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깨어 있어야겠구나 싶어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그레이 "깨어 있어야겠구나 싶어요"

2022-06-13T13:09:30+00:00 |interview|

평안하고 아름답고 빼어난 별. 팽창하는 그레이의 세계.

셔츠, 보타이, 크로스 이어링,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시스루 레이스 장갑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오랜만에 휴식 시간을 좀 가졌다고요.
GR 작년에 진짜, 진짜 ‘빡세게‘ 살았거든요.
GQ 첫 1집도 나오고.
GR 네. (정규)앨범도 거의 10년 만에 내고, 2021년에 프로듀싱을 제일 많이 했어요. 55곡 정도. <쇼미더머니 10>에도 나가고, <고등래퍼 4> 곡도 만들고, 다른 뮤지션 앨범에도 많이 참여하고, 그러다 보니 번아웃 아닌 번아웃이 왔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제 슬슬 잡히고 있는데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공연도 많이 없었으니까, 마침 쉬고 싶었는데 잘됐다 그랬죠.
GQ 푹 쉬었어요?
GR 작년 12월부터 ‘좀 쉬자’ 하고 벌써 반년 됐으니까. 충분해요. 이렇게까지 쉬어본 적이 없어요. 너무 좋아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다시 뭔가 하고 싶다’라는 의욕이 생겼어요.

턱시도 베스트, 체크 슬랙스, 모두 구찌. 체인 반다나, 믹시마이. 크로스 체인 네크리스, 링, 모두 크롬하츠. 시스루 레이스 장갑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번아웃이란 단어가 걸리네요.
GR 그러게요. 어디서 얘기한 적은 없었는데 어···, 뭔가 권태롭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없다면 거짓말일 위기들이 있었어요.
GQ 한편으론 ‘이제서야?’ 싶기도 하고요. 10년, 274곡. 한 달에 최소 두세곡 씩 만들어야 가능한 수치를 작업해왔으니.
GR 취미가 일이 됐다는 생각을 한 적 없이 너무 즐겁게 해왔는데 달리고 달리다 보니까 10년이 흘렀고, ‘이걸 왜 하고 있지?’, ‘내가 기계적으로 하고 있진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나름의 진지하고 심도 있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는 시점이었던 것 같아요.

트렌치코트,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at 무이. 패턴 셔츠와 팬츠 셋업, 에트로. 스니커즈, 아미. 네크리스, 투모로우오브젝트. 시스루 레이스 장갑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무엇으로 충전했어요? 그레이를 충전시키는 건 무엇인가요?
GR 최근에 이사해서 집 꾸미는 데도 시간 보냈고, 운동도 2년 동안 하다가 작년에는 제대로 못 했는데 다시 시작하고. 온전히 음악만 하면서 보내진 않았고 슬슬 회복하는, 진짜 좀 회복하는 시기였어요. 긴장이 풀렸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런 거 있죠? 코로나 이후에 진짜 시대가 바뀔 수 있겠구나 싶은 거예요. 예전에는 제가 배달 어플 많이 안 썼거든요. 이제는 로켓 프레시 회원이 돼서 (밖에 나가) 장을 안 봐요, 제가. 음악이라고 안 그럴까? 이 생태계가 언제라고 안 변할까? 할 수 있을 때 콘텐츠를 계속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래서 2021년에 더 열심히 살았고 말 그대로 불태웠다가 ‘아, 수고했다. 이제 잠깐 쉬자’ 했던 거죠. 음악하면서 괴로운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GQ 다행이에요. 이 질문이 유효하겠네요. “넌 꿈이 뭐야?”
GR 하하하하, 그때의 패기가 있었죠.
GQ “네 자신에게 물어봐 꿈이 뭐야?”라고 랩 하던 2013년 그레이의 꿈은 “음악 잘해서 돈 많이 벌고, 명예도 얻고, 성공하고 싶다”, “다음 앨범 잘됐으면 좋겠다”였어요. 재충전도 했겠다, 2022년 그레이의 꿈은 뭐예요?
GR 돈이나 성공이 목표였잖아요, 그때 패기로는. 저는 10년 전에 목표한 것 이상의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거든요. 진짜 너무 감사해요. 이제 다음 10년을 목표로 또 상상한다면, 새로운 경험, 새로운 무언가에 계속 뛰어들고 성취하고 싶어요. ‘돈을 더 벌어야지’ 그런 목표보다는 제2막을 연다고 해야 하나. 기존에 하던 음악도 당연히 평생 열심히 할 거지만, 재범이가 모어비전More Vision이라는 뉴 레이블로 새로운 비전을 찾아 나가듯이, 저도 그게 무엇이 될지는 몰라도 기회가 주어졌을 때 경험해보고 싶고 만들어가고 싶어요. 해보지 않은 경험을 많이 많이 하고 싶어요.

