 충분하다는 얘기예요.” 바인하우스의 오너 바텐더 김병건은 해사한 미소로 말한다. 이번에는 글렌로티스. “‘Spring New Age’풍의 피아노 선율을 재생한 가운데 글렌로티스 12년의 프루티하고 산뜻한 향을 즐겨보세요. 마치 꽃밭을 거니는 느낌이 들거든요. 입 안에 활짝 피는 달콤한 맛은 어느 계절에나 봄을 떠 올리게 하죠.” 글렌로티스 브랜드 매니저 차슬기는 말한다. “아벨라워 14년은 자연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긴 듯한 안정환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마셔보세요. 위스키를 완성하는 가장 근본, 자연을 바라보며 즐긴다는 건 우리에게 더 많은 세계를 열어줄 테니까요. 그야말로 완벽한 쉼이 될 거예요.” 브랜드 인게이지먼트 스페셜 리스트, 오연정 대사의 말. 그리고 발렌타인 글렌버기 12년은 봄바람 살랑 부는 창가에 어울린다. 스페이 사이드 지역의 산뜻 발랄한 싱글 몰트를 즐길 땐 진지할 필요가 없다. 봄맞이하는 기분으로 싱그러운 컬러의 접시를 준비하고, 우디 뉘앙스의 향수를 잔잔히 깔아두면 그것으로 족하다.

남체 바자르 인센스, 아스티에 드 빌라트. 아코어 탈레랑 텀블러 글라스, 바카라.

“스코틀랜드의 가장 큰 축제 호그머네이 시즌에는 불꽃놀이와 위스키를 즐기면서, 시인이자 위스키 마니아로 알려진 로버트 번스의 노래 ‘올드 랭 사인’을 부른다고 하더군요. 위스키를 지독히도 사랑했던 국민 시인의 가곡을 들을 땐 맥캘란 어 나잇 온 어스를 곁에 둡니다. 화려한 축제에서 영감을 받은 술인 만큼 입 안에서 축제가 펼쳐지거든요.” 맥캘란 한국 브랜드 앰버서더 이세용은 말한다. 달모어시가 몰트 리저브를 마실 때 정보연 작가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남체 바자르 인센스를 태운다. “시가와 함께할 때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위스키인데, 시가 대신 시가 향이 느껴지는 인센스 스틱을 매치하는 것도 좋아요. 건초와 은은한 담뱃잎 향에 버베나가 어우러져, 싱글 몰트를 마실 때 태우면 매력적인 밸런스를 내죠.” 달모어의 애호가인 제이트레이딩컴퍼니의 안효정은 달모어 시가 몰트 리저브의 페어링으로 넷플릭스 <피키 블라인더스>를 골랐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불안정한 영국의 모습을 그린 작품인데, 주인공만큼 자주 등장하는 위스키 & 시가 조합을 보고 있자니 주류 권장 드라마라고 느껴질 정도예요. 잘 차려입은 배우의 액션 연기를 눈으로 보며 시가 몰트를 함께 즐기면, 시가 잎 노트와 긴 여운이 더 잘 느껴지는 느낌이죠.” 믹솔로지스트 김봉하는 에버펠디 위스키를 마실 때 롤렉스 데이트 저스트 오이스터를 착용한다. “골든드램이라 불리는 에버펠디의 황금빛 꿀 내음이 손목에서 코끝까지 체면을 걸어주기 때문이죠.”

투손 향수, 아스티에 드 빌라트. 카나비스 향초, 멜린앤 게츠. 탈리스커 10년을 형상화한 도자기 술병, 한차연 작가.

아일라섬의 터프한 위스키들. “피트 스모크 위스키의 성지, 아일라섬 태생의 아드벡이 다른 피트 위스키와 구분되는 개성은 향이에요. 끈적이듯 딥하고 묵직한 스모크 향, 태생적으로 우울한 듯 다크한 향과 분위기는 아드벡의 숙명인가 합니다. 영화 <콘스탄틴>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악령들과 싸우고 난 뒤 마시는 위스키로 늘 아드벡이 등장하는데, 절대로 우연이 아닐 거예요. 존 콘스탄틴처럼 살짝 풀어헤친 셔츠에 카멜을 하나 물고 마셔도 좋겠지만, 저처럼 금연 중인 이들에겐 스모키한 향의 향초도 좋은 선택이 되겠죠. 역시 아드벡은 이런 분위기지, 하면서.” 바인하우스의 김병건의 말. 탈리스커 10년을 마실 때 에디터는 종종 글렌 굴드의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재생한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용솟음치는 것 같은 역동적인 에너지에 기꺼이 전율하며 한 모금, 그리고 작품으로부터 피트 향이 소용돌이치는 것 같은 이배의 숯 작업 ‘불로부터’를 눈으로 깊이 담으며 또 한 모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