패턴 슬리브리스 셔츠, 스카프,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와이드 팬츠, 김서룡 옴므. 링, 블랙퍼플. 시스루 레이스 장갑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그레이를 AOMG로 이끈 박재범 씨가 새로운 길로 떠난 것이 그레이 씨에게 미치는 영향도 있나요?
GR 없진 않은 것 같고, ‘엄청나게 인생을 뒤흔들어놨다’ 이런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도 재범이가 만든 회사의 첫 번째 뮤지션이자 제겐 첫 회사로서, 시작을 함께한 동료이자 사장이자 리더가 나가는 것은 큰일이죠. 뭔가···, 우리 아빠가 집을 나가는 것 같은 느낌?
GQ 그러니까.
GR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까 말리기도 했죠. 그런데 재범이는 비전이 확고한 사람이고, 그리고 항상 그걸 증명했던 사람이고, AOMG도 그 증명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응원해요. 항상 되게 멋있는 사람이에요. 제가 여러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게 만든 데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주변 동료가 하는 것들이 다 에너지로 다가오고 좋은 자극을 받죠.
GQ 새로운 경험 중 하나로 이 프로젝트도 있을 듯해요. 그보다 먼저, 어떤 영화 좋아해요? 이 영화 좋아하면 나랑 코드가 맞을 것 같다 싶은 작품이 있다면요?
GR 미드 <브레이킹 배드>. <프렌즈>처럼, 뭐 볼지 고민될 때 아무 에피소드나 틀어놓는 작품이에요. 시즌 전체를 세 번 이상 본 것 같아요.
GQ 범죄 드라마.
GR 네, 그런 범죄 스릴러라고 해야 하나, 심리 스릴러 영화 좋아해요. 대놓고 공포스러운, ‘널 무섭게 할 거야’ 이런 영화보다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세븐>, 아니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처럼 심리적으로 긴장되면서도 쾌감이 있는 그런 영화들을 즐겨 봐요.

시퀸 디테일 폴로 셔츠,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at 무이. 패턴 재킷, 팬츠, 모두 로에베. 네크리스, 모두 믹시마이. 시스루 레이스 장갑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최근 이 기사를 보고 궁금했어요. “이충현 감독의 영화 <발레리나>에 올 라운드 뮤지션 그레이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한다.”
GR 네, 맞아요. 진짜 신기한 게, 말씀드렸다시피 이제 (데뷔) 10주년 됐는데 변화 아닌 변화, 뭔가 재밌는 것을 더 찾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그런 생각도 했거든요. ‘앞으로를 내다봤을 때 영화 음악도 해보고 싶다. 새로운 도전도 해보고 싶다.’ 뭔가, 사서 고생하고 싶은 느낌?
GQ 충전된 게 맞네요.
GR 왜냐면 안 해본 분야니까 완전 초심자의 느낌으로 임해야 할 것이고, 처음인만큼 더 많은 시간도 할애해야 할 것이고, 그런데 그래야 또 재미를 느낄 것 같은 거예요. 그런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어떻게 작품의 일원이 되었으니, 잘해봐야죠.
GQ 가사가 없는 스토리텔링이 전반적이라는 면에서 영화 음악은 또 다른 장르일 것도 같아요.
GR 기존에 제가 해온 음악은 중독성이 있어서 따라 부르게 되는 포인트가 있었다면, 영화 음악은 순간순간이 전부 다른 장면이고, 어떤 데선 확 몰입하게 했다가 어떤 데선 대사에 집중되게 한다든지 흘러가게 하잖아요. 이게 음악인지 효과음인지 모를 정도의 소리도 음악 감독의 역할이기도 하고. 물론 영화 감독님 의견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여기서 음악이 나와야 되는지 아닌지도 음악 감독이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진짜 도전이겠구나’, ‘지금까지와 또 다른 판단력이 필요하겠구나’. 다른 관점으로 영화도 보고 영화 음악 감독님들 인터뷰도 찾아보고 있어요.

러플 장식 셔츠,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실크 조거 팬츠, 드리스 반 노튼 at 분더샵. 하이톱 스니커즈, 아미. 진주 롱 네크리스, 크로스 펜던트 네크리스, 골드 체인 네크리스, 모두 돌체&가바나. 삼각 펜던트 네크리스, 포트레이트 리포트.

GQ <스코어: 영화 음악의 모든 것>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거기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나와요.
GR 꼭 봐야겠네. (스마트폰으로 바로 검색해보며) 한스 짐머 감독님도 나오네요. 어릴 때 <라이온 킹> 엄청 좋아했는데.(한스 짐머가 음악 감독을 맡았다.) 최근에 <듄> 보는데, 영화 볼 때 정보 안 찾아보고 바로 봐서 몰랐거든요. ‘사운드 미쳤다’, 혹시나 하고 찾아봤더니 한스 짐머 감독님이더라고요. <테넷> 볼 때는 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랑 워낙 자주 작업하니까 이것도 한스 짐머 감독이려나 했는데 느낌이 좀 다른데 또 좋은 거예요. 찾아보니 루드비히 고란손 음악 감독이더라고요.
GQ 예민한 귀네요.
GR 더 신기한 게, 제가 차일디시 감비노의 ‘레드 본’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 프로듀서가 이 사람인 거예요. <블랙 팬서>도 했고, 시저와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부른 <트롤> OST ‘The Other Side’도 만들고. 되게 폭이 넓은 모습을 보면서 ‘멋있다’ 싶고, 시나위와 삐삐밴드에서 베이시스터셨던 달파란 감독님 보면서도 제가 하는 음악들, 팝이 됐든 록이 됐든, 장르 음악을 하다가 영화 음악 하는 모습 보면서도 ‘그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구나’ 그런 용기도 얻고.
GQ 그럼요. 음표가 다르진 않잖아요. 그런데 뭐랄까, 즐거워 보여요.
GR 하하하하, 또 모르죠. 뚜껑은 열어보지 않아서.

이너 러플 디테일 하이넥 셔츠, 시스루 톱,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네크리스, 투모로우오브젝트. 팬츠, 부츠, 시스루 레이스 장갑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요즘 또 그레이 씨의 감각을 새롭게 해주는 대상은 뭐예요?
GR 최근에 이사해서 집을 꾸미다 보니까 공간이 주는 힘에 대해 새삼 느끼게 돼요. 인테리어나 가구에 진짜 관심이 없다가 이번에 이사하면서 이런 데 관심 있고 잘 아는 사람들을 보니까 신기한 거예요. ‘이런 걸 어떻게 다 알고 있지?’ 싶으면서 ‘배울 게 정말 많구나’, 더 신선해지고 내가 하고 있는 것에서 고여 있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겠구나 싶죠, 또.
GQ 자기 취향대로 꾸민 공간 안에서 얻는 에너지가 대단하죠.
GR 진짜. 몰랐어요. 전에 살던 집은 옛날 집 그 자체로 체리색 몰딩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유행이었을 테니까 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그쪽에 조예가 있는 친구가 와서 놀리는 거예요. 그때부터 오기가 생겨서 벼르고 별렀어요. 다음에 이사가면 좀 더 내 취향대로 꾸미고 살아봐야지.
GQ 그래서, 지금 그레이의 집을 묘사해본다면요?
GR 블랙 앤 화이트인데 아직 이것저것 해보는 중이에요. 소파도 이렇게 놔봤다가 저렇게도 놔보고.